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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재미없지만 위대한 일본 영화 ‘상자 속의 양’

재미없지만 위대한 일본 영화 ‘상자 속의 양’
[뉴스]
오동진 영화평론가 아무리 관대해지려고 노력한다 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새 영화이자 지난 5월 열린 칸영화제 공식 경쟁작이었던 은 ‘무지하게’ 지루한 영화이다. 그가 지금껏 해 왔듯 대중적으로 흥행에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단 히로카즈의 광팬으로서, 데뷔작부터 시작해 연이어 선보인 가족영화에 대한 그의 천착을 잘 아는 관객이라면 ( ) 이번 영화가 어떤 집대성을 이루려는 시도의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때로 영화는, 재미없지만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 구석구석이 달리 보인다. 이 영화가 ‘무지하게 지루한’ 것도 어쩌면 철저히 계산되고 의도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도 드는 것이다. 게다가 AI 그리고 로봇 시대의 새로운 가족관계는 딱딱하고 직설적이며 무미건조할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속 아버지 켄스케(다이고)는 극 후반부에 휴머노이드 아들 카케루(쿠와키 리무)를 떠나보낼 때 아이를 안으며 의미심장한 얘기를 한다. 너는 딱딱하구나.”   사고로 잃은 아들 대신 입양한 7살짜리 휴머노이드 은 7살짜리 휴머노이드 카케루를 키우게 되는 켄스케와 오토네(아야세 하루카) 부부의 이야기이다. 이 부부는 몇 년 전 7살짜리 아들을 사고로 잃었으며 고민 끝에 한 인공지능업체로부터 죽은 아이와 똑 닮은 휴머노이드를 집에 들이기로 ‘계약’을 한다. 마침 신형 휴머노이드이고 테스팅 모델이어서 무료 계약이다. 일종의 리스 개념이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구매 여부를 정하고 유료로 계약하면 된다. 영화 중간중간 로봇인 카케루는 엄마에게 계약을 종료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아내 오토네는 로봇을 데려오는 순간부터 감정이입을 한다. 그녀는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온 듯 침대에서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 로봇을 눕혀 놓고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여자는 아이 로봇에게 바로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라고 한다. 그러나 남편인 켄스케는 가능하면 ‘이건 로봇일 뿐’이라고 생각하려 애쓴다. 그는 아이 로봇에게 자신을 아빠라 부르지 말라고 한다. 켄스케 로봇은 그를 아저씨라고 부른다. 켄스케는 일종의 다마고치이다. 1996년 일본 반다이와 주식회사 위즈가 만들어 2025년 8월, 통산 1억 개 판매를 달성한 계란형의 애완동물 기계이다. 기계 안에 동물을 키우는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인데 일정 시간마다 밥을 주고 똥도 치워 주며 잠을 재우는 등 반려 육아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아무것도 아닌 작은 기계를 통해, 대리 부모, 대리 가정의 욕구를 실현했다. 에서 보여지는 켄스케 로봇도 사실 정서적으로는 다마고치의 확대 버전이다. 다만 밥을 먹이거나 화장실을 가게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어 주고 산책을 같이 다니며 아이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확인하고, 죽은 자기 진짜 아이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고 대화를 나누는 식이다. 조금 다르게 보이겠지만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고 관심을 기울이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결국 그것이 다마고치든 로봇이든 그 물성 자체보다는 거기에 반응하는 나의 인성과 감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로봇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건 철저하게 자신 때문이다. 모든 것은 나 자신의 마음속에서 비롯된다.   인간관계나 세상일이나 모두 ‘상자’라는 상상 속에 있는 법 엄마 오토네는 때때로 자신의 아이가 살아 돌아왔다고 느낀다. 오토네는 로봇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어 준다. 이야기 속에서 어린 왕자는 화자인 비행기 조종사를 만나 대뜸 양을 그려 달라고 한다. 아이가 양을 그려 달라고 하는 이유는 양이 필요해서인데 자신이 키우는 바오밥나무가 너무 크게 하지 않기 위해 양에게 그 싹을 먹일 생각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엄마와 아이 로봇은 나무를 재배하며 소통한다) 그런데 조종사가 양을 그려 줄 때마다 어린 왕자는 그 양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조종사는 다른 양을 그려주고, 심지어 할머니 양도 그려주다가 아예 상자를 그려준다. 그리고 왕자에게 말한다. 그 상자 안에 너의 양이 있어.” 왕자는 상자 속의 양을 상상하며 만족한다. 영화 은 제목에서 모든 것을 은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상자 속에, 그러니까 당신의 상상 속에, 그리하여 지금 보는 영화라는 기계 문명의 텍스트 안에 어쩌면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 방법이 담겨 있다고 얘기하는 영화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총구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며, 그 어떤 정치사회체제도 아닌, 당신의 마음속, 당신의 상상력의 힘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영화이다. 아이 로봇 켄스케는 종종 엄마인 오토네의 가슴에 손을 댄다. 그녀의 마음을 읽으려고 한다. 여자는 문득 그것이 오히려 두렵다. 자기 마음을 읽지 말라고 말한다. 여자가 화를 내는 것 같자 아이 로봇은 또 말한다. 계약을 종료하시겠습니까?” 오토네는 계속해서 망설인다.   인공지능 시대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지금까지 만든 걸출한 작품들을 통해 가족의 문제를 스스로 ‘철학’함으로써 이슈화했다. 대체로 격렬한 사회 이슈 파이팅을 동반시켰다. 네 번째 장편으로 칸에서 아역배우 야기라 유야에게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안긴 (2004)는 실제로 일어났던 ‘스기모 아동 방치 사건’을 다룬다. 아버지가 다 다른 아이 넷을 낳은 엄마가 어느 날 불쑥, 아이들을 버린다. 12살 장남인 아키라는 동생들을 돌보기 시작하나 비극은 예견돼 있다. 는 현대의 가족이란, 언제든 붕괴할 수 있는 허약한 연대임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고레에다의 (2008)에 나오는 가족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기보다는 원망과 책임을 떠넘기는 관계일 뿐이다. (영화 속 의사 아버지와 둘째 아들은 장남의 죽음을 두고 화해하지 못한다) (2013)에서는 신생아실에서 아이가 뒤바뀐 두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과 혈연의 관계를 새삼 물었고, (2015)에서는 가족의 재건이 어쩌면 상실의 인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흩어져 살던 딸 셋은 오래전에 집을 나간 아빠의 장례식에 갔다가 의붓여동생을 만나 네 자매를 이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최고의 걸작 (2018)은 한 소매치기 집단이 이런저런 이유와 목적으로 자신들만의 가족을 이루는 얘기이다. 의사(擬似, 가짜) 가족 얘기지만 과연 우리의 삶에서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거꾸로 되묻고 있는 작품이다. 히로카즈는 이렇게 오랜 시간 ‘가족’의 의미를 찾아왔으며 지금과 같은 인공지능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족이라는 존재는 또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그 답을 찾으려 한다. 고레에다 역시 상자 속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의 상자 속에 있는 것은 소확행 ?   히로카즈의 노력을 애써 비판하자면 그의 ‘가족주의’는 일본 사회 지식인들이 다분히 나타내는 개인주의와 소우주론에 가깝다. 일본 사회는 좋게 말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야 말로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라 여긴다. 일본 사회는 7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자민당의 장기 집권 아래 이상적인 사회체제의 실현은 포기된 지 오래다. 철저히 개인화된 삶에서 이들이 추구할 수 있는 바, 그 최대치는 ‘가족의 삶과 행복’이다. 그렇다면 가족은 무엇이고,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개념 확립이 가장 중차대한 주제일 수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자신의 영화 철학 중심에 가족의 개념을 끌어온 것은, 오히려 그래서, 역설적으로 정치적일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의미가 있지만 이번 신작 은 그다지 성공적인 작품은 아니다. 특히 중간쯤 나오는 켄스케의 수리 장면, 허리 아래가 잘리고 가슴 부위를 열어 그 안의 기계장치가 나오는 장면은 현대 SF영화 중 한참 ‘수준 낮은’ 장면이다. 물론 그것조차 의도했을 것이다. 이게 (할리우드식 물량 공세의) SF영화와는 다른 진짜다, 라는 식의 고집이 작동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가족론’을 이번 영화로 집대성했다. 극 후반,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바야흐로 ‘신(新) 가족’을 탄생시킨다. 은 재미없지만 위대한 영화이다. 당신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세계를 존중한다면 주저 없이 보아야 할 작품이다. 6월 10일 전국 개봉한다.오동진 ohdjin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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