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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드럼 합주보다 조세이 원혼 에 눈 돌렸으면...

드럼 합주보다 조세이 원혼 에 눈 돌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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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참극이 벌어지기 전의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 시 인근의 조세이 탄광 갱도. 두 지도자의 신나는 드럼 합주 가 흥미로운 일이긴 하지만, 아픈 역사를 품은 조세이(長生) 탄광 수몰 영령들의 신원을 밝히는 일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작게 다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아픈 역사를 들춰내는 일을 저어하는 언론의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본 야마구치 현 우베 시의 바닷가에서 지난해 5월 27일 조세이 탄광의 배기구로부터 물 속으로 32m 들어간 지점에서 통로가 발견됐다. 통로는 갱도 방향으로 뻗어 있었는데 여전히 갱도와 연결된 것으로 보였다. 사흘 뒤 배기구를 조사하던 잠수사들이 20cm쯤 되는 뼈 같은 것을 발견했다. 경찰은 사람의 뼈가 아니라는 감정 통보를 받았다. 석 달이 지난 8월 25일, 희생자 인골로 추정되는 뼈가 발견됐다. 다음날에는 두개골이 잠수사들 눈에 띄었다. 감정 결과 인골로 확인됐다. 지난 13일 한일정상회담에서 조세이 탄광 수몰자들의 유해 발굴과 DNA 감정 등의 논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보도에 따르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먼저 선뜻 제안해 두 나라 정상이 아주 쉽게 뜻을 모았다고 한다. 기왕에 앞에 언급한 잠수사들이 한국인들이었다. 그만큼 두 나라가 힘을 합쳐 벌인 조사였으니 계속하며 협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일에 합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겉으로는 일본을 지지하는 듯 보였지만 실질적으로 엉망으로 만들어 놓아 냉랭했던 두 나라 관계를 따스하게 만들려는 마중물인 셈이다. 일본 군부가 태평양 전쟁에 필요한 자원을 무지막지하게 그러모으던 1942년 2월 3일 오전 6시쯤 참극이 시작됐다. 갱도 입구에서 바다 밑으로 1.1km 들어간 지점에서 천장이 무너져 조선인 136명을 포함해 모두 183명이 숨졌다. 탄광 회사가 2차 사고를 막겠다며 갱도 입구를 막은 바람에 입구까지 살아 나온 이들조차 수장되고 말았다. 전쟁 동원과 징발에 눈이 먼 일본 제국주의는 바다 바닥으로부터 47m는 들어가야 채굴할 수 있다는 법률을 무시하고 갱도의 천장이 해저면으로부터 불과 37m 떨어진 지점에서 석탄 캐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용인했다. 사고 직후 마이니치 신문의 지역판에는 배수작업 등 응급조치를 취하여 갱내 작업자 대부분 구조 라고 보도해 사고를 은폐, 축소할 지경이었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도코나미 소재 ‘조세이탄광 추도 광장’에 세워진 추도비에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비극은 1982년 4월 17일, 우베 시 관계자들이 조세이 탄광 순난비 를 세우면서 세상에 뒤늦게 알려졌다. 순난 이란 표현에는 일본 천황과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는 뜻이 담겨 있어 조선인 희생자들을 모독하는 것이었다.  1991년 1월,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의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이 만들어졌다. 이 무렵 조선인 희생자 명부를 찾아내 거의 반 세기가 흘러 한국인 유족들에게 사망 소식을 전달하게 됐다. 명부에는 창씨개명된 희생자의 이름, 연령, 유족의 이름, 관계, 주소가 모두 적혀있었다. 물론 진짜 이름을 찾느라 힘든 사례도 있었다. 희생자 가족은 17통의 회신을 보냈다. 이런 민간 협력을 토대로 한국에서도 1992년 시단체 조세이 탄광 희생자 대한민국 유족회 가 만들어졌다. 2007년 1월에는 대한민국 정부 국무조정실 산하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 가 일본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진상조사 를 편찬했다. 2013년 2월에는 시민단체 새기는 모임 이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추모비 를 세웠다. 이렇게  끈기있게 이어간 노력 덕에 2024년 9월 25일 오후 4시, 매몰됐던 조세이 탄광의 갱도 입구가 발견됐다. 그리고 지난해 4월 1일 두 나라 잠수사가 함께 유골 수습을 위한 조사 작업을 벌였는데 80년 가까이 물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같은 달 22일 시민단체 새기는 모임 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두 나라 시민단체들이 35년 가까이 뜻을 모았고, 두 나라 정부가 이를 뒷받침해 이 만큼이나마 조세이 탄광 수몰자 유해 찾기가 진전된 것이다.  이왕 진척된 성과가 있어 두 나라 정부가 조금만 더 힘을 보태면 80년 넘게 바닷속에 잠겨 있을 원혼들을 달랠 수 있는 것이다. 언론도 두 지도자의 현명한 선택을 제대로 돌아보고 두 나라 협력의 진척 상태를 제대로 보도하길 바란다.  한편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14일 논평을 통해 오랜 세월 방치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유해 문제를 국가 차원의 협의와 책임 영역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 라고 평가하면서도 일제의 과거사 문제들을 나중으로 미뤘다고 비판했다. 정의연은 미래 협력과 실용 외교라는 이름 아래 부차적인 사안으로 밀려났으며 가해 국가의 책임을 묻는 핵심적 질문은 회피됐다 고 지적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도 논평을 내고 조세이 탄광 유해 봉환과 신원 확인은 시작일 뿐 이라며 한국 정부는 이번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일본 정부에 식민 지배의 불법성, 전쟁범죄 인정과 법적 배상, 역사 왜곡 중단이라는 본질적인 요구를 더욱 강력하게 제기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도 논평에서 한일 양국 정부는 모든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해 조사와 봉환을 위해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 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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