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독재가 죽인 사회주의의 이상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세르히(세르게이) 로즈니차의 영화 에는 유독 복도 씬과 계단 씬이 반복해서 나온다. 브랸스크(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400km가량 떨어진 곳으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와의 접경지역) 교도소를 찾은 변호사이자 이 지역 감찰검사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코르네프(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는 정치범인 이반 스테파노비치 스테프냐크(알렉산드르 필리펜코)를 만나러 가면서 무수한 복도와 계단을 지나고 오르내린다. 그는 교도소장 방에서 하염없이 대기하고 기다리기도 한다. 스테프냐크의 면담 내용을 보고하기 위해 모스크바 검찰청을 갔을 때도 코르네프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고 검찰총장 비신스키의 방을 찾아 복도를 헤맨다. 복도에서 만난 한 여성은 검찰총장에게 용건이 있으면 (그가) 어디 계신지 정도는 알고 다녀야죠?”라고 말한다. 계단 중간 레닌 동상 앞에서 만난 한 남자는 도무지 출구가 어딘지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주인공 코르네프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미로를 헤맨다.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체제가 어떤 상태인지, 그 출구조차 모른 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보여 준다.
스탈린에 의해 사회주의 이상이 절멸됐던 시기
영화 는 1937년이 시대 배경이다. 스탈린이 국민 경제 발전 5개년 계획과 일국사회주의라는 미명으로 농업국가였던 소련을 중공업 국가로 전환한다며 내세운 전략은 대량의 노동자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사회문제를 낳았고, 농민들은 농장 집단화 정책으로 토지를 몰수당하고 강제로 이주 당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식량부족 사태를 스탈린은 주변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식량을 강탈하는 것을 통해 해결하려 했다. 강제로 식량을 뺏긴 우크라이나에서는 대규모 기근 사태, 곧 ‘홀모도모르’가 발생했다. 1932~1933년의 일이다. 우크라이나 인구 3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스탈린은 이를 기화로 더욱더 악랄해졌으며 국내적으로는 정적을 제거하고 학살하는 일대 숙청 작업으로 이어진다. 1937년~1940년에 걸쳐 레닌과 함께 러시아 혁명의 쌍두마차였던 레프 트로츠키조차 추방돼 멕시코에서 암살됐고 이론가 중에서 첫 손 꼽던 니콜라이 부하린은 총살 당했으며 혁명 원로였던 그리고리 지노비예프는 모진 고문 끝에 스탈린을 암살하려 했다는 허위 자백으로 사형 당했다. (당시 트로츠키주의자로 몰려 수많은 사람이 숙청되었다)
트로츠키는 영구혁명론의 주창자였으며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었던 인물이다. 영구혁명론은, 후진 지역에서도 노동계급이 혁명을 주도할 수 있고, 사회주의 혁명은 한 나라에서 완결될 수 없고 국제적으로 확산되어야 성공할 수 있으며, 불균형이란 모든 사회에 본질적이므로 어느 사회나 혁명의 필요성은 영구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쿠바의 체 게바라 또한 국제 혁명을 강조했는데 그는 쿠바에 이어 아프리카 콩고, 남미 볼리비아에서 활동을 이어가다 사살 당했다.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는 결국 일당 독재와 일국의 제국주의로 연결됐다. 해외 혁명 지원을 줄이고 국내 안보와 경제 성장을 우선시한 현실주의적 외교 방침을 정당화함으로써 나치의 히틀러와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은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따라서 결국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37년의 소련은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이상이 스탈린에 의해 절멸됐던 시기의 절정인 해였다. 이후 스탈린식 사회주의는 사망했다.
한심하고 무지한 관료주의, 스탈린 때나 푸틴 때나
영화 의 현직 감찰검사 코르네프는 감옥 안에서 누군가가 피로 쓴 청원서를 입수하고 그 내용의 진위를 밝히려 한다. 그래서 만나게 되는 죄수가 바로 스테프냐크이다. 그 역시 전직 검사였고 볼셰비키였으며 이상적 소비에트 사회 건설을 위해 적군(赤軍)의 일원으로서 반혁명 집단이었던 멘셰비키와 백군(白軍)에 맞서 싸운 노혁명가였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오히려 반혁명주의자로 몰려 엔카베데(NKVD : Narodnyy Komissariat Vnutrennikh Del, 내무인민위원부. 이후 KGB)에게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허위 자백으로 감금된 상태이다. 스테프냐크는 코르네프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함과 동시에 반혁명주의자들이 현재 엔카베데 내부를 장악하고 있고 소련 정부 곳곳에 자신들의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고 진술한다. 스테프냐크는 이러한 사실을 지방검찰청에서는 해결할 수 없고 이미 그들도 엔카베데에 의해 장악된 만큼 모스크바 검찰청으로 가 검찰총장에게 직보(直報)하라고 말한다. 코르네프가 검찰청의 계단을 숱하게 오르내리고 복도를 헤매며 총장을 만나려 한 이유이다.
스탈린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망가뜨렸다면 소련 인민은 강고하고 한심한 관료주의로 인해 자체적으로 몰락했다. 주인공 코르네프는 브랸스크의 교도소에서나 모스크바의 검찰청에서도 끊임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모든 것이 다 보고되거나 사전에 약속돼 있어야 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내용인데 그보다는 형식과 절차, 서류를 앞세운다. 1937년의 소련이 한편에서는 고문과 학살, 조작된 증거로 사람의 인성을 훼손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한심하고 무지한 관료주의로 인민의 삶을 좀먹어 들어갔다. 영화 를 만든 세르히 로즈니차 감독은 1937년이라는 역사적 시기의 진실을 새삼스레 다시 폭로하는 영화를 통해 당시의 상황이 현재의 푸틴 체제에서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주장하려 한다. 로즈니차는 우크라이나의 친서방파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천생, 반 러시아적일 수밖에 없는 인물인 셈.
세르히 로즈니차 감독
볼셰비키 혁명에 헌신한 인민들의 피폐한 삶
로즈니차가 이 영화로 드러낸 자신의 연출 감각은 코르네프가 브랸스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3등 열차와 모스크바에서 브랸스크로 돌아가는 침대칸 장면에서 절정으로 빛난다. 코르네프는 모스크바행 열차 안에서 소련 체제에 지친 남루한 인민들을 만난다. 어깨부터 오른쪽 팔 하나가 없는 초로의 남자는 자신의 왼쪽 의족을 벗으며 1916년 코벨 전투(1차 대전에서 러시아 황군이 궤멸했던 전투. 이후 러시아 인민은 외세와의 전쟁 대신 내부 왕정을 무너뜨리는 1917년 혁명을 선택한다)에서 이렇게 됐다고 말한다. 노인은 언젠가 모스크바에서 ‘레닌 동지’를 만났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열차 안의 사람들의 눈과 귀가 쏠린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레닌은 노인에게 다시 찾아오라는 말을 했지만, 노인은 레닌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당연히 그의 신세도 나아지지 못했다. 노인의 모습은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 이후 20년간 인민의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후퇴했음을 보여 준다.
영화의 이 씬은 열차 안에 빙 둘러앉은 사람들의 풀 숏을 중심으로 노인과 사람들의 표정, 주인공 코르네프의 반응 등을 오가며 보는 사람들을 집중시킨다. 이 장면은 켄 로치의 에서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 의용군들이 토지 국유화 문제를 두고 정치 토론을 벌이던 장면을 연상하게 만든다. 마치 그 영화에 대한 오마주인 양, 형식은 가져오되 내용과 톤앤매너는 바꾸고 있다. 1936년의 스페인 내란이 사회주의적 혁명론의 이상으로 들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은 같은 시기에 이미 몰락하고 있었음을 대비해서 보이려 한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사회주의 활용하려면 스탈린의 악행 먼저 기억해야
모스크바에서 브랸스크로 돌아가는 침대칸 열차에서 코르네프는 두 남자를 만난다. 셋이 같이 술을 마시고 (혁명가요 또는 노동요 같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시종일관 불길한 무엇의 분위기를 깔고 있다. 남자 셋은 보드카를 주고받으며 범죄의 근거와 공정한 수사, 소련 법이라는 응징의 칼에 관해 이야기 나눈다. 이 장면에서 영화 의 서스펜스는 최고조로 치닫는다.
는 지금의 러시아 사회와 정치 체제가 지닌 진짜 모습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추적하는 영화이다. 참담하지만 교훈적이다. 사회주의는 학문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 신봉되거나 활용할 수 있는, 더 나아가 활용돼야 하는 이념이지만 체제의 주된 도구와 시스템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소련 스탈린이 저지른 최악의 실패 사례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무조건적 반사회주의 교과서처럼 인식할 필요는 없다. 반 스탈린적인 작품일 뿐이다. 그 교훈을 반 푸틴의 노선으로 가져가야 할 것인가. 그건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할 이슈일 것이다. 4월 1일 전국 예술영화관을 중심으로 개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