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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붉은 드레스 하면 떠오르는 디자이너 발렌티노

붉은 드레스 하면 떠오르는 디자이너 발렌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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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2007년 7월 6일(현지시간) 로마 아라 파치스 박물관에서 열린 자신의 패션쇼 개막식 행사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Alessandro Bianchi/Reuters/File Photo)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가 1968년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 재혼할 때 입었던 크림색 레이스 드레스가 그의 작품이었다. 재클린은 케네디 상중에도 이 디자이너가 지은 옷을 입었다. 이란의 마지막 국왕 샤 팔레비가 1979년 하야하고 미국으로 달아나던 때, 부인인 파라 디바 왕비가 입었던 정장도 같은 디자이너가 만든 옷이었다. 두 사람 모두 발렌티노 가라바니·지안카를로 지아메티 재단이 19일(현지시간) 인스타그램에 올린 성명을 통해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알린 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 일명 발렌티노가 디자인한 옷을 입었다.  1997년 비운의 운명을 맞은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도 그의 드레스를 즐겨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적인 여배우들도 발렌티노의 화려한 드레스 사랑에 빠져들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60년 영화 스파르타쿠스 로마 시사회에서 그가 디자인한 깃털 장식의 드레스를 입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로마의 휴일 로 유명한 오드리 헵번도 그가 만든 드레스의 팬이다. 줄리아 로버츠가 2001년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을 때 입었던 흑백 가운, 케이트 블란쳇이 2005년 여우조연상을 받을 때 입은 노란색 드레스도 그의 작품이었다. 20세기 패션 거장 중 한 명인 발렌티노는 1960년에 발렌티노 패션 하우스를 공동 설립했으며, 조르지오 아르마니, 칼 라거펠트와 함께 업계 최상위에 올랐다. 발렌티노 가라바니 및 지안카를로 지아메티 재단은 성명을 통해 그가 사랑하는 가족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로마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 밝혔다. 재단은 발렌티노의 주검이 21일부터 다음날까지 미냐넬리 광장에 안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례식은 오는 23일 천사와 순교자들의 성마리아 대성당에서 거행될 것이라고 재단은 밝혔다. 1932년 5월 11일 롬바르디아주 보게라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1920년대 마티네 아이돌 (당시 영화나 연극 스타를 가리킨 애칭)이었던 루돌프 발렌티노의 이름을 따서 그의 이름을 지었다. 보게라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그는 패션에 관심을 가져 이모 로사, 지역 디자이너 에르네스티나 살바데오 아래 견습생으로 일했다. 에르네스티나 살바데오는 예술가 알도 조르지니의 이모였다. 열일곱 살 때 부모의 지원을 받아 파리로 이주, 이듬해 에콜 데 보자르와 샹브르 신디칼 드 라 쿠튀르에서 공부했다. 그는 사치와 부, 화려함을 보여주는 컬렉션과 넓은 어깨 보호구로 유명했다. 당시 그가 일머리를 배운 디자이너로는 자크 파트, 발렌시아가, 장 데세, 기 라로슈 등이 있다.  1960년대 그의 평생 파트너가 된 동료이자 연인 지안카를로 지암메티와 협업을 시작하면서 전성기가 열렸다. 그리고 1962년 피렌체에서 국제적으로 데뷔한 그의 명성을 세계에 떨치게 만든 이는 재클린 케네디였다. 1964년 한 모임에서 발렌티노의 친구 콘수엘로 크레스피의 쌍둥이 자매이며 미국 잡지 보그 편집자인 검은색 오간자 투 피스 의상을 입은 것을 보고 재클린이 앙상블 디자이너의 이름을 글로리아 시프에게 물어봤다. 1964년 9월, 발렌티노는 뉴욕 자선 무도회에서 컬렉션을 발표했는데 다른 일정 때문에 재클린은 참석할 수 없었다. 이에 발렌티노는 모델, 영업 담당, 자신의 작품 일부를 5번가에 있는 재클린의 아파트에 보냈다. 감격한 케네디는 흑백 오트 쿠튀르(소수 고객을 위한 맞춤복) 드레스 여섯 벌을 주문한 뒤 이 옷들을 암살된 남편의 애도 기간에도 입었다. 스페인 여행에 영감을 얻은 발렌티노는 발렌티노 레드 를 창작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끌어올렸다. 이 색상은 그의 하우스를 대표하는 색이 돼 2007년 그의 마지막 컬렉션에서는 모든 모델이 피날레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었다.  발렌티노는 남성복과 기성복·액세서리로 제품군을 확대하면서 사업을 키웠다. 1998년에는 이탈리아 지주회사 HDP에 브랜드를 3억 달러(현재 환율로 약 4430억원)에 매각했다. 1억 80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발렌티노 S.p.A.는 밀라노에 본사를 둔 섬유 대기업 마르조토 애퍼럴에 2억 1000만 달러에 매각됐다. 메종 발렌티노는 2012년부터 카타르의 민간 투자자 그룹 지주회사인 Mayhoola for Investments S.P.C.가 통제하고 있다.  브랜드를 매각한 뒤에는 디자인에만 전념했다. 2007년 사업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2016년 지암메티와 함께 자선재단을 설립해 활동해 왔다. 2023년 12월, 발렌티노는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영국 패션 어워드에서 뛰어난 업적상을 수상했다. 영국 보그의 전 편집장 알렉산드라 슐먼은 BBC 라디오 4의 PM 프로그램에서 발렌티노의 모든 면이 화려함과 사치를 상징한다 면서  그는 현대 위대한 디자이너 가운데 마지막 남은 인물 중 한 명이었고, 그의 가장 큰 기여는 사람들이 패션 디자이너에게 바랐던 모습이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슐먼은 이어  그는 자신이 가장 패셔너블하거나 최첨단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사실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아름다운 옷을 만들고 싶어 했고, 실제로 그랬다 고 말했다. 마침 서울을 찾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고인은 논란의 여지 없는 우아함의 거장이자 이탈리아 오트 쿠튀르의 영원한 상징 이라며 전설을 잃었지만 그의 유산은 여러 세대에 영감을 줄 것 이라고 기렸다. 2006년 히트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다 에 본인 역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또 2008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발렌티노, 최후의 황제 는 베너티 페어 특파원 매트 타이르나우어가 제작 및 감독했는데 발렌티노와 수행원들, 이른바 이너 서클에 독점적 접근권을 얻어 2005년 6월부터 2007년 7월까지 250시간 촬영한 분량을 편집한 것이다.  발렌티노가 오래 전에 남긴 이 말은 아직도 대중의 입에 오르내린다.  나는 여성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그들은 아름다워지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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