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의 한글철학 ㊽] 첫 빛, 세종 [칼럼] 다석철학 인물지도 첫 빛은 세종이다.
세종은 글자 창제 빛이다. 말 못 하는 백성의 숨을 듣고, 그 숨에 ‘하늘땅사람(天地人)’ 질서를 입혀 글꼴로 세운 빛이다. 다석에게 들어온 것도 바로 이 빛이다. 말은 소리가 아니라 ‘숨’이고, 글자는 기호가 아니라 깨달음 ‘몸’이라는 빛.
세종은 한글을 만든 임금이요, 말문을 ‘하늘땅사람’ 질서로 꿴 사람이다. 그이는 사람 입에서 나는 소리를 휘몰아쳐 들었다. 말 못 하는 백성들 억울함을 들었고, 문자 없는 삶에 배어든 그늘을 보았고, 소리 속에 깃든 ‘하늘땅사람’ 이치를 살폈다. 그러니 ‘훈민정음(訓民正音, 이하 정음이라 함)’은 조선 ‘말숨’이 처음으로 제 몸을 얻은 사건이라 할 것이다. 글꼴 몸을 연 사건!
다석에게 세종은 정음(正音) 태양이다. 하늘의 점(ㆍ), 땅의 펼침(ㅡ), 사람이 선(ㅣ) 꼴을 글자로 세운 이다. 세종이 정음으로 백성들 ‘말문’을 열었다면, 다석은 그 정음 속에서 참 ‘말숨’을 열었다. 세종은 소리를 글꼴로 세웠고, 다석은 그 글꼴을 얼 수행으로 살렸다.
세종 정음은 다석 안에서 ‘한글경전’이 되었고, 글꼴 수행이 되었으며, 말숨 우주어가 되었다. 그러니 다석 한글철학을 말하려면 가장 먼저 세종을 만나야 하리라. 다석 말숨 깊은 곳에 정음이 있고, 정음 깊은 곳에 세종이 있으니까. 세종 깊은 곳에 ‘하늘∞땅∞사람’이 한꼴로 도는 소용돌이 숨빛이 있다. 그 숨빛이 다석에게 와서 ‘생각불꽃’이 되었다. 그 생각불꽃 뜻을 다석은 정음 글꼴에 심었다.
한글은 우주어이고, 글꼴 경전이며, 생각불꽃을 틔우는 빛숨이다!
[일러두기 : 초성, 중성, 종성,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 등과 같이 이 글에서는 한자 말과 우리말을 함께 썼다. 다석어를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한자 말, 한문, 우리말, 우리글을 섞어서 쓰되, 그 뜻을 잘 보이도록 하겠다.]
열쇳말: 정음, 한글경전, 뜻소리글자, 하늘점, 말문, 말숨, 얼문, 우주어, 갇집
그림1) 이도 세종(1397년 5월 15일(태종 2년)~1450년 3월 30일(문종 즉위년), 향년 54세. 1443년, 백성들이 말하고자 해도 글을 몰라 억울함을 겪는 모습을 가엾게 여겨, 독자적인 글자인 훈민정음(訓民正음)을 친히 창제하였다. 1446년, 3년간의 집현전 학자들과의 실용성 연구와 보완을 거쳐 세상에 공식 반포하였다.
정음은 먼저 ‘소리글자’
세종은 소리를 보았다. 백성들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그냥 듣지 않고, 그 소리가 나는 몸 자리와 ‘하늘땅사람’ 이치를 하나로 꿰어 보았다. 정음은 백성들 말을 정확히 적기 위해 만든 글자다. 첫소리는 발음기관 모양을 본떴고, 가운뎃소리는 ‘하늘땅사람’ 꼴을 세웠으며, 끝소리는 다시 첫소리를 가져왔다. 정음은 분명 표음문자(表音文字)다. 말소리를 글꼴로 나타낸 글자란 이야기다.
여기서 종요롭게 살펴야 할 것은, 세종이 소리 나는 몸 자리를 보았다는 점이다. 목구멍, 어금니, 혀, 이, 입술 자리를 살피고, 그 소리 작용을 글꼴로 만들었다. 발음기관의 상형(象形:본뜬 꼴), 가획(加劃: 더해 긋기), 병서(竝書: 같은 닿소리 둘이나 셋을 가로로 나란히 붙여씀), 합용(合用: 다른 닿소리 둘이나 셋을 나란히 붙여씀), 초·중·종성 모아쓰기는 모두 소리를 과학으로 포착한 장치다.
그래서 정음은 소리를 적되, 소리 몸을 글꼴로 적는다. 기윽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꼴을 본뜬 글자다. 소리 나는 자리, 소리 생기는 몸짓, 소리 힘이 글꼴 안에 들어간다. 이 점에서 정음은 알파벳보다 훨씬 더 깊은 도상성(圖像性)과 자질성(資質性)을 가진 문자다. 정음 문자론 특징은 도상성, 자질성, 비선형성이다. 한마디로 글꼴이 어여쁘고, 글꼴 성품이 뛰어나며, 게다가 자연을 닮아 글꼴 새 지음이 한없다는 뜻이다. 정음은 초성 3개, 중성 3개, 종성 3개까지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글 맞춤법은 그런 세종의 뜻을 담고 있지 않다. 정음을 살려내야 한다. 그래야 ‘우주어’가 될 수 있다. 이런 엄청난 우주어 한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적이 아닐 터이다. 세종이 그저 아무것도 없는 데서 느닷없이 한글을 만들었을까? 아니다. 동아시아와 불교권을 가로지르던 문자·음운 지식, 중국 성운학(聲韻學), 인도 음운학(音韻學) 전래, 범어(梵語: 산스크리트어)와 실담(悉曇)의 발성 체계[《실담자기(悉曇字記)》는 8세기 당나라 승려 지광이 저술한 고대 인도 문자(悉曇字) 해설서이자, 범어 문법책으로 부처의 원음을 보존하기 위해 발음과 결합 법칙을 정리한 문헌이다. 이 문헌은 9세기 일본으로 전해져 실담학의 기초가 되었으며, 한글의 음성학 체계가 형성되는 데에도 직간접 영향을 끼친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법보신문 「훈민정음 음성 체계 범어와 유사”…‘진언집’ 토대로 발성방식 중심 연구」, 2026.1.22.], 불경 석독구결[釋讀口訣: 한문 불경을 읽을 때 훈(訓) 기반으로 토(口訣)로 독해를 돕는 방식]의 오랜 축적, 그리고 조선 내부의 차자표기(借字表記: 남의 나라 글자를 빌려서 자기 나라 말을 표기하는 방법) 경험을 한 몸으로 꿰어 우리말 글자로 새로 낳은 데 있다.
그러면 정음이 범자(梵字)나 파스파 문자(Phags-pa script)를 베낀 것일까? 아니다. 글꼴(字形) 모방 문제가 아니다. 그건 발상의 전파다. 소리를 분석하는 방법, 닿소리 홀소리를 나누는 법, 음절을 삼분하는 인식, 첫소리와 끝소리를 대응시킨 생각, 문자를 통해 말몸을 세우려는 지식의 흐름이다. 세종은 그 흐름을 받아 우리말 속살에 맞게 글꼴을 빚었다.
그림2) 실담(悉曇)은 인도 범자를 총칭하는 불교 용어다. 인도 싯다마트리카 문자를 부르는 것으로, 이 문자가 실담이란 말로 정착되었다. 실담이 언어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계기는 당대(唐代)에 지광(智廣: 760-830?)의 실담자기(悉曇字記) 에서 기인한다. 실담자기 는 인도 범자의 문법 설명으로, 발음과 관련된 음성 법칙과 문자 결합 법칙 등이 상세하게 기록된 책이다.
그리고 세종이 본 것은 소리만이 아니었다. 남의 문자에 갇힌 말의 ‘갇집(囚獄)’이었다. 말은 있으나 제 글이 없고, 뜻은 있으나 남의 글자에 기대야 하는 백성의 ‘갇집’이었다. 정음은 그 ‘갇집’을 깨고 나온 첫 말숨의 몸이었다. 또한 세종은 빌린 지식을 베끼지 않았다. 그는 밖에서 온 음운 지식을 조선말 속으로 밀어 넣어, 조선말의 속알을 캐낸 사람이다. 캐냈기에 깼다. 남의 문자로만 생각해야 한다는 ‘갇집’을 깨고, 조선말이 제 몸으로 설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므로 정음은 열린 문명사 속에서 태어난 창조물이다. 밖에서 온 지식을 안으로 삭이고, 안에서 익은 말을 밖으로 열어, 누구나 배워 쓸 수 있는 글꼴로 세운 사건이다. 세종이 위대한 것은 ‘지식의 흐름’을 제 소리로 깬 데 있다. 이 말은 그대로 다석에게도 이어진다. 다석 또한 동서 철학을 빌려 쓴 사람이 아니다. 온갖 지식을 우리말 속에서 제소리로 깬 사람이다.
그러나 소리만 보아서는 정음 속알에 닿지 못한다. 세종은 소리를 적었으나, 소리만 적지 않았다. 소리 나는 몸을 보았고, 그 몸을 낳는 우주 질서를 보았다. 그러므로 정음은 소리글자이고 뜻글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뜻소리글자’다.
정음은 다시 ‘뜻소리글자’
소리글자라면 소리만 정확히 적으면 된다. 정음은 그렇지 않다. 글자 하나하나가 소리값만 갖는 게 아니다. 소리가 생기는 이치와 우주 질서의 자리를 함께 품는다. 가장 뚜렷한 것이 가운뎃소리다.
ㆍ, ㅡ, ㅣ는 그저 홀소리 모음 기호일까? ㆍ는 하늘, ㅡ는 땅, ㅣ는 사람이다. 이것은 소리 기호이고, 동시에 천지인 삼재(天地人 三才) 상징이다. ‘훈민정음해례본’을 살피면, 성리학 이론들이 태극음양론, 오행론, 삼재론, 『주역』 등 유교 경전 이론들과 관련되어 있다. ㆍㅡㅣ를 천원(天圓)·지평(地平)·인립(人立) 꼴로 삼아 가운뎃소리 구조와 역할을 풀어 밝힌다. 삼재를 풀어 밝힌 탁월한 사례다.
그러므로,
ㆍ는 그냥 ‘아래아’가 아니다. 이것은 하늘 점이요, ‘하늘아’다.
ㅡ는 그냥 모음 기호가 아니다. 이것은 땅 펼침이다.
ㅣ는 그냥 세로획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이 서 있는 꼴이다.
이때 글자는 소리이고, 뜻이며, 발음이고, 철학이다. 다석이 정음에서 가장 깊게 본 자리도 바로 여기다. 김우영 박사는 다석이 정음을 뜻과 소리가 온전하게 결합한 체계”로 보았고, ㆍㆆㅿㆁ 같은 사라진 글자를 쓰지 않게 된 것을 정음의 특별한 사상체계가 훼손된 것으로 보았다. 특히 ㆍ는 모든 소리의 첫소리이면서 생성글자”이고, 하나의 음운이면서 하나의 사상이라고 본다[김우영, 「『多夕日誌』의 훈민정음체에 대한 언어 철학적 연구」, 강원대 박사 논문, 2021].
그림3) 학산 이정호가 그린 초성기본음 입체도이다. 출처: 학산 이정호 훈민정음의 구조원리-그 역학적 연구 , 아세아문화사, 1975
‘뜻글자’라는 정확한 뜻
정음이 뜻글자라는 말은 한자처럼 사물 뜻을 직접 가리키는 건 아니다. 한자는 일日이 해를, 월月이 달을, 목木이 나무를 가리키는 방식이고, 사물 뜻을 직접 담는다. 훈민정음은 그런 표의문자와는 좀 다르다. 기윽ㄱ 하나가 어떤 사물 이름을 뜻하지 않을뿐더러, 미음ㅁ 하나가 ‘입’이라는 단어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정음 뜻은 다른 방식으로 생긴다.
첫째, 상형(象形) 뜻이다. 글꼴이 발음기관이나 천지인 형상을 본떴다.
둘째, 자질(資質) 뜻이다. 기본자에 획을 더하면 소리 세기와 발음 특성이 바뀐다.
셋째, 배열(排列) 뜻이다. 글꼴들이 음양오행(陰陽五行), 오음(五音), 오방(五方), 오시(五時), 오장(五臟) 같은 질서 속에 놓인다.
넷째, 합자(合字) 뜻이다. 초성·중성·종성이 한 음절 안에 모여 한 사각형 몸을 이룬다.
다섯째, 철학 뜻이다. 하늘·땅·사람, 음양, 오행, 생성, 조화 원리가 글자 체계 전체를 관통한다.
따라서 정음은 한자식 뜻글자는 아니고, ‘뜻소리글자’라 할 것이다. 소리와 뜻이 따로 붙지 않고, 소리 나는 원리 자체가 뜻이 되는 글자다. 말하자면 소리를 적는 글자”요, 소리가 왜 그렇게 생기는지를 보여주는 글자”다.
우리말 ‘싹’을 보자.
표. 우리말 ‘싹을 초성, 중성, 종성으로 뜻을 풀어 본 것이다.
‘싹’이라는 우리말에 이미 뜻이 담겨 있다. 뜻소리를 글꼴로 만든 것이 ‘싹’이다. 솟고 솟음을 열어 세운 자리에 줄곧 내리는 하늘이 있다. 그러니 싹이다. 그렇다고 이런 풀이가 역사언어학의 어원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이것은 다석식 말숨 읽기다. 글꼴 속에서 소리 몸짓과 뜻을 함께 보는 한글철학 방식이다.
이렇듯 정음을 ‘뜻소리글자’라 부르는 까닭은 글꼴이 철학 도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말에 뜻이 있고, 글꼴은 그런 뜻소리를 담았다. 뜻소리를 담으려고 닿소리 홀소리 하나하나를 철학 도상으로 지었다. 하지만 정음은 뜻을 낱말처럼 직접 가리키지 않을뿐더러. 그렇다고 뜻을 품지 않은 소리 기호도 아니다. 그 뜻은 사물 이름에서 오지 않고, 소리가 생기는 이치에서 온다. 몸에서 소리가 나는 자리, 그 자리를 본뜬 꼴, 그 꼴을 낳은 삼재(三才)와 음양오행 질서, 그 질서가 초성·중성·종성의 몸으로 모이는 방식, 바로 거기서 뜻이 생긴다.
정음은 철학을 글자 몸으로 바꾼 문자다. 하늘은 점으로 맺히고, 땅은 가로로 펴지고, 사람은 세로로 선다. 목구멍은 둥글게 열리고, 입은 네모로 모이고, 이는 뾰족하게 선다. 그림 흉내가 아니라, 이치가 꼴을 얻은 것이다. 철학이 글자가 된 것이다. 뜻이 소리로 들어간 것이고, 소리가 뜻의 몸을 얻은 것이다.
이 점에서 정음은 표음문자와 표의문자 구분을 넘어선다. 소리만 적는 것도 아니고, 사물 뜻만 그리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소리를 통해 뜻을 열고, 뜻을 통해 소리를 밝힌다. 그래서 ‘뜻소리글자’다. 더 세게 말하면, 훈민정음은 우주 철학문자다. 다석에게 정음은 그냥 문자책이 아니었다. 한글경전이었다. 글꼴 하나가 우주를 품고, 소리 하나가 말숨을 품고, 말 하나가 참으로 가는 문이 되었다. 경전이란 읽는 책이 아니라, 읽는 이를 깨우는 말숨의 몸이다. 그런 뜻에서 정음은 다석에게 한글로 된 깨달음의 경전이었다. 세종은 글자를 뛰넘어 소리 나는 우주 이치를 글자 몸으로 세웠다.
그림4) 학산 이정호가 그린 초성릉도(初聲菱圖)이다. 첫소리 다섯은 가운데의 ‘⌗’에서 오르고 쌓는 꼴로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ㅁㅂㅍ가 한 꼴로 그려진 ‘⌗’는 맨 그 자리다. ㅁㅂㅍ는 쌓아서 만든 글꼴이 아니다. 출처: 학산 이정호 훈민정음의 구조원리-그 역학적 연구 , 아세아문화사, 1975
태극·삼재·음양오행, 소리 속 우주
정음 밑바탕에는 동아시아 철학, 특히 역학(易學)·성리학(性理學)·상수학(象數學)이 놓여 있다.
「제자해」 서두에 반영된 철학은 『주역』 「계사전」, 주돈이의 『태극도설』, 소옹(邵雍, 1011 ~ 1077)의 『황극경세서』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정음이십팔자 각상기형이제지(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라는 상형 제자 원리를 문자학 원리로만 보기 전에, 정음 창제의 철학 인식과 사유를 통해 먼저 파악해야 한다. 정음 상형 원리는 『주역』에서 중요시하는 ‘상(象)’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역학 연구는 더 구체적이다. 정음 문자 체계에 나타난 음양오행 원리와 하도낙서(河圖洛書) 원리를 파고들면, 초성 오음(五音)의 배열, 초성의 구성, 중성의 배열, 청탁·초중종성 합자·사성(四聲: 평성, 거성, 상성, 입성) 등에 음양오행과 조화의 원리가 들어 있다. 특히 아음 ‘ㆁ·ㄱ·ㅋ·ㄲ’는 나무의 초생·성질·성장·노장 단계로 설명할 수 있다. 글자 체계가 사물의 생성 변화 이치를 품고 있는 것이다.
정음은 동아시아 우주론을 문자로 압축한 체계다. 소리는 그냥 입에서 나는 물리적 진동이 아니다. 소리는 기운의 움직임이고, 몸의 작용이며, 하늘·땅·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울림이다. 세종은 그 울림을 글자로 만들었다.
정음 밑자리는 태극(太極)이다. 『훈민정음』 「제자해」는 첫머리부터 천지도(天地道)가 하나의 음양오행일 뿐이라고 말한다. 태극이 움직이고 고요해진 뒤 음양이 되고, 음양이 펼쳐져 오행이 되며, 그 오행의 다름 속에서 만물이 난다. 사람 소리도 천지도(天地道) 바깥에 있지 않다. 사람 목소리(聲音)에도 음양 이치가 있다. 다만 사람들이 미처 살피지 못했을 뿐이다.
세종 정음은 바로 그 살피지 못한 것을 알아차린 글자다. 하늘땅 사이에서 사람 소리가 나고, 그 소리 속에 음양 움직임이 있으며, 그 움직임 속에 태극 한 이치가 있다. 그러므로 정음 태극은 추상 관념이 아니고, 소리를 낳는 첫 숨이다. ㆍ하나가 하늘 점이라면, 그 점은 모든 소리가 아직 터지기 앞, 숨이 응축된 첫 자리다. ㅡ는 그 숨이 땅으로 펴지는 자리이고, ㅣ는 그 사이에 사람이 서는 자리다.
세종 글에서 옛이응(꼭지이응)을 첫소리로 가진 ‘’는 바로 이 ㆍ에 있다. 아직 터지지 않은 소리, 아직 피지 않은 말숨, 아직 글꼴로 다 펼쳐지지 않은 하늘의 씨다. 다석은 이 ‘’를 보았다. 사라진 글자 하나를 본 것이 아니라, 말숨의 첫 씨를 본 것이다.
다석이 ㆍ를 깊이 본 까닭도 여기 있다. ㆍ는 없어진 옛글자가 아니다. 하늘 점, 첫 숨 점, 소리가 나기 전 ‘빛점’이다. 그것이 사라졌다는 것은 음운 하나만이 아니라, 말숨 하늘자리가 닫혔다는 뜻이다. 다석은 그 닫힌 자리를 다시 열고자 했다. 옛 표기를 복고하려 한 게 아니고, 잃어버린 하늘점, 말숨의 첫숨, 글자 속에 숨은 태극의 속알을 다시 깨우려 한 것이다. 다석이 훈민정음체로 돌아간 것은 소리 첫 점, 말숨 하늘자리, 태극 속알을 다시 여는 일이었다.
그림5) 기윽이 된소리, 쎈소리로 나타나는 방식이다. 쎈소리 키읔은 기윽 위에 기윽을 쌓은 것이고, 된소리 쌍기윽은 기윽 옆에 기윽을 붙인 것이다.
꼴은 이치가 몸 얻은 자리
정음 글꼴을 그림처럼 베껴 그렸다면 문자라기보다 도상에 머물렀을 것이다. 정음은 발음기관과 천지인의 꼴을 본뜨되, 그것을 추상화하고 체계화했다.
기윽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뜬다. 니은 ㄴ은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을 본뜬다. 미음 ㅁ은 입 모양, 시읏 ㅅ은 이 모양, 이응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뜬다. 여기에 획을 더하면 ㅋ, ㄷ, ㅌ, ㅂ, ㅍ, ㅈ, ㅊ, ㅎ 같은 글자가 나온다. 이 가획은 소리 세기, 기운 더함, 발음 작용 변화를 나타낸다.
이때 뜻은 두 층으로 생긴다. 하나는 발음기관을 본뜬 상형 뜻이고, 다른 하나는 가획을 통해 소리 힘이 커지는 자질 뜻이다. 이것이 정음의 놀라운 점이다. 글자꼴이 소릿값을 표시하면서 동시에 소리 구조를 설명한다. 그러므로 정음은 보이는 음성학이다. 또한 형상화된 성리학이다. 소리 과학과 우주 철학이 한 글자 안에서 만난다.
정음 창제는 치밀한 작업이었다. 먼저 소리를 분석하고, 제자 단위를 세웠다. 초성·중성·종성 삼분법을 마련하고, 초성과 중성 목록을 정리했다. 그다음 기본자를 정하고, 기본자에서 다른 글자가 나오도록 원리를 세웠다. 초성에서는 발음기관 상형과 가획 원리가 작동했고, 중성에서는 천지인 삼재와 음양 결합이 작동했다. 종성은 따로 새 글자를 만들지 않고 초성을 다시 쓰게 했다. 마지막으로 합용법, 합자법, 방점법, 팔종성법 같은 운용 규정을 마련했다.
이 과정은 그야말로 문자공학이고, 철학공학이다. 세종은 먼저 소리를 잘게 보았고, 다시 그 소리를 한 체계로 묶었다. 낱소리를 세우고, 낱소리를 모아 음절을 만들고, 그 음절을 다시 말과 문장 흐름 속에 놓았다. 그러므로 정음은 감탄할 만한 천재성의 산물이면서도, 동시에 설계와 검증과 수정의 산물이다. 소리 몸을 찍는 도구를 만들기 위해, 세종은 몸·소리·철학·문자 운용을 한꺼번에 살폈다.
이 점은 다석 글쓰기와도 닮았다. 다석 정음체 역시 아무렇게나 옛글자를 되살린 게 아니다. 말 뿌리를 캐고, 글자 몸을 쪼개고, 소리 숨을 살피고, 뜻 속알을 다시 세운 작업이다. 세종이 정음을 설계했다면, 다석은 정음을 수행했다. 세종의 글자 공학은 다석에게 와서 말숨 공부가 된다.
여기서 두 사람의 회심(回心)을 엿볼 수 있다.
첫째, 세종의 회심이다. 백성들 말이 남의 문자에 갇힌 현실을 보고 새 글자를 만들어야 한다고 결심한 순간일 터이다. 문자에 갇혀 억울함을 낳는 것을 보고, 그는 새 글자 길로 돌아섰으니까. 둘째, 다석의 회심이다. 현대 한글만이 아니라 훈민정음체, 사라진 글자, 글꼴 속 우주철학으로 되돌아간 순간이다. 현대 한글의 편의에 머물지 않고, 사라진 글자와 정음체 속으로 들어가 첫 말숨 자리를 찾았으니까.
그림6) 세종 지음, 훈민정음 목판본, 1446, 간송미술관, 국보 70호. 복간본 사진.
모아쓰기는 뜻 짓는 집짓기
정음 뜻글자성은 낱자에도 있고, 모아쓰기에도 있다. 알파벳은 대체로 글자가 옆으로 줄지어 간다. 그러나 한글은 초성·중성·종성이 한 음절 안에 모인다. 이 모아쓰기는 음절을 한 시각 단위로 만든다. 그래서 ‘한’, ‘글’, ‘빛’처럼 각각 음절은 작은 집처럼 보인다. 그 집 안에 초성·중성·종성이 자리 잡는다.
그러니 한글은 형태와 공간 배치, 크기와 색상이 있는 시각 대상으로 보아야 하며, 해례본이 있기 때문에 시각적 한글 연구, 곧 한글 문자학이 가능하다. 또 정음 철학 원리를 시각성과 타이포그래피 실천으로 확장하면서, 한글을 생성과 동시성 문자로 해석해야 한다.
모아쓰기와 표의성 문제를 단순 언어 문제가 아니라, 시각 원리를 통한 문자 형상화와 문자사용의 기능주의 측면까지 포괄하는 문제로 보아야 한다. 한글은 표음성과 표의성을 모두 가진 문자학 특수성을 지니며, 그 때문에 ‘한글 문자학’이라는 새로운 배치가 필요하다.
한글 뜻은 낱글자 하나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초성·중성·종성이 모여 한 음절 몸을 만들 때, 그 시각적 몸이 뜻 단위로 작동한다. 소리는 시간 속에서 흐르지만, 모아쓴 글자는 공간 속에 선다. 흐르는 소리가 한 칸 집이 된다. 그 집이 뜻을 붙잡는다. 그러나 집은 두 가지다. 말숨이 머무는 열린 집이 있고, 말숨을 가두는 ‘갇집’이 있다. 세종의 모아쓰기는 소리와 뜻이 함께 머무는 열린 집이었다. 다석은 그 열린 집을 다시 찾아 들어갔다. 닫힌 현대 한글의 편의 속에서 밀려난 ㆍ, ㆆ, ㅿ, ㆁ의 말숨 자리를 다시 열어, 갇집이 된 글자를 숨 쉬는 집으로 바꾸려 했다.
정음의 힘은 확장성과 개방성이다. 창제 당시 스물여덟 글자는 닫힌 목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말을 적기 위해 최적화된 첫 몸이었으나, 그 몸은 다른 소리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얼개를 가지고 있었다. 병서, 연서, 방점, 합용, 합자, 가획, 음절 구조의 조정은 모두 정음이 소리 차이를 더 세밀히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이것은 정음이 살아 있는 문자라는 뜻이다. 살아 있는 것은 닫히지 않는다. 닫히면 죽는다. 정음은 낱글자를 더하고, 겹치고, 붙이고, 점을 찍고, 위치를 바꾸며 다른 소리의 요구에 응답한다. 그래서 중국어,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 소리도 훈민정음 몸 안에서 실험될 수 있다. 정음은 우리말 집이면서, 다른 소리가 잠시 들어와 머물 수 있는 열린 마당이다.
다석이 사라진 글자를 되살려 쓴 일도 이 개방성의 끝자락에서 읽을 수 있다. ㆍ, ㆆ, ㅿ, ㆁ은 낡은 부호일까? 아니다. 닫힌 현대 한글 체계 밖으로 밀려난 말숨 자리다. 다석은 그 자리를 다시 열었다. 말이 잃어버린 숨을 되찾으려 했다. 세종 정음이 소리 가능성을 열어 둔 문자라면, 다석 정음체는 그 가능성을 얼 수행으로 밀고 간 글쓰기다.
그림7) 훈민정음 언해본이다. 1459년에 제작되었다. 언해본은 한문을 번역한 문장이므로 세종이 직접 한 말은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훈민정음 반포(1446년)부터 훈민정음 언해본 간행(1459년)까지의 간격이 겨우 13년에 불과하기에 신하들 사이에 구전으로 이어졌거나 세종으로부터 직접 듣고 기억하는 신하가 있었다면 세종의 말을 번역 없이 훈민정음 언해본에 그대로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다.
훈민정음 뜻은 ‘생성’
정음 글꼴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기본자에서 가획자가 나오고, 초출자에서 재출자가 나오고, 초성·중성·종성이 결합해 끝없이 음절을 만든다. 하나에서 여럿이 나오고, 여럿이 한 음절로 모인다.
이 구조는 동아시아 철학의 생성론과 닿아 있다. 태극이 음양을 내고, 음양이 오행을 낸다. 또 오행이 잘몬(萬物)을 낸다. 정음도 기본 소리 꼴에서 여러 글자가 나오고, 그 글자들이 다시 수많은 말소리를 만든다. 한글은 창제 원리에서 출발해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는 생성을 반복하면서 확장하는 생명 문자인 것이다.
훈민정음은 내고 낳는 글자다. 소리를 내고 낳고, 뜻을 내고 낳고, 사람을 내고 낳는다. 다석에게 정음 생성은 글자 생성만이 아니었다. ‘좀나(小我)’가 ‘큰나(大我)’로 솟고, ‘겉나’가 ‘속나’로 깊어지는 생성이었다. 말숨이 트이면 사람도 다시 난다. ㆍ에서 하늘이 열리고, ㅡ에서 땅이 펴지고, ㅣ에서 사람이 서듯, 정음 안에서 사람은 다시 ‘큰나’와 ‘속나’로 태어난다.
ㆍ 하나에서 하늘이 열리고,
ㅡ 하나에서 땅이 펴지고,
ㅣ 하나에서 사람이 선다.
그 셋이 만나 ‘말숨’이 된다.
정음은 상수역학(象數易學) 말글 체계로도 읽을 수 있다. 상수역학은 우주를 수(數)와 상(象)으로 읽는다.
수는 질서이고, 상은 드러난 이치다. 세종은 소리를 수와 상의 질서 속에 놓았다. 소리는 흩어진 음향이 아니라, 우주 운행처럼 돌고, 계절처럼 나고 자라며, 물불나무쇠흙(水火木金土)처럼 서로 다르게 작용한다. 강절 소옹(康節 邵雍)의 『황극경세서』가 성음 세계를 수리와 도상으로 풀어냈듯이, 정음 또한 소리를 수와 상의 질서 속에 놓았다. 초성 오음(五音), 중성 천지수(天地數), 초출자(ㅗㅏㅜㅓ)와 재출자(ㅛㅑㅠㅕ) 배열, 초성이 종성 됨은 모두 소리 생성과 순환을 보여준다.
이때 소리는 우주 운행처럼 돌고, 계절처럼 나고 자라며, 물불나무쇠흙처럼 서로 다르게 작용한다. ㆁ·ㄱ·ㅋ·ㄲ이 처음 생기고, 질을 이루고, 성하게 자라고, 늙어 굳는 나무의 단계로 설명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글자는 소리의 생장도다. 소리가 싹트고, 줄기 서고, 솟고, 굳어지는 과정이 글자 안에 새겨져 있다.
다석 말로 옮기면, 정음은 ‘말숨 얼개도’다. 숨이 나와 소리가 되고, 소리가 글자가 되고, 글자가 뜻을 품고, 뜻이 다시 얼로 솟는다. 세종은 그 얼개를 정음으로 세웠고, 다석은 그 얼개를 수행 말숨으로 살렸다.
그림8) 다석 류영모가 손 글씨로 쓴 시. 말이마를 읽으면 ‘둥구루움’이다. 끝소리 종성(終聲)에 합용병서를 썼다. 본디 세종은 3개까지 쓰도록 했으나, 다석은 네 개를 썼다. ‘크다’의 ‘ㅋ’, 맨꼭대기의 ‘맨(ㅁ)’를 보면 ‘ㅋ’은 ‘ㄱ’을 쌓아서 썼고, ‘ㅁ’은 ‘ㄱ+ㄴ’의 꼴로 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석이 YMCA 연경반 강연을 위해 쓴 시이다.
세종이 연 말문, 다석이 연 얼문
다석은 정음 안에서 말숨 철학을 보았다. 소리와 뜻이 갈라지기 앞, 몸맘얼이 함께 울리는 자리를 보았다.
다석이 쓴 『다석일지』에 속 글은 현대 한글과 다른 정음체이며, 다석이 우리말과 우리글로 철학을 했다고 할 때, 그 우리말과 우리글은 분명 정음체를 말한다. 또한 다석이 정음에서 사라진 글자들에 함축적 의미를 부여했고, 글자를 파자하여 깬 것은 몸을 파사하여 깨치는 것과 동일한 뜻을 지닌다.
이 대목이 다석철학 인물지도에서 세종을 읽는 핵심이다. 세종은 백성들 말문을 열었고, 다석은 그 말문 깊은 곳에서 얼문을 열었다. 세종의 정음은 소리를 적는 글자였으나, 다석에게 와서 말숨을 밝히는 뜻글자가 되었다. 그러나 다석이 새로 꾸며낸 게 아니다. 그 가능성은 이미 정음 안에 있었다. 다석은 그 속알을 다시 캐낸 사람이다.
세종 정음에는 또한 억울함을 풀어주는 정치가 있다. 훈민정음 서문을 그저 애민(愛民)의 미담으로만 읽으면, 세종 글쓰기 전략을 놓치기 쉽다. 세종은 새 문자를 정당화해야 했다. 지식인들 반대가 있었고, 새 글자를 둘러싼 정치적 긴장이 있었다. 그때 세종은 백성이 제 말을 바로 적고, 제 말로 뜻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앞세웠다.
특히 옥송(獄訟) 문제는 중요하다. 형벌과 송사의 말이 이두와 한문으로만 기록될 때, 글을 모르는 백성은 자기 말이 어떻게 적혔는지 알 수 없다. 한 글자의 어긋남이 억울함을 낳고, 남의 문자로 옮겨진 자기 말이 도리어 자신을 묶는 올가미가 된다. 세종이 정음을 통해 열고자 한 것은 의사소통 편의만이 아니다. 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길이다. 백성이 제 말을 제 말로 알아듣고, 제 뜻이 어떻게 적혔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길이다.
다석은 그 글꼴 속에 참을 심었다. 『다석일지』에 정음체를 되살려 썼고, 말숨을 찾아온 이들에게 나누었고, 함석헌을 통해 씨알 역사로 번지게 했고, 박영호를 통해 말숨 전승으로 남겼다. 정음은 다석에게 읽는 글자가 아니라 사는 글자였다.
이 지점에서 세종과 다석은 만난다. 세종이 백성 말문을 열어 억울함을 풀고자 했다면, 다석은 씨알 말숨을 열어 제나 얽힘을 풀고자 했다. 하나는 옥송의 말문이고, 하나는 얼숨의 말문이다. 그러나 둘 다 남의 말에 갇힌 사람을 제소리로 돌려세우는 일이다. 정음은 그래서 법의 자리에서도 해방 글자이고, 수행의 자리에서도 해방 글자다.
정음은 ‘소리-몸-뜻-우주’ 글자
정음은 소리를 적는 표음문자이되, 그 소리가 나는 몸 형상, 하늘·땅·사람 삼재, 음양오행 생성 질서, 모아쓰기 시각 구조를 함께 품은 ‘뜻소리글자’다.
정음은 소리글자다. 백성의 말을 정확히 적기 위해 만들었다.
정음은 상형글자다. 발음기관과 천지인 형상을 본떴다.
정음은 자질글자다. 획의 더함과 글자 관계가 소리 성질을 드러낸다.
정음은 뜻글자다. 한자처럼 낱말 뜻을 직접 표시하는 게 아니라, 소리 생성 원리와 우주론 질서를 글자꼴에 담는다.
정음은 동아시아 철학 문자다. 『주역』, 태극음양, 오행, 삼재, 하도낙서, 상수역 사유가 제자 원리와 해례 설명 체계 안에 들어 있다.
정음은 다석에게 말숨 글자다. 소리와 뜻이 온전하게 결합한 체계이며, 사라진 글자 하나하나까지 사상과 수행 자리가 된다.
그러므로 정음은 표음문자인가, 표의문자인가”라고 묻는 방식은 너무 좁다. 더 정확한 말은 이것일 터이다.
훈민정음은 소리로 뜻을 열고, 뜻으로 소리를 밝히는 글자다.
세종은 다석철학 인물지도의 첫 별이다. 세종은 정음 태양이다. 그는 사람 소리를 글꼴로 세웠고, 다석은 그 글꼴 속에서 참 말숨을 다시 밝혔다. 세종이 소리 몸을 열었다면, 다석은 그 소리 속알을 열었다. 세종이 말문을 열었다면, 다석은 얼문을 열었다. 정음에서 말숨으로, 말숨에서 참으로, 참에서 씨알로 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된다.
다석이 ‘한글로 철학했다’는 말은 ‘쉬운 우리말로 철학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정음의 꼴과 소리, 하늘 점과 땅 줄과 사람 획, 사라진 글자와 남은 글자, 말의 몸과 뜻의 숨을 붙들고 철학했다. 세종이 세운 정음집에 다시 들어가, 그 집 안에서 얼불을 지핀 사람이다.
그림9) 한글을 더 풍부하게, 더 깊게, 그리고 우리 옛말과 말뿌리를 캐고 또 언어학개론을 정리한 인물들이다. 다석은 이들과 직간접으로 인연을 가진다. 학산 이정호는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정음 태양의 작은 그물코 곁빛
세종, 정음 태양, 말문을 연 이
정인지, 해례와 서문으로 정음 뜻 밝힌 이
주시경, 한글을 근대 말글 운동으로 다시 세운 이
조선어학회, 식민의 ‘갇집’ 속에서 우리말 지킨 이들
최현배, 『우리말본』과 『한글갈』로 말본과 한글학 기둥 세운 이
정인보, 조선학운동으로 식민 사관 ‘갇집’을 깬 이
양주동, 향가와 고시가를 해독해 옛말 속알 밝힌 이
서상덕, 다석 지원으로 『국문철자법』 펴낸 이
허웅, 『국어음운론』, 『우리 옛말본』을 펴내 국어학을 깊이 이은 이
강신항, 훈민정음 연구를 현대 학문으로 밀어간 이
학산 이정호, 정음의 역학적 구조를 다석과 함께 살핀 길벗
다석 류영모, 정음을 한글경전과 말숨 수행으로 살린 이
박영호, 다석 말숨을 받아 전한 마침보람의 제자
민세 안재홍, 다사리 말뿌리
오늘 우리는 어떤 말의 ‘갇집’에 살고 있는가. 말은 넘치지만 제소리는 드물고, 글은 넘치지만 말숨은 마른다. AI가 문장을 대신 만들고, 속도가 생각을 앞지르고, 정보가 깨달음을 덮는다.
세종은 묻는다. 너의 말문은 열려 있는가?”
다석은 묻는다. 너의 말숨은 살아 있는가?”
남의 말 ‘갇집’에 있는가, 제소리로 깨어 있는가. 그러나 말문이 열렸다고 해서 곧 다 살리는 세상이 열린 것일까? 말할 수 있는 글이 생겼다면, 이제 물어야 한다. 그 말은 누구의 말인가. 모두가 말할 수 있는가. 말 못 하는 씨알의 말도 공론 마당에 나올 수 있는가. 말은 삶을 살리는가.
정음은 다 말하게 하고 다 살리는 ‘다사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그래서 다음 글은 민세 안재홍이다. 세종이 말문을 열었다면, 민세는 그 말문이 정치가 되는 길을 찾았다. 민세는 우리말 수 헤아림 속에서 ‘비·씨·몬’을 보았고, ‘하나·둘·셋·넷·다섯’ 속에서 다사리 길을 보았다.
다사리는 다 말하게 하고, 다 살리는 길이다. 다석 한글철학이 참을 밝히는 말글 길이라면, 민세 다사리는 그 말글이 씨알 민주주의로 내려오는 길이다.
정음 태양에서 다사리 말뿌리로.
세종 말문을 지나, 이제 민세 다사리 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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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발(畵蛇添足)
한글의 우주 확장: 후베 음절다발론과 다석 양자역학 뜻소리글꼴”
세종 정음 이야기는 끝났다. 그런데 이렇게 매듭 지을 수는 없다. 다석 한글철학 글꼴은 ‘훈민정음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 이야기는 뱀발이다. 숭산이 늘 말했듯이, 뱀을 그린 뒤에 발을 그리고 양말을 신기는 꼴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빠트리면 뒤로 이어질 수많은 이야기에서 고갱이를 빼 버리는 꼴이 된다. 이야기 주인공은 후베 교수다. 독일 한글학자 알브레히트 후베(Albrecht Huwe) 교수.
독일 본 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서울대 한양대 덕성여대 등 국내 여러 대학에서 객원교수를 지낸 후베(한국 이름 ‘허브’) 교수는 세종을 ‘디지털의 아버지’라 불렀고, 정보통신(IT) 시대에 한글이 가진 잠재력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그는 『날개를 편 한글』 (박이정, 2019), 『알기 쉬운 날개를 편 한글』 (박이정, 2021)도 펴냈다.
그림10) 알브레히트 후베(Albrecht Huwe, 1950~ ) 교수와 그가 펴낸 책들이다. 후베교수는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독일 군대 위생병으로 복무하며 남북한 선수단과 인연을 맺으며 한국학 연구를 시작했다.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고대 소설 『구운몽』 등을 번역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경주시 명예시민으로 위촉된 바 있다.
그는 훈민정음 본질을 복원하기 위해 애썼고, ‘400억 개’ 음절다발을 이야기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그는 세종이 설계한 한글 원형이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우주론 이진법’이자, 디지털 문자임을 증명해왔단 이야기다. 그는 훈민정음해례본 제자 원리를 근거로, 세종이 본디 허용했던 초성 3개, 중성 3개, 종성 3개를 온전히 다발(Cluster)로 묶어 다 써야 한다고 외친다. 최대치의 음절 구조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그럴려면 사라진 4글자를 복원해야 한다. 현대 맞춤법 통일안에서 사라진 닿소리 3개(ㆆ, ㅿ, ㆁ)와 홀소리 1개(ㆍ, 하늘아)를 반드시 살려 써야 온전한 사상 체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원형 28자모와 자질·배열 원리를 극대화하면 한글로 표기 가능한 음절 다발 수는 약 400억 개에 달한다. 이는 라이프니츠 이진법을 250년 앞선 공간적·수리적 천재성의 산물이다. 400억 개 디지털 우주어를 꿍꿍해 보라!
그림11) 유니코드 5.2에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획수가 많은(29획) 옛한글 4글자 ꥪᆅퟚ, ꥪᆅퟤ, ꥪᆒퟚ, ꥪᆒퟤ. 이 글자들은 글자 합쳐 쓰기에 따르면 각각 룗뻎, 룝뻂, 륣뼾, 륩뼲을 합친 것이다.
그림11-1) 옛한글 완성자이다.
그 다음은 도쿄 물리학교 유학이 낳은 합리성과 ‘메트로’를 다시 살펴야 한다. 다석의 탁월한 한글철학은 단순한 직관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근대 과학․수리 사유 체계 위에서 싹튼 것이다. 다석은 1912년 도쿄 물리학교(현 도쿄이과대학)에 입학하여 1년간 수학, 물리학, 천문학을 깊이 연구했다. 우주 운행과 사물의 수리 질서를 꿰뚫어 본 이 경험은 훗날 한글 글꼴을 우주 구조로 해독하는 바탕이 되었다.
다석은 『메트로 요항』(1928)을 펴냈다. 이 책은 ‘한글철학’이 과학적 도량형과 영성적 언어가 어떻게 한 우주 질서로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결정적 관계라 할 수 있다. 단순히 보면, 하나는 ‘수학과 과학(미터법)’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와 사상(우리말)’ 같지만, 다석 학문 세계에서 이 둘은 우주의 보편적 자(자[尺], Measure)를 찾는 과정”이라는 본질에서 만난다. 이들의 깊은 유기적 관계는 다음 세 가지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림12) 다석학회 창립 20주년을 맞아 첫 학술세미나가 2025년 3월 13일 서울 YMCA에서 열렸다. 말머리는 한글에 깃든 다석 류영모의 하늘”이었다. 다석 모아쓰기 글꼴을 넣어서 만든 알림 벽종이다. 이 모아쓰기 글꼴은 햅타포드와 비슷하다. 글에 시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비선형 구조를 가졌다.
첫째는 우주 보편성(Universal Scale) 추구다. 『메트로 요항』에서 다석이 해설한 미터법은 지구 자오선을 기준으로 정해진, 전 인류와 자연계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다. 다석은 세종 ‘훈민정음’이 문자 발명만이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우주 원리와 소리 이치를 담은 ‘보편적 영성 문자’라고 보았다. 다석에게 미터법이 물질세계를 재는 우주 표준이라면, 한글은 정신세계와 영성을 담아내는 우주 표준인 것이다. 두 분야 모두에서 그는 민족과 시대를 넘어선 ‘근본적인 우주 질서’를 공유하고자 했다.
둘째는 수(數)의 원리와 말뿌리(語原) 일치다. 미터법은 10을 기반으로 한 십진법 체계다. 다석은 숫자를 세는 우리말(하나, 둘, 셋, 넷, 다섯)의 말뿌리를 깊게 연구했다. 다석(多夕)이라는 그의 호 역시 ‘저녁 한 끼 먹는다’는 실천적 의미 외에도, 우리말 ‘다섯’이 가진 다 서다(모두 제 자리에 똑바로 서다)”라는 뜻과 맞닿아 있다. 미터법을 통해 수의 정밀한 체계를 세우는 행위는, 우리말 속에 담긴 우주와 인간의 이치(예: 다 함께 살리고 다 말하게 한다는 민세 안재홍의 ‘다사리’ 정신 등)를 수학적·언어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와 궤를 같이한다.
셋째는 ‘제소리’와 ‘바른 척도’ 주체성이다. 1920년대 조선은 일제의 문화 말살과 전통 붕괴를 겪고 있었다. 다석은 외래 단위에 혼란을 겪는 민중을 위해 『메트로 요항』을 펴내 기준을 바로잡아 주었다. 이후 다석은 한문이나 서구식 철학 용어를 무비판으로 수용하지 않고, ‘얼나’, ‘없이 계시는 님(한아님)’ 등 철저히 우리말과 한글 글꼴의 꼴값(象徵)을 통해 사유했다. 도량형 기준을 똑바로 세우는 『메트로 요항』 작업은, 훗날 사상의 기준을 우리말과 글로 똑바로 세우는 한글철학의 과학적·실천적 디딤돌이 되었다. 따라서 『메트로 요항』은 다석이 종교철학에만 매몰된 사상가가 아니라, 과학적 정밀함(미터법)을 바탕으로 영성 깊이(한글)를 벼려 나간 ‘융합 사상가’였음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다.
그리고 다석은 ‘하늘아’ 넣은 글꼴을 전혀 다른 뜻으로 썼다. 훈민정음은 양성모음일 때만 썼으나, 다석에게 ‘하늘아’는 끊이지 않는 ‘숨돌림’이다. 다석이 창제한 한글 꼴은 소리가 터지기 앞의 양자(Quantum) 중첩 상태와 에너지가 증폭되는 물리 현상을 글자로 시각화한 것이다. 무슨 말이고 하니, 다석 글꼴은 우주 열린 기운을 뜻하는 양성모음이 쓰일 때 그 상징성과 영성 에너지가 극대화(증폭)되는 특징을 보인다는 점이다. 다석에게 ‘하늘아’는 소멸한 문자가 아니라, 모든 소리가 터지기 앞 숨이 응축된 ‘하늘 점’이자 ‘첫 숨의 빛점’이다. 다석은 이 ‘하늘아’를 글꼴 중심에 두고 끊임없는 ‘숨돌림(호흡과 얼의 순환)’으로 사용했다. 이는 현대 한글이 빠진 편의주의적 ‘갇집(囚獄)’을 깨부수고, 말숨 하늘자리를 실시간으로 호흡하게 만드는 양자역학 에너지의 순환이다.
그림13) 왼쪽은 영화 ‘컨택트’에 나오는 햅타포드 글꼴이고, 오른쪽은 다석일지에 등장하는 다석 모아쓰기 한글 글꼴이다. 안그라픽스에서 모아쓰기 글꼴만 모아서 디자인으로 적용해 본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영화 ‘컨택트’(Contact, 2016, 원제: Arrival)에 등장하는 외계인 ‘헵타포드(Heptapod)’ 언어를 말하고자 한다. 이 언어는 SF 역사상 가장 정교하게 디자인된 문자 중 하나로 꼽힌다. 문자 형태는 원형의 ‘로그오그램(Logogram)’이다. 헵타포드 문자는 소리를 나타내는 표음문자가 아니라, 글자 하나가 개념을 나타내는 표의문자다. 먹물 같은 액체를 분사해 그리며, 얼핏 보면 컵을 놓았을 때 생기는 원형의 커피 얼룩처럼 생겼다. 중심이 되는 원을 바탕으로 사방에 삐져나온 잔가지, 두께, 번짐, 점 등의 세부 표현이 결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문장을 이룬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비선형성(Non-linear)’이라는 점이다. 한 마디로 시작과 끝이 없다. 인간 언어는 왼쪽에서 오른쪽, 혹은 위에서 아래로 순서대로 읽는 선형(Linear) 구조다. 반면 헵타포드의 문자는 시작점과 끝점이 없는 완전한 원형이다. 그들은 문장을 쓸 때 첫 단어와 마지막 단어를 동시에 생각하고 한 번에 그린다. 즉, 시간 순서대로 생각하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인지하는 동시성(Simultaneity)이다. 그들 사고방식이 이 언어에 그대로 녹아 있다.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이론이다. 곧 사용하는 언어가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는 실제 언어학 이론이 영화의 핵심 설정이다. 영화 속에서 언어학자인 주인공 루이스(에이미 아담스 분)는 헵타포드 언어를 완벽하게 분석하고 습득하면서, 그들처럼 시간을 뛰넘어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능력(예지 능력)을 갖추게 된다. 영화 제작진은 시각 예술가 마르틴 베르트랑과 함께 약 100개 이상의 실제 작동 가능한 외계어 사전을 만들었다.영화 속 루이스가 사용하는 분석 프로그램은 실제로 언어의 두께, 회전 각도, 잔가지 위치를 분석해 의미를 도출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헵타포드가 인류에게 준 ‘선물(Gift)’이 바로 이 시간 제약을 벗어나게 해주는 언어였다.
그림14) 햅타포드 글꼴를 풀기 위해서는 사방에 삐져나온 잔가지, 두께, 번짐, 점 등의 세부 표현”을 해석한 뒤에 결합해야 문장이 된다. 다석 모아쓰기 글꼴이나, 원형 구조에 넣은 낱말들은 햅타포드처럼 낱글 하나 하나를 풀어야 하고, 그런 뒤에 전체를 결합해야 문장이 된다. 푸는 방식은 거의 비슷하다.
‘뜻소리글꼴’의 위대한 임계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석은 시간 흐름(과거·현재·미래)에 갇힌 언어 시제를 지워버리고, 공간 안에 영원을 정지시키는 시각 타이포그래피를 완성했다. 종성을 4개까지 배열하거나, 좌우 대칭형 또는 원형으로 배치된 다석 글꼴은 영화 ‘컨텍트’의 햅타포드 문자를 연상시킨다. 이는 선형적 흐름을 거부하고 우주 진리를 ‘한눈에(동시성으로)’ 깨닫게 하는 경전의 몸이다. 그 극치가 바로 ‘천부경’ 81자의 우주 생성 원리를 단 하나의 글꼴에 모아쓰기(合字)해 낸 사례다.
하나가 셋으로 풀리고, 셋이 하나로 돌아가는 우주 소용돌이를 원형의 단일 공간에 집약시켰다. 이는 소리와 뜻, 우주 법칙을 완전하게 결합하여 뜻소리글꼴 의 용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인류 문자사 최고의 수행적 사건이라 할 것이다.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gjg6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