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온 딥토크】최태원ㆍ윤호중, 착함을 과학으로 바꾸는 방법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최태원 회장님이 원래 이렇게 포럼 행사 끝까지 계시나요? 국내 재계에선 이런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놀랍고 신선하네요.
G20을 비롯한 글로벌 회의 석상에서 모더레이터 역할을 자주 해온 안젤라 강주현 (사)글로벌경쟁력강화포럼 대표는 행사를 끝내고 귀가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물었다.
이 행사는 10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2026 가치와 성장 포럼 이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이사장 최태원)이 개최했는데, 주제는 저성장 돌파구, 솔루션 변화 다. 최 회장은 이날 오후 3시부터 저녁만찬이 끝난 저녁 8시까지 자리를 지켰고, 후일담에 따르면 행사를 개최한 팀들을 격려하기 위해 2시간 회식까지 자리했다고 한다.
앤비디아 젠슨 황 대표와 만나 AI와 HBM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SK그룹 수장, 대한민국 재계를 대표하는 대한상의 회장, 이 2가지 모자를 쓰기에도 벅찰텐데, 최 회장은 왜 무려 7시간이나 사회적 가치 를 이야기하는 자리에 함께 있었을까.
게다가 국내에서 바쁜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왜 1시간이나 대담을 하고, 최 회장과 함께 행사참석자들을 위해 일대일 포토타임 시간까지 내줬을까.
최 회장이 사회적 가치와 SPC(사회성과인센티브, Social Progress Credit)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2015년 이전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2026년까지, 생태계 현장의 관찰자 겸 플레이어로서 이를 지켜봐온 필자는 이날 변화의 모먼트(moment) 가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참고로, 필자는 고(故) 김현대 한겨레신문 대표와 함께 사회적경제언론인포럼 으로 발기인으로서, 초창기부터 사회적기업 및 성수동 소셜벤처의 등장과 확산, 부침 등을 지켜봐왔다.)
역설적이게도 인공지능(AI) 물결이 대한민국 압축성장 신화의 그림자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금, 전 세계 사회문제의 살아있는 실험실(Living Lab) 이 된 한국이야말로 그 해법을 가장 잘 내놓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이번 임팩트온 딥토크 는 이날 대담을 매우 주관적으로 정리해본 기록이다.
자본주의 모델 한계 도달, 사회성과 비례한 인센티브 필요해
주변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여름 이후부터 SPC의 제도화 를 더 강력하게 주문했다고 한다. 이날 모두 발언에서는 그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우리는 없는 리소스를 최대한 모아 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형태로 추진해왔다. 우리의 성공모델은 일본의 성장모델을 거의 카피해왔다. 비약적인 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다. 고속성장의 문제(부작용)는 민주화를 성공시키면서 풀었고, 민주화가 자칫 시장을 훼손시킬 수도 있었지만 1990년대 이후엔 중국의 성장에 업혀가면서 잘 성장해왔다. WTO 체제의 최대 수혜자로서 싸고 좋은 물건을 세계 시장에 내놓으면 잘 팔리는 구조였는데, 지금은 이것들이 작동하지 않는다. 저성장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 GDP의 성장이 이뤄지지 않으니 분배 문제가 극대화된다. 양극화, 인구문제, 내수의 침체 등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사회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최 회장은 이어 자본주의 모델 자체의 한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개인과 기업이 (극도로 이기적인 목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면, 정부가 세금으로 이를 거둬 복지·국방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전통적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선)이익 추구→ 부작용 발생→(후)문제해결 모델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지금 (전 세계 어디에서) 자본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고 반문하며 사회문제가 일으키는 비용이 상승하면 상승할수록 정부가 쏟아야 하는 비용도 커지는데, 정부 혼자서는 그것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든 자본주의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고 말했다.
그가 내놓은 해법의 핵심은 착함의 과학화 다.
선한 마음만으로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참여자가 많아져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현재 사회적경제·사회적기업의 숫자와 규모로는 대한민국의 사회문제 해결에 턱없이 부족하다. 영리기업이 참여해야 하고, 착한 것·좋은 것에 더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 방법론으로 그가 10년 넘게 줄곧 외치고 있는 것이 바로 SPC(사회성과인센티브, Social Progress Credit)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측정된 만큼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실험이다. 그는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이 개념을 발표하고, 국내에서 10년 동안 직접 실험했다. 468개 사회적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이에 비례해 약 769억원의 현금 인센티브가 지급됐다. 이들이 만들어낸 사회적가치는 총 5364억원 규모다.
이날 포럼에서는 SPC의 효과가 발표됐는데, SPC 참여 기업 중 현금 인센티브가 제공된 기업은 제공받지 못한 기업에 비해 ▲사회적 성과는 3배 더 창출됐고 ▲매출은 평균 34% 높았으며 ▲사전 보조금 방식보다 고용과 생산 유발 측면에서 1.5~2배 높은 파급효과를 보였다고 한다.
10년 간의 녹록치 않은 SPC 실험
그는 사회적기업뿐만 아니라 이를 영리기업에 확산시키기 위해 SK 전 계열사에게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도록 했다. 최 회장은 우리가 하면 다른 기업이 따라 할 줄 알았는데, 따라오지는 않더라 면서 웃었다. 사실 ESG 중에서도 소셜(S) 파트의 기준, 즉 택소노미(Taxonomy)를 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워서 글로벌에서도 해당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처럼,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것만큼 애매한 게 없다.
임팩트온 또한 창업 초창기에 ESG 전문 언론사로서 사회적 가치가 얼마일까 를 측정하고 싶은 마음에 SPC에 신청했는데(신청은 했지만, 신청기업이 많아서인지 선정되지는 않았음), 막상 가치를 따지려고 보니 기준을 잡기가 어려웠다. 방문자 숫자, 기사 조회수, 조회시간 등 정량적 데이터는 있지만, 이 방문자들에게 미친 영향을 어떻게 가치로 환산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보험사의 사망자 보험산정방식과 같이 대체지표가 끊임없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SK그룹 계열사에서 창출해낸 사회적 가치를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아무리 강조하고 보도자료를 내놓아도, 언론사에서는 좀처럼 기사화하지 않는다. 해당 기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나 공감대가 없다면, 사회적가치가 5000억원 이라고 주장한들 이는 그저 홍보자료 로 여겨질 뿐이다. 사회적기업에서는 현금보상이, SK그룹 계열사에서는 경영진 KPI 연계라는 인센티브가 있었기에 이 실험은 10년 넘게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최 회장 또한 10년 실험의 여정이 녹록치 않았음을 설명했다. 그는 2015년부터 가장 큰 어려움은 측정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고 털어놨다. 말은 좋지만 측정의 정확성이나 객관성이 있느냐. 솔직히 없다. 경영학 교수들과 함께 열심히 연구해 최소한의 측정 방식을 만들어냈지만, 그게 제대로 된 것인지에 대한 도전은 끊이지 않았다 고 했다. 재원 문제도 현실적인 장벽이었다. 기업(SK그룹사) 성과가 안 좋은 해에는 인센티브를 줄이고 싶다는 요구가 나왔고, 실험 자체가 끊길까봐 베이스를 끌고가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 했다.
하지만 그는 역시 기업가였다. 반대를 무릅쓰고 SK하이닉스(000660) 인수를 밀어붙였듯, SPC 또한 먼 훗날 업계의 기준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버리지 않는 듯 보였다. 측정 방식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업 회계도 200~300년 전에는 주먹구구식 장부였다. 복식부기가 어디 있었나. 그래도 장사를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기업가치 판단 방법이 만들어졌다. AI는 데이터 기준이 많아질수록 평가의 정확도와 객관성이 높아질 것이다. 믿고 따라준 SPC 참여 기업들이 있었고, 정부가 사회적경제기본법의 틀을 만들어준 것이 큰 힘이 됐다. 이 효과는 이제 학문적으로도 증명된 상태다.
실제로 SPC는 1월 세계경제포럼(WEF)과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이 공동 발간한 보고서에서 기업과 사회혁신 간 파트너십의 우수 사례로 조명됐다.
1000만 명이 참여해야 판이 바뀐다 … 제도화와 스케일업이 관건
최 회장과 윤호중 장관은 SPC 모델을 국가적 규모로 키우는 것이 핵심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최 회장은 대한민국에 적용하면 일단 내수가 커지고 수출 부담이 줄 수 있다. 사회 저비용화로 이어지고, 사회문제를 푸는 많은 사람이 생긴다 고 전망했다. 그는 새로운 성장 함수 안에서 참여하는 주체를 얼마나 늘리느냐가 핵심 이라며 인구 중 최소 1000만 명은 참여해야 한다 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했다.
AI를 활용한 효율화도 청사진의 일부다. AI 기술을 이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 출현하면 좋겠다. 이제는 한 마리 토끼만 잡는 게 아니라 두세 마리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고 말했다. 기후 문제와 관련해서는 EPC(환경보호 크레딧·Environmental Protection Credit)라는 개념도 언급했다. 기후 문제 해결에 기여한 주체에게 크레딧을 부여해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모델로, SPC의 환경판이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는 더 이상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생존의 문제 라고 거듭 강조하며 사회 불행을 줄이는 일이 보상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있다면 보상은 누가 얼마나 줘야 하는지, 보상을 주면 실제로 행복 창출이 늘어나는지가 핵심 질문 이라고 말했다.
윤호중 전 의원은 정부 차원의 뒷받침을 설명했다. 그는 19대 국회부터 4번째 임기째 발의를 거듭해온 사회연대경제기본법에 대해 22대 국회에서 대표발의했으며 이번에는 꼭 통과될 것 같다 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한 오는 3월 27일부터 통합돌봄법이 시행되고, 햇빛소득마을 500곳에서 2500곳으로의 확대 계획 등 에너지 전환과 돌봄이 맞닿은 구체적인 사업들도 소개했다.
사실, 어쩌면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최태원 회장과 윤호중 장관 두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에 등장해 화제가 된 AI기반 재활용기업 수퍼빈 김정빈 대표, 연쇄창업가이자 연쇄 엑시트의 성공모델인 청년 공유주거기업 우주(WOOZOO) 김정현 대표의 대담이다.
수퍼빈은 AI 기반 순환자원 회수 로봇 네프론 을 통해 시민이 직접 페트병을 넣으면 즉시 포인트로 보상하는 방식을 설계했다. 현재 전국 140개 이상 지자체에 2000여 대가 설치돼 있고, 150만 명이 이용하며 월 4억 원가량의 보상이 지급되고 있다.
김정현 대표는 24세에 저소득 난청 노인들을 위한 보청기회사인 ‘딜라이트’를 설립해 매각하고, 이후 창업한 우주는 프롭테크 기업 직방에 인수됐다. 김 대표는 청년 주거 문제 해결에서 출발했지만 사업 모델은 철저히 시장과 투자 논리에 기반해 설계했다고 밝혔다. 사회문제 해결과 창업가로서의 성공은 반드시 상충하지 않는다. 적절한 사업 모델이 설계되면 두 가지 가치는 동시에 확장될 수 있다 고 강조했다.
GDP에 사회적 가치를 입힌 사회적 GDP 가 보편화될 경우, 이러한 기업들은 더 많이 확산될 것이다. 최 회장은 마지막으로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을 경계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 새로운 제도에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부작용이 완전히 치유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냐, 아니면 저성장의 부작용을 각오하고 나아갈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