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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자본이란 폭주 기관차 의 비상 브레이크를 당기길

자본이란 폭주 기관차 의 비상 브레이크를 당기길
[칼럼]
영화 설국열차 포스터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세운 인물을 꼽자면 단연 봉준호 감독일 것이다. 2001년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로 뮌헨 국제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받으며 등장한 그는, 2003년 『살인의 추억』을 통해 명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마더』(2009), 『괴물』(2011), 『설국열차』(2013) 등 숱한 화제작을 탄생시켰고, 2019년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4관왕을 휩쓸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봉준호 감독 작품의 뼈대는 소름 돋을 만큼 정교한 디테일 , 그리고 사회적 부조리와 체제를 향한 비관적이고 예리한 비판 의식이다. 노골적인 문제의식을 때로는 우화로, 때로는 염세주의적 시선으로 스크린에 투영해 낸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비판이라는 토양 위에서 다층적인 해석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가 『미학이론』에서 주창한 진리내용(Wahrheitsgehalt) 으로서의 예술, 즉 비판적 이성의 계기로 작동하는 예술의 형태와 맥을 같이 한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주제 의식과 방법론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은 단연 『설국열차』다. 기술 문명의 진보가 초래한 디스토피아, 기차 라는 완벽한 계급 사회, 한정된 자원과 관리 라는 억압적 논리. 꼬리칸은 유색 인종이 다수인 반면 앞쪽 칸으로 갈수록 백인이 주류를 이루는 공간적 설정까지, 봉 감독 특유의 체제 비판적 시각이 그 어느 때보다 직설적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표면적 장치들로 인해 『설국열차』의 핵심 주제는 흔히 계급투쟁 으로 읽힌다. 기차라는 닫힌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 간의 유혈 충돌이 서사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자연스럽고 타당한 해석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가 숨겨둔 디테일과 후반부의 전개, 그리고 파국적인 결말을 종합해 보면 완전히 새로운 해석의 층위가 열린다. 어쩌면 『설국열차』가 진정으로 겨냥한 지점은 단순한 계급투쟁이 아니라, 로베르트 쿠르츠(Robert Kurz)를 필두로 한 가치비판(Wertkritik) 그룹의 사유와 강하게 맞닿아 있다. 가치비판 그룹은 독일 비판이론의 한 분파로,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파고든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자본주의가 상품 생산 을 토대로 직조된 사회라고 통찰했다. 상품 생산이 전 사회를 지배하면서 교환가치가 모든 사물과 인간관계를 지배하게 되고, 인간은 도리어 자신이 만든 상품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물신성(Fetishism) 에 빠진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적 모순의 토대라고 보았다. 가치비판 그룹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들에 따르면 계급 역시 상품 관계에 의해 규정된 형식일 뿐이다. 따라서 노동 계급의 투쟁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행위가 아니라 철저히 자본주의 체제 내의 행위에 불과하다. 진정한 모순 극복을 위해서는 상품 이라는 개념 자체를 붕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가치비판은, 마르크스 철학의 두 축인 객관의 우선성(유물론) 과 객관 속에서 주체의 자유로운 부정 및 비판적 실천(변증법적 운동) 을 가장 급진적으로 종합해 낸 사유다.   영화 설국열차 의 메이슨(틸다 스윈튼) 이러한 가치비판의 렌즈로 『설국열차』를 다시 보면, 극 중 혁명이 향하는 모순이 뚜렷해진다. 꼬리칸의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의 최종 목표는 일등칸의 점거다. 권력을 쟁취해 계급을 해체하고 기차를 억압이 없는 평등한 사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20세기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거대한 생산력을 탈취해 모두와 공유하려 했던 역사적 기획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러나 혁명의 끝에서 마주한 열차의 지배자 윌포드(에드 해리스)는 뼈아픈 진실을 일깨운다. 열차의 한정된 자원 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희생과 통제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생산력 발전을 위해 억압적 전위 조직을 정당화했던 동구권의 현실 사회주의나, 경제 위기 앞에서 평등의 프로젝트를 유예해야만 했던 서구 사회민주주의가 직면했던 역사적 한계와 정확히 조응한다. 결국 꼬리칸의 혁명이 성공하더라도 누군가는 다시 기차의 동력(희생양)이 되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관리하는 새로운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 상품과 교환이라는 모순의 토대가 존재하는 한, 그 안에서의 투쟁으로는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 윌포드가 이번 반란으로 희생자가 발생한 덕분에 열차 생태계의 균형이 유지되었다 고 미소 짓는 장면은, 계급투쟁이 도리어 체제를 존속시키는 동력으로 봉사하고 마는 끔찍한 역설을 폭로한다.   영화 설국열차 의 남궁민수(송강호)와 요나(고아성) 이 견고한 체제의 굴레를 박살 내는 것은 혁명가 커티스가 아니라, 극의 또 다른 중심축인 남궁민수(송강호)다. 그가 환각제 크로놀을 모았던 진짜 이유는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기차의 문을 부수고, 열차 라는 체제 자체를 폭파하기 위함이었다. 과거 열차 밖으로 뛰어내렸던 7인의 반란자들이 동사했다는 사실은, 객관적 현실을 도외시한 맹목적 관념론의 실패를 의미한다. 남궁민수는 빙하기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는 객관적(유물론적) 현실을 정확히 인식한 바탕 위에서, 절대적 이성으로 여겨지던 기차(체제) 자체를 무너뜨리는 비판적 실천을 감행한다. 이는 계급투쟁의 틀을 깨고 나온 완벽한 가치비판적 실천이다. 앞서 언급했듯,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현실 부조리에 대한 날 선 비판을 통해 다층적인 해석을 낳는 진리내용의 예술이다. 『설국열차』를 오직 가치비판의 시각으로만 재단하는 것은 예술을 미메시스가 아닌 단순한 복사품으로 격하시키는 오독일 수 있다. 그러나 아도르노의 통찰처럼 예술의 진리내용이 현실을 지양하는 부정적 계기 로 작동하는 것이라면, 체제 내의 계급투쟁이 오히려 자본주의의 모순을 공고히 다지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 같은 해석은 충분히 유의미하다. 상품이라는 우상,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멈추지 않는 폭주 기관차. 우리는 권력의 칸을 차지하기 위해 다툴 것이 아니라, 그 기차를 부수고 밖으로 뛰어내려야만 이 지독한 모순을 끝낼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설국열차』가 스크린 너머의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서늘하고도 진실된 전갈일 것이다.이승규 시민기자 seungkyu01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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