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이 태어나고 톨킨이 자주 거닐었던 코츠월드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황금빛 언덕, 이름부터 양 냄새가 난다
영국 중남부에 자리한 코츠월드(Cotswolds)는 지명부터 솔직하다. 고대 영어 코트(cot, 양 우리) 와 월드(wold, 구릉지) 가 합쳐진 말이니, 번역하자면 언덕 위의 양 우리 쯤 된다. 요즘 같은 시대에 관광지 이름이 양 우리 라면 조금 촌스러울 것 같지만, 코츠월드는 그 촌스러움 덕분에 유럽에서 가장 비싼 땅값 중 하나를 자랑한다. 이것이야말로 역설의 승리다.
서기 43년 로마제국이 브리타니아를 침략하면서 코츠월드는 역사의 중심으로 들어선다. 오늘날 사이런세스터(Cirencester)라 불리는 로마도시 코리니움 도부노룸 은 당시 브리타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 로마인들은 기가 막힌 모자이크 바닥을 깐 별장과 목욕탕까지 지었으니, 2천 년 전에도 이곳은 이미 있는 사람들의 피서지 였던 셈이다. 역사란 참으로 공평하지 않다.
시나 마을이 아니라 잉글랜드 사우스웨스트 잉글랜드의 글로스터셔 부근,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의 옥스퍼드셔 서부, 웨스트 미들랜즈의 워릭셔 남서부, 웨일스 동부 등 여섯 주에 걸친 구릉 지대의 마을 200여개를 일컫는다. 이곳 구릉들은 텔레토비 동산을 연상하면 된다. 제주 오름 같은 곳들이어서 트레일 명소로도 사랑 받으며 2010년 코츠월드 웨이는 제주 올레길 제3코스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코츠월드의 특징적인 건물들은 지역에서 나는 노란빛 석회암, 이른바 코츠월드 돌 로 지어졌다. 이 돌은 햇빛을 받으면 꿀 빛으로 반짝이는데, 그 덕에 마 을전체가 마치 동화책 삽화처럼 보인다. 사람이 그림 속에 사는 것인지, 그림이 사람 속에 끼어든 것인지 혼동될 지경이다.
캐슬 콤은 영국 윌트셔 주 코츠월드에 있는 작은 마을. 아름다운 경관과 중세 교회를 비롯한 훌륭한 건물들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영화 워 호스 의 촬영지로도 사용되었다.(위키피디아)
양털로 성당을 짓다, 중세의 황금기
12세기에는 이런 말이 유럽전역에 퍼졌다.
유럽에서 최고의 양털은 잉글랜드 것이요, 잉글랜드에서 최고의 양털은 코츠월드 것이다.
거드름 없이 사실만 말하는 이 격언 앞에서 피렌체 상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중세 전성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멀리 바다를 건너 코츠월드까지 직접 양털을 사러 오는 상인들이 줄을 이었다.
생산량은 1250년에서 1350년 사이에 절정에 달했으며, 대부분 이탈리아 상인들에게 팔려 나갔다. 양털 부자들이 된 지역상인들은 돈을 어디에 썼을까? 놀랍게도 성당이다. 양털로 번 돈은 성당으로 흘러들었고, 마을 규모에 견줘 터무니없이 큰 성당들이 들어섰다. 이것이 양털 성당 이다. 사이런세스터의 성 요한 성당과 노리치 성당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한국재벌들이 미술관 짓고 장학재단 만드는 것과 비교하면, 방식은 달라도 과시욕의 본질은 같다. 다만 중세 상인들의 유산은 700년이 지나도 남아 있는 점이 다르다.
아름다운 마을 바이버리(Bibury)의 아를링턴 로(Arlington Row) 집들은 1380년 수도원의 양털 창고로 지어졌다가 17세기에 직조공들의 집으로 탈바꿈했다. 창고가 마을의 얼굴이 된 것이다. 용도변경의 최고 성공사례라 할 만하다.
그러나 1700년대 산업혁명이 몰아치면서 공장들이 도시로 옮겨가고, 양털 경기는 내리막을 걷는다. 코츠월드는 그 덕분에 산업화의 손길을 피한 채 고스란히 남았다. 낙후가 보전이 된 역설. 코츠월드의 아름다움은 어떤 의미에서 실패의 기념비 다. 그리고 그 기념비 앞에 매년 수백만 명이 몰려든다.
바이버리는 전형적인 코츠월드 마을이다.(위키피디아)
내전의 전쟁터에서 세계유산까지
잉글랜드 내전(1642~1651) 동안 코츠월드는 왕당파와 의회파의 전쟁터가 되었다. 스토온더월드(Stow-on-the-Wold) 같은 마을은 주요 전투의 현장이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피가 흘렀던 것이다. 역사는 늘 그렇다. 가장 예쁜 곳에서 가장 지독한 싸움이 벌어진다.
1966년, 코츠월드는 뛰어난 자연경관 지역 으로 지정되었다. 1990년 구역이 확장되어 현재 면적은 약 2040㎢에 이른다.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통틀어 가장 넓은, 뛰어난 자연경관 지역이다. 그리고 블레넘 궁전은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스토-온-더-월드의 중심부인 더 스퀘어(The Square) 광장에서 김성수 시민기자. 이곳은 코츠월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로, 과거 양모 교역의 중심지. 광장은 중세 시대부터 시장이 열리던 역사적인 장소. 사진 중앙에 보이는 The Kings Arms 는 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여관(Coaching Inn). 1645년 영국 내전 당시 찰스 1세가 머물렀던 곳으로도 유명. 건물들이 코츠월드 특유의 따뜻한 황금빛을 띠는 코츠월드돌 로 지어져 매우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코츠월드 여행 시 꼭 들르는 명소 중 하나로, 주변에 예쁜 카페와 골동품 가게들이 많아 산책하며 둘러보기 아주 좋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죽다, 유명 인물들
캐서린 파(Katherine Parr, 1512~1548)
헨리 8세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왕비인 캐서린 파는 1512년 7월 또는 8월 런던 블랙프라이어스에서 태어났다. 헨리 8세의 아내 여섯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서 왕의 죽음을 지켜본 여성이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재능 이라는 말을 몸소 증명했다. 그러나 캐서린은 결국 1548년 8월 30일 서들리 성에서 딸 메리를 낳고 산욕열로 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헨리 8세보다 1년 더 살았지만, 인생의 아이러니는 그 1년을 가장 행복하게, 그리고 가장 비극적으로 마무리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지금도 서들리 성 안 예배당에 잠들어 있다.
캐서린 파 조상화(위키피디아)
윌리엄 모리스(1834~1896)
공예·디자인 운동의 선구자 윌리엄 모리스는 1834년 태어나 1896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코츠월드의 자연과 중세건축에서 영감을 받아 기계가 만든 추한 물건들을 거부하고, 장인이 손으로 만든 아름다움을 되살리자 고 외쳤다. 산업혁명에 맞서 손바느질로 싸운 남자. 지금으로 치면 대형마트에 맞서 동네빵집을 살리자는 운동가쯤 될 것이다. 그가 죽은 지 130년이 지났건만 그의 꽃무늬 벽지는 여전히 전 세계 인테리어 잡지에 등장한다.
윌리엄 모리스(위키피디아)
존 로널드 루얼 톨킨(1892~1973)
『반지의 제왕』의 작가 J.R.R. 톨킨은 189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블룸폰테인에서 태어나 1973년 잉글랜드 본머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옥스퍼드 교수이던 그는 코츠월드 일대를 자주 거닐었다. 스토온더월드의 성 에드워드 교회를 방문한 톨킨은 북쪽 현관문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반지의 제왕』 속 드워프 왕국 모리아의 문으로 형상화했다고 전해진다. 코츠월드의 돌문 하나가 전 세계 수억 독자를 중간계(中間界)로 이끈 셈이다. 이쯤 되면 관광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가 어렵다.
J.R.R. 톨킨(위키피디아)
윈스턴 처칠(1874~1965)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1874년 코츠월드 언저리 옥스퍼드셔의 블레넘 궁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65년 90세로 눈을 감았으며, 블레넘 궁전이 보이는 옥스퍼드셔 블래든 성 마틴 교회에 묻혔다. 처칠은 이 궁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블레넘에서 나는 두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태어나는 것과 결혼하는 것. 나는 두 결정 모두 만족한다.
자기가 출생한 것을 자신의 결정 이라 표현하는 이 뻔뻔한 자신감이야말로, 처칠을 처칠이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윈스턴 처칠(위키피디아)
코츠월드의 풍경, 한국에 묻다
그렇다면 코츠월드는 한국에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 개발 이 아니라 보전 이 장기적으로 더 큰 돈이 된다. 1966년 뛰어난 자연경관 지역 지정 이후, 코츠월드의 농부들은 정부보조금을 받으며 전통 농업방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경관이 살아남았고, 경관이 관광을 불렀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지방 소도시마다 관광단지 개발 이라는 미명 아래 산을 깎고 논을 메운다. 코츠월드는 자연을 깎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에서 사람이 몰려온다.
둘째, 낡은 것이 곧 자산이다. 코츠월드의 골목길과 돌집은 보수공사를 최소화하며 원형을 지켜왔다. 반면 한국은 재개발 이라는 이름 아래 수백 년 된 한옥 골목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올렸다. 지금 남아 있는 전통마을들의 가치가 얼마인지, 그 경제적 수익을 계산해보면 답이 나온다.
셋째, 역사적 인물 한 명이 지역경제를 먹여 살린다. 처칠의 생가 블레넘 궁전은 매년 수십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인다. 한국도 위인의 생가와 연고지를 가꾸고 있지만, 콘텐트의 깊이와 스토리텔링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
넷째, 시민사회가 경관을 지킨다. 코츠월드의 보전은 정부 혼자의 일이 아니었다. 윌리엄 모리스 같은 예술가들이 먼저 목소리를 높였고, 지역주민들이 힘을 보탰다. 한국에서도 지금 각지에서 난개발에 맞서는 시민들이 있다. 그 싸움이 의미 없지 않는 것을 코츠월드가 증명한다.
다섯째, 느린 것 의 경쟁력. 코츠월드에는 빠른 것이 없다. 기차역도 멀고, 고속도로도 없으며, 편의점도 드물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불편함을 즐기러 온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수준의 인터넷 속도와 배달 속도를 자랑하는 동안, 정작 잠시 멈출 수 있는 공간 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코츠월드의 느림은 전략이다.
코츠월드는 여전히 양털 냄새가 날 것 같은 이름을 달고, 21세기 가장 비싼 별장들이 들어선 땅이 되었다. 데이비드 베컴 부부가 별장을 사고, 유명 방송인들이 수십 억 짜리 집을 짓는다. 중세 양털상인들이 성당을 지어 천국행 티켓을 사려했다면, 현대의 부자들은 코츠월드에 별장을 사서 현세의 천국을 구한다. 시대만 달라졌을 뿐, 코츠월드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황금빛 돌담은 오늘도 꿀 빛으로 빛난다. 그 빛이 가르치는 것은 하나다. 아름다운 것은 지켜야 빛난다.
우스터셔주 브로드웨이에 있는 코츠월드 석재로 지어진 코츠월드 연립 주택. 마을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인다.(위키피디아)
코츠월드에서 영국의 베니스 라고 불리는 보턴온더워터(Bourton-on-the-Water) 마을에 위치한 더 모델 빌리지(The Model Village)에서 김성수 시민기자. 모델 빌리지는 1930년대 지역 장인들이 실제 코츠월드 스톤을 사용하여 보턴온더워터 마을의 거리, 집, 교회, 심지어 흐르는 강(윈드러시 강)까지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 영국에서 유일하게 Grade II Listed (사적지/건축물 보호 대상)로 지정된 모델 빌리지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모델 빌리지 안에는 다시 모델 빌리지를 축소한 모델이 있고, 그 안에 또 더 작은 모델이 있는 무한 반복 구조로도 유명하다.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