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패배는 없다…국정 동력 되살리려면 [뉴스] 요즘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축구대회가 한창입니다. 한국은 출전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난 첫 대회에서 32강 토너먼트조차 진출하지 못하는 참담한 굴욕을 겪었습니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0-1로 패하고 그 지긋지긋한 경우의 수를 기다렸으나, 행운의 여신은 끝내 한국팀을 외면했습니다. 굴욕과 망신의 지휘자, 홍명보 감독과 축구협회가 국민으로부터 지탄받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사상 최악의 성적을 낸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30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6.6.30 연합뉴스
치밀하게 준비했고 치열하게 도전한 카보베르데
그러나 시야를 조금만 넓혀 보면, 이번 대회에는 한국 축구팬을 열광하게 만든 빛나는 경기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경기가 우승 후보팀 아르헨티나를 겁없이 몰아친 인구 52만 명 정도의 아프리카 섬나라, 카보베르데의 눈부신 분전입니다. 그들은 32강전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 끝에 2-3으로 석패했지만, 지고도 전 세계 축구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졸전 중의 졸전으로 평가받는 한국-남아공의 경기와, 이번 대회의 가장 재미있는 명승부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카보베르데의 경기. 이 극명한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세계적인 강팀을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은 불굴의 도전 정신과 치밀한 준비였다고 생각합니다.
불가사의한 승리는 있어도 불가사의한 패배는 없다”
일본 프로야구에 노무라 가쓰야라는 유명한 명감독이 있었습니다. 감이나 근성에 의존하던 기존 지도 방식에서 벗어나 철저한 통계와 데이터를 중시하는, 이른바 ‘ID(Important Data) 야구’가 그의 상표입니다. 그 감독이 남긴 명언 중에 불가사의한 승리는 있어도, 불가사의한 패배는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야구 경기를 하다 보면 설명할 수 없는 행운이나 요인 때문에 승리하는 경우는 간혹 있지만, 질 때는 반드시 그럴 만한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패배한 뒤 그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데 고심했습니다. 결국 만년 하위권 팀을 이끌고 여러 차례 우승을 이끄는 등 큰 성과를 거두며 훌륭한 명성을 얻었습니다.
저는 정치도, 승패 분석의 차원에서는 스포츠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스포츠에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선거에서도 스포츠 경기처럼 결과가 나쁘게 나왔을 때는 반드시 그렇게 만든 요인과 이유가 있습니다.
‘패배한 선거’ 놓고 어정쩡한 대응으로 지지율 급락
지난 6월 초, 지방선거 겸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수적으로는 16곳 중 12곳의 광역단체장을 차지하며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는 명백한 패배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서울시장 선거에서 졌습니다.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중 가장 열띤 관심을 모았던 부산 북갑과 평택을 보궐선거에서는 각각 한동훈 후보가 당선되고 조국 후보가 낙선했습니다. 나아가 내란을 적극 옹호했던 몇몇 후보들이 영남 지역 보궐선거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선거가 끝난 뒤 여당은 이런 결과에 어정쩡하게 대응했습니다. 내용의 심각성을 외면한 채 수의 우위만 쳐다보고 마치 이긴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지선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잇달아 폭락했습니다. 여기에 물불 가리지 않는 차기 당권 경쟁까지 더해지면서 여론이 더 나빠졌습니다. 집권 여당과 이재명 정부에 대한 경고음이 계속 울렸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우리 국민이 제게 또는 이 정권에 주는 경고”로 받아들이며 최소한 성공은 아니다”라고 정리하면서, 여권의 선거 평가는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아직 선거 패배의 여파가 말끔하게 정리된 건 아닙니다.
수많은 역전승 만들어낸 월드컵의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여기서 다시 한 번 월드컵 그라운드를 되돌아봅시다. 이번 2026년 월드컵에서 가장 큰 규칙 변경은 이른바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Hydration break)’, 즉 수분 보충 휴식을 전반과 후반 중간(약 22분 시점)에 한 번씩 3분간 의무적으로 부여한 것입니다. 기온과 상관없이 도입된 이 제도는 전후반 2쿼터제였던 축구를 4쿼터제로 바꿔놓았습니다. 일부에서는 이 3분의 휴식이 텔레비전 광고 시간을 확보하려는 상업적 목적에서 만들어졌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경기 내적인 면에서만 보면, 감독이 새로운 작전 지시와 변화를 꾀할 수 있는 큰 의미를 지닌 규칙 변경입니다.
실제 이번 월드컵에서는 이전 대회들과 달리 후반 들어 흐름이 뒤바뀌며 역전하는 경기가 유독 많았습니다. 브라질은 일본에 전반 0-1로 뒤졌지만, 후반 들어 동점을 만들고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터뜨려 2-1로 역전승했습니다. 벨기에는 후반 40분까지 0-2로 세네갈에 끌려가다가 후반 막판 2골을 몰아쳐 동점을 만들었고, 결국 연장전에서 3-2 극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지방선거는 이재명 정권의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이런 경기 결과가 반드시 새로 도입된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효과 때문이라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감독이 경기에 적극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크게 늘린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제까지 전·후반 사이 한 번뿐이었던 감독의 전술 지시 기회가 두 번 더 늘었으니까요. 많은 명장은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해 전술을 바꾸고 선수를 교체하며 승기를 잡았습니다. 지면서도 수비 중시 전술을 고수하다 끝내 무기력하게 패배한 홍명보 감독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이재명 정부는 5년 임기 중 1년을 조금 지나고 있습니다. 새로 도입된 월드컵 축구 규칙에 비유하자면, 지방선거를 치른 직후인 지금이 바로 ‘전반전 수분 보충 휴식 시간’입니다. 이 금쪽같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여론의 지지를 회복하고 국정 동력도 되살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이재명 정권이 지난 1년의 국정을 되돌아보며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냉정하게 분석하고 재조정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성공한 정권’의 가늠자인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서도, 지금 실패를 반성하고 전략을 재조정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한국갤럽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추이 그래프.
‘성공 정권’ 위해 아베에게서라도 배워야 할 것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때, 저는 일본 역사에서 전전과 전후를 통틀어 최장기 집권(1차 1년, 2차 7년 9개월)을 기록한 아베 신조 총리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는 단기로 끝난 1차 내각의 실패와 달리, 2차 내각에서는 쓴소리하는 참모를 항상 곁에 두고 그 직언을 기꺼이 들었습니다. 또 바둑의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는 교훈을 중시해, 당과 연립정권의 기반을 단단히 다지는 걸 그 무엇보다 우선했습니다. 당내 주요 파벌을 적절히 배치해 융화와 협력을 다지고, 평화 노선의 공명당을 연립정권 파트너로 단단히 묶어 야당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차단했습니다. 그런 뒤에야 자신이 원하는 국내외 정책을 차근차근 밀고 나갔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하루 일정 중 오전이나 오후에 1시간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 시간’을 가지라는 참모의 조언을 가급적 따랐다는 점입니다. 지도자는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분히 앉아 지금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어떤 일부터 우선해야 하는지 사색할 시간도 꼭 필요합니다. 아베 총리는 이 시간에 국회 회기 중 꼭 처리할 법안과 차기 선거 대응 방안을 집중적으로 고민했다고 합니다. 늘 ‘하루가 30시간이었으면 좋겠다’라며 쉴 틈 없이 뛰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패와 추락의 경고를 교훈 삼아 새살 돋게 해야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공자 말씀에 ‘삼인행이면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서도 반드시 배울 게 있다는 지혜입니다. 아베 총리가 한국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일본 지도자임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장기 집권을 이뤄낸 그에게서 배울 것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도 불가사의한 패배는 없습니다. 실패와 추락이 주는 뼈아픈 경고를 면밀히 분석해 새살을 돋게 한다면,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ohtak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