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바에 담은 양심과 믿음, 조지프 프라이 2세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차별이 낳은 사업천재들
손에 쏙 들어오는 초콜릿바. 편의점에서 흔히 사먹는 이 달콤한 막대기를 처음 만든 것은 영국 브리스틀의 프라이 가문이다. 그중에서도 조지프 스토어스 프라이 2세(Joseph Storrs Fry II, 1826~1913)는 87년을 살며 19세기 자본주의의 모순과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 인물이다.
프라이 가문은 퀘이커교도였다. 검소함과 평등, 평화를 강조하는 이 개신교 분파는 당시 영국에서 철저히 차별받았다. 공직 진출도 막혔고, 대학 입학도 제한됐다. 그래서 사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차별받으니까 장사를 시작했는데, 그게 엄청나게 잘된 것이다.
조지프 스토어스 프라이 2세 (위키피디아)
증기기관으로 카카오 콩을 빻다
조지프 프라이(Joseph Fry, 1728~1787)는 1761년 초콜릿 사업을 시작했고, 그의 아들 조지프 스토어스 프라이 1세(1769~1835)는 1795년 사업을 물려받아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으로 카카오 콩을 빻기 시작했다. 수작업에서 기계화로, 초콜릿 공장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1822년, 프라이 1세는 세 아들 조지프(1795~1879), 프랜시스(1803~1886), 리처드(1807~1878)를 동업자 삼아 회사를 세웠다. 1847년, 세계 최초의 고형 초콜릿바가 탄생했다. 그 전까지 초콜릿은 귀족들이 마시는 비싼 음료였다. 하지만 프라이 형제는 카카오 가루에 설탕과 카카오 버터를 섞어 굳혀,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초콜릿바를 만들었다. 1866년엔 프라이 초콜릿 크림 을 대량 생산했고, 1873년엔 영국 최초의 초콜릿 부활절 달걀을 만들었다.
조지프 프라이의 초콜릿 광고 포스터 (The Fry Family, Chocolate Makers)
경영자가 된 2세, 그리고 몰락
조지프 스토어스 프라이 2세는 1878년 회장으로 취임했다. 1869년 250명이던 직원은 1896년 4500명으로 폭증했다. 1907년엔 영국에서 51번째로 큰 제조업체가 됐다.
프라이 2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재산은 사후 37명의 조카들에게 돌아갔고, 5년 이상 근속한 직원들에게도 4만 2000 파운드를 나눠줬다. 퀘이커교도답게 직원들을 챙긴 것이다.
하지만 프라이는 다른 퀘이커교도 사업가들인 캐드버리나 라운트리처럼 체계적인 복지제도를 만들지 못했다. 재단이나 신탁 같은 지속가능한 사회공헌 제도도 세우지 않았다. 1913년 프라이 2세가 세상을 떠나자 사이가 좋지 않았던 좋은 친척들이 사업을 나눠 가졌고, 1919년 캐드버리와 합병됐다. 1981년엔 프라이 라는 이름이 완전히 사라졌다.
2010년 캐드버리가 미국 크래프트 푸드에 인수되면서 이듬해 서머데일 공장도 문을 닫았다. 400개 일자리가 날아갔다. 크래프트는 공장을 계속 운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조지프 프라이 2세의 회사가 생산한 초콜릿 제품 (File: Im200904WCL-Frys.jpg - Graces Guide)
한국사회가 배워야 할 것들
첫째, 믿음과 사업의 결합. 퀘이커 사업가들은 종교적 신념으로 윤리적 경영을 실천했다. 한국에도 기독교 기업인들이 많지만, 과연 신앙이 경영철학으로 제대로 이어지고 있는가. 삼성, 현대, 롯데 같은 재벌들이 직원과 사회를 얼마나 배려하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둘째, 지속가능한 사회 공헌. 프라이 2세는 자선은 했지만 제도를 만들지 못했다. 반면 라운트리는 재단과 신탁을 세워 21세기까지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기업들은 일회성 기부는 많지만, 100년 후에도 사회를 바꿀 구조를 만드는 곳이 얼마나 될까.
셋째,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 프라이는 당시로선 괜찮은 임금을 줬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은 비정규직 남용, 하청업체 착취, 위험의 외주화가 만연해 있다. 얼마 전까지도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쿠팡 직원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이 반복된다.
넷째, 초콜릿 산업의 어두운 이면. 프라이 가문이 초콜릿을 만들던 시절, 카카오는 아프리카 식민지 농장에서 생산됐다. 현재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아프리카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에서만 약 150만 명의 어린이가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중 상당수가 위험한 작업에 노출돼 있다.
세계 초콜릿 기업들은 2001년 하킨-엥겔 의정서 로 2020년까지 아동노동을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2025년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했다. 편의점 초콜릿바 뒤에 서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노동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방글라데시 봉제공장, 태국 새우 양식장, 중국 전자제품 공장. 달콤함의 대가는 여전히 누군가 치르고 있다.
다섯째, 경영 승계의 실패. 프라이 2세는 독신으로 조카들에게 유산을 물려줬지만, 친척들끼리 사이가 안 좋아 회사는 결국 경쟁사에 흡수됐다. 한국 재벌 3세, 4세들의 형제간 다툼, 경영권 분쟁, 편법 증여를 보면 프라이 가문을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조지프 프라이 2세 회사가 만든 초콜릿 제품 (File: Im090610BTM-Frys.jpg - Graces Guide)
달콤함의 대가
조지프 스토어스 프라이 2세는 세계 최초의 초콜릿바를 만든 회사를 이끌며 수천 명을 먹여 살렸고, 퀘이커 정신으로 상대적으로 윤리경영을 했다. 하지만 복지를 체계화하지 못했고, 아프리카 카카오 농장의 착취 구조엔 눈 감았으며, 회사를 제대로 물려주지도 못했다.
그래도 배울 점은 분명하다. 믿음이 있으면 사업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것. 직원을 인간으로 대할 수 있다는 것. 자선은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달콤한 초콜릿 뒤엔 언제나 누군가의 노동과 희생이 있다는 것.
지금 한국, 재벌 총수들은 프라이 2세보다 나은 경영자인가. 우리 기업들은 사회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가. 초콜릿바 포장지를 벗기며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달콤한 것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조지프 스토어스 프라이 2세가 남긴 유산은 초콜릿바만이 아니다. 사업도 양심껏 할 수 있다 는 가능성, 그리고 그 양심에도 한계가 있다 는 냉정한 현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기억해야 한다.
조지프 스토어스 프라이 2세 초상화 (59 Joseph Storrs F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