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잠깐 흙이 아닐 뿐이다 [사람들] 김혜형 작가, 농부
우리는 잠깐 흙이 아닐 뿐이다.” - 프랜시스 홀
밑줄 그을 문장이 있는 책을 좋아한다. 어떤 책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밑줄 그을 한 문장을 찾기 어렵지만, 어떤 책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압축적이고 밀도 높은 문장을 음미하느라 읽는 속도가 더디다. 지식과 통찰을 주는 책을 좋아한다. 통념이 깨지고 비좁은 인식 범위가 확장될 때, 메마른 마음자리에 피가 돌고 살이 찬 듯 든든하다.
지식 전달에 반드시 빼어난 문장이 동원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탁월한 한 문장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상의 본질을 단숨에 드러내기도 한다. 글 쓰는 이의 역량이 빛나는 지점이다. 나는 이 책 『흙의 숨』에서 그런 장면들과 수시로 마주쳤다. 문장의 맛, 지식과 통찰, 둘 다를 갖춘 책이다.
『흙의 숨』, 유경수 지음, 2025, 김영사
똥에서 출발한 이야기
저자 유경수는 미네소타대학 토양학 교수이다. 천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물리학과에 들어갔다가 생태학에 눈을 뜨고 토양학자가 되었다. 과학자이자 교수로서 ‘흙의 과학’을 논문과 토양학 수업에 쓰고 나니 지층처럼 축적”된 ‘사람-흙 이야기’가 남았다. 저자는 게워내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그 이야기를 ‘자연과 인간’, ‘과거와 미래’를 씨줄 날줄 삼아 『흙의 숨』이라는 책으로 탄생시켰다. 흙과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만들어왔는가.” 이것이 책의 부제다.
책은 총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똥’으로 시작해 ‘화전’, ‘쟁기’, ‘논’이 그 뒤를 잇고, ‘물’과 ‘강’, ‘흙의 몸’과 ‘흙의 숨’을 거쳐 마지막 장 ‘땅’으로 마무리된다. 앞쪽의 4개 장 제목은 농사와 긴밀히 연결된 명사들이다. 흙을 무대로 인간과 자연의 운명이 질기게 엮인 것 중에 농사만 한 것이 없기에, 농사 이야기로 책의 포문을 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땅을 갈아 물을 채워 벼를 심고 풀과 싸우며 곡식을 길러내는 일로 생계를 잇는 소농으로서 한 문단 한 문단이 내 농사의 현장, 내 몸의 노동과 겹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내기.
흙의 비옥도는 먹고사는 일의 바탕이다. 문명 탄생기에 식물이 똥 옆에서 부쩍 잘 자라는 것을 발견한 인류는 농사에 똥오줌을 투여하기 시작했다. 똥에는 질소, 인, 칼륨 등 식물의 필수 영양소와 다량의 유기물이 들어 있다. 이 중 질소는 작물을 벌떡 일으키는 마법 같은 영양소다. 질소 함량이 높은 똥오줌에 탄소 함량이 높은 짚이나 풀을 적정 비율로 섞어 썩히면 최적의 비료인 퇴비가 된다. 퇴비는 질소를 함유한 유기물질이다. 퇴비가 투입된 흙은 작물을 기르고 흙에서 넘쳐난 질소는 호수와 강을 풍요롭게 한다.
20세기 초, 똥의 질소를 대체할 화학비료가 생산되면서 똥은 농업에서 밀려났다. 농업 생산량은 폭증했지만 화학비료의 세례를 받은 토양은 유기물 제로의 광물로 변해 빠르게 침식되었다. 유기물 속 탄소를 태워 신진대사를 하는 지하세계 생물들은 에너지원을 잃고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전 세계는 질소 중독에 빠졌다. 무기 질소는 하천으로 스며들어 부영양화와 오염의 원인이 되었고, 대기로 날아가 기후 온난화를 일으켰다. 똥은 자원에서 오염원으로 전락했다. 곡물 생산을 위해 풀을 뜯고 똥을 제공하던 가축은 다량의 곡물을 먹고 인간의 단백질원이 되었다. 전 세계 농사짓는 땅의 77퍼센트가 고기와 유제품 생산에 쓰인다. 저자는 절박하게 묻는다. 우리는 질소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을 먹이기 위해 지구를 파괴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가능한가?”
통념의 전복, 화전과 지렁이
‘화전’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아마존 열대우림이 불타는 장면을 연상한다. 미디어가 전파한 ‘약탈 화전’의 부정적 이미지 탓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지금, 나는 긴 생애 주기를 가진 ‘보존 화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림처럼 떠올린다. 인도의 나갈랜드 화전은 하나의 사례다.
건기가 시작되는 12월과 1월은 벌목의 달이다. 벌목할 숲은 울창한 원시림이 아니라 수령 20년쯤 되는 어린나무 숲이다. 흔히 상상하는 불도저나 전기톱은 없다. 숲을 밀지도, 언덕을 깎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맨발로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툭툭 쳐낸다. 불 역시 세상을 삼킬 것 같은 기세등등한 화염이 아니다. 살금살금 숨죽이며 전진하는 낮은 포복의 불”이 쌓아둔 나뭇가지들을 야금야금 재로 만든다. 사람들은 건기가 끝나기 전 재로 덮인 산비탈의 땅을 막대기로 쿡쿡 찔러 구멍을 내고 씨알 몇 톨을 떨어뜨린” 후, 긴 장마 빗속에서 자란 작물을 9~10월에 수확한다. 그렇게 한두 해 농사를 짓고 나면 나뭇재의 양분이 바닥나 수확할 거리가 없어지고, 땅은 다시 숲으로 돌아간다. 다음 화전은 수십 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다. 소멸은 순간이고 재생은 길다.
화전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농경 방식 중 하나다. 흙의 비옥도를 위해 아시아에서는 사람의 똥을, 유럽에서는 가축의 똥을 사용했고, 열대의 화전민은 나뭇재를 사용했다. 저자는 화전을 벗어나야 할 악습이 아니라 제대로 배워 발전시켜야 할 오래된 지혜”라고 말한다. 토양 침식, 인구 압박에 따른 휴경 주기 단축 등의 우려는 향후 개선과 혁신이 작용할 가변의 영역이다. 화전이 생겨난 열대의 토양 사정, 땅과 물을 다양하게 이용하는 화전민의 농업 방식을 들여다보며 나는 화전에 대해 품었던 편견과 오해에서 빠져나온다.
책을 통해 뒤집힌 또 하나의 통념은 ‘지렁이’다. 지렁이가 자생하는 곳에서 지렁이는 자연 생태계와 농업 생태계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다. 그러나 지렁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지역, 빙하 아래에 있었던 북반구의 고위도 지역에서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 인간에 의해 낚시 미끼로 유입된 ‘침입 지렁이’가 낙엽층을 없애고 생태계를 교란하며 숲을 파괴적으로 점령하고 있다. 살아 있는 쟁기”로 추앙받는 지렁이의 반전이라니! 7장 ‘지렁이’ 편에 그 놀라운 이야기가 나온다.
모르고 속단하는 것이 어디 화전과 지렁이뿐일까. 굳어진 통념, 고정된 상에 붙잡히지 않으려면 본질의 심층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은 좋은 안내자가 필요한 이유다.
수천 년에 걸쳐 이룬 ‘무논의 마법’
매해 봄마다 논에 물을 채우고 써레질로 논흙을 편평하게 한 후 모를 심는다. 제초제를 쓰지 않는 유기농 농사라 물을 깊이 댐으로써 풀을 제어한다.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고 알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시작된 농사법인지는 모른다. 책을 읽으며 나는 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다. 1만 년 전 최초의 농부가 되어 야생 벼의 종자별 이점을 관찰하고, 수천 년의 세월을 통해 밭벼와 논벼의 성장을 비교하고, 논에 물을 채움으로써 홍수와 가뭄의 위협에 대항하는 농법을 정착시킨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짓는 무논이다.
결과에 이른 과정을 이해하려면 흙과 식물의 미시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작은 식물이 지구 중력보다 센 힘(삼투압)으로 토양 입자에 붙은 물을 빼앗아 뿌리에서 잎으로 올려보낸다. 벼는 물을 많이 먹는 식물이지만 밀이나 옥수수보다 빨아올리는 힘이 약하다. 한정된 물로 어떻게 벼의 생장을 극대화할 것인가.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선배 농부들은 결국 해답을 찾는다. 논에 물 채우기와 써레질하기! 이것은 벼의 특별한 생리에 맞춤한 해답이다.
무논에서 자라는 벼.
벼는 상황에 따라 습지식물로 변모하는 특이한 생리를 가지고 있다. 즉 물에 잠기는지 여부에 따라 통기조직이 생기기도 하고 생기지 않기도 한다. 물에 푹 잠긴 토양에서 뿌리를 뻗고 자랄 수 있는 주요 곡물은 오로지 벼뿐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식물-흔히 잡초라고 부르는-이 물을 채운 논에서 질식할 때, 벼는 스노클을 입에 문다.”
벼가 스노클을 입에 문다니! 얼마나 선명한 형상화인가! 저자의 글맛이 빛나는 대목이다. 저자는 아시아의 개미 농부들이 수천 년에 걸쳐 일구어낸 엄청난 업적”에 찬사를 보내며 과학저술가 아서 클라크가 남긴 말을 인용한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되지 않는다.” - 아서 클라크
흙이 쉬는 숨, 내가 쉬는 숨
가까운 숲에 들어가 나를 중심으로 반지름 6미터의 원을 그려 그 안에 누워보자. 꼭 그만큼의 흙이 나만큼 숨을 쉬고 있다. 토양 호흡은 커다란 숨이다.”
흙이 숨을 쉰다는 것은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다. 식물의 뿌리, 곰팡이, 박테리아, 땅속 동물, 광물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유기물 등이 호흡의 주체다. 사람은 해마다 250킬로그램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내뱉고, 지구의 흙은 대략 연간 340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뿜어낸다. 토양 호흡의 규모가 이토록 큼에도 인류가 화석연료를 태우기 시작하기 전, 지난 80만 년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300ppm을 넘지 않았다. 지구 규모에서 흙이 탄소중립 언저리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흙과 대기 사이 탄소균형이 깨졌다. 작물 생산, 목축, 어로, 식가공, 유통에 이르기까지 식량 생산 전 과정이 온난화 기체의 생산 기지가 됐다. 본디 모든 생명체는 먹고사는 전 과정에서 이미 탄소중립을 이룬다. 몸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광합성을 통해 식량이 된 이산화탄소와 ‘퉁을 치는’ 것이다. 지구 생태계와 생명체는 이렇게 공진화해 왔다. 탄소중립을 깬 것은 ‘인간의 몸’이 아니라 ‘인간의 활동’이다. 존재와 활동 사이 급격히 커진 이 간극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 뒤집을 때마다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모래시계처럼, 여태와는 또 다른 ‘인간의 활동’으로 재생의 시간을 만들 과제가 앞에 놓였다. ‘답을 아는 것’과 ‘답을 사는 것’ 사이의 간극을 생각하며 깊은숨을 쉰다.
토양학, 생물학, 인류학을 통섭한 과학책이자 인생의 통찰이 담긴 에세이다. 현상의 표면만 훑고 지나는 단절된 경험”을 넘어, 바닥을 떠받치는 지층의 서사가 보인다. 저자의 지식과 사유가 독자에게 손실 없이 도달하는 데 필요한 문장의 미덕까지 갖췄다. 땅을 갈고 작물을 기르는 농부는 물론, 지속 가능한 지구 생태계와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 존재의 시초를 떠올리고 돌아갈 자리를 사색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빠져들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딛고 선 흙과 공기, 이 세계가 달라 보인다.김혜형 작가·농부 asstillwater@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