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대책, 딸기 바나나 우유 섞었다가 분리하기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19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이 전세사기 희생자를 추모하는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024.2.19 연합뉴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좌담회에서 전세사기 원인과 예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등기부등본 보는 법,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전입신고와 확정일자가 어떤 의미인지, 전세대출과 전세보증보험제도가 왜 전세사기 주범인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주어진 시간을 마친 후 한 청년이 말한다. "다른 이야기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전세사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딸기와 바나나와 토마토와 우유를 섞어서 믹서로 갈아놓은 후, 딸기와 바나나와 토마토와 우유를 다시 분리시키는 일 같다고 말했던 것만 기억이 난다."
전세사기피해자지원위원회에는 전국에서 매주 수백 건씩의 피해자 지원 신청이 접수되어 올라온다. 이렇게 많은 피해신청을 유형별로 사안별로 분류하여 보고서로 정리해내는 공무원들의 능력이 참 놀랍다. 그러나 잘 정리된 보고서에 담아낼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겁다. 보고서를 보고 온 날은 가슴이 콱 막힌다. 너무나 많은 한 보따리의 첨부서류들 중 몇 개만 골라서 봤을 뿐인데도 그렇다.
임대차 계약은 너무 어렵다. 계약이 원래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옆에서 지켜봤던 한 계약 관련 소송에서 그 사건 담당 변호사가 판사에게 혼이 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들의 말은 의사표시, 계약금, 해약금, 위약금, 손해배상, 요물계약...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 말들 투성이였다. 오랜기간 법을 공부하고 훈련받고, 자격을 갖고 있는 변호사들조차도 잘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임대차는 민법상 채권계약이지만 특별법인 주택임대차보호법으로 물권적 효력을 갖는 보호를 받는다. 특별법상 선순위와 대항력이 뭐가 다른지 어떤 효력을 갖는지 봐도 봐도 헛갈린다. 선순위 근저당이 있는 집이나, 신탁등기가 되어 있는 집에는 전세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장사꾼들의 책임지지 못할 몇 마디 말에 순식간에 무너진다. 우리는 쉽게 계약서를 쓰지만 한 장짜리 계약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고, 도장을 찍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전세 사기꾼들이 판을 치면서 이제는 민법도 모자라서 형법까지 알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임대인이 사기꾼인지 아닌지에 따라 내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달라지기때문이다. 실제로 피해자 인정을 받기 위해서 임차인들은 거의 탐정이 되어서 임대인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사기꾼 일당인지 아닌지를 조사하러 다니기도 한다.
그런데 부동산 계약은 법률만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전세라는 이상한 제도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의 거래가격과 전세가격의 관계까지 알아야 한다. 부동산 시장이 투기장이 되면서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급등락하고 거래량 쏠림이 심해지다보니, 계약할 때와 계약종료 될 때 사정이 달라져서 사전에 예측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역전세, 깡통전세가 이런 것이다.
살 집이 필요한 사람들은 얼마인지,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는 부동산을 담보로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빌려준다. 국가가 보증하는 공시가격은 엉터리다. 집집마다 현실화율이 다 다르다.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공시가격이 왜 서로 다른지 알 수가 없다. 비교적 표준화되어 있는 아파트도 그렇지만, 3억 미만의 서민주택인 다세대주택 가격은 더 심각하다. 저층 주거지 중저가 주택의 가격관리, 임대차 시장관리 정책은 거의 없다. 유일하게 있다면 다 밀어내고 아파트를 짓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부동산 계약은 법률과 부동산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은 이미 내 주머니 속 돈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행은 내 신용과 소득, 직장 등 내 모든 것을 털어보고 돈을 빌려준다. 심지에 나라에서 보증도 해주고, 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주니, 당장 큰 이익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내 미래를 담보로 빌릴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얼마나 좋은 조건으로 빌릴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전세대출은 내 능력이나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집주인이 사기꾼이거나 채무초과라서 갚지 못하게 된 돈을 내가 책임지고 갚아야 한다. 내 신용으로 빌린 돈이 사기꾼주머니로 들어갔지만 내가 갚아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기들끼리 집을 팔아 내돈을 갚아야 하는 사람이 바뀌는데도 나는 알지 못한다.
투기판에선 원래 대부분 돈을 잃는다. 투기꾼들에게 '개평'을 뜯어가서 돈 버는 건 야바위꾼뿐이다. 건설사, 은행, 국가는 다 돈을 벌어간다. 이들은 서로서로 도와주며 더 많이 돈을 번다.
주택시장은 투기판이 아니다. 투기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주택시장에서만큼은 '수익성', 이딴 소리를 하면 안된다. 전세사기피해지원 대책은 사실상 피해자지원을 앞세운 세금감면과 대출확대 정책이다.
임차인 보호라면서 가격도 모르는 집을 보증해줬다가 국가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이제 파산의 길로 가고 있다. 나랏돈은 주거약자, 피해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사기꾼에게 흘러간다.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당한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또는 전세대출을 조금이라도 더 낮은 금리의 대출로 바꾸기 위해 피해자 신청을 한다. 원래부터 이렇게 많은 대출을 받지 말아야 했던 사람들이 상당수다. 원래부터 전세로 들어가지 말아야 했던 집에 들어간 사람들도 상당수다.
숨이 막히게 답답한 이유는 이게 이런 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에 대한 대출지원 확대 또는 보증금채권 매입(보증금일부 보전)과 같은 조치는 안 된다. 피해자를 거쳐서 결국 사기꾼들 주머니로 들어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전세보증보험이 결국 이 꼴이 난 것을 보면 예상되는 일이다.
대신 보증금 반환 소송 지원, 경매 신청절차 지원과 같은 서비스는 최대한 많은 미반환 피해자가 받을 수 있도록 대상을 확대했으면 좋겠다. 상시적으로 주택임대차분쟁 시 상담과 조력을 받을 수 있는 법률상담센터나 분쟁조정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을 확대해서 누구나 손쉽게 찾아가 저렴한 비용으로 법률서비스, 상담을 받으면 좋겠다.
대출은 언제나 스스로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야 한다. 채무자의 능력을 벗어나거나 책임을 벗어나는 대출을 해주었다면 이는 채권자 은행이 책임져야 하고, 개별적 여건에 따라 채무탕감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HUG 보증기관에서 임대인 대신 보증금 물어주고 난 주택을 왜 신속하게 관리하고 활용하지 않는지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HUG가 보증금채권으로 담보 잡아놓은 집을 사기꾼들이 다시 단기 월세 임대차로 돌려서 돈을 벌고 있다는데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에 있어 지금 누가 관심을 갖겠는가만, HGU가 보증주택을 신속하게 LH공사나 SH공사 등 지방공사로 하여금 소유권을 취득하고 관리하게 해서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전세사기피해자지원법에 공공우선매수권을 규정하고 있는데도 정부와 모든 기관들은 너무나 소극적이다. 국가세금 들여서 사기꾼들 돈 물어주고 잡아놓은 주택을 왜 사기꾼들이 다시 들어가서 임대주고 돈을 벌게 만드는가. HUG보증주택을 텅텅 비워놓고 또 다시 국민세금 들여서 임대주택을 매입하겠다니, 여기서 퍼주고 저기서 퍼주기로 작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저층 주거지를 저층 주거지답게 하고, 부동산 가격도 기반시설도 잘 관리하고,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모든 국민이 주거권을 누릴 수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관리하는 공공임대 주택을 확대하고, 민간임대 주택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전세사기피해자 대책은 피해주택 구입을 위한 주택담보대출,
청년 임차인 대책은 저리 전세자금대출,
신혼부부 생애 첫집 구입은 주택담보대출 확대,
출산 가구 지원 대책은 신생아특례 대출,
청년, 신혼부부, 출산가구 앞길 창창한 젊은이들은 은혜로운 대출을 받을지어다.
대출만이 청년들의 살 길인 것 같다.
대출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지원 혜택이라고 피해자인지 아닌지 선별하고 앉아있는 내 모습이 너무 답답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공공임대 주택 확대, 토지 공공성 강화, 저층 주거지 장기적인 관리와 정비, 서민주택 임대차 법률서비스 지원, 다세대주택 공시가격 정비, 기준 마련과 같은 것들이다. 쉽게, 하루아침에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다들 하기 싫어하는, 돈 안 되는 일이다. 피해자들조차 듣기 싫어할 이야기들이니, 바나나 딸기 우유를 분리하는 일처럼 어렵고 또 어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