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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진짜농협 만들려면 공공성 없애거나 덜어내야

진짜농협 만들려면 공공성 없애거나 덜어내야
[사회혁신]
지난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농협개혁추진단 기자간담회 모습.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연합뉴스 한국농협은 ‘진짜농협’인가 아니면 ‘가짜농협’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농협은 농민의 권익을 지키고 농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막중한 책무를 갖는다”면서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일부 임직원의 비리 때문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온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농민의 땀과 헌신으로 만들어진 농협을 한시바삐 농민의 품으로 온전히 돌려드려야겠다”며 조합원 주권이라는 관점에서 지배구조를 조속히 개선하고, 민주적 통제 강화 등 정상화 조치 역시 차질 없이 신속하게 완수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협이 농업 발전과 농민 삶의 질 향상에 앞장서는 ‘진짜농협’으로 확실히 거듭날 수 있도록 조합원 직선제 같은 관련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 달라”고 당부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지 일주일 뒤인 지난달 21일 ‘농업인 조합원과 국민께 드리는 글’을 통해  농협은 농업 발전과 농민 삶의 질 향상에 ‘진짜농협’이 돼달라는 대통령의 말씀과 시대적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 민주적이고 책임 있는 선거제도 개선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중앙회장 조합원 선출제’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글의 말미에 더 낮은 자세로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더 책임 있는 협동조합으로 거듭남으로써, 농업 발전과 농업인 삶의 질 향상에 앞장서는 ‘진짜농협’으로 국민 여러분 곁에 다시 서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통령의 ‘진짜농협’ 요구에 강 회장이 적극적으로 응답한 셈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진짜농협’이란 표현을 동원해야 했을까? 과거의 농협, 그리고 현재의 농협이 모두 ‘가짜농협’이란 말인가? 1957년에 시작해 70년 동안 지속돼온 농협의 존재와 역사가 모두 ‘가짜’란 말인가? 농협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수많은 전·현직 임직원들과 조합원들이 들으면 매우 당혹스럽고 억울한 얘기일 수 있다. 농협이 과거 농촌의 고질적 병폐였던 고리대금업을 추방하고, 식량자급을 위한 농산물 생산 증대와 합리적 유통채널 구축 등을 통해 조합원과 국민에게 (충분치는 않지만 나름 열심히) 봉사해 왔다는 자부심이 무시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기야 일부 학자들은 한국의 농협은 진정한 협동조합이 아니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협동조합은 원래 조합원들의 상부상조와 공동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사적 결사로서 이익단체적 성격을 갖는데, 한국의 농협은 농협법에 의해 지나치게 큰 공공적 책무를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1월 13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에서 농림축산식품부가 같은 달 8일 발표한 농협중앙회에 대한 특별감사 중간 결과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2026.1.13 연합뉴스 자료사진 ‘협동조합 본질론적 관점’에서의 이런 지적은 일면 타당하다고 본다. 우리 농협법 제1조를 보자. 이 법은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농협이 농업 발전과 농업인 행복 증진을 위한 모든 공공적 책무를 포괄적으로 지고 있는 것처럼 규정하고 있다. 농협을 정부의 농업정책 보조·대행기관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본래 협동조합은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에 의한, 조합원의 사적인 자조조직일 뿐이고 공공적 책무를 지는 단체가 아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농업인이 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열악한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원인과 책임이 모두 ‘농협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해되기 일쑤다. 정부가 비판받아야 할 대목까지 싸잡아 농협의 책임이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물가가 급등하면 정부는 그 주된 원인을 농산물가격 상승으로 돌리고 농협이 물가안정을 위해 농산물 판매가격을 인하하도록 유·무형의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이럴 때 농업에 종사하는 조합원들은 왜 농협이 조합원의 이익에 반해 농산물가격 인하에 나서는지 의문을 표하면서 농협은 농민 편이 아니다”고 볼멘 소리를 한다. 그래서 농협은 왜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까지 모두 농협의 책임으로 돌리는가”라고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농협이 이런 과도한 책임에서 벗어나려면 ‘공공적 책무’를 가진 ‘가짜농협’에서 조합원의 사적 자조단체인 ‘진짜농협’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참고로, 세계적인 낙농협동조합인 덴마크의 알라푸드 협동조합(Arla Foods Amba)의 정관은 협동조합의 목적을 낙농사업에 있어서 조합원이 생산한 우유 그리고 유제품을 수집, 가공 및 판매함으로써 조합원의 재정적 이익(financial interests)을 증진하는 데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굉장히 단순하고 명료하다. 유럽 각국에서 16~17세기 로버트 오웬(Robert Owen), 윌리엄 킹(William King) 등의 선구적 사상에 따라 협동조합이 태동·발전해 온 과정을 살펴보면, 협동조합은 공공적 책무를 지는 단체가 아니라 순수하게 조합원들의 이익을 도모·증진하기 위한 사적단체이며 이익단체이다. 중세 상공업자들의 자조단체인 길드(Guild)나 노동자들의 자조단체인 노동조합(Union)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이런 사적 이익단체인 협동조합에게 강한 공공적 책무를 부여하는 순간, 협동조합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로 변하게 된다. 부연하자면, 협동조합 본질론적 관점에서 보면 협동조합의 정체성(Identity)은 전혀 공공단체가 아니며, 협동조합에 ‘공공성’의 가면을 씌우는 순간, 협동조합은 ‘가짜’로 전락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국가가 수행해야 할 공공적 책무를 농협·수협 등 협동조합에게 매우 강하게 부여하고 있는 사례를 일본과 한국 말고는 찾기 힘들다. 조합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설립된 유럽 각국의 협동조합과 달리 일본과 한국의 협동조합은 자발적으로 설립되지 아니하고 정부의 주도에 따라 하향식으로 설립된 특수한 사정이 있다.  아무튼 한국 농협의 ‘공공성’은 농협법을 제정할 때 일본 농협법을 모방해서 만든 것에 그 원인이 있다. 식량 증산의 필요 등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변태적인 일본식 모델을 벗어나 협동조합의 원형(prototype)인 유럽모델을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보편적인(universal) 협동조합이기 때문이다. 즉, 농협을 협동조합으로서의 진정성(Authenticity)을 찾아 ‘진짜농협’이 되게 하려면 농협의 ‘공공성’을 없애거나 덜어줘야 한다. 한국의 농협이 법에 의해 강한 ‘공공성’을 부여받고 있는 한 ‘진짜농협’이 되는 길은 요원하다. ‘공공성’의 책무에서 탈피한 ‘진짜농협’이 되어야 진정한 ‘자율’을 누릴 수 있게 되고, ‘공공성’의 책무를 지는 ‘가짜농협’으로 유지되는 한 국가에 의한 ‘타율’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며, ‘개혁’이란 명분으로 개입과 간섭은 지속될 것이다.   지난 1월 8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부 모습. 2026.1.8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70년 동안 지속돼 온 한국 농협의 ‘공공성’을 탈피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측면에서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농협의 ‘공공성’을 없애거나 덜어주려면 특히 ‘중앙회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중앙회 제도’를 둔 것은 일본 농협법의 특징인데,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그냥 ‘연합회’로 운영한다. ‘중앙회 제도’는 일본이 1947년에 제정된 농협법을 1954년에 개정하며 당시 농협 경영의 건전성 회복을 위해 강력한 지도·감독권한을 가진 조직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특별한 제도로 도입된 것이다. 한국은 이를 모방해 1957년 농협법을 제정할 당시에 중앙회를 법에 둔 것이다.  말하자면, 중앙회는 회원조합들의 순수연합체라기보다 국가의 정책을 보조·대행하는 반관(半官)조직으로 설치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직까지도 상당수 국민들은 ‘농협’을 ‘공공기관’으로 인식하고, 농협직원을 ‘공무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지난 2015년 아베 행정부는 농협 개혁 차원에서 농협법을 대폭 개정했는데, 그 중 핵심이 ‘중앙회 폐지’였다. 즉, 공공성을 가진 특수법인으로서의 중앙회를 폐지하고 회원조합에 대한 감독권이 없는 일반 사단법인으로 전환한 것이다. 회원조합에 대한 감독 권한을 가진 ‘중앙회 제도’가 회원조합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침해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진짜농협’으로 가기 위해서 ‘중앙회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우리나라의 농협중앙회는 연합회 기능 말고도 직접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아주 특이하다. 중앙회가 직접 사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회원조합의 사업과 경쟁하게 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가짜농협’에서 ‘진짜농협’으로 탈바꿈하는 방안을 강구하면, 몇 가지 단편적인 개혁 사항을 실현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중앙회장 선출방식 변경’(1110명의 전체 단위 조합장이 선출하는 현행 방식을 187만 명인 전체 조합원이 선출하는 방식으로 변경)과 ‘외부감독법인(농협감사위원회) 신설’ 등 몇 가지 방안을 통해 농협 개혁이 성공하리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 될 것이다. 더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입법논의가 필요하다. 10여년 신중하고 긴밀한 논의를 거쳐 2015년에 시행한 일본 농협개혁의 사례와 경험을 살펴보고 그 장단점을 면밀히 고찰하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된다. 이선신 시민기자 goodbelief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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