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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정치 도 내겐 예술인 이유

정치 도 내겐 예술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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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윤지 작가입니다. 시민언론 민들레에 칼럼을 쓰게 되었습니다. 자기소개 겸, 첫 칼럼만 존댓말로 쓰겠습니다. 저를 알고 계신 분들은 아마 페미니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어느 작가로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다스뵈이다에 출연했던 안희정 지사의 막내 사무원으로 알고 계실 수도 있고, 소나무당 비례후보로 알고 계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시민사회에 알려지게 된 가장 주된 경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보적 정체성을 철저하게 유지하면서 페미니즘을 비판해 왔습니다. 그것이 제가 시민 사회에 남은 이유일 것입니다. 제가 진보적 정체성을 버리고 일반적 안티 페미가 되었다면 진보 시민사회에 남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국민의당이나 국민의힘으로 가는 것이 더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진보적 정체성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제가 페미니즘 광풍을 비판했던 것은 결국 더 나은, 더 공정한 진보를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진보적 정체성을 버리지 않은 것은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그 어떤 활동이든 정의를 위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모든 사람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일지라도,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비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나의 뼈대가 되는 정의를 버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당적을 바꾸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소나무당 후보로서 ‘페미니즘 카르텔’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가도, 선거 마지막 국면에서 고 박원순 시장을 끝까지 옹호하다가 실로 많은 표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소신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권윤지 작가의 새벽 5시의 자화상 . 청년 세대의 극우화가 심각합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청년들은 진보 자체를 떠나고 부정하는 선택을 해 왔습니다. 이는 사교육 과열과 이과 편중 현상에 따른 현대사 교육 부족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면서 486, 586세대와 청년 세대를 연결하는 가교가 되고 싶었고, 지금도 그러고 싶습니다. 저는 사교육열이 한창이던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내며, 또 한편으로는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며 베이비붐 세대와 현재 청년 세대가 서로 다른 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민주화 세대와 청년세대 양 쪽을 오가며 사회 문제를 보는 시각을 얻은 덕에 진보적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페미니즘은 비판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젠더 문제에 대한 첨예한 비판 의식을 가지면서도 진보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소수입니다. 그렇기에 박원순 사건에 대한 기사를 꾸준히 게시해주고 계신 민들레가 더욱 소중하기도 합니다. 글쓰기는 자신이 어떤 담론에 동조하는가에 대한 주석 달기가 아니라 자신이 아는 사실, 자신의 경험,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작든 크든, 담론을 창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담론이라는 말도 거창합니다. 그저 ‘이야기’이면 됩니다. ‘야그’ 나 ‘이바구’ 도 좋겠네요. 저는 시사비평 작가인 동시에 예술인입니다. 예술가라는 말은 제게 너무 과분해 예술인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저는 순수회화를 전공한 미술인입니다.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데에는 미술의 힘이 컸습니다. 미술은 언어로는 미처 다 표현할 수 없는 역사의 초상을 보는 눈을 허락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림을 통해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통해 시간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을 통해 세계사의 좌표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은 역사의 축소판입니다. 예컨대 어느 초상화가 있다고 합시다. 그 초상은 어떤 특정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그 분위기가 그가 사는 시간, 계층, 삶의 냄새입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웃음, 슬픔, 체념, 저항, 광기는 그가 사는 시간에 대한 그의 태도이자, 그의 동료들이 태도입니다. 이러한 감각은 역사를 향한 사랑 가득한 접근을 허용합니다. 예술이 열어주는 이러한 직관의 문은, 제가 정치권의 문을 두드리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어렸고, 순진했고, 이상주의적이었습니다. 예술을 통해 정치인이 인간을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고, 언어가 들려주지 못하는 인간사를 읽을 수 있게 된다면 더 나은 정치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예술가로서 이 좋은 것을 나 혼자 누리기에는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정치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렇게 안희정 지사를 만나 그의 선거사무소 막내 상근사무원이 되었고, 그것이 제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2018년에 안희정 사건이 일어나면서 저는 여기까지, 파도에 쓸려왔습니다. 제가 한 번 그이의 사람이 된 이상 그것과 관련된 화두를 모두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제 모든 활동은 책임이었습니다. 그러나 책임이 전부라고 하기엔 저는 세상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언젠가 그림을 그리면서 유튜브를 보다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그림이 이 디지털의 빛보다 더욱 선명할 수 있어야 나는 그림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그 선명성이라는 것은 제게 큰 화두였습니다.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빛’인데, 저는 그 빛을 그림 바깥으로 끌어내고자 했습니다. 제가 끌어낸 빛을 여러분이 들어 주셨습니다. 제가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카뮈의 말처럼 엇갈리는 것들 사이에서 번쩍이는 진리, 즉 필연성과 선명성과 직관과 사랑입니다. 그래서 제게, 제가 ‘정치’를 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정치’, 그것을 비롯한 모든 사회활동은 어떤 의미에서 예술 작업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프랑스어를 잘 하고 문학을 사랑합니다. 제게는 세상을 보는 세 개의 창이 있습니다. 한국어의 창, 프랑스어의 창 그리고 예술의 창입니다. 한국어의 창이 사고를 날카롭게 벼리게 한다면, 프랑스어의 창은 세상을 빛나게 보이게 합니다. 저는 앞으로, 진보적 인식을 공유하는 청년으로서 정치 현안에 대한 칼럼, 프랑스어 능력으로 커버 가능한 유럽-중동 이슈, 그리고 문화 예술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제 칼럼이 여러분께 신선한 자극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다음 편으로는 한국에서 자생했던 독자적 회화 장르인 민중미술에 대해서 깊이 있게 한 번 말씀드려 보고 싶습니다. 민중미술이 어떻게 탄생했고 그 정체성이 무엇이며,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었고, 시대와 정치가 변하며 우리 문화예술계에 어떤 과제를 남겼는지에 대해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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