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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야 할 5·18 두 이름 박영순과 양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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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8일 광주 옛 전남도청 시민군 상황실 재현공간에서 5·18 당시 마지막 새벽 방송을 했던 박영순 씨와 대화하고 있다. 2026.5.18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계엄군이 도청을 에워쌌다는 소식에 너무 떨렸고,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도청으로 나오셔서 학생과 시민들을 살려주십시오! 라고 방송했다. 그 뒤 계엄군에 의해 무자비한 폭행과 감금을 당했고, 이후 폭도로 몰려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2024년) 12월 3일에 이 방송을 따라 했던 겁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46주기를 맞아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이 옛 전남도청을 복원한 전시공간에서 만난 시민군의 마지막 가두 방송 주인공인 박영순(67) 씨와 주고받은 얘기 가운데 일부다. 많은 이들이 전두환 신군부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 행위로 연결돼 있으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저항이 44년의 시공간을 넘어 이어졌다는 점을 거론하고 있는데 시민군의 마지막 가두방송과 계엄 해제 결의를 위해 국회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소셜미디어를 켜  국민 여러분, 국회로 와주십시오 호소했던 자신의 방송이 연결돼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박씨는 대통령님을 꼭 만나 한을 풀고 싶었다 며 동지들의 마음을 담아 직접 썼다는 편지를 건넸고, 이 대통령은 꼭 읽어보겠다 고 화답했다.   계엄군의 선무 방송은 헬리콥터 등을 이용해서도 계속됐다. 폭도들의 장난에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이에 맞서 시민군은 차량에 스피커를 싣고 시 전역을 돌며 저항에 동참해줄 것을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가두방송을 처음 시작한 이는 전옥주(2021년 2월 16일에 사망) 씨였는데 1980년 5월 23일 계엄군에 끌려갔다. 죄목은 간첩 혐의. 전씨는 가두방송을 계속하며 북한이 개입했다는 빌미를 제공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는데 계엄군은 오히려 간첩으로 몰아 잠을 재우지 않고, 성고문 등 끔찍한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차명숙 씨였고, 그마저 끌려가 방송할 수 없게 되자 5월 27일 계엄군이 전남도청으로 쳐들어왔을 때 마지막 가두방송을 새벽에 했던 이가 박영순씨였다.  전씨는 징역 15년을 선고받아,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여성들 중에서 가장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출소 후에도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 많은 고생을 해야 했고, 코로나 팬데믹이 덮치자 스러졌다.  차씨와 박씨 모두 보안부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과 조사를 받았고 광주교도소에서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다. 박씨는 김대중과 그 지지자들이 꾸민 내란에 부화뇌동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출소한 뒤 결혼해 남편을 따라 광주를 떠났는데 몸 상태가 회복되지 않아 한동안은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병원을 가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2015년에야 광주로 돌아왔다. 그는 같은 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명예를 회복했다. 박씨는 2019년 기념식에서 내레이션을 맡아 오월 광주의 참상을 담담하게 전해 깊은 울림을 전하기도 했다.  행방불명된 지 22년 만에 아들의 유해를 찾았는데, 알고 보니 그 전에 너무도 참혹한 얼굴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해 천추의 한으로 남았던 이근례(88) 씨도 이날 전시 공간에서 이 대통령의 손을 맞잡았다. 당시 아들 권호영(당시 18) 군을 알아보지 못한 한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얼굴로’라는 노래에 담아 다른 오월 어머니 들과 함께 2021년 발표했던 이씨는 이 대통령이 전시실을 떠날 때까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김 여사는 또 관람 내내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모티브가 된 문재학(당시 17)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의 팔을 붙잡고 부축하며 각별한 예우를 했다. 김씨는 이날 기념식을 위해 찾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향해 여기 올 자격이 없다 고 외쳐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18일 광주 북구 5·18 민주묘지 양창근 열사 묘소에 헌화하고 있다. 가운데는 고인의 형 중근 씨. 2026.5.18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에서 직계 가족이 없어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희생자들을 위한 ‘5·18 민주유공자 직권 등록 제도’를 도입하겠다면서 양창근 열사의 사례를 언급했다. 1980년 당시 광주 숭의실업고 1학년이었던 열여섯 살의 양 열사는 5월 21일 광주 남구 송암동 인근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그러나 시신 인도 과정의 혼선으로 오랜 기간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양 열사의 유해는 당초 다른 이름으로 안장되었다가 이후 무명열사 묘역으로 이장됐고, 2021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유전자(DNA) 분석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이름을 되찾는 데 20년이 걸렸지만, 현행 제도의 한계가 발목을 잡았다. 5·18유공자법 시행령상 유공자 등록 신청은 직계존비속만 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부모가 모두 사망하고 형만 남은 양 열사는 5·18 관련자로만 인정될 뿐 정식 유공자로는 등록되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기념식에 참석하기 전 양창근 열사의 묘소를 찾아 헌화하고 고인의 형 중근 씨를 위로했다.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5·18 민주묘지에는 계엄군 총탄에 쓰러진 고 양창근 열사가 잠들어 계셨다 며 짓밟힌 조국의 정의에 누구보다 아파했을 오월의 소년은, 등록 신청을 대신할 직계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아직 5·18 민주유공자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고 언급했다. 이어 불굴의 투지로 민주주의와 조국을 지켜낸 분들이 단 한 명도 외롭게 남겨지지 않도록 국가가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 고 다짐했다.  양 열사의 부모는 지난 2002년 ‘5·18민주유공자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 제정 이전에 사망했다. 혈연 중에는 형 양중근씨만 남아있다보니 정부는 양 열사에 대한 유공자 신청 자체를 반려해왔다.   양창근 열사. 당시 고교 1학년 앳된 모습이다.  현행 5·18유공자법은 부모·자식 등 직계 가족만(자녀가 없는 경우 조부모까지) 유족으로 인정하고, 형제·자매 등 방계 가족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5·18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양 열사 사례와 비슷하게 5·18 당시 희생되고도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40여명이 넘는 실정이다. 학생수습대책위원회 소속으로 5월 27일 새벽 함께 밥을 짓고 설거지하던 여고생들을 피신시키고 도청을 끝까지 지키다 사망한 박병규 열사, 죽은 이들을 위해 장례를 치르고 관을 구하러 나섰다가 ‘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으로 사망한 박현숙 열사, 계엄군의 대검에 가슴이 잘린 채 사망한 여고생 손옥례 열사 등이 모두 유공자 인정을 못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시신은 5·18 직후 시립묘지에 안장됐다가, 2001년 국립묘지 승격 과정에서 이장돼 가까스로 국립5·18민주묘지에 묻혀 있지만 유공자로는 등록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5·18 기념재단과 민주유공자유족회 등은 국가유공자법과 비교해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여러 차례 개선을 요구해 왔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유공자 신청 대상자가 없어 등록신청을 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국가유공자로 기록하고 예우 및 관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5·18 유공자법에서는 이같은 규정이 없어 5·18 당시 미성년 상태로 희생돼 배우자나 자녀 없이 숨졌거나, 이후 부모까지 세상을 떠난 경우 형제자매만 남게 되더라도 현행 제도상 법적 유족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5·18은 독립운동, 6·25전쟁 참전 등 국가유공자 사례와 달리 나이 어린 피해자들이 적지 않은 특수성을 간과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희생자를 돌볼 법적 유족의 부재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양재혁 5·18유족회장은 유가족이 없거나 행방불명되는 등 이유로 미처 확인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잊힌 유공자’와 ‘잊힌 유족’ 수는 더욱 많을 것”이라며 희생자의 삶과 묘역을 지켜왔던 유족들의 아픔을 현행 제도는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5·18의 역사적 특수성을 반영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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