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 검사, 광주의 딸 인가 조선일보의 딸 인가 [사람들] 사실상 강등 조치된 인사에 대한 취소 소송 1심에서 승소한 정유미 검사를 조선일보가 인터뷰한 기사를 22일 전면에 실으면서 제목으로 고 달았다. 인터뷰 전문기자가 정 검사가 일하는 대전의 고검에까지 내려가 만나 나눈 대화를 상세히 전하는 이 기사는 대장동 항소 포기 비판해 검사장에서 평검사로 강등된 정 검사의 주장을 그대로 전하면서 ‘응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제목에 ‘광주의 딸’이라고 붙인 것이 이채롭다. 다른 지역 출신이라면 이처럼 ‘OO의 딸’이라고 붙였을지 의문이다. 사표를 던지는 대신 법무장관을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편법과 반칙을 뉴노멀로 만드는 대국민 가스라이팅에 침묵할 수 없었다”는 이가 광주 출신답게 의롭고 반칙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찬사의 의미를 담은 것일 듯하다.
조선일보의 22일자 정유미 검사 인터뷰 기사.
그러나 다른 신문도 아닌 조선일보가 ‘광주’를 부각하는 것이어서 이 기사를 접하는 이들은 적잖게 당혹스러울 듯하다. 다른 신문이라면 몰라도 조선일보가 광주라는 말에 이토록 찬사와 긍정적 의미를 담아내는 것은 매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것이다. ‘광주’를 탄압하고 살상하는 데 우호적이었던 언론을 꼽으라고 한다면 조선일보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신문이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좀처럼 쓰지 않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광주에 대한 편애 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이 조선일보의 회심 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광주에 대한 우호적 시선을 일단 받아들여보자. 그렇다면, 광주의 딸이라는 말을 그렇게 긍정적인 칭송의 의미로 쓴 것이라면, 더욱 따져야 할 것이 있다. 정 검사의 주장이 과연 ‘광주다운’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검증했어야 마땅하다. 고향이 광주라고 해서 다 옳은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기자는 정 검사에게 광주 출신인데도 진보 정권과 더 싸우는 이유를 물었다. 이 질문이 이 만남의 큰 이유를 드러낸다. 조선일보에 광주 출신의 정 검사가 왜 적잖게 유용한지를 보여준다. 정 검사는 애초 보수 정권엔 별 기대가 없었다”면서 진보 정권은 ‘내가 생각한 진보가 아니어서 비판’하는 것이며 ‘진보의 이름으로 장난을 치고 있는 집단’으로 규정했다. 진보를 상징하는 지역 출신이 진보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 이것이 조선일보와 정 검사의 만남의 큰 배경일 듯하다.
광주의 딸 이라는 명명은 이렇듯 매우 효용이 커 보인다. 정치 칼럼니스트인 최인식 씨가 정유미 검사장은 이번 소송을 통해 개인의 자리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선을 지키고자 한 것이며, 나는 그에게 존경을 표한다”면서 올린 글에서도 ‘광주’ 출신임을 굳이 밝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광주라는 기호가 정 검사의 주장에 도덕적 무게를 더해주는 장치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귀한 보물같은 존재이기에 조선일보의 ‘정유미 검사 사랑’은 유별나다. 지난해 12월 정 검사장이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서 대전고검 검사로 강등 발령난 것에 대해 인사 취소 소송을 낸 것을 ‘단독’ 보도했던 것도 이 신문이었다. 자신의 강등 인사나 징계가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과 박해를 받았다는 논리를 펴는 정 검사의 주장도 그대로 전해준다.
정 검사장은 자신과 견해가 같지 않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박해하는 이런 처분이 반복된다면 결국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물고 침묵하게 되고 종국에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 검사장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단지 ‘견해’가 다르기 때문인 것인가. 2024년 4월 정 검사가 지검장으로 있던 창원지검이 명태균 공천개입 사건에 대해 인지했으면서도 이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던 그해 10월까지 사실상 수사를 중단했던 것, 정 검사가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사건을 소속 검사도 없이 수사관들만 있는 수사과 형사4부에 배당한 뒤 10월에서야 검사가 있는 형사부로 옮긴 사실이 뒤늦게 국회에서 밝혀진 것 등에 대해 추궁하는 질문은 이 인터뷰 기사에선 없었다.
법무부 인사에서 고검 검사급 보직으로 사실상 강등된 정유미 검사장(대전고검 검사)이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인사명령처분취소 1심 판결선고기일에 출석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 이날 서울행정법원은 정 검사장이 법무무 장관을 상대로 낸 인사명령 처분 취소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2026.6.11. 연합뉴스
수사가 부실하게 이뤄져 서울중앙지검으로 이관되고 다시 특검으로 넘어간 것. 비용과 인력의 적잖은 낭비를 초래한 사실에 대해 인터뷰 기사는 묻고는 있지만 그 질문은 추궁하기보다는 반대로 정 검사의 해명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쓰였다.
부실 수사 주장을 반박하는 정 검사 자신의 말이 오히려 스스로 ‘진실’의 단서를 드러내는 대목도 있다. 처벌을 감수하고 윤석열-김건희의 공천개입 의혹을 밝힌 공익제보자인 강혜경 씨에 대해 제보 대상과 아무 관련 없는 별건 혐의를 영장 없이 탐색해서 사기죄로 기소하는 등 강 씨에 대한 창원지검의 태도가 갑자기 돌변하고, 범죄자 취급한 경위가 매우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알겠다”고 김규현 변호사가 밝힌 것처럼 인터뷰가 담지 못한-혹은 담지 않은- 공백이 외부에서 채워지고 있는 셈이다.
이번 법원 판결은 주로 사전 통지와 소명 기회를 주지 않은 절차상 하자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정 검사가 자신의 모든 행위에 대한 면죄부로 삼아선 안 되는 판결이지만 조선일보에 그런 지적은 보이지 않는다. 정 검사장이 선고 직후 ”무너진 원칙 회복 을 말한 것에 대해 명태균 공천 개입 의혹 권력형 비리 앞에서는 침묵하고, 자신의 직급이 걸린 문제에만 절차를 따지는 것이 과연 원칙인가, 라고 많은 독자들은 되묻게 되지만 그 같은 상식적인 질문이 인터뷰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조선일보 기자와 정 검사는 서로 다른 견해를 말할 권리 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논리를 완성한다. 기자는 민주당이 검찰을 악마화하고 있다 고 단정해 검찰개혁의 본질을 흐린다. 심지어 계엄이 탄핵 사유라면 공소 취소도 탄핵 사유라는 논리에 서로 합의 하며, 양자를 동급으로 비약시켜버린다. 정 검사는 ‘정치 검찰’에 대해서도 독특한 정의를 내리는데, ”정치인을 수사하면 정치 검찰이냐 는 도발적인 주장까지 편다.
정 검사의 말은 그대로 조선일보 자신의 말이기도 하다.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하고 박해하면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하게 될 것 이라는 정 검사의 의분에 찬 말은 지금의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이 오히려 내란 사태 때보다 더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한 상황이라고 보는 듯한 조선일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런 말을 광주의 딸 이 대신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정 검사가 조선일보가 얘기하는 대로 광주의 딸 이라는 명예로운 수식을 받을 만한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다만 조선일보의 딸 이라고는 불러도 될 듯하다. 광주라는 기호는 정 검사에게 도덕적 권위를 덧씌우는 데 쓰이고, 조선일보는 그 권위를 빌려 자신들의 논리를 정당화한다. 정 검사가 광주다운 모습을 보이는지는 의문이지만 조선일보는 조선일보다운 행태라고 할 법하다. 이렇게 ‘광주의 딸’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일보는 ‘광주’라는 이름을 다시금 훼손하고 있다.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