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반동 고발하는 16세기 카라바조의 ‘그림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동진 영화 평론가
다음은 영화의 대사이다. 이 대화를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들여다보면 이게 과연 언제 때의 이야기인지 실로 헷갈리게 된다. 다소 길지만 대사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세상을 흑백으로만 보는 바티칸 비밀 수사관의 심문
(그림자) 너의 죄를 모두 알고 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메리시) 내 죄를 사해 달라고 요청했소만…
(그림자) 네 그림에 담긴 죄도?
(메리시) 내 그림은 사면이 필요 없소.
(그림자) 확실한가? / 지금 기독교 세계에서는 질서와 무질서가 / 하느님과 혼돈의 세력이 /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 / 넌 혼돈의 세력에 속해 있지 / 내가 보고 느낀 걸 말해 주지 / 네 그림에 빠져든 건 사실이다 / 경이로운 작품에 매료됐지 / 그렇게 아름다운 건 본 적이 없었어 / 근데 보는 사람의 마음에 의심을 불어넣더군 / 교회는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고 믿길 바라는데 말이야.
(메리시) 내가 본 걸 그리는 거요.
(그림자) 알지 / 거지들과 도둑놈들을 성인으로 둔갑시키고 / 매춘부를 성모로 만들잖나 / 아끼는(탐하는) 소년들을 성경 속 인물로 그리기도 하고 / 하지만 그 자들이 부도덕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메리시) 이보시오 / 당신은 내 그림을 봤지만 봤다고 할 수가 없구려 / 맹목적인 믿음이 눈을 가리고 있으니 / 당신이 말한 부도덕한 자들은 / 나의 신이오.
(그림자) 불경하도다! / 신성을 모독하다니! / 성스러움은 안중에도 없구나.
(메리시) 내가 그리는 육체가 성스러운 것이오.
(그림자) 수긍할 수 없다 / 넌 악을 그린 거야 / 질병과 죽음, 폭력, 부패.
(메리시) 아뇨 / 난 새로운 형태와 색깔 / 새로운 생각을 추구하오.
(그림자) 불경한 말을 하는구나! / 넌 로마 교회의 존재를 부정하듯이 말하는데, 틀렸어! / 네게 작품을 의뢰하는 귀족들은 우리 덕에 부유해진 거다 / 우리가 네 그림에 값을 치르지 / 네 그림은 성당에 걸리고 / 그림 내용도 성경 속 이야기잖나 / 전부 우리 로마 교회 것이야 / 모든 건 우리가 결정한다.
(메리시) 나한테 원하는 게 뭐요?
(그림자) 뭐냐고? / 작품 활동을 중단해라 / 붓을 내려놓으라고 / 네 그림이 제단 위에 걸리는 걸 용납할 수 없다 / 다신 그림을 그리지 마라.
(메리시) 그림은 내 삶 자체요 / 그걸 뺏으면 날 죽이는 거요.
"일개 화가가 우리 성스러운 기득권 세상을 주도한다고?"
여기서 메리시, 곧 미켈란젤로 메리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1571~1610년을 살며 16세기 후반을 풍미했던 불세출의 화가 카라바조(리카르도 스카마르시오 역)이다. 그를 겁박하는 '그림자'란 인물은 바티칸의 은밀한 지령을 받는 비밀수사관이다. 일종의 특수 검사이다. 이 '그림자'(루이 가렐 역)는도피 중에도 계속 신성모독의 (체제 저항적인) 그림을 그리는 카라바조를 붙잡는데 성공한다. ‘그림자’란 인물의 의식 속 세상은 온통 흑과 백으로만 칠해져 있다. 그는 자기 세계의 중심인 기독교 세상이 온통 무질서와 혼돈으로 가득 차 있고 그 모든 것이 카라바조 같은 불경한 인물(반국가세력)이 그리는 작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도 메리시의 작품에 매료됐음에도, 교회의 성스러움을 일개 화가가 주도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교회는 자신 같은 사람들(기득권자들)의 것, 세상 역시 자기 것이라고 '그림자'는 생각한다. 그런 그의 생각은 너무 단단해서 결국 세상 전체에 비극을 만들어 낸다.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는 중세 시대를 살아간 한 인물의 행적을 좇는 얘기임에도 묘하게도 2020년대 현실의 부조리함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런 걸 두고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나든다는 표현을 한다. 한자어로 말하면 일종의 통시성(通時性)이지만 통시(洞視), 곧 통찰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갖기도 한다. 영화를 통해서 목도하게 되는 카라바조의 비극적 삶, 특히 그의 최후를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현실의 우리도 같은 일을 겪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화려한 르네상스 이면의 어두움 그려낸 중세의 리얼리스트
정사(正史)로만 보면 카라바조는 살인범으로 기록돼 있다. 폭력 전과가 거듭됐고 성추행을 일삼았으며, 매음굴에서 환락에 취해 살았고 동성, 특히 어린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소아성애자였다고 기록돼 있다. 그건 표면적으로 보면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예컨대 카라바조가 살인을 하게 된 이유는 혹시 정당방위의 과정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었을까? 그가 매음굴에서 많은 창녀들과 지냈던 것은 그들에게서 낮은 곳에 임하려 했던 예수의 심성을 발견했거나 발견하려 했던 예술가로서의 노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카라바조가 그렸던 『메두사』나 『유디트』 『도마뱀에 물린 소년』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그리스도의 체포』 같은 걸작들은 그가 자신을 그린 것이 거나 그가 직접 본 행위를 그린 것이다. 카라바조는 자신이 ‘본 것을 통한 상상’만으로 그림을 그렸다. 카라바조 전에는 이식된 기독교 사상의 판타지를 표현하는데 그쳤다. 카라바조 이전의 르네상스 미술은 색채와 풍경은 화려했지만 그 이면에 담겨진 어두움은 그려내지 못했다. 카라바조가 만들어 낸 바로크 미술양식은 그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예술적 태도에서 시작됐다. 카라바조는 중세의 리얼리스트였던 셈이다.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는 놀랍게도 카라바조에 대한 정사 이면의 정사, 그 비밀과 미스터리를 캐내려 한 작품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시점(視点)을그의 정반대편에 서 있는 비밀경찰의 눈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카라바조의 그림자’이다. 이 영화의 화자는 카라바조가 아니라 그를 좇는 그림자이다. 반대자의 시선을 통해, 그가 반대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변화이자 진실임을 그려 내려 한다.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는 그 안에 담긴 기묘한 도치법이 독특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카라바조는 1606년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후 몰타와 시칠리, 나폴리와 피렌체를 떠돌아 다니며 도피 생활을 한다. 영화는 1609년 나폴리에서 자객들에게 피습을 당하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이야기의 기둥은 1609년과 그가 죽게 되는 1610년 2년 간의 이야기지만 계속되는 플래쉬 백, 과거 회상의 장면들로 그가 무슨 생각으로 어두운 성당의 그림들을 그렸는지, 화가의 일생을 기록해 낸다. 카라바조는 콘스탄자 스포르자 콜로냐 가문의 후작 부인(이자벨 위페르 役)으로부터 후원을 받았고 그녀의 정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교황의 조카이자 추기경이었던 인물로부터도 그림의 진가를 인정받아 일종의 비호를 받기도 했다. 그 과정의 에피소드들이 촘촘히 전개된다. 이야기의 직조 방식이 정교하고 세밀하다.
있는 그대로 그리려던 화가를 있는 그대로 그려낸 영화
이탈리아 영화답게 성에 대한 표현 수위가 높다. 집단의 누드가 거침없이 드러나고 창녀와 매음굴의 모습도 적나라하다. 섹스 신의 세기도 강하다. 카라바조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으로 그림을 그리려 했던 것처럼 이 영화의 감독 미첼 프라치도 역시 당시의 시대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상상하고 있는 그대로 그리려 한 셈이다. 상상이지만 리얼이고, 리얼이지만 상상이다.
주연을 맡은 리카르도 스카마르시오는 이탈리아에서 '미친 놈' 연기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다. 이탈리아의 극우파 수상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얘기를 그린, 파울로 소렌티노 감독의 '그때 그들'에서 광기의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그림자' 역의 루이 가렐은 프랑스 배우이지만 이탈리아의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영화 '몽상가들'로 세상의 시선을 받았다. 이탈리아 영화계와 인연이 깊다.
메두사의 머리. 카라바조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는 중세 유럽의 화가 얘기이고 1500년대 후반의 공간과 시대를 보여 주는 작품이지만 이상하게도 비틀린 이탈리아 정치를 떠오르게 한다. 더 나아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탄핵 정국의 한국 사회마저 닮아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우리 사회 일부 계층의 사람들은 영화 속 인물인 ‘그림자’처럼 시대의 진실과 그로 인한 변화를 무작정 거부한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반동(反動)의 위기에 처한다. 16세기나 21세기나 그 진부한 현상은 반복된다는 점을 고찰하는 작품이다. 역사 속 오류는 자꾸 거듭된다. ‘카라바조의 그림자’가 사람들을 깨우치려 하는 대목이다. 이 영화가 주는 울림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는 1월 22일 개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