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을 깔봐서? 하정우 손 털기 라는 논리 비약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이 4월 29일 오후 7시쯤 부산 구포시장 방문 일정을 마칠 무렵 고개를 90도 숙이며 한 상인과 악수하고 있다. 국민의힘 등에서는 하 전 수석이 이 상인과 악수하고 난 뒤 손 털기 를 해서 상인을 비하하는 선민의식을 드러냈다고 주장한다. 사진=유튜브 황기자 영상 갈무리
지방선거를 앞두고 3선에 도전하려는 현직 서울시장이 저녁에 한 식당에서 일행과 술을 마시다 대뜸 이렇게 말한다.
여자들이 문제야. 빤쓰까지 보이는 반바지에 가슴이 훤히 보이는 옷을 입고 다니니까. 여자들 스스로 처신을 잘해야 돼.
이런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입수한 다른 정당의 서울시장 경쟁 후보 측은 얼씨구나 하고 이를 각종 소셜미디어와 언론에 대대적으로 유포한다. 시장이 여성 비하 막말을 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포착됐으니 파문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경쟁 후보 측은 시장의 평소 성차별적 인식 수준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파상 공세를 취한다. 그러나 나중에 공개된 동영상 원본에는 전혀 다른 진실이 담겨 있었다. 실제 시장이 한 발언은 다음과 같았다.
여자들이 문제야. 빤쓰까지 보이는 반바지에 가슴이 훤히 보이는 옷을 입고 다니니까. 여자들 스스로 처신을 잘해야 돼…. 뭐 이런 얘기요? 아니 그럼 꽁꽁 싸매고 다니는 겨울에는 강간 사건이 하나도 안 터진답니까? 성범죄가 터질 때마다 여자들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사고방식을, 아니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어요?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공무원들이 욕먹는 거 아니요!!
사실은 관내에서 일어난 마포 발발이 성폭행 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여성들의 행실 탓을 하는 경찰서장을 오히려 시장이 질책하는 상황이었다. 이걸 맥락을 거세하고 앞부분만 톡 떼어내 악마의 편집 을 함으로써 여성 비하 라는 자극적인 프레임을 가공해낸 것이다. 영화 에서 시장(최민식 분) 측은 상대 후보(라미란 분) 측의 반응을 뻔히 예상하고 역공작 차원에서 미끼를 던진 것이었지만, 아무튼 넷플릭스를 포함한 여러 OTT에 올라와 있는 이 영화를 보면 정치판에서 네거티브 선거전이 얼마나 저열한 방식으로까지 작동할 수 있는지 한눈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맥락에서 분리한 부분적인 사실 을 가지고 전체적인 거짓 을 만들어내기.
영화 특별시민 에 등장하는 동영상 장면. 쇼박스
영화 이 시전한 악마의 편집 을 능가하는 현실 선거판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이 부산 구포시장 상인들과 악수를 한 뒤 상습적으로 손 털기 를 했다고 가히 융단폭격을 가하는 국민의힘 인사들과 보수언론, 그리고 일군의 평론가들을 보면 현실이 영화를 능가한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없는 몇 초짜리 짧게 편집된 특정 장면을 두고 하 전 수석이 인간 말종이라도 되는 양 여론몰이를 하는데, 그 표현이 지극히 자극적이거나 단정적이다.
유권자를 벌레 취급하는 사람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 인간에 대한 모독 (김종혁 전 비대위원) 유권자와 악수하고 손 터는 게 습관 (박정훈 의원) 너무 충격적이고 끔찍한 장면 (김재섭 의원) 북구 시민들을 무시해도 대세에 지장 없다는 것인가 (한동훈 전 대표) 뿌리 깊은 선민의식과 오만함이 무의식중에 터져 나온 것, 주민의 손을 오물 취급하는 사람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 깜짝 놀랄만한 폭탄 영상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 등등.
즉, 하 전 수석이 선민의식으로 가득한 오만한 인간이기 때문에 내심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는 시장 상인들과 억지로 악수를 한 뒤 매번, 또는 수시로 손을 털어내는 모욕적인 행위를 수많은 기자와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행했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 속 악마의 편집 과 판박이거나 그보다 더 악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편집된 시장의 발언은 어쨌든 여성 비하 로 지탄받아 마땅한 수위였지만, 하 전 수석의 경우는 편집된 동작조차도 굳이 상인 비하 라고 봐야할지 모호하고 너무 짜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만천하에 공개된 일정을 기록한 원본 영상을 확인하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체리 피킹 수법을 발휘해 침소봉대할 수 있는지 보는 사람이 민망함을 느끼게 될 정도다.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이 4월 29일 오후 부산 구포시장을 방문하던 중 한 상인이 건네준 딸기를 맨손으로 받아먹은 뒤 물이 묻은 듯 손바닥을 비비고 있다. 사진=유튜브 황기자 영상 갈무리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이 4월 29일 오후 부산 구포시장을 방문하던 중 한 상인이 건네준 딸기를 맨손으로 받아먹은 뒤 지갑을 꺼내 딸기 한 봉지를 사고 있다. 여기서 하 전 수석이 상인들을 비하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사진=유튜브 황기자 영상 갈무리
1시간 40분 내내 촬영한 황기자 의 전체 영상을 보면
하 전 수석은 지난 29일 오후 4시 15분쯤 KTX를 타고 부산 구포역에 내렸다. 이어 북구갑 지역위원회를 방문해 당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구포시장엔 오후 5시 20분쯤 도착해서 7시까지 머물렀다. 이 과정에 관해 취재진이 촬영한 풀 영상 을 모두 찾아봤다는 JTBC의 팩트체크 기사와 요약 영상, 그리고 특히 구포시장 입구에서부터 미리 기다리다가 하 전 수석이 일정을 마치고 떠날 때까지 약 1시간 40분에 걸쳐 동선을 내내 쫓아다니며 촬영한 유튜버 황기자 의 전체 영상을 보면 하 전 수석은 시민, 상인들과 수없이 악수를 하면서도 손을 터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시장 입구에서 한 상인과 악수한 뒤 잠깐 손을 비비는(손목을 움직여서 털어댄 게 아니라 손바닥을 가볍게 비빈 것이다) 장면이 나오지만, 그건 시장 상인이 건네주는 딸기 를 맨손으로 받아먹고 난 직후였기 때문에 손에 물기가 남아서 나온 동작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상대방이 불쾌해하기는커녕 인식할 수도 없었다. 앞뒤 연속으로 이어지는 황기자 촬영 영상을 보면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이후에도 하 전 수석은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며 상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덥석 잡고 고개를 90도로 숙여 인사하고 껴안기도 하는 동작을 무한 반복한다. 그러다 국민의힘과 언론이 손 털기 라고 명명한 시장 출구 쪽 상황이 나온다. 전체 길이 총 3시간 26분에 달하는 황기자 영상을 보면 2시간 45분쯤 이제 시장 끝이 보입니다. 다 왔네요 라고 하고, 2시간 53분에는 지금 7시 , 3시간 1분엔 여기가 이제 끝 이라는 황기자의 언급이 나와 일정이 마무리되는 시점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저녁 7시 무렵 하 전 수석은 한자리에 모여있던 상인 몇 명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넸다. 화이팅 이라며 반기는 젊은 여성, 응원합니다 라고 말하는 역시 호의적인 남성 상인과 차례로 악수한 뒤 바로 옆에 서 있는 연로해 보이는 여성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하 전 수석을 보자 소리 내 웃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기도 했던 이 여성은 손에 뭐가 묻어있는 상태임을 의식한 듯 장갑 끼갖고(장갑을 껴서) 라고 말하며 악수는 안 하려 했다. 그럼에도 하 전 수석은 이 여성의 손을 적극적으로 붙들고 90도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나서 하 전 수석은 곧바로 또 다른 여성 상인에게 활짝 웃으며 감사합니다 라고 손을 내밀어 악수하고 난 뒤 몸을 돌리면서 자신의 양 손바닥을 두세 번 비볐다. 이 역시 노년 여성이 뭔가 작업을 하느라 착용 중이던 목장갑에 물이나 기타 이물질이 묻어 있어서 악수 뒤 이를 어렴풋이 인지하며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으로 보인다. 난생처음 인파에 휩싸여 시장 유세를 마치고 난 뒤 순간적으로 손이 저려서 그랬을 수도 있다.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이 4월 29일 오후 7시쯤 부산 구포시장 방문 일정을 마칠 무렵 고개를 90도 숙이며 한 상인의 장갑 낀 손을 붙잡고 악수하고 있다. 국민의힘 등에서는 하 전 수석이 이 상인과 악수하고 난 뒤 손 털기 를 해서 상인을 비하하는 선민의식을 드러냈다고 주장한다. 사진=유튜브 황기자 영상 갈무리
하정우 물 묻은 장갑 낀 상인들과 악수해도 손 털지 않아
이걸 밑도 끝도 없이 뿌리 깊은 선민의식 탓에 상인을 벌레 취급 해서 진저리치듯 손을 털어댄 것이라고 단정하는 건, 머릿속에 마구니 가 가득한 신하를 처단하겠다는 궁예의 관심법 에 비견할 만하다. 전체 영상에서 알 수 있는 팩트는, 하 전 수석이 자신의 정치 데뷔 첫 일정인 구포시장 방문에서 1시간 40분에 걸쳐 수많은 시장 상인과 스스럼없이 악수하고 포옹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 전 수석은 다음날인 30일 오전 부산시의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다 관련 질문이 나오자 이렇게 답했다.
제가 이해가 잘 안 되는 게, 저는 정치 처음 들어왔잖아요. 하루에 거의 수백 명, 천 명 가까이 되는 분들과 악수를 처음 해봤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저게 시장의 가장 마지막이었거든요. 손이 저린 거예요. 손이 저리다 보니까 뭔가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쳤던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한 게 아니고. 만약에 제가 이렇게 나쁜 사람이었으면, 부산말로 시근 가진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했겠어요?) 그 이전에 상당히 많은 분이 손에 물 묻은 장갑에다가, 장갑 안 벗고 악수하신 분들 엄청 많았거든요. 비디오 보면 다 나오는데 한 번도 이렇게 (손 털기) 한 적이 없어요. (…) 근데 이것 자체가 이런 의도를 가졌다고 공격을 하는 걸 보니 현실 정치의 네거티브라는 게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언론이 하 전 수석의 설명 중 손이 저렸다 부분만 보도하고 물 묻은 장갑 은 생략했다. 상인의 장갑 낀 손을 만져 물이 묻어서든, 정치 생초보가 초긴장 상태에서 뭇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포역에서부터 2시간 이상 악수를 하고 다니다 막판에 손이 저려서든, 또는 둘 다이든 간에 그런 연유로 자기 손을 몇 번 비볐다고 해서 이상하게 볼 일은 아니다. 해당 동작에서 논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이상 신호 는 아무것도 없다. 하 전 수석의 해명을 거짓이라고 치부할 타당한 근거도 없다. 만약 한동훈 전 대표나 다른 누군가가 장시간 시장 유세를 하는 영상을 놓고 뭐라도 꼬투리를 잡자고 혈안이 돼 찾아보면 손 털기 이상의 장면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마타도어를 하자고 작정해서 편집하면 무슨 딱지든 갖다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이 4월 29일 오후 부산 구포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악수하고 난 뒤 손 털기 를 해서 유권자를 더러운 벌레 취급한 게 아니냐고 자극적인 제목을 내건 TV조선 보도 화면.
중앙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김종혁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오른쪽)은 1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 에 출연해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이 부산 구포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악수하고 난 뒤 손 털기 를 해서 재앙에 가까운 대실패 를 했다고 혹평했다. 이에 함께 출연한 노영희 변호사는 너무 치졸한 네거티브 라고 김 전 비대위원을 비판했다. 사진=포털 다음 화면 갈무리
손을 비빈 생리적 반응을 심리적 혐오로 둔갑시키는 악마화
전체 영상을 쭉 보면 어떻게든 시장 상인들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한 정치인의 평범한 선거운동일 뿐인데도, 하 전 수석의 근본 태도와 인성(人性)이 돼먹지 못했다며 앞장서 맹비난을 퍼붓는 인사 중에는 각종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친한계 김종혁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도 있다.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이기도 한 김 전 비대위원의 혹평에는 하 전 수석을 규탄하는 보수 진영의 논리 비약이 거의 집약돼 있다. 예컨대 그는 1일 라는 제목으로 포털 메인 뉴스에까지 배치됐던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 에서 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하고 만나면서도 계속 손을 털고 앉아 있는 거야. (…) 그런데 알고 보니까 기자들하고 악수할 때는 또 전혀 그렇지 않은 거야. 기자들하고는 두 손으로 계속 악수를 하고, 그런데 상인들하고 악수할 때는 계속 손을 털어. (…) 수백 명에서 1000명 가까운 사람하고 악수를 한 바람에 손이 저려서 그랬다, 저는 거의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그 과일가게 아저씨는 현관 입구, 구포시장 입구에 있는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분하고 악수하면서도 손 털었어. (함께 출연한 노영희 변호사가 너무 치졸한 네거티브 라고 비판하자) 뭐가 치졸해? 치졸하지 않은 게, 왜 화가 나냐면 그거는 인간에 대한 모독이잖아요. 아니, 왜 기자들하고 할 때는 괜찮고 왜 상인들하고 할 때는 손을 텁니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 전 수석은 계속 손을 턴 게 아니라 수백 명과 악수하는 100분간 통틀어 두어 번 손을 비빈 것이고, 여기엔 시장 입구에서 상인이 건네준 딸기를 받아먹고 난 뒤의 행동도 포함돼 있다. 당연히 청와대 실내에서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악수하던 광경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사안이 아니다. 출입기자 몇 사람과 악수하다 물이 묻거나 손이 저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손을 비빈 생리적 반응을 상대에 대한 심리적 혐오로 둔갑시키고 심지어 인간에 대한 모독 으로까지 비약시켰는데, 이런 게 바로 악마화 다.
김종혁 전 비대위원을 비롯해 하정우 손 털기 로 여론을 선동하려 드는 이들은 오해나 편견, 고정관념, 악의에서 우러난 전형적인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의도 확대의 오류,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맥락 제거의 오류, 원인 오판의 오류, 무관한 결론의 오류, 인신공격의 오류, 대중에의 호소, 증오에의 호소 등 논리학에서 말하는 비형식적 오류투성이다.
김호경 시민언론 민들레 에디터‧편집이사
여기에 소위 민주 진보 성향이라는 일부 평론가까지 방송에 나와 맞장구를 치고 있다는 점은 더욱 개탄스러운 대목이다. 다른 뚜렷한 반대 논거가 없는 한 상대방의 언행을 나 자신에 대해서처럼 악의가 아닌 선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하는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 과 역지사지의 원칙 을 정치판에서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만, 평론을 하겠다는 이들만이라도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최대한 노력은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