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리에 눈감고 양심도 실종된 ‘조희대의 판사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판결문을 읽어내려가던 판사의 입에서 무죄라는 두 글자가 나오자 피고인석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앉은뱅이 주술사는 배시시 웃었다. 지금은 피고인 신분으로 전락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권력 위의 권력’으로 불리던 V0(브이 제로)였다.
앉은뱅이 주술사는 장님무사의 어깨 위에 올라앉아 장님무사를 맘대로 부렸는데, 그 장님무사로 말하자면, 입만 열면 이놈 저놈 하는 욕설은 기본이요, 툭하면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격노하기 일쑤였고, ‘해결사’ 검찰을 동원하여 집요하게 정적을 죽이려고 했을 뿐 아니라 피아를 가리지 않고 칼을 휘둘러 가까이 있다가 다치는 측근이 한둘이 아니었다.
앉은뱅이 주술사의 원격 조종인가? 줄줄이 무죄, 무죄…
줄줄이 사탕이었다. 장님무사를 부리던 앉은뱅이 주술사 김건희는 법원의 판사들도 원격 조종을 하는지, 선생님이라 부르며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진짜 주술사’ 명태균에게도 무죄가 선고됐고, 원하는 대로 여론조사 수치를 뽑아내는 재주가 있는 명태균 덕분에 ‘해주라고 했는데 말이 많은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된 김영선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헌재가 장님무사에게 파면 결정을 내리자 해외로 도피성 출국을 했던 ‘김건희의 집사’ 김예성도 무죄를 받았고, 김건희의 그림 취향까지 파악하여 억대의 그림을 상납하며 공천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도 되는 듯이 행세하던 ‘정치 지망생’ 검사 김상민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지라 상식적인 판단을 하는 멀쩡한 사람이면 당연히 유죄 판결이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상식을 배신한 무죄 판결의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유죄의 심증은 넉넉하게 있으나, 유죄라는 걸 의심할 여지가 없이 증거로 완벽하게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유명한 법언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는 거였다.
하늘의 그물은 성기어 보여도 촘촘하여, 어떤 죄인도 다 걸러내는 초정밀에 고성능이라 했는데, 이 땅의 그물은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약자에게만 대단히 촘촘한 듯하다. 요금함에서 2400원을 착복했다는 이유로 버스기사를 쫓아낸 회사의 해고 결정은 타당하다고 판결하고, 야근하다 남의 사무실에 있는 초코파이 하나를 허락 없이 먹어도 절도죄로 얽어매면서, 특권층을 위해 복무하는 법기술자들에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탄식이 땅을 뒤덮었다.
법 기술의 도구로 전락한 법언 ‘In dubio pro reo’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은 언제 왜 생겨났을까? 궁금하여 AI에게 물어보니, 로마의 법학자 울피아누스는 ‘누구도 단지 의심만으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는 명언을 남겼고, 근대 형법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의 포이어바흐는 국가가 범죄 사실을 완벽하게 입증하지 못하면 그 불이익은 국가가 져야지 피고인이 져서는 안 된다는 법학 이론으로 정립했다고 알려준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 이론은 법 앞에서의 평등을 누리지 못하는 약자들을 위한 지성의 산물일 것이다. 그런데 우인성 판사는 어려운 고사성어를 인용하며 ‘차별 없는 평등’을 말하더니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무죄를 선고하였다.
기자로 살면서 많이 들었던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도둑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격언 역시 그런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선 그 격언이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만들어 씌워 억울한 도둑을 만들면서 진짜 큰 도둑에겐 수사하지 않거나 기소하지 않거나 현미경 들이대고 공소장의 활자 크기와 법조문의 활자 크기를 비교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으면 무죄 판결로 면죄부를 주는 법 기술의 도구로 변질되었다.
‘공직’ 올라갈 때마다 쑥쑥 재산 불어난 ‘마녀사냥꾼’ 곽상도
이른바 ‘50억 클럽’의 곽상도 부자에게도 그러하다. 곽상도는 검사 출신이다. 검사 시절에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조작에 관여했다고 의심받는 곽상도 검사가 공직자 재산 공개법에 따라 2008년에 신고한 재산은 6억 9천만 원이었다. 2009년 퇴직 후에 변호사로 활동하다 2013년에 박근혜 청와대의 민정수석에 임명되었는데, 그해에 신고한 재산은 29억 4400만 원이었다. 검찰 퇴직하고 4년 만에 재산을 무려 23억 원이나 늘렸다. 2016년 20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신고한 재산 31억 원이었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38억 7417만 원으로 신고했다. 공직 기강을 살피던 시절에도,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하는 시절에도, 곽상도의 재산은 쑥쑥 불어났다.
문재인 가족 스토커로도 이름을 날린 곽상도에겐 ‘특별한 재주’가 있다. 99%의 ‘뇌피셜’에 1%의 사실을 보태 기자들을 유인하여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확산하도록 만든 재주가 그것이다. 그 재주로 ‘윤미향 마녀사냥’ 당시 기자들을 사냥개처럼 몰고 다니며 윤미향 사냥을 했고 그 와중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정성껏 보살피던 쉼터 소장 손영미 님은 마녀사냥의 공포에 질려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재산 불리기에 있어 곽상도 아들은 한 수 위였다. 아버지의 알선으로 전공과 아무 관련이 없는 김만배의 화천대유에 취직한 곽상도의 아들은 6년 근무하고 대리급으로 퇴직하면서 무려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았다. 판사가 보기에도 무척 이상했을 것이다. 대장동 사업과 관련된 뇌물이라는 심증이 상식에 부합하나 ‘의심할 여지가 없이’ 완벽하게 증거로 입증하지 못했다며 아버지에게도 아들에게도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날 곽상도는 활짝 웃었고 아들도 숨어서 웃었을 것이다.
곽상도 전 의원이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마친 뒤 입장을 밝히며 밝게 웃고 있다. 이날 법원은 대장동 50억 클럽 관련 범죄 수익을 은닉한 혐의를 받는 곽 의원에 대한 공소를 기각했다. 2026.2.6 [공동취재] 연합뉴스
곽상도 부자, 명태균처럼, 윤석열도 웃지나 않을까? 섬뜩한 공포
최고 권력자가 ‘공천을 주라고 했는데 말이 많네’ 하는 육성 녹음이 있어도 증거가 되지 못하고, 주문자 생산방식(OEM)의 여론조사 보고서를 상납하고 그 대가로 공천을 부탁했는데, 자기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이라 여론조사를 했을 것이니 청탁의 대가라 볼 수 없고, 불법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또는 공천 청탁의 대가로 돈을 주었으나 차용증이 있으니 돈을 빌려준 것이고,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아들에게 50억 원을 주었는데 아버지에게 주는 뇌물이라는 증거가 없으니 무죄란다.
그런 판결이 나올 때마다 솔로몬의 판결이 생각난다. 한 아기를 두고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가라며 싸운다. 누가 진짜 엄마라는 증거는 없다. CCTV가 없고 DNA 검사로 친자 확인을 할 수도 없던 시절이다. 솔로몬 왕은 판결한다. 두 여인이 모두 엄마라고 하니 공평하게 아기를 반으로 갈라 가지라고. 가짜 엄마는 판결에 승복하는데 진짜 엄마가 사색이 되어 왕에게 매달린다. 내 아이가 아니어도 좋으니 제발 그 판결을 취소해달라고. 왕은 다시 판결한다. 이 여인이 진짜 엄마다.
왜 우리 판사들에겐 그런 지혜가 없을까.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법언은 자구 능력이 없는 약자들을 보호하라는 것인데, ‘권력 위의 권력’으로 군림하던 김건희에게 그 법언을 적용하면서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았을까. ‘마녀 사냥꾼’ 곽상도에게 그 법언을 적용하면서 자괴감이 들지 않았을까.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섬뜩한 공포가 온몸을 엄습한다.
사법개혁 자초하는 ‘희대의 판사들’
오차범위가 커서 들쭉날쭉한 통계는 통계로서의 가치가 없다. 판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판사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판결이 나오고, 판결의 대상이 누군가에 따라 창도 되고 방패도 된다면, 힘 있는 자에겐 성긴 그물이고 힘없는 자에겐 촘촘한 그물이라면, 그런 판결을 신뢰할 수 있을까.
사법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절박한 때가 있었나 싶다. 그건 사법부가 자초한 것이다. 윤석열에게만 구속일수를 날이 아닌 시간으로 적용한 지귀연 판사의 ‘구속 취소 결정’이 불을 붙였고, 윤석열의 정적 이재명의 대선 출마를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가 명백한 ‘희대의 파기환송’이 기름을 부었고, 줄줄이 사탕으로 이어진 곽상도 부자 무죄, 김건희 무죄, 명태균-김영선 무죄, 김예성 무죄, 김상민 무죄가 번갈아 가며 부채질을 하였다.
조희대 대법원장 ‘닥치고 반대’는 도둑이 곤장 치켜 든 형국
그런데도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법관 증원도 반대, 재판소원도 반대, 법 왜곡죄도 반대한다. 사법개혁에는 ‘닥치고 반대’라는 것 같다. 내 물건에 왜 네가 손을 대느냐고 화를 내는 것 같다. 적반하장이란 고사성어와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는 속담은 이럴 때 쓰는 거다. 대법관이 늘어나 분야별로 전문화되면, 소송 기간이 짧아지고 판결의 신뢰도가 높아져 수혜자는 국민이 된다. 재판소원이나 법 왜곡죄가 도입되어 판사들이 재판에 더 충실하게 되고 들쭉날쭉한 판결이 줄어들면 그 수혜자 역시 국민이다. 그런데도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법개혁에 반대한다. 입으로는 국민을 위해 반대한다지만, 사법부의 독립을 국민으로부터의 독립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판결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보편적 상식을 벗어나는 판결까지 존중할 순 없다. 들쭉날쭉한 판결을 하는 법원을 신뢰할 수 없다. 존중할 수 있는 판결이어야 법원을 신뢰하고, 그런 신뢰가 쌓여 누구나 승복하는 권위가 되어야 판결 불복, 소송 남발이 줄고 사회의 신뢰지수가 높아지고 불신으로 인한 사회비용이 줄어든다. 조희대 사법부는 ‘닥치고’ 개혁 반대가 아니라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환골탈태를 위한 자정 노력을 보여야 한다. 지금은 그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