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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버린 화가 폴 고갱, 그 뒤에 남겨진 씁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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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 이름만 들어도 뭔가 낭만적인 냄새를 풍긴다. 타히티의 열대 햇살, 원색의 물감, 원주민 여성들의 신비로운 눈빛…. 그런데 잠깐, 그 낭만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사실 꽤 복잡한 인간이었다. 영웅인지 악당인지, 혁명가인지 도망자인지,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1891년 경의 폴 고갱(위키피디아) 증권사 직원이 화가가 되기까지, 퇴사의 역사 고갱은 처음부터 화가가 아니었다. 파리 증권거래소에서 제법 잘나가는 직원으로 일했다. 지금으로 치면 대형 증권사 다니는 중견 직원쯤 될까. 월급도 좋았고, 부인도 있었고, 자식도 다섯이었다. 덴마크 출신 아내 메테 소피 가드(Mette Sophie Gad, 1850~1920)는 분명 남편이 안정적인 삶을 살아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1882년, 주식시장이 폭락했다. 직장을 잃은 고갱은 그때서야 붓을 들었다. 이제 나는 매일 그림을 그릴 것이다 라고 선언했는데, 아내 입장에선 황당 그 자체였을 것이다. 다섯 자녀를 데리고 친정인 덴마크로 돌아간 메테는 이후 고갱과 사실상 별거 상태로 살았다. 고갱은 가족을 뒤로 한 채 그림의 길로 들어섰다. 요즘 말로 하면, 가장이 갑자기 나 유튜버 할게 라고 선언한 격이다.   고갱과 그의 아내 메테가 1885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함께 한 모습(위키피디아) 빈센트와의 우정, 57일간의 동거, 그리고 귀 고갱은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와 유명한 인연을 맺었다. 1888년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에서 두 사람은 함께 살았다. 빈센트의 동생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 1857~1891)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이 동거는 그림 같은 우정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두 예술적 자아가 충돌하는 57일의 폭풍이었다. 두 사람은 매일 싸웠다. 그림에 대해, 색에 대해, 인생에 대해. 결국 그 유명한 사건이 터진다. 빈센트가 자신의 귀를 잘랐다. 고갱은 그날 밤 짐을 싸서 도망쳤다. 둘의 우정은 거기서 끝났다. 남은 것은 전설과 귀 하나. 예술사에서 가장 극적인 룸메이트 결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귀를 붕대로 감은 채 파이프를 물고 있는 고흐 자화상, 1889년(위키피디아) 타히티행, 낭만인가? 도피인가? 1891년, 고갱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섬 타히티로 떠났다. 당시 나이 마흔셋. 그는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원시의 낙원 을 찾아간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도착한 타히티는 프랑스의 식민지배 아래 있었고, 원주민들은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서구 옷을 입고 있었다. 고갱이 꿈꾼 원시의 낙원 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없는 낙원을 캔버스 위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더 불편한 진실도 있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십대 원주민 소녀들과 관계를 맺었다. 그 중 테후라(Teha amana)는 고갱과 동거했을 때 열네 살이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명백한 착취다. 고갱의 예술적 업적과 그의 행실은 별개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현재 미술계에서 높아지고 있다. 그림은 위대할 수 있다. 그러나 화가는 위대하지 않을 수 있다.   테후라(테하마나), 1891-3, 다색 푸아 나무, 오르세 미술관, 파리(위키피디아) 그림의 힘, 색채가 던진 질문 그럼에도 고갱의 그림 자체는 혁명적이었다. 그는 서양미술이 오랫동안 집착해온 사실적으로 그리기 를 거부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느낌과 상징을 두껍고 강렬한 색으로 표현했다. 이른바 후기 인상주의의 핵심이다. 그의 대표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7년)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가로 4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화폭에 인간의 탄생과 삶과 죽음을 담았다. 이 그림을 완성한 뒤 고갱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전해진다. 실패로 끝났지만. 그는 이 그림을 내 유언 이라 불렀다. 이 집요한 질문,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는 단순한 철학적 감상이 아니었다. 서구 문명의 자기중심성, 식민주의의 폭력, 근대화가 짓밟은 것들에 대한 고발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발을 한 사람이 식민 지배국가의 백인 남성이었다는 점은 역사의 복잡한 농담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7년, 캔버스에 유채, 139 × 375cm (55 × 148인치), 보스턴 미술관, 매사추세츠 보스턴(위키피디아) 한국에 대입하면, 우리도 낙원을 찾아 도망치는 중인가? 자, 이제 한국이야기를 해보자. 고갱의 삶과 예술은 지금 이 땅의 현실과 묘하게 겹친다. 첫째, 탈출의 욕망. 고갱이 증권사를 박차고 타히티로 간 것처럼, 지금 한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 고 말한다. 소위 한국탈출 을 꿈꾸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입시, 취업, 집값, 저출생, 군대, 고용불안,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런데 고갱의 사례가 가르쳐주는 것은, 도망간 곳에도 낙원은 없다는 것이다. 타히티도 이미 식민지였다. 어디를 가든 현실은 따라온다. 둘째, 기득권 예술과 비주류의 싸움. 고갱은 당시 프랑스 주류화단이 인정하는 방식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래서 생전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지금 한국에서도 제도권 밖에서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 언론인, 활동가들이 비슷한 처지다. 기존 틀을 깨려는 시도는 언제나 불편함을 낳는다. 고갱이 훗날 미술사를 뒤흔들었듯, 오늘의 비주류가 내일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셋째, 문명비판의 이중성. 고갱은 서양문명을 비판하면서도 서양문명의 산물인 물감과 캔버스를 사용했고, 프랑스의 보호를 받는 타히티에 머물렀다. 지금 한국에서도 비슷한 이중성이 보인다. 재벌체제를 비판하면서도 재벌 회사의 제품을 쓰고, 부동산 불평등을 욕하면서도 내 집 마련을 꿈꾼다. 이 모순은 위선이 아니라, 구조 안에 갇힌 인간의 조건이다. 고갱도 그랬다. 우리도 그렇다. 넷째, 착취와 낭만의 구분. 가장 불편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고갱의 타히티 생활은 분명 착취의 요소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서양미술사는 그것을 낭만적 일탈 로 포장했다. 한국에서도 권력자의 행실이 열정 혹은 카리스마 로 포장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예술적 재능, 경제적 성과, 정치적 업적이 도덕적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것, 고갱이 남긴 가장 현실적인 교훈이다.   보지라르의 시장 정원, 1879년, 스미스 칼리지 미술관.(위키피디아) 그는 마르키즈 제도에서 죽었다 고갱은 1901년 타히티를 떠나 더 오지인 마르키즈 제도의 히바오아 섬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식민지 당국과 교회에 맞서 원주민들의 편을 들다가, 1903년 쉰다섯의 나이로 외롭게 숨을 거뒀다. 매독과 알코올 중독, 가난이 겹쳐 있었다. 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그림 값은 폭등했다. 살아서는 굶주렸고, 죽어서는 경매장에서 수백억에 팔린다. 이 또한 예술사의 오래된 농담이다. 고갱의 삶은 묻는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낭만이란 무엇인가? 자유란 무엇인가? 그리고 가장 날카로운 질문 하나, 누군가의 낙원이 다른 누군가에겐 지옥일 수 있지 않은가? 지금 한국사회도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누군가의 성장이 다른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그리는 낙원의 그림 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지워지고 있지는 않은가? 고갱은 캔버스 위에 그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어디에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과 답을 남길 것인가?   고갱 자화상, 1903, 바젤 미술관(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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