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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보다 먼저 수도였던 콜체스터의 2천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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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도시의 역사가 지금 한국에 던지는 질문 영국 동부 에식스 주(州)에 자리한 콜체스터(Colchester)를 아는 한국인은 드물다. 런던에서 북동쪽으로 약 90킬로미터. 기차로 한 시간이면 닿는 이 도시는, 사실 런던이 수도가 되기 전 영국의 수도였다. 이름도 낯선 이 곳이 영국에서 기록으로 남은 가장 오래된 도시 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 런던 중심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는 작은 충격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 전 20~10년 경, 켈트족 족장 타스키오바누스(Tasciovanus)가 주조한 동전에 카물로두논(Camulodunon) 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전쟁의 신 카물로스(Camulos)의 요새 라는 뜻이다. 로마 문헌학자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 23~79)가 서기 77년 경 저술한 에도 이 지명이 등장한다. 덕분에 콜체스터는 문헌에 기록된 영국 최초의 도시 라는 공식 호칭을 얻었다. 서기 43년 로마군이 브리타니아(오늘날의 영국)에 상륙했다. 6년 뒤인 49년, 로마는 이곳 카물로두논을 퇴역 병사들의 정착지인 콜로니아(Colonia) 로 공식 지정했다. 이것이 영국 최초의 로마 식민 도시다. 이어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를 위한 신전이 세워지고, 원형 전차경주장도 들어섰다. 런던조차 작은 강변마을에 불과했을 때, 콜체스터는 이미 브리타니아의 수도였다.   로마 시대에 건설한 콜체스터 성,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인다.(위키피디아) 도시에 불 지른 왕비, 부디카 그러나 서기 60년, 콜체스터는 불길에 휩싸였다. 이케니(Iceni)족의 왕비 부디카(Boudica, 생년 미상~60년경)가 로마 지배에 맞서 대규모 봉기를 일으킨 것이다. 남편 프라수타구스(Prasutagus) 왕이 죽자 로마는 유언을 무시하고 이케니 땅 전체를 빼앗았다. 부디카는 공개적으로 채찍질을 당했고 두 딸은 로마 병사들에게 능욕을 당했다.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가 기록한 이 치욕은, 왕비의 개인적 분노를 민족적 저항으로 바꾸어 놓았다. 부디카의 군대는 12만 명이었다. 첫 번째 목표가 바로 콜체스터였다. 로마인들의 오만함과 착취의 상징인 클라우디우스 신전을 불태우고 도시 전체를 초토화했다. 이어 런던, 세인트 올번스까지 석권했다. 로마 측 기록에 따르면 8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결국 로마 총독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가 이끄는 정예부대에 진압되어 부디카는 패배했고, 스스로 독을 마시고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콜체스터는 재건됐고, 로마의 수도 자리는 런던으로 이전됐다. 오늘날 콜체스터 시청사 정면에는 부디카의 실물 크기 조각상이 서 있다. 패배한 반란군의 지도자가 도시의 얼굴이 된 것이다. 패자가 영웅으로 기억되는 이 역설이, 콜체스터라는 도시의 품격을 말해준다.   부디카(위키피디아) 성벽 위에 쌓은 역사, 주요 명소 오늘날 콜체스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살아남은 유적 들이다. 서기 65~80년 경 쌓은 로마 성벽은 지금도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높이 6미터, 둘레 약 2.7킬로미터의 이 성벽 중 상당 구간이 현재도 남아 있어, 영국에서 가장 잘 보존된 로마 성벽으로 꼽힌다. 성벽의 서쪽 관문인 발케른 문(Balkerne Gate) 은 영국에 현존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로마 성문이다. 콜체스터 성(Colchester Castle)은 11세기 노르만 왕조가 클라우디우스 신전의 잔해 위에 세운 건물이다. 현존하는 노르만 건축물 중 유럽 최대 규모의 본체를 자랑한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며 지하의 로마신전 토대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다. 2004년에는 콜체스터 고고학 트러스트(신탁기금)가 주둔지 아래에서 영국 유일의 로마식 전차 경주장(Roman Circus) 터를 발견했다. 성 보톨프 수도원(St Botolph s Priory) 폐허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에서 처음 세워진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원 중 하나로, 12세기에 지어진 붉은 벽돌의 아치가 반쯤 허물어진 채 서 있다. 완전한 것보다 부서진 것이 더 웅변하는 경우가 있다. 이 건물이 그렇다. 아우구스티노회는 지난해 레오 14세가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 화제가 됐다. 아우구스티노회는 고대 로마의 기독교 신학자이자 철학자, 초기 기독교 교리를 정립한 교부 (敎父) 중 한 명인 성 아우구스티노(아우구스티누스)의 생활 양식을 추구하는 가톨릭 수도회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 수도회 출신으로는 처음 선출된 교황이다.   성 보톨프 수도원(위키피디아) 이 도시가 낳은 사람들 콜체스터 출신 인물 중 한국인이 알아야 할 첫 번째 이름은 윌리엄 길버트(William Gilbert, 1544~1603)다. 의사이자 자연 철학자였던 그는 1600년 를 출간하며, 지구 자체가 거대한 자석임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뿐만 아니라 호박(琥珀, amber)을 문질렀을 때 생기는 인력(引力)을 연구하면서 전기(electricus) 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었다. 전기 라는 개념의 창시자가 콜체스터 출신이다.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주치의이기도 했던 그의 묘비는 지금도 콜체스터 성삼위교회에 남아 있다. 두 번째는 마거릿 캐번디시(Margaret Cavendish, 약 1623~1673)다. 성(城) 옆 루카스 가문의 저택에서 태어난 그녀는 17세기 여성으로는 파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달고 책을 출간한 철학자이자 시인이었다. 시, 희곡, 자연철학, 소설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며, 여성도 자연철학(오늘날의 과학)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대 사람들은 그녀를 미친 마거릿(Mad Madge) 이라 불렀다. 오늘날 학자들은 그녀를 근대 초기 영국 최다 출간 여성 작가이자 초기 여성철학자로 평가한다. 미쳤다 와 위대하다 는 종종 같은 말의 두 번역이다. 세 번째는 제인 테일러(Jane Taylor, 1783~1824)다. 콜체스터의 더치 구역(Dutch Quarter)에 살았던 시인으로, 1806년 발표한 시 의 원작자다. 한국 어린이들도 부르는 이 동요의 가사가 콜체스터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를 새삼 일깨운다.   윌리엄 길버트(위키피디아) 11주 포위전, 1648년, 내전의 상처 1648년 영국 내전(청교도혁명) 당시, 왕당파 군대가 콜체스터로 퇴각하며 의회파 군대의 포위를 받았다. 11주의 포위전이 이어졌다. 도시 안의 주민들은 개, 고양이, 쥐까지 잡아먹으며 버텼다고 전해진다. 결국 그 해 8월 28일 항복한 뒤 왕당파 지휘관 찰스 루카스(Charles Lucas, 1613~1648) 경이 콜체스터 성 마당에서 총살됐다. 그는 바로 마거릿 캐번디시의 오빠다. 역사는 같은 가족 안에서도 서로 다른 자리에 사람을 세운다.    찰스 루카스(위키피디아) 마거릿 캐번디시(위키피디아) 한국에 주는 시사점,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나 2천 년 역사를 가진 이 작은 도시에서 한국이 배울 점은 무엇일까. 첫째, 패자를 기억하는 방식 이다. 콜체스터는 로마에 패한 부디카를 시청사 정면에 세웠다. 그녀는 반란자였고, 패배자였다. 하지만 그 저항의 의미는 지워지지 않았다. 한국의 역사 서술은 패자, 저항자, 소수자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제주 4·3, 광주 5·18, 노동운동의 역사가 어떤 자리에 놓여 있는지 되찾은 노동절에 돌아볼 일이다. 둘째, 오래된 것과 새 것의 공존 이다. 콜체스터의 로마 성벽 옆에는 카페가 있고, 2천 년 된 신전 터 위의 성은 박물관이다. 유적을 보호구역 에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숨쉬게 한다. 한국의 도시 재개발이 역사의 흔적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비교하면, 불편한 질문이 떠오른다. 셋째, 비주류 지식인을 어떻게 대우하는가 다. 마거릿 캐번디시는 생전에 놀림을 받았지만 지금은 재평가됐다. 윌리엄 길버트는 당대의 정설을 거부하고 실험을 택했다. 권력 바깥의 지식, 비주류의 목소리가 역사를 다시 쓰게 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조롱받는 목소리 중에, 후대가 재평가할 것들이 있지 않을까. 콜체스터는 한때 수도였고, 불 탔고, 포위됐고, 잊혔지만, 여전히 그곳에 있다. 2022년에야 비로소 공식 도시(city) 지위를 얻었다. 2천 년을 기다려 얻은 호칭치고는, 참으로 느린 관료주의다. 그러나 그 느림이 오히려 이 도시의 품위다. 서두르지 않아도,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콜체스터 이스트 힐에 남아 있는 로마 성벽(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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