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투표용지 하한 50% 회의 없이 2인 전결 처리 [뉴스]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서울 송파구 잠실2동 6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대기하던 유권자들이 마감시간 후 대기번호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2026.6.3 연합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3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최소 인쇄 기준을 유권자의 60%에서 50%로 낮추면서 공식 회의도 열지 않고 2인의 전결만으로 처리한 것으로 파악됐다.
10일 국민의힘 김승수·김민전 의원이 중앙선관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12월 10일 허철훈 사무총장 전결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종합관리지침 가운데 투표용지 인쇄 매수의 하한 기준을 기존 60%에서 50%로 줄인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달 24일에는 선거정책실장 전결로 공직선거 절차 사무편람 도 같은 내용으로 개정했는데, 이때도 공식 회의는 없었다. 허 총장은 지난 8일 면직됐고, 선거정책실장은 9일 직위해제됐다.
중앙선관위의 지침에 따라 송파구선관위는 잠실3·4동을 제외한 나머지 25개 동의 투표용지 인쇄 비율을 50%로 결정했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송파구의 투표율은 65.8%로 서울 평균(63.6%)보다 2.2%포인트 높아 서울 25개 자치구 중 서초·성동·양천구에 이어 네 번째로 높았다.
중앙선관위는 투표용지 인쇄 매수의 하한 기준은 2009년 80%에서 2016년 70%, 2021년 60%로 계속 줄여 왔다고 설명했다. 사전투표율 증가, 인쇄 시간이 촉박해 인쇄소 확보의 어려움, 수백만장 투표용지 검수 및 보관의 어려움, 잔여 투표용지 분실 등의 우려에 따른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선거일에 투표율 대비 과도한 양의 투표용지를 인쇄할 경우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투표용지를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것 뿐만 아니라 투표용지 부족 상황이 발생할 경우 업무처리 절차와 역할 분담 등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중앙선관위는 또 선거별 일련번호 기재, 추가 교부 매수 기준, 배부 절차 등에 대한 규정이 없어 신속하게 대응할 시간을 놓쳤다고 보고했다. 여기에다 6∼13명의 소수 인원으로 투표관리, 우편투표 접수, 개표 관리 등 여러 업무를 짧은 시간에 처리한 탓에 사건 발생 즉시 보고가 이뤄지지 않는 등 상황 전파도 지연됐다고 해명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실이 중앙선관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는 종합관리지침은 각 부서 의견을 취합한 뒤 내부 결재를 거쳐 시·도위원회 등에 하달했다 고 설명했다. 편람 개정과 관련해서도 각급 선관위의 의견 수렴을 거쳤다 면서도 별도 회의는 개최하지 않아 회의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 밝혔다. 개정된 편람에는 인쇄 매수는 예상 사전투표율 등 지역 실정을 감안해 투표구별로 조정할 수 있다 는 내용이 담겼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서울 송파구의 경우 2014년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전체 선거인의 본투표율이 50%를 넘었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편람상 하한선인 50%가 적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중앙선관위는 국가선거의 경우 국비를 배정받아 각 시·도선관위에 재배정하는 방식으로 예산을 집행하지만, 지방선거는 시·도 및 구·시·군선관위가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편성받아 직접 집행한다고 설명했다. 중앙선관위는 이 때문에 지방선거 투표용지 인쇄 예산의 편성·집행 내역을 즉시 파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지방 선관위가 편성받아 집행한 예산 내역을 중앙선관위가 집계조차 하지 않은 것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중앙선관위가 우선 제출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관련 예산 자료에 따르면, 투표용지 인쇄 예산은 실제 선거인 수를 기준으로 산정하지 않고 전국 17개 시·도선관위에 각 500만 원씩 모두 8500만 원이 일괄 편성됐다. 해당 예산은 재·보궐선거 실시 지역이 확정되기 전에 배정됐다. 재보궐 선거가 실시되지 않은 시·도선관위에까지 지원됐다는 얘기여서 이래도 되나 싶다.
또 중앙선관위는 예비비 배정이 지연됐다는 이유로 투표용지 인쇄비를 별도 항목으로 관리하지 않고, 총 13억 747만 원 규모의 운영비에 포함해 각 시·도선관위에 재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운영비에는 투표용지 인쇄비, 투표 소모품 구입비, 공공요금, 임차료 등 선거관리 비용이 포함됐다. 중앙선관위는 각 재·보궐선거 지역의 실제 투표용지 인쇄 예산 편성 및 집행 내역, 인쇄량은 제출하지 못했다.
지난 5일 투표함이 이송된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내부에서 발견된 송파구선관위가 이 투표소로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투표용지 상자. 이 상자 겉면에 적힌 투표용지 인쇄 매수 는 총 1900매였다. 박스 1개 중 1번 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 투표소의 선거인 수는 3856명으로 파악됐다. 박스 2개 중 1번 이면 말이 되는데 그만큼 송파구선관위가 투표용지 관리를 엉성하게 했다는 반증으로 거론되고 있다. 2026.6.5 연합뉴스
서울동부지법 민사제51단독 김지연 부장판사는 10일 오후 3시 투표용지 부족 때문에 투표시간이 연장되고 그 여파로 2박3일 점거 사태가 이어진 잠실7동 제2투표소로 쓰인 우성아파트 경로당을 찾아 현장 검증을 하려 했지만 문제의 투표함이 없어 할 수 없었다. 투표함을 비롯해 선거용품 등이 깨끗이 치워진 상태였다. 선거 부실 관리의 대표 사례로 지목된 투표용지 상자도 없었다는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용지 박스는 우리가 안 갖고 있다 며 어디에 있는지 자세한 사항은 확인해봐야 한다 고 말했다. 현장에서도 선관위 측 관계자는 해당 상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개혁신당 김정철 최고위원은 전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김 최고위원은 법원에 증거 보전 신청을 한 당사자 자격으로 현장에 동행했다.
문제의 투표용지 상자는 겉면에 투표용지 인쇄 매수 는 총 1900매라고 돼 있었다. 박스 1개 중 1번 이라고 적혀 있다. 이 투표소의 선거인 수는 3856명으로 파악됐다. 투표지가 선거인의 49.3% 분량만 준비된 것으로 투표용지 최소 50% 인쇄 지침에도 못 미쳤다.
결국 이 투표소에서는 본투표 종료 전 준비된 투표용지가 모두 소진되면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일이 발생했다.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이런 혼란상이 그대로 담겨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부장판사는 전날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김정철 최고위원의 투표용지 보관 상자 등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보전 대상은 위의 투표용지 보관 상자와 그 포장재 말고도, 지난 3일 오전 8시부터 5일 오후 9시까지 이곳을 포함해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진 송파구 10개 투표소와 투표함 보관 장소를 촬영한 CCTV 영상도 보전 대상에 포함됐다. 마찬가지로 당시 선관위 직원 간의 단체대화방, 메신저, 문자메시지 기록 역시 보전할 것을 지시했다.
다만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송파구 투표소에서 사용된 본투표지, 이후 잠실 지역 개표소인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으로 옮겨져 개표 작업이 완료된 투표함 등에 대한 신청 등은 기각됐다. 재판부는 증명하고자 하는 사실과의 관련성이 부족하거나 선거쟁송 전에 미리 증거조사를 하지 않으면 곤란할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고 설명했다.
선관위 직원들의 단체 대화방 내용에선 투표지 부족 사태가 언제부터 발생했으며, 어떤 대응 조치가 이뤄졌는지가 드러날 전망이다. 앞서 공개된 선관위 직원들과 투표소 실무진인 송파구청 직원들의 대화방에선 당일 오후 2시쯤부터 투표지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빗발쳤고 오후 4시를 넘어섰을 땐 투표가 중단됐다는 보고가 잇따랐다. 그런데도 선관위가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으면서 사상 초유의 투표 중단 및 투표 시간까지 연장됐다는 것이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의 주장이다.
송파구 공무원들과 선관위 공무원이 함께 개설한 메신저 단톡방의 지난 3일 대화 내용. 전공노 제공
다만 전날까지 닷새째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 가 벌어지는 핸드볼경기장에 보관 중인 투표지와 투표함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투표함이나 투표지가 선관위 관리 아래 보관돼 있기 때문에 별도의 증거 보전은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CCTV나 투표소 내부에서 발견된 투표용지 박스는 삭제나 탈취 등을 통해 증거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어 보전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김 최고위원은 선거 무효 소송을 내기 전 증거를 먼저 확보해달라고 지난 8일 법원에 신청했다. 그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유권자가 투표를 단념하고 투표 종료 시간이 연장되는 등 선거 절차 위반이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선거소청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장 선거의 효력을 다투는 선거소청은 투표일로부터 14일 안에 제기해야 하는데 김 최고위원은 오는 15일 소청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동혁 인천 쌍둥이 득표수 5억 9천만 분의 1
통계학자 허명회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우연의 일치
이준석 산식 공개하지 않고 결론만 외치는 건 주술
한편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선거 패배 책임론을 희석시키기 위해 전면 재선거를 거듭 주장하면서 인천의 한 투표소에서 쌍둥이 득표수가 나온 것을 5억 9천만 분의 1 확률이라고 주장한 것에 국내 대표적인 통계학자가 반박하고 나섰다.
장 대표는 전날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인천시장 선거 송도1·2동 관내 사전투표 결과를 언급하며 국민의힘 유정복 후보와 민주당 박찬대 후보의 득표수가 완벽하게 일치했다 며 이런 결과가 나올 확률은 5억 9천만분의 1 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사례를 비롯해 일부 지역 개표 결과를 거론하며 지방선거 전면 재선거와 사전투표 폐지를 외쳤다.
이런 주장에 대해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교수의 부친이며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통계학자인 허명회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명예교수가 나섰다. 허 교수는 해당 투표소의 사전투표 결과를 단순화한 모형으로 10억 회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결과 두 지역의 결과가 완전히 일치할 확률은 약 1% 라며 인천 전체 137개 행정동 조합을 고려하면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례가 한 곳 정도 발견되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준 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이어 통계적 관점에서 선거 조작을 의심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라고 쐐기를 박았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10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장 대표가 산식부터 공개해야 한다 며 검증되지 않은 숫자를 앞세운 의혹 제기를 비판했다. 이 대표는 확률을 무기로 빼들었으면 그 산식부터 공개해야 한다 며 가정도 분포도 내놓지 않고 결론만 외치는 것은 계산이 아니라 주술 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통계학 권위자가 내놓은 답은 놀랄 일이 아니다 였다 며 장 대표가 언급한 수치가 유튜브에서 가져온 것이라면 한 정당의 수준이 유튜브 알고리즘과 같아졌다는 고백 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치인이 숫자를 다룰 때는 검증의 의무가 따른다 며 그 의무를 건너뛰고 자극적인 숫자부터 내지르는 것은 과학적 사고를 포기한 것이고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내려놓은 것 이라고 지적했다.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