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350년 전에…국민건강보험·유럽통합 꿈꾼 벨러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르크스도 극찬한 잊힌 선구자 의 혁신적 아이디어들
존 벨러스는 영국 역사 교과서를 뒤져봐도 겨우 각주로만 등장한다. 하지만 그는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정치경제사에서 진정한 현상 이라고 극찬하고, 로버트 오언(Robert Owen, 1771~1858)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다. 350년 전, 17세기에 내놓은 그의 아이디어들을 보면, 현재의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진보적이다.
존 벨러스. (Alchetron)
직물 장사에서 사회개혁가로
벨러스는 1654년 런던에서 부유한 퀘이커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명한 오트밀 상표 퀘이커가 아니라, 17세기 영국의 종교개혁 운동인 퀘이커다. 그들은 모든 사람 앞에 하나님의 빛이 있다 는 신념으로 사회평등을 추구했던 이들이다. 벨러스도 옷감 장사로 돈을 벌면서도 머릿속엔 늘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까? 하고 깊이 고민했다.
1695년 영국이 이른바 기근의 7년 이라는 경제 불황으로 고통 받을 때, 벨러스는 한 권의 책 형식으로 된 제안서로 당대 지식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 제목만 봐도 머리가 아픈데, 내용은 더욱 혁명적이다.
벨러스는 한 권의 책으로 당대 지식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quaker theology)
17세기판 영국형 뉴딜 정책
벨러스의 산업대학 구상을 현대식으로 번역하면 이렇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교육을 제공하고, 부유한 투자자들에게는 수익을 보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자급자족 협동정착지라는 개념 자체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더 놀라운 건 단순히 자선사업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제안이라는 점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그냥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이들의 노동력을 체계적으로 조직해서 사회 전체의 부를 늘리겠다는 발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꽤 그럴듯한 아이디어 아닌가.
가난한 자들의 노동력은 부자들의 광산과 같다 는 그의 말은 자본주의 시대를 예언한 명언이다. 하지만 벨러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광산 에서 나오는 부가 노동자들에게도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절묘한 균형점을 찾은 셈이다.
존 벨러스의 저서.(AbeBooks)
21세기에도 앞서가는 복지정책들
벨러스의 아이디어 목록을 보면 입이 벌어진다. 350년 전 인물의 제안이 맞나 싶을 정도다.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 세계 최초로 보편적 의료보장을 공공정책으로 제안했다. 우리나라가 국민건강보험을 도입한 게 1989년인데, 벨러스는 이미 1695년에 건강한 국민이 경제에도 좋다 고 주장했다. 예방의학의 중요성까지 강조하며 치료보다 예방이 경제적 이라고 했으니, 현대 의료정책의 기본원칙을 300년 앞서 제시한 셈이다.
무상교육: 가난한 아이들에게 무료로 기술교육을 제공하자고 했다. 특히 직업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현대 기술전문대학의 원조 격이다. 교육받지 못한 사람은 사회의 짐이 되지만, 교육받은 사람은 사회의 자산이 된다 는 그의 말은 인적자원 개발론의 고전이다.
사형제 폐지: 영국 최초로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다. 범죄자를 죽이는 것보다 교화시키는 게 사회에 더 유익하다 며, 감옥에서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봤다. 응보적 정의보다 회복적 정의를 앞세운 현대적 형사법 철학을 350년 전에 제시한 것이다.
노동자 주거환경 개선: 열악한 주거환경이 음주 문제를 부른다며 노동자들에게 양질의 주거 공간 제공을 주장했다. 갑질하는 집주인들에게는 뼈아픈 제안이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주거복지 정책의 기본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존 벨러스의 삶을 묘사한 퀘이커 벽걸이.(Quaker Tapestry)
마르크스도 인정한 자본주의 개혁자
재미있게도 벨러스는 자유무역을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했다.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인정하되, 그 과실이 사회전체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좌파든 우파든 자기 입맛에 맞는 부분을 찾을 수 있는, 어찌 보면 정치적으로 완벽한 인물이다.
칼 마르크스가 그를 극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꿰뚫으면서도 혁명이 아닌 개혁을 통한 해결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1권에서 마르크스는 벨러스를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의 아버지 라고 평가하며, 그의 노동가치론을 높이 샀다.
더 놀라운 건 벨러스가 유럽통합까지 주장했다는 점이다. 350년 전에 유럽연합을 예언한 셈이다. 유럽 각국이 하나의 정부 아래 통합되면 전쟁도 줄고 무역도 활발해질 것 이라고 했다. 브렉시트로 시끄러운 요즘 영국 정치인들이 들으면 기절할 노릇이다.
존 벨러스의 정책 제안들을 소개한 조지 클라크의 책 표지. (김성수 시민기자 소장)
국제적 평화기구 창설까지
벨러스의 국제정치 구상도 시대를 앞섰다. 유럽 평화회의 설립을 제안하며 각국 대표들이 모여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기구를 만들자 고 했다. 국제연맹이나 유엔보다 200년 이상 앞선 아이디어다. 무력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갈등 해결을 주장한 그의 평화 사상은 현대 국제관계론의 이상주의 전통의 뿌리다.
전쟁에 쓰는 돈의 1/10만 평화유지에 쓰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는 그의 말은 현재 군축 논의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논리다.
현실은 시궁창, 이상은 하늘
물론 벨러스의 제안들이 당시에 실현되지는 않았다. 17~18세기 영국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쓸 리가 없었다. 오히려 게으른 자들을 위한 헛된 제안 이라고 냉대 받았다. 당시 지배층에게 가난은 개인의 게으름 때문이었지, 사회구조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벨러스의 아이디어들은 후대 사회개혁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로버트 오언의 협동조합 운동, 19세기 사회주의 사상, 심지어 현대 복지국가의 개념까지 모두 벨러스의 DNA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오언이 스코틀랜드 뉴래나크에서 실험한 이상적 공장 공동체는 벨러스의 산업대학 구상을 현실화한 것이었다. 8시간 노동제, 아동교육, 협동상점 등 오언의 대표적 정책들이 모두 벨러스에게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퀘이커 정신이 낳은 사회혁신
벨러스의 진보적 사상은 우연이 아니다. 퀘이커교의 평등주의 전통이 그 바탕에 있다. 퀘이커들은 남녀평등, 인종평등을 일찍부터 실천했고, 노예제 폐지 운동의 선봉에 섰다. 벨러스 역시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권리를 옹호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 는 종교적 신념이 구체적인 사회정책으로 이어진 것이다. 종교가 사회진보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좋은 사례다.
존 벨러스에 관한 책(왼쪽)과 자필 메모. (ebay uk, quakerorg)
21세기 대한민국에 던지는 메시지
존 벨러스의 삶을 보면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진정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대부분 동 시대에는 무시당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가치가 인정받게 된다.
벨러스가 제안한 많은 정책들이 지금은 선진국의 기본 복지제도가 돼 있다. 350년이 걸렸지만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 노동시간 단축, 주거복지 확대 같은 정책들도 벨러스 시대에는 허황된 꿈 으로 치부되었을 법하다.
혹시 지금 우리 주변에도 벨러스 같은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못 알아보고 있는 건 아닐까. 그건 너무 이상적이야 현실성이 없어 라며 묵살하고 있는 아이디어 중에 350년 후 인류의 상식이 될 것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1725년 2월 8일 세상을 떠난 존 벨러스. 그는 분명 자신의 아이디어들이 21세기에 실현되는 걸 보며 천국에서 흐뭇하게 웃을 것이다. 그래, 결국 너희들도 내 말이 맞다는 걸 깨달았구나!
하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은 그의 꿈들도 많다. 진정한 평등사회, 전쟁 없는 세상, 모든 인간이 존중받는 공동체. 벨러스가 꿈꾸던 세상을 만드는 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퀘이커는 영국에서 오트밀의 대표 브랜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