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리기사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득신 작가
나는 2년차 대리기사다. 대리기사를 시작한 시기가 2023년 1월이었으니, 정확히는 1년 6개월 정도의 대리기사 경력을 갖고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에 내가 경험했던 일, 그리고 지금도 경험 중인 일, 앞으로도 경험할 수밖에 없는 나의 일을 르포 형식으로 게재하려 한다. 내가 쓰는 글은 느낌과 감성이기에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 물론 필요에 따라 통계도 제시할 것이며 누군가의 발언도 인용할 예정이지만 그래도 다분히 주관적인 글만은 분명하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사실 존재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듯한 명분과 통계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주장을 어필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나는 글쟁이이기도 하다. 르포 작가로 전태일 문학상을 받았지만 정작 르포를 몇 편이나 썼냐는 질문에는 부끄러움이 나를 붉게 물들이기도 한다. 그저 르포 작가는 타이틀일 뿐이다. 글쟁이로서 인터넷 언론사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시민단체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시민단체의 비상근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이 그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도 나는 매월 1주일 이상의 시간을 할애해야만 한다. 이렇게 허울 좋은 타이틀만 잔뜩 보유하고 있으니 집에서는 눈칫밥 신세를 모면하기 어렵다. 하는 일은 많되 벌이가 마땅치 않으니 대리기사라는 일을 통해 수입을 보충한다. 작곡가 지망생이면서 철학도인 대학생 아들과 대입을 앞둔 고등학생을 키우는 가장이기에 나의 수입은 가족의 삶과 생계를 좌우한다. 내가 대리기사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내가 대리기사를 하는 것은 꼭 벌이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하고 싶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나는 더 많은 노동을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지지하고, 정부의 69시간 노동 권고에 분노하면서 정작 나는 저녁이면 대리운전을 위해 집을 나서야 하고 1주일에 100시간을 일하는 모순 속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의 노동시간은 2022년 OECD 기준 연간 1904시간이다. OECD 평균 1719시간보다 무려 185시간 더 많은 노동을 한다. 한국은 또한 대표적인 수면 부족 국가이다. 하루 평균 수면 시간 7시간 41분으로 OECD 국가 평균 8시간 22분에 훨씬 못 미쳐 전 세계 꼴찌를 기록 중이다. 어디 그뿐인가. 일과 수면, 그 중간 즈음의 시간을 쪼개어 유흥에 할애하고 있다. 수면보다 알코올을 선택하며 노동 과다의 스트레스를 음주로 해결하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더 많은 노동을 하고 더 많은 유흥을 즐기며 더 적은 수면을 취하는 대한민국 노동자들. 대한민국 노동자들에게, 시대를 살아가는 민초들에게 노동의 수고를 풀어주는 행복이, 고통을 감내하는 수단이 어쩌면 한 잔 술인지도 모른다. 위로하고 위로받고 기뻐하고 기쁨 주는 곳, 알코올은 곁에서 그들을 묵묵히 지켜준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충북지부가 5월 31일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선관위 사거리에서 대리기사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대리기사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직업이다. 애초 대리기사는 직업이기보다는 택시기사의 업무 일부에서 생겨난 사회적 현상 중 하나였다. 술 취한 차주가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고 자신의 차를 운전해 달라는 거래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중반 택시기사를 했던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대리기사 비용은 택시요금의 2배가 통상적이었다는 것이다. 택시기사가 차주를 내려주고 다시 자신의 택시로 돌아갈 비용 정도가 대리 비용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엔 음주 단속이 느슨한 시절이기도 했고 몇 푼의 돈으로 음주 사실을 감추어 버릴 수도 있던 시절이라 대리기사 수요가 많지 않았다. 이후 음주 단속이 강화되고 대리기사 수요가 증가하면서 대리기사는 정식 직업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IMF를 거치며 신자유주의가 급속히 밀려오고 자본주의 병폐가 심화하면서 해고와 구조조정에 몰린 노동자들이 일시적으로 시작한 일이 대리기사이기도 했다. 이후 대리기사가 빠르게 늘면서 대리기사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나는 인천 부평의 대기업 사무실에서 근무했는데, 직장 동료들과 가끔 음주를 하면 선배들이 대리기사를 불러주곤 했다. 그때 나의 신혼집인 연수구 동춘동까지 대리기사 비용이 2만 원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같은 거리의 대리기사 비용이 2만 원이다. 20여 년 전 당시 국민소득 1만 달러에서 지금 3만 달러 시대가 되었지만 대리기사 비용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는 대리기사 제도를 운영하는 대기업 플랫폼의 횡포가 크게 한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르포 기사 제목을 ‘플랫폼의 노예들’이라고 정한 이유가 그것이다.
알코올은 영화와 드라마, 문학작품에 때로는 주인공으로, 혹은 주인공 주변의 무엇으로, 어떤 장치로든 등장한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엑스트라로 소비되기도 한다. 픽션의 세계에서 소비되는 술은 풍류이거나 폭력이거나 양극단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는 알코올이 그다지 낭만적이거나 그다지 무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막걸리 한 잔이, 목을 적시는 시원한 생맥주가, 몇 순배의 소주가 온몸을 휘감으면 어김없이 귀갓길이 기다린다. 그곳에 대리기사가 존재한다. 그 한 잔 술의 기쁨을 지키고 유지하며 민초들의 안전한 귀갓길을 위해 그들의 대리기사는 오늘도 대한민국을 운전 중이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서울‧경기지부가 5월 31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대리운전 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 및 적정 보수 보장, 카카오모빌리티의 성실 교섭 등을 촉구하는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편집자 주] 시인이자 수필가인 이득신 작가는 제17회 한국문학세상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등단했다. 아들을 입양하면서 입양 문제에 천착하게 돼 한국입양홍보회 인천지역 대표 및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삼성그룹 공채 출신으로 삼성생명과 삼성SDS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다 글쓰기에 전념하려 사표를 냈다. 대기업 간부 출신이 퇴사 뒤 생계를 위해 하청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느꼈던 희로애락과 노동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 <살아남은 자의 도시>로 2019년 제27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의소리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며 밤에는 대리기사로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