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교부들의 걷기 수행법과 영성의 지평 [사람들] 2019.11 이스라엘 광야 사진=박철 시민기자
1. 길 위에서 자신을 만나다
초창기 그리스도교의 은수자들인 사막 교부들의 영성에서 걷기는 이동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존재를 다시 세우는 수행이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특정한 목적지를 향해 효율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목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며 자신 안의 깊이를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사막은 길이 또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공간이다. 방향은 있으나 확신은 없고, 표지는 있으나 그것이 늘 옳다고 보장되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걷는다는 것은 외부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감각과 깨어 있는 의식을 따라가는 훈련이었다. 그들에게 걷기는 곧 자기 존재를 탐색하는 방식이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에 기대어 살아왔는지를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그들이 도시를 떠난 이유는 사회를 부정하거나 인간 관계를 끊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계, 그리고 인간과 신 사이의 관계가 왜곡된 상태를 직면하고 그것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결단이었다.
도시의 삶은 끊임없이 비교와 경쟁, 평가와 인정의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묻기보다, 어떻게 보이는지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중심을 잃기 쉽다. 사막으로의 이동은 외부의 소음을 줄이고, 자신을 규정하던 수많은 기준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는 일이었다. 걷기는 이러한 선택을 몸으로 살아내는 방식이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전의 익숙한 기준들이 조금씩 흔들리고, 그 빈자리에서 새로운 인식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걷기의 핵심은 속도를 늦추는 데 있다. 빠르게 이동할 때 인간은 주변을 스쳐 지나가며,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걸음을 늦추면 감각이 열리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난다. 모래의 질감, 바람의 방향, 햇빛의 변화, 그리고 자신의 호흡이 하나의 리듬을 이루기 시작한다.
이 리듬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음을 깊이 느낀다. 사막 교부들에게 이 느림은 비효율이 아니라 회복이었다.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고, 흩어진 의식을 모으는 과정이었다. 걷는 동안 떠오르는 생각들은 예측할 수 없다. 과거의 기억이 갑작스럽게 떠오르기도 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마음을 흔들기도 한다. 때로는 사소한 일에 대한 후회가 커지기도 하고, 타인에 대한 감정이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사막 교부들은 이러한 생각들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흐름을 따라가되 거기에 붙잡히지 않는 태도를 배웠다. 어떤 생각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고, 어떤 생각은 계속해서 돌아온다. 반복되는 생각 속에는 인간이 붙들고 있는 욕망과 두려움이 숨어 있다. 걷기는 이러한 내면의 구조를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에 얽매여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은 마음이 얼마나 분주한지를 보여준다. 사막 교부들은 이 분주함을 억지로 멈추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 흐름을 지켜보며, 그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갈망하는지를 알아차렸다. 알아차림은 변화를 위한 출발점이다.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걷기는 이러한 자유를 향한 길이었다. 혼자 걷는 시간은 인간을 고독 속으로 이끈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사라진 자리에서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이때 드러나는 자신은 기대했던 모습과 다를 수도 있다. 불안정하고, 흔들리며, 때로는 모순된 존재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발견은 좌절이 아니라 진실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사막 교부들은 고독을 통해 자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맺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지 않게 된다. 이 변화는 이후의 모든 관계를 깊고 진실하게 만드는 기반이 된다.
2019.11 이스라엘 광야 사진=박철 시민기자
걷기는 몸의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수행이다. 발이 땅을 디딜 때의 압력, 걸음의 균형, 숨의 깊이와 속도는 모두 의식의 일부가 된다. 몸은 더 이상 무시되거나 억눌리는 대상이 아니라, 존재를 인식하는 통로로 작용한다. 사막 교부들은 몸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었고, 그 연결 속에서 자신을 이해했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작동할 때, 인간은 보다 온전한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사막에서의 삶은 소유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된다. 많은 것을 지니고 있을수록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불안이 커진다. 반대로 필요한 것만 가지고 걷는 삶은 인간을 가볍게 만든다. 이 가벼움은 단순히 물건의 수가 줄어드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집착이 줄어드는 데서 비롯된다. 사막 교부들은 자신이 붙들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그 과정에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를 발견했다. 이 자유는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걷기는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막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존재한다. 바람은 방향을 바꾸고, 태양은 강하게 내리쬐며, 밤은 빠르게 찾아온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인간은 자연을 통제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동시에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체험한다. 사막 교부들에게 자연은 대상이 아니라 관계였다. 걷는 동안 이루어지는 이 관계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는 계기를 제공한다. 시간에 대한 감각 역시 걷기를 통해 달라진다. 도시의 시간은 효율과 생산성에 의해 측정되지만, 사막의 시간은 경험의 깊이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한 시간이더라도,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자신과 진실하게 마주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걷기는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살아내는 행위였다. 시간은 더 이상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를 형성하는 장이 된다.
사막 교부들의 걷기 수행은 반복 속에서 이루어진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비슷한 풍경을 마주하며, 유사한 감정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 반복은 변화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인간은 점차 표면적인 반응을 넘어서, 보다 깊은 차원의 인식을 얻게 된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던 감정들이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의 삶 전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결과를 중심으로 삶을 이해하려 하지만, 사막 교부들은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다. 걷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경험은 의미를 지니며, 그 의미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삶은 어떤 목표를 이루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을 어떻게 살아내는가에 의해 형성된다. 걷기는 바로 이 사실을 몸으로 깨닫게 하는 수행이었다. 결국 사막 교부들의 걷기 수행은 인간을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려 놓는 길이었다. 외부의 소음과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걷기는 가장 평범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존재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세우는 힘이 담겨 있다. 이 길 위에서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게 되고, 자신을 꾸미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하는 용기를 배우게 된다.
2. 침묵과 내면의 정화
사막 교부들의 걷기 수행에서 중요한 요소는 침묵이었다. 침묵은 말을 하지 않는 상태를 넘어, 인간의 내면을 둘러싼 소음이 가라앉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들은 침묵을 통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언어와 판단, 기억과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걷기는 이러한 침묵으로 들어가는 통로였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불필요한 말은 줄어들고, 의식은 점차 안쪽으로 향한다. 이때 침묵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더 깊은 차원의 충만으로 이어지는 길이 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말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동시에 자신을 방어한다. 그러나 많은 말은 오히려 자신을 가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막 교부들은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말을 절제하며, 꼭 필요한 경우에만 입을 열었다. 말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감추어졌던 내면의 상태였다. 걷는 동안 말이 사라지면 생각이 선명해지고, 그 생각 뒤에 숨어 있던 감정이 드러난다. 침묵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
2019.11 이스라엘 광야 사진=박철 시민기자
걷는 가운데 경험하는 침묵은 점차 깊어지며, 인간을 자기 자신과 직접 마주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외부의 소리가 줄어드는 정도에 머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면의 소리도 잦아든다. 이때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상태에 이른다. 사막 교부들은 이 상태를 매우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 지점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무엇에 흔들리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 속에서 드러나는 내면은 결코 평온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억눌려 있던 분노, 해결되지 않은 상처,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하나씩 떠오른다. 걷기는 이러한 감정들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도록 만든다. 사막 교부들은 이러한 과정을 정화의 길로 이해했다. 정화는 무엇인가를 억지로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드러난 것을 직면하고 그 의미를 깨닫는 과정이다. 걷기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정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판단을 내려놓는 태도다.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옳고 그름으로 나누기 시작하면, 다시 새로운 갈등이 생겨난다. 사막 교부들은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를 강조했다. 이 태도는 무관심이 아니라 깊은 주의와 깨어 있음에서 비롯된다. 걷는 동안 인간은 자신을 평가하는 대신 관찰하게 되고, 이 관찰은 점차 이해로 이어진다. 이해는 억압보다 훨씬 강한 변화의 힘을 지닌다. 걷기는 호흡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발걸음과 호흡이 하나의 리듬을 이루기 시작하면, 의식은 점차 안정된다. 사막 교부들은 이 리듬 속에서 기도를 지속했다. 그들의 기도는 길고 복잡한 문장이 아니라, 짧은 호흡과 함께 이어지는 간결한 표현이었다. 걸음과 호흡, 그리고 기도가 하나로 이어질 때 인간은 분열된 상태에서 벗어나 통합된 상태로 나아간다. 이 통합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집중에서 비롯된다.
사막에서의 침묵은 자연과의 깊은 교감을 가능하게 한다. 도시에서는 수많은 소리에 둘러싸여 자연의 소리를 인식하기 어렵지만, 사막에서는 바람의 움직임, 모래의 흐름, 햇빛의 변화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걷는 동안 인간은 이러한 변화를 감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이 자연과 분리된 존재가 아님을 체험한다. 이 경험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넘어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침묵은 또한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많은 말 속에서는 관계의 본질이 흐려지기 쉽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는 말이 아닌 존재 자체가 드러난다. 사막 교부들은 서로를 만날 때에도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짧은 인사와 함께 깊은 존중을 표현했다. 걷기를 통해 길러진 침묵은 관계를 더욱 진실하게 만드는 토대가 된다. 내면의 정화는 한 번의 경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반복되는 걷기 속에서 조금씩 이루어진다. 오늘 드러난 감정이 내일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사막 교부들은 이러한 반복을 실패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내면이 그만큼 깊다는 증거로 이해했다. 걷기는 이러한 깊이를 천천히 탐색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점차 중심을 찾게 된다. 외부의 상황에 따라 쉽게 흔들리던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힘이 자라난다. 이는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걷기를 통해 길러진 이 힘은 일상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사막을 떠난 이후에도 그들은 이 중심을 유지하며 살아갔다.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변화는 경청의 능력이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본 사람은 타인의 이야기도 깊이 들을 수 있게 된다. 사막 교부들은 상대의 말을 끊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끝까지 들었다. 이러한 경청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태도였다. 걷기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본 경험이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으로 확장된 것이다.
사막 교부들의 걷기 수행은 결국 인간을 투명한 상태로 이끈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 과장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상태다. 이 투명함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외부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걷기와 침묵을 통해 형성된 이 상태는 인간을 보다 자유롭게 만든다. 결국 침묵과 정화의 길은 인간을 새로운 관계로 이끈다.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신과의 관계가 이전과는 다른 깊이로 연결된다. 걷기는 이 모든 관계를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었다. 사막 교부들에게 걷기는 고행이 아니라 회복의 길이었고,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충만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2019.11 이스라엘 광야에서 필자 사진=박철 시민기자
3. 자유와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
사막 교부들의 걷기 수행은 결국 자유를 향한 여정이었다. 이 자유는 외부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차원을 넘어, 내면을 붙들고 있던 보이지 않는 결박으로부터 풀려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욕망과 두려움, 기억과 기대 속에 얽매여 살아간다. 사막 교부들은 걷기를 통해 이러한 얽힘을 하나씩 풀어가며, 보다 깊은 차원의 자유를 경험하고자 했다. 이 여정에서 중요한 전환은 집착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된다.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것, 이루어 놓은 것,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받은 평가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끊임없이 변하며, 인간을 불안정한 상태에 머물게 만든다. 사막 교부들은 이러한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붙들고 있던 것들을 의도적으로 내려놓았다. 걷기는 이 내려놓음을 몸으로 실천하는 방식이었다. 필요한 것만 지니고 길을 나설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에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자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상태다. 사막 교부들은 이 점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물질뿐만 아니라 생각과 감정,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까지도 내려놓으려 했다. 걷는 동안 떠오르는 생각들에 집착하지 않고, 감정이 일어나도 그것에 붙들리지 않으며, 자신을 특정한 모습으로 규정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나는 훈련을 지속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간은 점차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발견하게 된다. 자유는 고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는 관계를 더욱 깊고 진실하게 만든다. 사막 교부들은 홀로 걷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본 후, 다시 공동체로 돌아와 타인과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했다. 이전에는 필요와 기대에 의해 형성되었던 관계가, 이제는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걷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본 사람은 타인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사랑으로 이어진다. 사막 교부들에게 사랑은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존재 전체로 타인을 향하는 태도였다. 걷기를 통해 자신 안의 두려움과 욕망을 직면한 사람은, 타인을 통해 그것을 채우려 하지 않는다. 대신 타인을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존중하며, 그 삶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사랑은 소유나 통제가 아니라, 자유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이 사랑은 상대를 얽매지 않으며, 동시에 자신도 얽매이지 않는다. 걷기 수행은 이러한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 기반을 형성한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반복해서 마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점차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자기 이해는 타인 이해로 이어진다. 자신 안의 연약함을 인식한 사람은 타인의 연약함에도 더 큰 관용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관용은 관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사막 교부들은 자유와 사랑을 분리하지 않았다. 자유가 없는 사랑은 집착으로 변하고, 사랑이 없는 자유는 고립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걷기를 통해 형성된 자유는 타인을 향한 열린 태도로 확장되었고, 그 태도 속에서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이 두 요소는 서로를 보완하며, 인간을 보다 성숙한 존재로 이끌었다. 걷기의 과정에서 형성된 또 하나의 중요한 덕목은 책임이다. 자유를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사막 교부들은 외부의 기준에 따라 움직이기보다,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된 결단에 따라 살아갔다. 이때 책임은 부담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지닌다. 걷기를 통해 형성된 내적 중심은 이러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일상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된다. 사막에서의 경험은 특정한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이후의 삶 전체를 변화시킨다. 걷기를 통해 형성된 의식은 일상 속에서도 유지되며, 매 순간을 보다 깨어 있는 상태로 살아가게 만든다. 이는 특별한 상황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식사하는 시간, 타인과 대화하는 순간, 혼자 있는 시간 모두가 수행의 연장선이 된다. 사막 교부들의 걷기 수행은 결국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길이었다. 그것은 특정한 종교적 의식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존재의 근본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었다. 걷기를 통해 인간은 자신이 무엇에 기대어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고, 그 기반을 새롭게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자유와 사랑은 이후의 삶을 이끄는 중심이 된다.
이 길은 쉽지 않다. 자신을 마주하는 일은 때로 고통스럽고, 내려놓는 과정은 익숙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결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막 교부들은 이 길이야말로 인간을 진정으로 살게 하는 길이라고 확신했다. 걷기는 그 길을 실제로 살아내는 방식이었다. 발걸음을 하나씩 옮기며, 인간은 점차 자신에게로 가까워지고, 동시에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된다. 결국 사막 교부들의 걷기 수행은 인간을 변화시키는 통합의 길이었다. 몸과 마음, 개인과 공동체, 자유와 사랑이 하나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 길 위에서 인간은 더 이상 분열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인을 존중하며,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걷기는 이 모든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실천이었다.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