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초대장  
페이지투미   페이지투미 플러스
페이지투미 홈   서비스 소개   아카이브   이야기   이용 안내
페이지투미는 사회혁신 분야의 새로운 정보를 모아 일주일에 3번, 메일로 발송해드립니다.

link 세부 정보

정보 바로가기 : 옥스퍼드 탈주 학자들의 800년 상아탑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탈주 학자들의 800년 상아탑 케임브리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국 잉글랜드 동부, 강가에 자리 잡은 인구 15만의 소도시 케임브리지. 서울 노원구 인구의 절반도 안 되는 이 작은 도시가 어떻게 전 세계 지식인들의 순례지가 되었을까? 해답은 아이러니하게도 싸움에서 시작된다. 1209년, 옥스퍼드 대학의 학자 몇 명이 마을사람들과 싸우다 동료 학자가 처형당하는 사태를 목격했다. 분노한 이들은 짐을 싸 동쪽으로 100킬로미터쯤 걸어가 강가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그것이 케임브리지 대학의 시작이다. 한마디로, 갈 데가 없어 만든 학교가 세계 최고 대학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도망이 창조가 된 셈이다.  이 대학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자, 영어권에서는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 1231년 영국 왕 헨리 3세(재위 1216~1272)로부터 칙허를 받아 공식 학위수여 권한을 얻었고, 헨리 8세(1491~1547)가 1546년 트리니티 칼리지를 세웠으며, 1571년 의회법으로 법인격을 부여받았다. 31개의 단과대학으로 구성된 독특한 연합체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왼쪽 중간쯤에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의 정면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탑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전설적인 헤퍼스 서점이 있다.(위키피디아)   케임브리지 펀츠, 리버 캠.(위키피디아) 사과 하나가 우주를 바꿨다, 그 나무가 여기 있다 케임브리지 하면 빠질 수 없는 이름, 아이작 뉴턴(1643~1727). 케임브리지 주 링컨셔에서 태어나 1661년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한 그는, 1665년 흑사병이 돌아 학교가 문을 닫자 집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다가 만유인력을 떠올렸다는 전설을 남겼다. 공부하기 싫어 집에 내려가 있다가 인류 최대의 발견을 한 것이다. 이쯤 되면 방학이 학문의 요람이 됐다고 해야 할까? 1669년 스물여섯 나이에 케임브리지 대학 수학 석좌교수(이른바 루카스 석좌 )가 된 뉴턴은 빛의 굴절, 만유인력, 미적분학을 동시에 쏟아냈다. 그로부터 310년이 흐른 1979년, 같은 자리를 이어받은 이가 스티브 호킹(1942~2018)이다. 휠체어에 앉아 우주의 끝을 논한 그는 2018년 76세로 세상을 떠났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뉴턴과 찰스 다윈(1809~1882) 사이에 묻혔다. 천재들은 죽어서도 이웃을 가린다.   아이작 뉴턴의 초상화, 1689년(위키피디아) 다윈은 1827년 케임브리지 크라이스츠 칼리지에 들어와 1831년까지 있었다. 아버지는 의사가 되길 바랐고, 할아버지도 의사였다. 그러나 그는 딱정벌레를 잡으러 다니는 데 시간을 더 썼다. 지도교수 헨슬로가 그의 벌레 사랑을 알아보고 비글호 항해를 권유했고, 그 항해에서 나온 결과가 1859년 출간된 종의 기원 이다. 딱정벌레 수집이 진화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취미를 믿어준 스승 하나가 인류의 세계관을 바꾼 셈이다. 앨런 튜링(1912~1954)은 킹스 칼리지에서 수학을 배웠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암호 기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해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전쟁이 끝난 뒤 동성애를 이유로 법정에 세워졌다. 당시 영국 법이 이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를 구해준 사람이 국가에 의해 화학적 거세를 당하고, 1954년 마흔두 살에 세상을 떠났다. 영국은 2013년에야 그를 공식 사면했다. 천재를 박해하는 나라의 뒤늦은 반성이 씁쓸하다.   앨런 튜링 1951년(위키피디아) 지금의 케임브리지는 어떤 모습인가? 2024년 기준 케임브리지 대학에는 1만 3113명의 교직원이 근무하고, 전 세계 졸업생은 33만 명을 훌쩍 넘는다. 2023년 기준 4550개의 학부 자리에 무려 2만 1445명이 지원했다. 경쟁률이 거의 5:1에 이른다. 한국 의대 입시가 생각나는 수치이지만, 분야가 수학·물리학·철학·역사학 등 다양하다는 점이 다르다. 대학 도서관은 법에 따라 영국에서 출판되는 모든 책을 한 부씩 받는 6개 법정 납본 도서관 중 하나다. 소장 자료가 800만 점을 넘는다. 뉴턴의 친필 메모도, 다윈의 연구 일지도 여기 있다. 인류의 생각이 종이에 묻어 있는 공간이다. 대학 말고도 케임브리지 시는 이른바 실리콘 펜(Silicon Fen) 이라 불리는 첨단 기술 집적 지대로 발전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에서 실리콘 을 빌리고, 케임브리지 동부 습지 지대를 가리키는 펜(Fen) 을 붙인 별명이다. 대학에서 파생된 벤처기업과 연구소들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지식과 산업이 분리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1284년 세워진 피터하우스 칼리지가 지금도 현역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건물 바로 옆에 첨단 생명공학 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역사와 혁신이 한 도시 안에서 밥상을 같이 차린다.   피터하우스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설립된 최초의 단과대학이다.(위키피디아)   1575년의 케임브리지(위키피디아)   한국에 주는 시사점, 뼈아픈 비교 케임브리지를 들여다보면 한국교육의 민낯이 더 선명해진다. 첫째, 실패와 도망의 가치. 케임브리지는 달아난 이들이 세웠고, 뉴턴은 전염병 피난 중에 발견했고, 다윈은 낙제생 수준의 공부를 하다 배를 탔다. 한국교육은 도망도, 실패도 용납하지 않는다. 수능 한 번으로 인생이 분류되는 체계 안에서 뉴턴이나 다윈은 없다. 그가 다시 이 땅에 태어났더라도 수능 국어 때문에 의대에 가거나 재수를 하고 있을 것이다. 둘째, 다양성과 자율성. 31개 칼리지가 각자의 전통과 자치를 가지고 운영되는 케임브리지와 달리, 한국대학은 교육부의 지침 한 장에 일제히 움직인다. 튜링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박해받은 역사는 부끄럽지만, 영국은 그 과오를 인정하고 사면했다. 소수자와 소수의견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그 사회의 수준을 드러낸다. 셋째, 기초학문의 힘. 케임브리지가 800년 동안 쌓은 것은 당장 쓸모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뉴턴의 수학, 다윈의 자연관찰, 튜링의 논리학이 수십 년, 수백 년 뒤에야 실용으로 연결되었다. 한국은 지금 이 순간 당장 돈이 되는 학과에 정원을 몰아준다. 반도체 학과 정원은 늘리고 철학과·사학과는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씨앗을 뽑고 열매를 기대하는 격이다. 넷째, 도시와 대학의 공존. 케임브리지 시내를 걸으면 대학이 도시를 먹어 삼킨 것인지, 도시가 대학을 품은 것인지 구분이 안 된다. 한국의 대학은 도시와 분리된 섬이다. 지역소멸 시대에 대학과 지역사회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케임브리지는 800년 묵은 답을 갖고 있다. 1958년, 케임브리지 공학과 학생들이 몰래 자동차 한 대를 의회 상원 건물 지붕에 올려놓는 사건이 있었다. 대학당국은 일주일 만에야 이를 내렸다. 이 장난의 정신이 케임브리지를 상징한다. 권위에 도전하는 유머,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해보려는 기개. 도망에서 시작해 장난으로 이어지는, 이 오래된 도시의 정신이 지금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케임브리지 파커스 피스 공원 중앙 가로등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현실 검문소(Reality Checkpoint) . 대학의 거품과 실제 세상의 경계선이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물어보자. 우리 교육은 지금 어느 쪽에 있는가?   케임브리지 축구 규칙이 처음으로 시행된 곳, 파커스 피스 공원.(위키피디아)


최근 3주간 링크를 확인한 사용자 수

검색 키워드


주소 : (12096) 경기도 남양주시 순화궁로 418 현대그리너리캠퍼스 B-02-19호
전화: +82-70-8692-0392
Email: help@treeple.net

© 2016~2026. TreepleN Co.,Ltd. All Right Reserved. / System Updated

회사소개 / 서비스소개 / 문의하기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