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관 · 외투 · 죽은 혼 의 작가 고골의 경고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웃음으로 세상을 울렸다
1809년 우크라이나 소르친치(Sorochyntsi) 땅에서 태어난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1809~1852)은 어릴 적부터 남다른 재주를 지닌 아이였다. 그 재주란 다름 아닌 사람을 웃기는 능력이었다. 그런데 이 남자, 웃기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웃음 속에 비수를 감추고 있었다. 청중이 배를 잡고 웃다가 나중에 집에 돌아가 가만 생각해 보면 아, 저게 내 얘기였구나 하고 식은땀이 흐르게 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는 짧은 43년의 생애(1809~1852) 동안 러시아문학의 지형도를 통째로 바꿔 놓았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1796~1855)가 그의 희곡 감찰관 (1836) 연극을 처음 관람하고는 박장대소를 했다가, 공연이 끝난 뒤 신하들 얼굴을 보고 말했다 한다.
모두가 한 대씩 얻어맞았군. 나도 포함해서.
황제 스스로 그 풍자의 칼날이 자기 몸에도 닿았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게 고골의 힘이었다.
고골 1845년 경.(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 출신이 러시아문학을 구했다는 아이러니
고골은 사실 러시아인이 아니었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폴타바 지역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우크라이나 민요와 민담을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올라가 러시아어로 글을 썼고, 결국 러시아문학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것들을 러시아가 다 가져간 셈인데, 요즘 시류로 보자면 참으로 씁쓸한 역설이다.
그의 초기작 디칸카 근교 야화 (1831~1832)는 우크라이나 민간풍습과 귀신 이야기를 버무린 낭만적 작품으로, 독자들이 단번에 열광했다. 당대 최고의 시인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1799~1837)이 이건 완전히 새로운 목소리 라고 극찬했다. 고골 입장에서는 문학계 최고 선배에게 야, 너 잘하는데? 소리를 들은 것이니, 거의 인생이 풀린 순간이었을 것이다.
고골리의 감찰관 1836년 초판 표지(위키피디아)
감찰관, 부패는 시스템이다
감찰관 (1836)은 고골 문학의 정수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느 지방 소도시에 감찰관이 내려온다는 소문이 돈다. 겁먹은 지방 관리들은 서울에서 온 한량 흘레스타코프를 감찰관으로 착각하고, 뇌물을 바치고 굽실거린다. 흘레스타코프는 영문도 모른 채 대접을 받다가 유유히 떠난다. 진짜 감찰관이 도착했다는 전갈이 오면서 막이 내린다.
여기서 핵심은 이것이다. 악당은 없다. 흘레스타코프는 사기꾼이 아니라 그냥 허풍쟁이다. 관리들은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오래 있다 보니 부패가 습관이 된 사람들이다. 고골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부패는 특정 악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문화의 문제라고. 나쁜 놈 한 명 잡아내봤자 시스템이 그대로면 또 다른 흘레스타코프가 온다.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검찰개혁을 둘러싼 논쟁이 수십 년째 계속되는 이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가 출범해도 개혁이 요원한 이유가 혹시 여기 있지는 않을까. 감시자를 감시할 자가 없고,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사람만 바뀌는 악순환. 고골은 1836년에 이미 이것을 무대 위에 올렸다.
로마에 있는 고골의 기념 명판. 희곡 감찰관 때문에 황제로부터 탄압 받을 것을 두려워 한 고골은 1838년부터 1842년까지 이탈리아 로마로 이주해 프랑스와 스위스 등을 들락거리며 자유로운 생활을 즐겼다.(위키피디아)
외투 한 벌의 무게, 작은 사람의 비극
1842년 발표된 단편 외투 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단편 중 하나다. 주인공 아카키예비치 바슈마치킨은 말단 필사(筆寫) 공무원이다. 그는 평생을 남의 글을 베끼며 살아왔다. 개성도 없고, 야망도 없고, 그저 순종적으로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단 하나의 꿈이 생긴다. 낡은 외투를 새것으로 바꾸는 것. 그는 몇 달 동안 밥도 아끼고, 저녁에 불도 켜지 않고, 발끝으로 걸어서 신발 밑창을 아껴가며 돈을 모은다.
마침내 새 외투를 장만한 날, 그것을 강도에게 빼앗긴다. 억울함을 호소하러 고위 관리를 찾아가지만 호통만 듣고 쫓겨난다. 그리고 그는 죽는다. 그 뒤, 바슈마치킨의 유령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를 돌아다니며 행인들의 외투를 빼앗는다는 전설이 생겨난다.
훗날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우리 러시아문학은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고 말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고골이 처음으로 하층민, 소외된 자, 체제의 희생자를 문학의 주인공으로 올려놓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외투 한 벌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제자리이고, 전세 사기를 당해 길거리에 나앉은 청년들,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 그들의 이야기는 뉴스 한 줄로 지나간다. 고골은 180년 전에 그 한 줄짜리 인생을 문학의 중심에 놓았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고골 초상화, 1840년.(위키피디아)
죽은 혼(魂)들, 부동산 투기의 원조
죽은 혼 (1842)은 고골의 최고 걸작으로, 미완성 장편이다. 주인공 치치코프는 러시아 전국을 돌며 지주들에게 이미 죽은 농노들의 명부(名簿)를 사들인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인구조사를 간간이 했는데 그 때문에 죽은 농노도 문서로는 살아 있는 것으로 처리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지주들은 이들에게도 세금을 받아냈다. 치치코프는 이 죽은 혼 을 싸게 사들여 담보로 잡히고 은행 대출을 받으려는 계략을 꾸민다.
실체 없는 자산으로 돈을 버는 사기, 문서로만 존재하는 가치로 신용을 만들어내는 수법, 이것은 현대의 부동산 투기, 가짜 재산 부풀리기, 페이퍼 컴퍼니 설립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고골은 19세기 러시아 농노제 사회를 배경으로 삼았지만, 사실 그가 겨냥한 것은 자본주의적 허위와 탐욕의 본질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죽은 혼 은 어떤 모습일까. 실제 가치는 없으면서도 서류로만 부풀려진 재산, 전세 사기꾼들이 만들어낸 허위 등기, 고위 공직자들의 차명재산. 치치코프는 결국 발각되지만, 우리사회에서는 발각이 되고도 버티다 복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고골의 시대보다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묘지에 있는 고골의 무덤., 1952년부터 2009년까지 모습(위키피디아)
그의 비극적 말년, 웃음을 잃은 웃음꾼
고골의 말년은 쓸쓸하고 기이했다. 그는 후기로 갈수록 깊은 종교적 회의와 자기혐오에 빠져들었다. 그의 마지막 출간 작품 벗들과의 서한 선집 (1847)은 이전의 신랄한 풍자 대신 보수적 도덕 설교로 가득 차 있어, 진보적 독자들과 비평가들을 경악하게 했다. 비평가 비사리온 그리고리예비치 벨린스키(1811~1848)는 격렬한 공개서한으로 고골리를 비판했다.
당신은 민중을 배신했다.
고골은 1852년 2월, 자신이 쓰던 죽은 혼 2권 원고를 스스로 불태웠다. 열흘 뒤 그는 단식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만 42세였다. 스스로 자기 걸작을 불태운 작가, 이 행위 자체가 하나의 수수께끼이자 비극이다. 어떤 이들은 그가 극단적 종교적 자기부정에 빠져들었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당시 주변의 그릇된 신앙 조언자들에게 홀렸다고도 한다.
천재가 스스로를 검열하고, 웃음으로 세상을 바꾸던 사람이 웃음을 잃었을 때 어떻게 되는지, 고골의 말년은 그 슬픈 답이다.
2009년에 복원되며 그의 무덤에는 동상이 사라졌다.(위키피디아)
고골이 한국에게 남긴 것
고골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19세기 러시아문학을 공부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부패, 소외된 자의 비극, 허위로 가득 찬 사회를 들여다보는 거울 앞에 서는 일이다.
한국은 지금 여러 의미에서 고골의 세계와 닮아 있다. 검찰과 법원이 신뢰성 논란에 휩싸이고, 소수의 기득권층이 규칙을 자기 편의대로 해석하고, 작은 사람들의 억울함은 소음 속에 묻힌다. 그러면서도 표면은 매우 그럴싸하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격식은 지키고, 형식은 완벽하다. 고골이 감찰관 에서 묘사한 그 도시처럼.
고골의 교훈은 이것이다. 웃음은 가장 날카로운 칼이다. 권력자를 직접 공격하면 탄압을 받지만, 웃음으로 들여다 보이면 그들은 자신의 추함을 스스로 보게 된다. 그래서 좋은 풍자는 위험하다. 고골이 쓴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연극을 관람한 황제가 웃다가 식은땀을 흘렸듯이.
그리고 또 하나. 비판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잃어서는 안 된다. 고골은 말년에 웃음을 버렸고, 자기 글을 불태웠고, 죽었다. 풍자의 정신을 끝까지 붙들었더라면 죽은 혼 2부가 완성되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비판적 언론인과 작가들이 기억해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다. 끝까지 웃어라. 그 웃음이 세상을 바꾼다.
로마 빌라 보르헤세 정원에 있는 고골 동상(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