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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연습하라…전쟁의 시대 건너는 우리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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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 앞에서 ‘노 킹스’(No Kings) 시위 참가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이날 미국 전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전쟁에 반대하는 대규모 ‘노 킹스’ 시위가 열렸다. 2026.03.29 워싱턴 AP 연합뉴스 희대의 광인 두 사람 때문에 온 세계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한 사람의 오만과 또 한 사람의 집착이 서로를 자극하며, 끝없이 갈등을 키워내고 있다.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한마디, 그들이 내리는 결정 하나는 단지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불안과 공포로 번져간다. 권력의 정상에 선 이들이 보여주는 비이성적 선택은 언제나 그렇듯 가장 힘없는 사람들의 삶을 먼저 무너뜨린다. 역사는 수없이 이를 증명해 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교훈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같은 비극을 반복하고 있다. 전쟁은 언제나 명분을 앞세운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국가의 존엄을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이유들이 제시된다. 그러나 그 명분의 이면에는 늘 두려움과 불신,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려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전쟁을 결정하는 이들은 계산된 언어와 전략 속에 그것을 정당화하지만, 그 계산서에는 인간의 고통과 삶의 붕괴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전쟁의 진짜 대가는 언제나 그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치러진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 장면들은 이미 너무 익숙해졌다. 폐허가 된 도시, 불길에 휩싸인 건물, 울부짖는 아이들, 절망에 잠긴 노인들. 그러나 그 익숙함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징후다. 고통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그것에 둔감해지고, 결국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될 때 전쟁은 더 쉽게 지속되고, 더 넓게 확산된다. 전쟁은 총성과 폭발음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의 삶 전체를 파괴한다. 일터를 잃고, 집을 잃고, 가족을 잃는다. 아이들은 배움의 기회를 빼앗기고, 미래를 상상할 힘마저 잃는다. 공동체는 해체되고, 서로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그리고 그 상처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때로는 세대를 넘어 지속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단지 현재의 비극이 아니라, 미래의 고통이기도 하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도심에서 열린 왕은 없다 (No Kings) 시위에 참가한 이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3.28 LA EPA 연합뉴스 오늘날의 전쟁은 과거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 경제, 에너지, 정보, 기술이 서로 얽혀 있는 세계에서, 한 지역의 충돌은 곧바로 전 지구의 위기로 이어진다. 공급망의 붕괴, 에너지 가격의 급등, 식량 위기, 정치적 불안정은 국경을 넘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전쟁은 더 이상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전쟁을 ‘필요악’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결국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의 사고를 지배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논리일 뿐이다. 전쟁이 갈등을 해결한 적은 없다. 오히려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뿌리고, 더 깊은 적대감을 만들어낼 뿐이다. 우리가 정말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왜 우리는 전쟁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면서, 평화는 그렇게 어렵게 느끼는가? 그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우리는 전쟁을 연습해 왔고, 평화는 연습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철저하게 준비된다. 군사 훈련이 이루어지고, 무기가 개발되며, 전략이 세워진다.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구축된다. 그러나 평화를 위한 준비는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가? 갈등을 중재하는 능력, 서로 다른 입장을 조율하는 정치적 기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회적 감수성—이러한 것들은 여전히 부차적인 영역으로 밀려나 있다. 전쟁 없는 상태가 평화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이 평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이며,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는 삶의 방식이다. 평화는 이해에서 시작되고, 대화로 이어지며, 신뢰 속에서 완성된다. 그것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과 선택의 결과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타인을 적으로 규정하는가. 얼마나 쉽게 분노하고, 얼마나 빠르게 판단하는가. 일상 속의 작은 갈등조차 평화롭게 해결하지 못하면서, 세상의 평화를 말하는 것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평화는 거대한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말과 행동, 태도 속에서 자라난다. 한 걸음 물러서는 용기,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인내,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모여 평화를 만든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하고, 때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 우리는 더 깊은 인간다움을 배우게 된다. 정치의 영역에서도 평화는 선택의 문제다. 강경한 대응은 즉각적인 지지를 얻기 쉽다. 분노와 두려움을 자극하는 언어는 사람들을 빠르게 결집시킨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증폭시킨다. 진정한 지도력은 갈등을 이용하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길을 제시하는 데 있다. 희대의 광인들이 만들어낸 긴장과 갈등 속에서 우리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그들의 언어에 동조하며 증오를 키울 것인가, 아니면 그와 반대로 평화를 선택할 것인가. 역사의 방향은 언제나 소수의 결정에 의해 바뀌어 왔지만, 그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다수의 의식이다. 시민들의 지지와 거부가 결국 정치 방향 결정 시민들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우리가 무엇을 지지하고, 무엇을 거부하는지가 결국 정치의 방향을 결정한다. 전쟁을 정당화하는 언어에 침묵하지 않고, 평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행동이다. 또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분별하려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거짓과 선동은 갈등을 더욱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국제사회 역시 보다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복잡하게 만든다. 일관된 원칙과 기준을 바탕으로 한 대응, 그리고 약자를 보호하려는 실질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평화는 선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구체적인 정책과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많은 전쟁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사회는 파괴되며, 상처는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길을 반복하는 것은, 단지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우리는 여전히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길을 따라가고 있다. 이제는 그 선택을 바꿔야 한다. 더 이상 전쟁을 연습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평화를 연습해야 한다. 그것은 개인의 삶에서부터 국가의 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평화를 위한 교육이 필요하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을 중심에 두는 가치관이 필요하다. 평화는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긴 시간에 걸쳐 쌓아 올려야 하는 결과다. 그러나 우리가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할 때, 이미 변화는 시작된다.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은 결국 역사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희대의 광인들이 만들어낸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그 길은 쉽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서로를 파괴하는 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길이다. 그것은 두려움에 기반한 선택이 아니라, 희망에 기반한 선택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무기가 아니다. 더 많은 군비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공감하려는 마음, 그리고 평화를 향한 지속적인 의지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지금, 거리에서 사람들이 외치고 있다. 왕관을 쓴 자들에게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권력을 사유화한 채 전쟁의 불씨를 키우는 이들에게, 이제는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울려 퍼지는 No Kings  외침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위에 군림하려는 모든 권력에 대한 거부이며, 평등과 책임을 요구하는 시대의 선언이다. 왕관을 내려놓아라 왕관을 내려놓아라  왕관을 내려놓아라. 그 왕관이 수많은 사람의 눈물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더 이상 정당하지 않다. 왕관을 내려놓아라. 그것이 전쟁을 지속시키는 이유라면, 당장 멈추어야 한다. 거리의 시민들은 알고 있다. 진정한 힘은 군대나 무기가 아니라, 깨어 있는 양심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리고 평화는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요구라는 사실을. 이제 선택은 분명하다. 전쟁을 연습할 것인가, 아니면 평화를 연습할 것인가. 왕관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인간은 인간으로 돌아온다. 권력이 내려올 때, 평화는 비로소 자리를 찾는다. 전쟁을 멈춰라. 평화를 연습하라. 평화가 길이다. 평화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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