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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수많은 ‘너’를 통해 ‘영원한 너’를 만나라

수많은 ‘너’를 통해 ‘영원한 너’를 만나라
[사람들]
마틴 부버의 《너와 나》(Ich und Du)는 20세기를 통털어 인간 소외와 도구화된 세계관을 통렬히 비판하며, 존재론적 만남을 통해 인간성의 회복과 신성(神性)의 현현을 도모한 기념비적 저작이다. 본 서평은 부버가 제시한 두 가지 근본어인 ‘너와 나’(I-Thou)와 ‘그것과 나’(I-It)의 역학을 추적하고, 이를 신학적 지평에서 재해석함으로써 현대 신학과 교회가 마주한 위기를 타개할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부버의 대화 철학은 철저히 관계 지향적이며, 신을 개념이나 교리의 대상이 아닌 만남의 주체로 복권시킨다는 점에서 현대 신학에 깊은 영적 전회를 촉구한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관계를 통해서만 비로소 ‘나’가 되는 존재이다. 부버는 인간이 세계를 향해 취할 수 있는 태도가 본질적으로 두 가지 근본어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첫째는 ‘너와 나’의 관계이다. 이 관계 속에서 ‘나’는 상대방을 온전한 인격체이자 주체로 마주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선입견이나 목적, 도구적 계산도 개입하지 않는다. ‘너와 나’의 만남은 시간과 공간의 범주를 넘어선 현재적 사건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전 존재로 몰입하는 상호적 결합이다. 반면 ‘그것과 나’의 관계는 상대를 하나의 대상, 객체, 도구로 바라보는 태도이다. 이 세계에서 ‘나’는 타자를 경험하고, 분류하고, 이용한다. ‘그것’의 세계는 인과율의 지배를 받으며 과거의 데이터에 의존한다. 부버는 인간이 문명을 유지하고 생존하기 위해 ‘그것’의 세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과학적 지식, 경제적 교환, 사회적 제도는 모두 ‘그것’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부버의 핵심적인 경고는 인간이 오직 ‘그것’ 속에만 갇혀 살 때 발생한다. ‘그것’만을 가득 채운 삶은 영혼이 거세된 기능적 삶에 불과하며, 인간은 ‘너’를 부름으로써만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부버의 대화적 존재론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대한 함의를 지닌다. 기독교 신학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종종 형이상학적 존재론의 틀 안에서 ‘최고 존재’(Ens Realissimum)나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 같은 사유의 대상으로 전락하곤 했다. 혹은 인간의 소망이 투사된 도덕적 규범이나, 교리 체계 속에서 완벽하게 정의된 ‘그것’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버는 하나님을 결코 ‘그것’으로 소유하거나 객관화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경험하거나 분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오직 인격적인 만남 속에서만 응답하시는 ‘영원한 너’(The Eternal Thou)이시다. 우리가 지상의 수많은 ‘너’와 맺는 진정한 만남의 선들은 결국 하나의 중심인 ‘영원한 너’에게로 수렴된다. 따라서 신을 향한 신앙은 교리적 명제에 동의하는 지적 행위가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다가오시는 그분의 부르심에 전 존재로 응답하는 실존적 사건이다.   이러한 통찰은 계시(Revelation)의 성격을 재정의하도록 이끈다. 근대 합리주의와 정통주의 신학은 계시를 명제적 진리의 전달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즉, 하나님에 관한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계시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부버의 맥락에서 계시는 ‘영원한 너’가 자신을 드러내어 인간을 만남으로 초대하는 인격적 사건이다. 이는 에밀 브루너(Emil Brunner)와 카를 바르트(Karl Barth) 등 20세기 변증법 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브루너가 주장한 ‘진리로서의 만남’은 부버의 사상과 궤를 같이한다. 신앙은 하나님에 ‘대하여’(about)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him)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식을 제공하는 교사가 아니라, 우리를 대화의 파트너로 부르시는 인격적 주체이시다. 계시의 순간에 인간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위안과 확신, 즉 삶의 의미 그 자체를 부여받는다. 그 만남은 인간을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 채우며, 주체적 책임성을 일깨운다. ​더 나아가 부버의 사상은 현대 교회가 직면한 뼈아픈 현실을 고발하는 예언자적 잣대가 된다. 오늘날 많은 현대 교회는 자본주의적 논리와 관료제적 효율성에 잠식되어 ‘그것’의 세계를 확장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교인을 숫자로 계량화하고, 예배를 정서적 만족을 주는 소비재로 전락시키며, 목회적 돌봄을 행정적 서비스로 치부하는 현상은 모두 공동체 내부가 ‘그것과 나’의 관계로 오염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너와 나’의 만남이 성취되는 대화적 공동체(Koinonia)여야 한다. 그러나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인간을 압도할 때, 타자는 나의 영적 성취나 교회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부버의 관점에서 이웃을 ‘그것’으로 대하는 모든 종교적 행위는 아무리 경건해 보일지라도 영적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는다. 타자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한다면, 그가 드리는 예배는 ‘영원한 너’에게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버의 대화 철학은 타자 이해에 있어서도 혁신적인 지평을 열어준다. 기독교는 오랫동안 이웃 사랑을 강조해 왔지만, 때로 그 사랑은 시혜적이고 일방적인 시선에 갇혀 있었다. 내가 가진 진리나 물질을 상대방에게 베푼다는 태도는 타자를 나의 선행을 위한 대상, 즉 ‘그것’으로 대상화할 위험을 내포한다. 진정한 ‘너와 나’의 관계는 나의 중심을 비우고 타자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고통스러운 개방성을 요구한다. 이는 타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의 부르심에 기꺼이 상처받을 가능성까지 감수하며 응답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타자 지향적 실존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에서 가장 완전하게 드러난다. 신이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와 인간과 동일한 한계를 지닌 ‘너’가 되셨다는 사건은, ‘너와 나’의 만남이 신성한 삶의 방식임을 보여주는 궁극적인 신학적 패러다임이다. 그리스도는 세리, 창녀, 나병환자 등 당대 사회가 ‘그것’으로 배제했던 이들을 인격적인 ‘너’로 부르심으로써 그들의 주체성을 회복시키셨다. ​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년 2월 8일 ~ 1965년 6월 13일) ​또한, 부버의 사상은 현대 기독교가 당면한 생태학적 위기에 대해서도 심오한 대안을 제시한다. 근대적 이성은 자연을 철저히 인간의 이익과 발전을 위한 자원, 즉 ‘그것’으로 간주했다. 기독교 역시 창세기의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문화명령을 오해하여 자연에 대한 약탈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버는 놀랍게도 인간이 자연과도 ‘너와 나’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한 그루를 단순히 식물학적 대상이나 땔감이라는 ‘그것’으로 보지 않고, 온 존재로 마주할 때 상호적 영적 소통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을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주체적 가치를 지닌 ‘너’로 대할 때, 신학은 인간 중심주의적 협소함을 탈피하고 우주적 신학으로 확장된다. 자연과의 대화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피조물의 탄식에 응답하는 기독교적 청지기 사명의 본질이다. ​결론적으로 마틴 부버의 《너와 나》는 교리와 제도라는 두꺼운 껍질에 갇혀 화석화되어 가는 현대 신학에 던져진 거대한 파문이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객체화하여 소유하려는 모든 시도를 멈추고,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너’를 통해 ‘영원한 너’이신 하나님을 만나라고 촉구한다. 신앙은 고립된 자아의 사적인 종교 체험이 아니라, 이웃과 자연,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나를 열어젖히는 모험이다. 교회가 ‘그것’의 효율성에서 벗어나 ‘너’의 인격적 만남을 회복할 때, 비로소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될 것이다. 부버가 남긴 대화의 영성은 차가운 분석과 도구적 이성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인간성을 지키며 신성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영원한 나침반이다. 마틴 부버 : 187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부버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종교 사상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빈, 취리히, 베를린 등지의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을 배우고, 1923년부터 10년간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비교종교학을 강의했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한 후 추방되어 여러 나라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38년 팔레스타인에 정착하고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에서 사회철학을 가르쳤다. 노벨문학상과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지명된 바 있는 그는 하시디즘(18세기 동유럽의 폴란드에서 생겨난 유대교의 경건주의적 신비운동)을 현대인의 시각으로 변화시켜 세계적인 신비운동으로 바꾸어놓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로젠츠바이그와 함께 구약성서를 현대 독일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인간의 길』,『인간과 인간 사이』등이 있다.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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