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폭망, 못살겠다 총선 슬로건으로 제안한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한미 군사훈련의 횟수와 강도,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안보불안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당초 취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억제력을 강화한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과도하게 진행되면서 오히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보유를 정당화시켜 주고, 더 나아가 이웃 국가를 자극, 중국까지 위험한 한반도 군비경쟁 게임에 불러들이고 있다.
3월 4~14일 한미 연합훈련인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가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되었고, 4월 초까지 한국군과 주한미군, 미 본토 및 일본에서 증원되는 미군이 대거 참가한 가운데 한미 연합상륙훈련, 연합특수작전훈련을 비롯한 20여 개의 야외 기동훈련도 실시된다. 국방부는 3월 19일 「2024년 주요정책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한미 및 한미일 연합훈련을 넘어 유엔사 회원국들과의 연합연습 및 훈련을 활성화한다고 밝혔다.
확대·강화된 한미 훈련이 중국 반발 불러
3월 7일 러시아 군사싱크탱크 리바르(RYBAR)는 3월 4~16일 서해 백령도와 제주도 서쪽해상에 걸쳐 실시된 ‘자유의 방패’ 한미 연합훈련에 맞대응해 중군 공군의 전략폭격기 H-6K 16대가 서해에서 한국 해안으로 무력시위를 했다고 밝혔다. 리바르는 “한미 연합군이 북한·중국과 맞서 싸우기 위해 연합작전계획을 연습하고 있다”면서 “당연히 중국은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3월 7일 러시아 군사싱크탱크 리바르(RYBAR)가 공개한 한미 연합훈련 중에 실시된 중국 H-6K의 공중 핵타격훈련. 2024.3.7. 리바르 누리집(원본 수정 )
리바르가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중국의 반응’이라는 제목으로 공개한 지도에 따르면, 장수성 우공(武功) 공군기지에서 2대, 산둥성 르자오(日照) 공군기지에서 2대가 서해 중부해역으로 비행했다가 복귀했고, 안휘성 루안(六安)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H-6K 6대, 상하이 충밍(崇明) 공군기지에서 6대가 제주도 서남방 해역에서 공중 핵타격훈련을 실시한 뒤 옌청 기지와 충밍기지로 복귀했다.
중국의 공중무력시위가 우려되는 것은 이제 한국이 노골적으로 중국 핵 위협의 표적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중국은 대만을 겨냥해 몇 차례 공중 핵타격훈련을 실시했지만, 한국을 겨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군다나 전략핵폭격기 16대가 동원된 것은 2022년 12월 12일 대만을 겨냥해 18대가 동원된 이래 두 번째로 큰 규모이다.
이번에 출격한 H-6K은 전략폭격기 H(Hōng, 轟) 시리즈 가운데 작전반경이 3500km에 달하는 중국의 최신예 폭격기이다. 1대에 사거리 2000km인 공대지 전술핵 순항미사일 창젠(長劍)-20A 4발을 장착할 수 있어, 이번 무력시위에 무려 64발의 핵탄두가 모의 투하됐을 가능성이 있다. 루안 기지에는 전략정찰기 H-6B에 실려 공중에서 발진되는 초음속 고고도 스텔스 무인정찰기(UAV) WZ-8(無偵-8)도 배치돼 있다.
중국이 겨냥한 곳은 대통령실·국방부·합참본부가 있는 서울과 미 항모타격단·핵추진잠수함 기항지인 해군작전기지가 소재한 부산, 한미연합공군·미7공군사령부가 있는 오산공군기지, 한미연합사령부·주한미군사령부·미8군사령부가 들어와 있는 세계 최대의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 그 밖에 주한미군의 대규모 물류기지가 있는 왜관의 캠프 캐롤, 대구의 캠프 헨리 등이다.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의 H-6K 전략폭격기. H-6K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사거리 500~600km의 공중발사탄도비사일(ALBM) 4발 또는 사거리 2000~2500km의 순항미사일(ALCM) 6발을 장착할 수 있다.
중국 무력시위는 '도발'인가 아닌가
윤석열 정부는 북한이 동해상으로 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까지도 ‘도발’이라고 규정하며 북한위협론을 강조해 왔다. 2022년 1월 서욱 국방장관이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더라도 우리 영토를 향해 쏜 것이 아니면 도발이 아니라고 답하자, 국힘의힘 의원들과 보수언론은 질타했었다. 그동안 국방부나 합참의 발표에서 ‘도발’ 용어 사용이 오락가락한 적도 있었지만, 서 장관의 답볍은 「통합방위법」의 정의에 따른 것이었다.
「통합방위법」은 침투(제2조 9항)를 “적이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영역을 침범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도발(동 10항)은 “적이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국민 또는 영역에 위해를 가하는 모든 행위”로 규정한다. 위협(동 11항)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을 침투-도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적의 침투-도발 능력과 기도가 드러난 상태”라고 규정한다.
이처럼 「통합방위법」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는 행위는 ‘도발’로 간주하지 않는다. 명심할 것은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여부는 ‘도발’과는 별개라는 점이다. 2009년에 제정된 「통합방위법」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올해 1월 16일 일부 개정되었지만, 위의 규정들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금도 유효한 개념 정의이다.
실제로 『국방백서』의 ‘북한의 대남침투-국지도발 일지’를 보면 보수-진보정권을 가리지 않고 우리에게 직접 피해를 입힌 경우에 대해서만 도발로 통계를 잡아왔다. 작년 2월에 발간된 백서에 따르면, ‘9.19군사합의’ 이후 북한의 도발 건수는 2020년 5월 있었던 철원지역 GP 총격사건과 2022년 12월 소형무인기 침투사건 등 2건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주변해역에 대한 중국 전략핵폭격기의 무력시위는 우리에 대한 도발인가, 아닌가? 우리의 영해를 침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발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중국과 북한의 군사행동에 대한 이중잣대이고, 만약에 도발이라고 봤는데 아무런 대응이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 윤석열 정부의 직무유기이다.
지난 18일 북한 군의 초대형 방사포를 장비하고 중요 화력 타격 임무를 맡고있는 서부지구의 포병부대 사격훈련 장면. 조선중앙TV가 19일 공개한 영상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훈련을 참관하며 "적 수도 붕괴 완비 태세를 갖췄다"고 위협했다. 2024.3.18. [조선중앙TV] 연합뉴스
북·러 연합훈련 땐 안보위협 배증
냉전 이후 한·미·일 관계를 규정할 때 허브-스포크(Hub&Spokes) 관계라고 부른다. 미국이 허브이고, 바큇살에 한국과 일본이 위치한다. 즉, 한일 양국은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에 따라 주한미군-주일미군을 매개로 간접적인 협력관계를 맺는 구조이다. 이러한 허브&스포크 관계는 과거사 문제에 따른 한국의 대일 거부감과 평화헌법 제9조에 따른 일본의 안보 제약 때문에 나온 것이다.
냉전시기 미국은 지역통합 전략에 따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미‧호주‧뉴질랜드(ANZUS)동맹, 동남아조약기구(SEATO), 중앙조약기구(CENTO) 등을 만들었다. 하지만 동북아지역에서는 한일 관계 때문에 이러한 집단방위기구를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했고, 그 결과로 미국을 축으로 하는 허브&스포크 관계가 구축된 것이다. 대일 굴욕외교를 통해 이러한 족쇄를 풀어 한·미·일 준 군사동맹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이 윤석열 정권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미국의 지역통합억제 전략에 맞서 집단방위 성격의 상하이협력기구(SCO)와 집단안보조약(CSTO)을 주도하고 있다. 또한 중·러 양국은 지상군 연합훈련, 해·공군 연합합동훈련, 연합공중전략순찰 등을 실시해 오고 있다. 북·중 간에는 아직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할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작년 7월 방북 당시 쇼이구 러 국방장관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북·러 연합훈련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북·러 연합군사훈련이 실시될 경우 북·중·러 3국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미·일 3국이 취했던 허브-스포크 관계의 초보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향후 한·미·일 3국의 군사협력이 동북아판 나토와 같은 집단방위체제로 강화되면, 북·중·러 3국도 러시아 중심의 중·북 허브&스포크 관계를 넘어 3국 동맹체제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러시아는 중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과 다국적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2020년 9월 러시아, 중국,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파키스탄, 미얀마 6개국이 다국적 군사훈련을 실시했고, 2022년 9월 ‘동방-2022 훈련’에는 중국, 러시아 외에 인도, 타지키스탄, 몽골 등 총 13개국이 참가했다. 향후 중·러 주관의 다국적 연합군사훈련에 북한이 참가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 안보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사방에 적, 심판대 오른 안보 무능
우리나라에 대한 안보 위협이 점증함에 따라 오는 4월 10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윤석열 정부의 안보 무능이 새롭게 선거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윤 정부가 ‘힘에 의한 평화’를 외쳐댔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 안보가 더 취약해지고 우리 국민이 더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주의의 후퇴와 경제 실정(失政)에 못지않게 ‘안보 무능’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 사령관은 3월 20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을 언급했다. 사진은 지난 1월 30일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서 열린 미7공군사령관 이취임식에서 훈시를 하고 있다. 2024.1.30. 연합뉴스
지난 3월 20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반도는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만약 위기가 발생할 경우, 특히 중국과 러시아 등 제3국이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칠 중대한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이 증대됐음을 사실로 인정했다. 그의 발언은 주한미군의 현 수준 유지와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한반도 안보 상황을 잘 드러낸 것이다.
미국이 지역통합억제전략의 실현을 위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이용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대 한국 정부는 미국에 때로는 양보하고 때로는 얼굴을 붉하면서 안보 상황의 악화를 막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해 왔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남북관계는 물론 중, 러와의 관계도 악화시켜 뒤집어 버렸다. ‘9‧19군사합의서’의 일방적인 효력정지 선언으로 전쟁 위험을 높였을 뿐 아니라, 불필요하게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해 새로운 군사 위협을 자초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제1야당은 “‘경제폭망’ 못살겠다”라는 선거 슬로건을 내걸었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경제위기를 초래해 서민들을 생활고에 시달리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타당한 슬로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안보 무능과 그로 인한 한반도 안보 위기 사태를 보면 이런 구호만으로는 부족할 듯 싶다. 여기에 “‘안보폭망' 못살겠다”는 슬로건도 더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