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걸린 대한상의와 언론의 짬짜미 ‘밑장 빼기’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도박꾼들의 세계를 무대로 하는 영화 에는 짝귀, 아귀 등 무서운 이름을 가진 도박의 고수들이 나옵니다. 그들 모두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손에 든 화투장을 바꾸는 현란한 손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자기만 고수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도박판에선 ‘밑장 빼기’도 고난도 속임수의 하나인데, 성공하면 거액의 판돈을 모두 차지할 수 있지만, 섣불리 수작을 부리다 들키면 손모가지를 내놓거나 기술을 쓰는 손가락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것이 도박 세계의 법칙입니다.
밑장 빼기와 가짜뉴스에는 ‘속임수’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도박에서의 밑장 빼기는 한두 사람을 속이는 게 전부지만, 언론의 가짜뉴스는 불특정 다수를 속이고 여론을 왜곡합니다. 도박에서의 속임수는 한두 사람의 피해로 끝나지만, 언론이 퍼뜨린 가짜뉴스는 여론을 왜곡하여 정부의 정책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선거판을 어지럽히고 민주주의를 오작동하게 하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을 피해자로 만듭니다. 가짜뉴스가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건 그래서 나온 말입니다.
속이고 또 속이는 도박꾼들의 세계를 그린 영화 ‘타짜’의 한 장면.
상속세 악마화 노린 ‘부유층 엑소더스’ 가짜뉴스
대한상공회의소가 상속세 때문에 부자들이 한국을 떠난다는 허위의 정보를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하였고, 대한상의 출입기자들은 그 보도자료를 근거로 역대급 상속세라느니 상속세를 더는 못 참아 부자들이 상속세 낼 바에야 차라리 이민을 선택하겠다며 미련 없이 한국을 탈출한다는 가짜뉴스를 쏟아냈습니다.
가짜뉴스에는 의도가 있습니다. 대한상의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국민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여 여론을 조종하고 그 여론을 무기로 정부를 압박하여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상속세 정책을 바꾸게 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기자들은 그 의도에 맞춰 상속세 때문에 부자들이 짐 싸서 한국을 탈출한다는 ‘부유층 엑소더스’ 가짜뉴스를 살포하였습니다. 서로 협력했다고 봐야지요. 보도가 나간 뒤에 대한상의의 누군가와 기자들은 자축의 술잔을 부딪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상의가 부자 탈출의 근거로 제시한 자료는 영국에 본사가 있고 세계 여러 나라의 부유층 잠재고객을 상대로 이민 상품을 파는 헨리앤파트너스라는 이민 알선업체의 자료입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마케팅 자료이니 당연히 공신력을 부여할 수 없지요. 그럼에도 대한상의는 그런 자료를 근거로, 한국의 부자들이 상속세 때문에 대거 외국으로 탈출하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보도자료를 낸 대한상의에도, 그걸 대대적으로 보도한 언론에도, 상속세를 악마화하는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취업용 자격증 파는 기관이 부자들 위한 여론조작 하나
기자로 밥 먹고 산 저의 눈에는 그런 불순한 의도가 읽혀 시민언론 민들레에 여론조작을 고발하는 칼럼을 기고했고, 이어서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에도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 기사를 보고 대한상의가 가짜뉴스 퍼뜨렸다고 질책을 하였습니다. 대한상의는 특정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익단체가 아닙니다. 법에 의해 설립된 공적 단체이고, 국가검정시험과 자격증 발부 등 정부가 위탁한 사업으로 얻은 수수료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상고를 나온 저도 고교 시설에 주산, 부기, 타자 급수를 따려고 대한상의가 주관하는 검정시험을 봤었습니다. 물론 돈을 내는 시험이었습니다. 경제적 약자들을 위해 취업용 자격증을 파는 기관에서 부자들을 위한 여론조작을 한다고 생각하니 씁쓸합니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경.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상속세 때문에 부자들이 이민들 떠난다는 보도자료 배포에 대해 사과했다.
헨리앤파트너스에 대해 AI에게 물어봤습니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이민알선업체이고 ‘고액 자산가 이주 보고서’를 발표하는데, 통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추정치 산출 방식이 불투명하거나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 돈으로 국적을 사는 상품을 판다는 비판이 있음에도 한국에선 부자들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이민을 떠난다는 프레임으로 이용되었다는 비판이 있다면서 상업적 목적과 데이터의 불확실성을 고려하여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가짜뉴스라는 질책을 하자 대한상의는 검증이 부실했다며 문제의 보도자료를 폐기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진짜로 검증이 부실해서 그런 실수를 했을까요? 아니지요. 상속세를 악마화하려는 의도가 있었으니 검증은 생각도 안 했을 겁니다. 기자들은 어떠했을까요? 언론의 윤리에는 보도자료라 하더라고 사실 여부를 살피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들도 언론 윤리는 생각도 안 했을 겁니다. 대한상의든 기자들이든 인용하기 전에 사실 여부를 따지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고 상식입니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걸 우리는 ‘미필적 고의’라고 부릅니다.
‘수입품’이라면 사족 못쓰던 60·70년대 재래식 언론 수법
한국은 경제력에서도 군사력에서도 세계 10위권의 강국입니다. 선진국입니다. 그런데 언론은 그렇지 않습니다. 60년대, 70년대에 ‘미제’ 또는 ‘수입품’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숭배하던 시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유층을 잠재고객으로 하는 국제적인 이민알선업체의 고객 유치용 마케팅 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언론의 보도는 그 옛날의 ‘수입품 맹신’을 여론조작에 활용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례는 또 있습니다. 국제언론인협회(IPI)가 허위조작정보를 처벌하는 한국의 정통망법 개정은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폐지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자 국내의 거의 모든 언론은 그걸 그대로 옮겨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IPI의 성명을 기사로 쓴 기자 중에 IPI가 어떤 단체이고, 조선일보와 어떤 관계인지 알아본 기자는 거의 없을 겁니다.
IPI는 기자들의 단체가 아니고 사실상 언론사 사주들의 단체입니다. 물론 언론자유 침해를 감시한다는 명분도 내세우고 있지만, 언론사 사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익단체이고 친목 단체로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IPI에 따르면,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의 한국은 ‘언론 자유국’이었으나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언론감시국’이었습니다. 조선일보 사주인 방상훈 회장은 오랫동안 IPI의 수석 부회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조선일보와는 ‘특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IPI의 성명은 조선일보의 사주에 의한 ‘주문형 성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은 맹랑한 의심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이라는 겁니다.
쿠팡, 극우세력, 조선일보의 ‘초록은 동색’
대한상의가 사과문을 게재하고 보도자료 폐기를 언론사에 요청하는 보도자료를 낸 뒤에 KBS,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신문 등 몇몇 언론사는 관련 기사를 삭제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인터넷에는 헨리앤파트너스의 자료를 ‘상속세 때문에 부자들의 한국 탈출’로 왜곡한 기사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일보와 몇몇 극우성향 매체들은 대한상의가 허위의 정보가 포함됐다며 사실상 기사 삭제를 요청했음에도 관련 기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취재원이 가짜뉴스라고 하는데도 삭제를 거부하는 셈입니다. 조선일보는 허위의 정보도 조선일보가 보도하면 진짜 정보가 되고, 가짜뉴스도 진짜 뉴스가 된다고 믿는가 봅니다. 조선일보의 존재 이유는 독자들에게 진실하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괴벨스의 말처럼 1%의 사실에 99%의 거짓을 섞은 대중 선동으로 조선일보가 의도한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거나.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 번 돈으로 미국 정치권에 로비를 하여 한국 정부를 좌지우지하려는 쿠팡의 행태나, 트럼프 마가 세력에 의존하여 백악관에 이재명 정부를 압박해달라는 내정간섭을 청탁하는 국내 극우세력의 행태는 ‘미제’ 물건이면 무조건 선망하고 숭배하고 국산품은 천시하던 과거와 모습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23일 서울 광화문 광장 미국대사관 앞에서 안전한 쿠팡 만들기 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불법기업 쿠팡 비호, 내정간섭 일삼는 미국 정·재계 규탄 긴급 기자회견 을 하고 있다. 2026.1.23. 연합뉴스
대통령은 국가 자존심 되찾고, 언론은 기자 자존심 지켜야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력에서나 군사력에서나 세계10위권의 강국입니다. 대통령은 힘 있는 나라가 되어야겠다고 하지만 정작 그보다 급한 것은 국가 자존심을 회복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미국에 간 이명박 대통령이 모든 걸 다 내주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합의를 하였을 때, 국가 자존심을 팽개친 굴욕적 협상에 대한 분노가 전국에서 폭발했고 그 분노가 있어 미국과 재협상을 할 수 있었고 국익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의 국가 자존심이 일반 시민의 평균에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재래식 언론이라 하는 겁니다. 우리 기자들이 자존심부터 챙기면 좋겠습니다. 국가 자존심 이전에 기자로서의 자존심을 말하는 겁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 못하고, 월급 받으니까 위에서 쓰라는 대로 쓰는 기자를 기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