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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2500년 전 왕좌를 걷어찬 싯다르타가 얻은 깨달음

2500년 전 왕좌를 걷어찬 싯다르타가 얻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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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권력에 찌든 오늘의 한국에게 던지는 오래된 질문 기원 전 563년, 지금의 네팔 남부 룸비니 동산에서 아이 하나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샤카족(釋迦族)의 왕 슈도다나(기원 전 600년 경~기원 전 500년 경), 어머니는 마야 왕비(기원 전 600년 경~기원 전 563년, 출산 직후 사망). 아이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 훗날 세상 사람들이 부처님 이라 부를 그 사람이다. 점쟁이들은 이 아이가 세상을 정복할 위대한 왕이 되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는 수행자가 될 것 이라 예언했다. 아버지 슈도다나 왕은 당연히 전자를 택하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아들에게 화려한 궁궐 세 채, 하인 수천 명, 온갖 오락과 향락을 제공하며 세상의 괴로움을 철저히 차단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금수저 환경 맞춤설계 쯤 되겠다. 그런데 이 계획은 보기 좋게 실패한다.   좌불상, 서기 475년 경, 사암 높이 1.6m, 인도 사르나트 박물관(위키피디아) 왕자, 담장 밖으로 나가다 싯다르타는 스물아홉 살이 되던 기원 전 534년 무렵, 처음으로 궁궐 바깥나들이를 나섰다. 거기서 그는 세 가지 장면을 목격한다. 늙어 뼈만 남은 노인, 병 때문에 온몸이 뒤틀린 환자, 그리고 싸늘하게 식은 시신. 마지막으로 초연한 얼굴로 걷는 수행자 한 명. 이 네 장면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솔직히 말해보자. 아버지가 평생 숨기려 했던 것들인 늙음, 병, 죽음, 이것들이 결국 청년의 발목을 잡았다. 권력으로도, 돈으로도, 높은 담장으로도 인간의 근본적 괴로움은 가릴 수 없다는 것. 이 단순한 진실이 싯다르타를 뒤흔든 것이다. 그는 같은 해의 어느 밤, 잠든 아내 야쇼다라(기원 전 557년 경~기원 전 477년 경)와 갓 태어난 아들 라훌라(기원 전 534년 경~기원 전 463년 경)를 뒤로 하고 홀로 궁을 빠져나갔다. 요즘 같으면 황색 언론이 왕위 후계자, 처자식 버리고 가출! 이라며 떠들어댈 일이다.   부처, 아프가니스탄 하다의 타파 쇼토르 수도원, 서기 2세기.(위키피디아) 고행도 답이 아니었다 궁을 떠난 싯다르타는 당시 내로라하는 수행자들을 두루 찾아다녔다. 알라라 칼라마(기원 전 580년경 의 명망 높은 스승들에게 배웠지만 만족을 얻지 못했다. 그는 5년가량 혹독한 고행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루에 쌀 한 톨, 깨 한 알. 뼈가 훤히 드러날 만큼 몸을 혹사했다. 결과는? 쓰러졌다. 이 대목에서 싯다르타는 대단히 중요한 깨달음을 하나 얻는다. 지나친 향락도 안 되고, 지나친 고행도 안 된다. 이것이 이른바 중도(中道)의 출발점이다. 극단을 버리고 균형을 찾으라는 이 가르침은 사실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매 순간 잊고 사는 진실이다. 기원 전 528년, 그는 지금의 인도 북부 부다가야 지역, 한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명상에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새벽, 깨달음을 얻었다. 이 순간부터 그는 부처(佛陀, 깨달은 자) 가 된다.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사람 모습으로 꾸며진 초기의 부처상 중 하나로, 브라흐마(왼쪽)와 샤크라(오른쪽)의 호위를 받고 있다. 비마란 상자, 서기 1세기 중반, 영국박물관 소장(위키피디아) 가르치고, 걷고, 또 가르치다 깨달음을 얻은 후 부처는 처음에 잠시 망설였다고 전해진다. 이 복잡한 진리를 과연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결국 그는 가르치기로 마음먹는다. 왜냐? 세상 어딘가에는 눈에 먼지가 조금만 낀 사람들이 반드시 있을 테니까. 그는 이후 45년 동안, 기원 전 483년 여든 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인도 갠지스강 유역 일대를 맨발로 걸어 다니며 가르침을 폈다. 왕도, 거지도, 여성도, 최하층 천민도 그의 가르침 앞에는 똑같이 앉을 수 있었다. 당시 인도 사회를 꽁꽁 묶고 있던 신분제도, 즉 브라만 계급(기원 전 1500년 경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신분질서)의 절대권위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당대의 기득권 타파 운동가 였다.   룸비니에 있는 부처의 탄생지를 기념하는 마야데비 사원(위키피디아) 그의 가르침이 역사를 어떻게 바꿨나 부처가 남긴 가르침의 핵심은 크게 네 가지 진리, 즉 사성제(四聖諦)와 여덟 가지 바른 길, 즉 팔정도(八正道)로 요약된다. 쉽게 풀면 이렇다. 삶은 괴로움이고, 그 원인은 욕망이며, 욕망을 내려놓으면 괴로움이 사라지고, 그 방법이 있다. 이 가르침은 그의 사후 인도에 머물지 않았다.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 왕(기원 전 304년~기원 전 232년)이 불교에 귀의하면서 이 가르침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국, 한국, 일본으로 퍼져나갔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서기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년 때의 일이다. 오늘날 불교도는 전 세계에 약 5억 명. 기독교, 이슬람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신자를 가진 종교다. 한 사람이 맨발로 걷고 이야기했던 것이 이렇게까지 퍼졌다.   싯다르타 왕자가 머리를 삭발하고 슈라마나가 되었다. 보로부두르, 8세기(위키피디아) 한국에서 석가모니를 다시 읽는다면 자, 이제 현실로 돌아오자. 2026년 봄, 한국의 정치 지형은 어떤가. 정치인들은 저마다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정작 국민의 삶은 팍팍하다. 집값은 하늘을 찌르고, 청년들은 취업 전쟁에 내몰리며,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대형 사찰들은 수천억 원 규모의 자산을 굴리고, 종단의 권력 다툼은 세속 정치판 못지 않다. 석가모니가 지금 한국에 나타난다면, 아마 가장 먼저 대형 사찰 앞에서 이게 내가 원한 거 아닌데 라고 했을 것이다. 부처의 첫 번째 가르침은 욕망을 내려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는 욕망을 내려놓기는커녕, 더 많이 가져야 살아남는 구조로 짜여 있다. 청년에게 욕심을 버려라 고 하면 그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폭력이다. 구조가 욕망을 강제하는데 개인에게만 수양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부처의 두 번째 중요한 가르침은 중도다. 한쪽으로 쏠리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 정치는 어떤가.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한치의 타협도 없이 극단으로만 치닫는다. 국회는 싸움판이 되고, 언론은 진영에 따라 같은 사실도 다르게 전달한다. 석가모니라면 이 상황을 보고 뭐라 했을까. 아마도 조용히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지 않았을까. 부처의 세 번째 중요한 태도는 신분차별에 대한 거부였다. 그는 브라만 계급 중심의 사회 질서를 정면으로 거슬렀다. 지금 한국에는 금수저, 흙수저 라는 말이 있다. 부모의 재산과 인맥이 자식의 미래를 결정하는 구조. 싯다르타는 왕자였음에도 그 신분을 걷어차고 나왔다. 역설적으로, 그의 이 선택이 오늘날 수십억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다.   방콕 왓 수탓 사원에 있는 금박을 입힌 수척한 부처상 은 부처의 고행을 묘사하고 있다.(위키피디아) 보리수나무 아래의 질문 기원 전 528년의 어느 새벽, 서른다섯 청년 고타마 싯다르타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스스로에게 물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에 묶여 있는가? 그 질문은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무엇에 묶여 있는가. 집값인가, 학벌인가, 다음 선거인가, 유튜브 조회 수인가. 석가모니가 위대한 것은 그가 신이어서가 아니다. 그는 철저히 인간이었고, 인간으로서 스스로 답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불교 경전 가운데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 는 뜻이다. 이것은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권력도, 그 어떤 제도도 당신 대신 생각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깨어 있으라. 2500년 전 한 청년이 왕좌를 걷어차고 얻어낸 진리가 이것이라면, 지금 한국사회가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 바로 이것 아닐까? 담장 안에서 평생 안락하게 살다 갈 것인가, 아니면 담장 밖으로 나가 세상의 진짜 모습을 볼 것인가. 싯다르타는 그 선택을 했다. 우리는? 간다라에서 발견된 입불상(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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