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전쟁터 누빈 피스메이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는 아담 컬입니다. 당신과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명함도 없고 무장도 하지 않은 채, 한 영국인이 나이지리아 내전의 적대적 지도자들을 찾아가 건넨 말이다. 황당해 보이는 이 접근법은 놀랍게도 100만 명 이상이 기아로 사망하던 참혹한 전쟁터에서 대화의 물꼬를 텄다. 이 사람이 바로 20세기 평화학 을 정립한 아담 컬(1916~2006)이다.
1973년의 아담 컬(The Scope and Dilemmas of Peace Studies: Adam Curle’s Inaugural Lecture | 100 Objects)
히틀러의 시대, 총을 거부한 청년
1916년 영국에서 태어난 컬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광기를 관통했다. 처칠 총리가 피와 땀과 눈물 을 강조하며 청년들이 애국심으로 총을 들던 때,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했다.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우느니 차라리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법을 배우겠다 며 구호 활동에 투신했다.
퀘이커 교도였던 그에게 비폭력은 구호가 아닌 삶의 원칙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옥스퍼드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인간의 내면과 폭력의 상관관계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평화를 학문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당시 사랑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겠다 는 말만큼이나 황당하게 들렸지만, 컬은 진지했다.
아담 컬, 오른쪽 두번째.(Global Peace Warriors ADAM CURLE)
전쟁터에 홀로 찾아간 중재자
1950년대부터 컬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향했다. 가나 정부의 교육 고문을 시작으로 나이지리아 내전, 파키스탄과 인도의 갈등, 북아일랜드 분쟁 현장이 그가 찾은 곳이었다. 유엔 사무총장같은 거물들이 대규모 수행단을 이끄는 외교가 아니라 그는 늘 혼자였다.
1967년부터 1970년까지 이어진 나이지리아 비아프라 내전 당시, 그는 양측 지도자인 고온과 오주쿠를 번갈아 만나며 차를 마셨다. 적대감으로 가득한 전쟁터에서 그가 든 찻잔은 호기심과 대화의 가능성으로 바뀌었다. 그의 단순하고 인간적인 접근은 견고한 증오의 벽을 허물었다. 전쟁이 없다고 평화는 아니다
컬의 가장 위대한 학문적 업적은 평화개념의 확장이다. 그는 동료학자 요한 갈퉁과 함께 평화를 두 층위로 나눴다. 소극적 평화 는 단순히 총성이 멈춘 상태다. 하지만 차별과 빈곤, 억압이 남아 있다면 불안정한 평화일 뿐이다. 적극적 평화 는 폭력의 근본원인인 구조적 불평등이 해소돼 사람들이 인간다운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진정한 평화를 뜻한다.
1973년 그가 브래드퍼드 대학에 영국 최초로 평화학과를 세우자 보수 언론은 세금으로 히피들의 꽃밭 가꾸기를 가르치느냐 며 비아냥댔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학생들을 노숙인, 재소자, 이민자를 만나는 현장으로 보냈다. 평화는 강의실의 논쟁이 아니라 현장의 실천에서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담 컬의 평화학 강의집(김성수 시민기자 소장)
2026년 한국이 배워야 할 교훈
컬의 철학은 오늘날 한국사회와 놀라울 정도로 맞닿아 있다.
먼저 남북관계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70년 넘게 우리는 소극적 평화 상태에 머물러 있다. 군비 경쟁과 서로를 향한 적대적 담론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평화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정치적 통일이나 경제적 이익을 계산하기에 앞서, 서로를 대화 가능한 인간 으로 보는 컬의 찻잔 정신 을 회복해야 한다. 적대감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구조적 불안을 해소하는 적극적 평화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
정치 양극화, 젠더 갈등, 세대 차이로 한국사회는 몸살을 앓는데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는 서로를 공격하는 언어의 전쟁터가 됐다. 컬은 정부나 거대 조직이 아닌 개인의 힘을 믿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를 비난할 논리가 아니라 당신의 고통은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 경청의 자세다. 사회 곳곳에서 컬과 같은 풀뿌리 중재자들이 나타나 갈등의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한국교육은 오랫동안 승리하는 법 에만 몰두해 왔다. 그 결과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사회적 신뢰 저하로 나타나고 있다. 브래드퍼드 대학의 평화학과가 비웃음을 이겨내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듯 한국 교육과정에도 갈등을 비폭력으로 해결하고 타인과 공감하는 법을 가르치는 평화 교육 이 필수 과목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평화는 본능이 아니라 학습되고 훈련되어야 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1976년의 아담 컬.(Adam Curle remembered | The Friend)
위험한 건 나이가 아니라 무관심
컬은 여든을 넘겨서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거리를 걸었다. 가톨릭과 개신교 신도들이 폭탄을 던지던 그곳에서도 주민들과 차를 마셨다. 위험하다는 만류에 그는 웃으며 답했다. 위험한 건 나이가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2006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묘비에는 화려한 수식어 없이 평화를 만드는 사람 (Peace Maker) 글자만 새겨졌다. 그는 평화를 거창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야 하는 정원 가꾸기 같은 일상의 실천으로 정의했다.
평화가 정말 가능합니까? 세상은 점점 더 험악해지는데 말이죠. 우리가 이렇게 묻는다면, 컬은 특유의 영국식 억양으로 되물을 것이다. 글쎄요, 당신은 오늘 당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군가에게 차 한 잔을 권해 보았습니까? 평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의 삶이 보여준 것처럼 평화는 거물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증오의 언어를 거두고 대화의 찻잔을 들 때, 비로소 평화의 씨앗은 이 땅에 뿌리 내릴 것이다.
아담 컬 평전(김성수 시민기자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