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도의 함박웃음이 보여준 불멸의 법조 카르텔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곽상도 전 의원이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마친 뒤 입장을 밝히며 밝게 웃고 있다. 이날 법원은 대장동 50억 클럽 관련 범죄 수익을 은닉한 혐의를 받는 곽 의원에 대한 공소를 기각했다. 2026.2.6 [공동취재] 연합뉴스
최근 한국 사회의 법정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시민들에게 단순한 실망을 넘어 물리적인 호흡 곤란 수준의 분노를 안겨줄 정도로 참혹하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근대 민주주의의 대원칙은 권력과 돈이라는 거대한 성벽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그 폐허 위에는 ‘법조 카르텔’이라는 견고한 성벽이 우뚝 솟아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곽상도 전 의원과 그 아들이 받은 ‘50억 퇴직금 무죄 판결’은 그 정점이자, 한국 사법 체계 내에 존재하는 이른바 ‘불멸의 신성가족’의 성역이 얼마나 공고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부패 스캔들로 얼룩진 과거를 뒤로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법정을 나서는 곽상도를 보며, 우리는 이 나라의 사법 정의가 파산했음을 목격하고 있다.
곽상도라는 이름은 한국 현대사에서 ‘조작’과 ‘마녀사냥’이라는 단어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특히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2020년부터 벌어진 윤미향 의원과 정의기억연대(정대협)에 대한 전방위적인 ‘마녀사냥’이다. 필자가 공저한 에서도 분석했듯이, 당시 검찰과 언론, 우파 네트워크는 30여년 동안 위안부 피해자들과 연대해온 활동가를 파렴치한 범죄자로 몰아세웠다.
당시 그들이 윤미향 의원을 공격하며 내세운 명분은 기가 막힐 정도로 비열했다. 평생을 활동가로 헌신하고 퇴직한 윤 의원이 받은 퇴직금 3천여만 원까지도, 그들은 ‘위안부 팔이’, ‘부정 수급’, ‘이중 지급’이라는 자극적인 딱지를 붙여 파렴치범으로 몰아세우는 데 이용했다. 하지만 정작 곽상도의 아들은 ‘화천대유’에서 약 6년을 근무하고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챙겼다.
30년의 헌신에서 나온 3천만 원은 범죄라고 매도하면서,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 받은 50억 원은 ‘정당한 대가’가 되는 이 기막힌 사법적 연금술을 우리가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곽상도는 윤미향 마녀사냥의 선봉에서 가장 악랄하게 칼을 휘둘렀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불공정이 낳는 분노는 더욱 참기가 어렵다.
곽상도의 악질적 행보는 우연이 아니다. 그는 공안통과 특수통을 모두 거친 검찰 권력의 화신이었다. 그의 어두운 과거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태우 정권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기획된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의 수사 검사가 바로 곽상도였다. 당시 검찰은 가혹한 고문과 조작을 통해 한 젊은이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고, 곽상도는 그 책임자의 하나였다.
2015년 대법원에서 강기훈 씨의 무죄가 확정되었지만, 곽상도는 단 한 번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하거나 처벌받거나 책임을 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을 거쳐 국회의원까지 승승장구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조작과 탄압의 앞잡이들이 처벌받기는커녕 어떻게 기득권의 핵심으로 편입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국회의원 시절의 곽상도는 ‘마녀사냥꾼’으로서의 본능과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문재인, 이재명 등 정적들과 그 가족들을 향해 끊임없이 의혹을 생산하고 공격을 주도했다. 그중에서도 더욱 잔인했던 것은 고(故) 노회찬 의원을 향한 공격이었다. 노회찬 의원이 누명을 쓰고 벼랑 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대다수 시민은 큰 슬픔에 잠겼다.
그러나 곽상도는 그 비극 앞에서조차 이중성을 드러내도 무방한 곳에서 영면하기 바란다”는 글을 올리며 고인을 조롱했다. 타인의 고통과 죽음마저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한 소재로 삼는 그의 냉혈한 태도는 훗날 자신의 아들이 받은 50억 원 앞에서 보여준 뻔뻔한 당당함과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곽상도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대장동 비리에도 관여해서 이득을 얻었다. 대장동 비리는 언론에 의해 오랫동안 ‘이재명 게이트’로 포장되었지만, 그 실체는 곽상도가 포함된 ‘50억 클럽’이 보여주듯이 ‘법조 카르텔 게이트’였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권순일, 박영수, 김수남, 최재경 등은 모두 판·검사 출신이거나 거대 언론사의 사주들이었다.
이들은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부패와 투기의 돈놀이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돕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언론은 대장동 비리가 은폐되고 프레임이 전환될 수 있도록 필터링했고, 검찰은 주범들이 법망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뒤를 봐주거나 부실 수사를 자행했으며, 사법부는 설령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온갖 억지 법리로 면죄부를 주었다.
이 거대 카르텔의 입장에서 공공개발을 주장하며 민간 업자들의 이익을 회수하려 했던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눈엣가시였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고 대장동의 진짜 주인들은 뒤로 숨기기 위해서, 사건의 성격을 조작하고 이재명을 마녀사냥의 제단에 올리는 악랄한 보복을 시도한 셈이었다.
뉴스타파를 비롯한 일부 양심적인 언론과 법률가들의 끈질긴 추적이 없었다면, 곽상도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과 사법부는 시민들의 눈을 의식해 수사하고 기소하는 흉내만 냈을 뿐, 재판 과정에서는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무죄의 근거를 만들어냈다. 결국, 이번 판결은 한국 사회의 사법 구조가 뿌리까지 썩어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판사와 검사는 퇴임 후에도 전관예우라는 이름의 카르텔로 묶여 서로를 보호한다. 그들에게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들의 성역을 지키는 방패일 뿐이다. 이러한 구조가 유지되고 있기에, 우리는 윤석열의 내란과 김건희의 비리를 둘러싼 여러 재판의 결과에 대해서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속을 썩이고 잠 못 이루고 있다.
곽상도 무죄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정의연 마포 쉼터의 고(故) 손영미 소장님이었다. 곽상도와 검찰-언론 카르텔의 집요한 윤미향 마녀사냥 과정에서 온갖 모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분의 고통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더욱 지독했던 점은, 곽상도가 손 소장님의 죽음 이후에 보여준 행태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43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에 정의연 마포구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소장 손영미 씨를 추모하는 액자와 꽃다발이 놓여져 있다. 2020.6.10. 연합뉴스
손영미 소장님의 사망 이후에 곽상도가 보여준 행태는 도저히 인간으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는커녕, ‘죽음의 배후가 있는 것 같다’라고 기막힌 의혹과 음모론을 제기하며 손 소장님의 죽음을 윤미향 마녀사냥에 다시 한번 악용하는 최악의 악랄함을 보였다. 타인의 삶을 파괴하고 그 죽음의 흔적마저 정치적 공세의 수단으로 소모하는 그의 행위는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린 것이었다.
수많은 선량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법의 비호 아래 웃고 있는 곽상도의 모습은 정의의 실종을 상징한다. 이러한 사법 카르텔의 횡포는 단순히 특정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힘없는 노동자가 초코파이 하나를 가져가도 ‘법 질서’를 외치면서 권력자의 아들이 받은 50억 원에는 눈을 감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손영미 소장님은 지금 저 하늘에서도 이 기막힌 현실을 보며 피눈물을 흘리고 계실 것이다. 이 분노를 잊지 말아야 한다. 법이 더 이상 권력자의 방패가 아닌 시민의 보루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곽상도라는 괴물을 낳고 방치한 이 뒤틀린 시대를 끝내는 일, 그것이 바로 손영미 소장님과 수많은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