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탈취 손실만 1조원 넘는데…정치권 최대 5배 배상 칼 빼들었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아이디어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입법 움직임이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기술 탈취와 영업비밀 침해가 기업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커지자 여야가 손해배상 강화, 행정제재 확대, 아이디어 보호 범위 확대 등을 골자로 한 법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술 보호가 단순한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최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하며 기술 보호 제도 손질에 나섰다.
이미지 = 픽사베이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중소기업의 누적 피해 규모가 적지 않다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최근 발간한 ‘2025 중소기업 기술보호 수준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소기업이 기술 또는 경영상 정보 침해로 입은 총 손실액은 약 1조893억원에 달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실 집계에서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6년간 중소기업 기술침해 피해 건수가 231건, 피해금액은 2166억원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실제 피해 규모가 신고 건수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술 탈취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고, 거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신고를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 탈취는 주로 대기업이나 거래처가 중소기업으로부터 제품 설계나 제조 공정, 사업 아이디어 등을 전달받은 뒤 이를 무단 활용하거나 유사 제품을 자체 개발하는 방식으로 발생한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핵심 기술 하나가 회사 존립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아 피해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고의적으로 기술 탈취 땐 최대 5배 배상
정치권이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큰 금액을 배상하도록 해 고의적 위법행위를 강하게 억제하는 제도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최근 고의성이 인정되는 모든 부정경쟁행위에 대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내용의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현행법은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 범위를 아이디어 탈취와 영업비밀 침해 등 일부 유형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법 적용 범위가 좁아 유사한 기술 탈취 행위라도 처벌 수준에 차이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김 의원 개정안은 적용 대상을 ‘부정경쟁행위’ 전반으로 확대해 고의성이 인정될 경우 동일 기준으로 손해배상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경쟁사의 기술이나 사업 아이디어를 의도적으로 탈취했을 때 배상 부담이 대폭 커질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허성무 의원은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행정적 제재를 강화하는 방향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제도는 피해 기업이 민사소송을 통해 직접 대응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크다는 한계가 있었다.
허 의원안은 특허청장에게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한 조사와 시정권고, 시정명령 권한을 부여하고, 침해 행위자에게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업계에서는 행정기관이 직접 개입할 수 있게 되면 피해 기업의 신속한 권리 구제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이디어도 보호 대상…사전 증명 강화
기술 보호 사각지대를 보완하려는 움직임도 나온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중소벤처기업이 보유한 아이디어까지 원본증명제도 보호 대상에 포함하는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원본증명제도는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담긴 전자문서의 고유값을 특허청 지정기관에 등록해 두는 방식이다. 이후 분쟁이 발생했을 때 특정 시점에 해당 자료를 원본 형태로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기업이 새로운 기술이나 사업 아이디어를 개발했을 때, 언제, 누가 먼저 만들었는지를 공식적으로 증명해주는 장치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협업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전에 원본증명을 받아두면 향후 분쟁 발생 시 권리 보호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현행 제도는 기술 관련 영업비밀 중심으로 운영돼 상품 설계나 생산 아이디어 등은 보호 범위에서 제외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따라 핵심 사업 아이디어가 외부로 유출되더라도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안 의원 개정안은 원본증명 대상에 ‘아이디어’를 명시적으로 포함시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초기 기술 보호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