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제명, 연출의 정치가 맞닥뜨린 그릇의 한계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국민의힘에서 제명된 한동훈 전 대표가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제명 결정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1.29 연합뉴스
정치는 제도 이전에 사람의 문제다. 아무리 정교한 법과 규칙, 세련된 조직과 전략이 있어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의 인물됨이 빈약하다면 정치는 곧 공허해진다. 정치인의 언어, 책임 앞에서의 태도, 불리한 국면을 대하는 자세는 그가 어떤 그릇을 지녔는지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한동훈의 제명은 이 점에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선택해 온 정치 방식이 도달한 필연적 귀결이다.
한동훈은 짧은 시간에 한국 정치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검사 출신이라는 이력, 공격적인 언어, 선명한 적대 구도는 빠르게 눈길을 모았다. 그는 영리했고, 논점을 선점하는 데 능했으며, 말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기술에 익숙했다. 그러나 정치에서 영리함과 성숙함은 전혀 다른 자질이다. 영리함은 순간을 지배할 수 있지만, 성숙함은 시간을 견딘다. 한동훈의 문제는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인물됨의 한계, 다시 말해 그릇의 크기에 있다.
그의 정치는 처음부터 ‘자기 연출’에 매달렸다. 강한 어조, 자극적인 표현, 끊임없는 대결 구도 설정은 그를 단숨에 정치적 스타로 만들었다. 겉모습을 둘러싼 각종 논란과 이를 과도하게 의식하는 태도, 그리고 말의 수위를 높여 존재감을 유지하려는 전략은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가 이미지로 시작할 수는 있어도, 이미지로 완주할 수는 없다. 연출은 관심을 끌 수 있지만, 실력의 부재를 영원히 가릴 수는 없다.
한동훈은 자극적인 발언으로 팬덤을 확대했다. 그는 늘 ‘강한 사람’, ‘밀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했고, 지지자들은 그 선명함에 열광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강함이 정책과 비전, 책임의 언어에서 나오기보다 외형과 제스처, 발언의 톤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말은 앞섰지만 내용은 뒤따르지 않았고, 이미지는 과잉이었지만 정치는 비어 있었다. 위기가 오기 전까지는 그 공백이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지지자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 1. 24 연합뉴스
정치 지도자의 그릇은 타인에게 들이댄 엄격한 잣대를 스스로에게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가로 가늠된다. 그러나 한동훈의 정치에서 기준은 늘 선택적으로 작동했다. 자신이 속한 권력과 진영의 문제에 대해서는 ‘절차’와 ‘법리’를 앞세워 판단을 유보하면서도, 반대편에 대해서는 곧바로 도덕적 단죄와 강한 언어를 쏟아냈다. 이 이중적 잣대는 우연이 아니라 반복된 습관이다.
그는 수사와 기소의 문제를 다룰 때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정치적 중립을 얘기했지만, 그 원칙은 언제나 방향성을 가졌다. 가까운 권력의 문제는 복잡한 사안으로 세분화되었고, 반대편의 문제는 단순한 도덕의 문제로 환원되었다. 이런 태도는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신뢰를 갉아먹는다. 정치에서 신뢰는 논리로 얻어지지 않는다. 일관성으로 쌓인다.
제명 사태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이런 한계를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는 제명을 자신의 정치적 선택과 언행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치적 음모와 내부의 배신으로 해석했다. 물론 당내 권력투쟁과 정치적 계산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과를 대하는 자세다. 성숙한 정치인은 불리한 결과 앞에서 먼저 자신을 돌아본다. 반면 한동훈은 끝까지 책임의 화살을 외부로 돌렸다.
뚝심의 부재 역시 이번 사태에서 분명해졌다. 그는 강한 말로 정면 돌파를 외쳤지만, 실제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일관된 노선을 끝까지 밀어붙인 적이 많지 않다. 여론이 불리해지면 톤을 낮추고, 정치적 부담이 커지면 한 발 물러섰다. 이것은 흔히 유연함으로 포장되지만, 원칙을 유지한 채 방식을 조정하는 유연함과는 거리가 멀다. 원칙 자체가 상황에 따라 옮겨진다면 기회주의다.
한동훈 정치의 또 다른 특징은 성찰의 부재다. 그의 언어에서 잘못했다”는 표현을 찾기란 쉽지 않다. 대신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유감”, 본래 취지는 그렇지 않았다”는 조건부 표현이 반복된다. 이것은 사과가 아니라 회피다. 정치에서 사과는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책임의 시작이다. 그러나 그는 그 출발선을 의도적으로 피해 왔다.
이런 태도는 정치적 오만으로 이어진다. 자신은 언제나 옳고, 문제는 늘 타인에게 있다는 세계관 속에서 지도자는 점점 고립된다. 비판을 경청하지 않고 공격으로 규정하고, 권력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갇힌다. 한동훈의 정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폐쇄성을 드러냈다. 그는 지지자들의 환호에 익숙했지만, 불편한 질문을 견디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권력에 대한 그의 이해 역시 제한적이다. 한동훈의 언어 속 권력은 책임의 무게라기보다 행사와 통제의 수단에 가깝다. 규율하고, 단죄하며, 심판하는 지위에 대한 집착은 강했지만, 그 권력이 공동체를 어떻게 통합하고 치유할 것인가에 대한 상상력은 빈약했다. 이것은 검사 출신 정치인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한계다. 세상을 ‘죄와 벌’의 구도로 읽는 시선은 정치가 요구하는 복합성과 모순을 감당하기 어렵다.
정치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게임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이해와 가치가 충돌하는 가운데 공존의 길을 찾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인내와 경청, 그리고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동훈의 정치적 스타일은 대결에 최적화되어 있었고, 조정에는 서툴렀다. 그는 설득하기보다 이기려 했고, 합의를 만들기보다 판결을 내리려 했다. 그 결과 그의 언어는 날카롭지만 차갑고, 분명하지만 메마르게 들렸다.
제명은 이런 정치 방식이 제도적으로 표출된 사건이다. 당의 결정이 옳았는가를 떠나 한동훈이 스스로 만든 정치적 조건이 그를 이 자리로 밀어넣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미지와 자극에 의존한 정치,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태도,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이 누적된 결과가 바로 오늘의 제명이다. 이것은 정치적 불운이 아니라 자업자득이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크기로 귀결된다. 한동훈은 능력을 증명했을지 모르나, 성숙함은 증명하지 못했다. 그릇은 타인을 공격한다고 커지지 않는다. 자신을 직면할 때 비로소 커진다. 이번 제명이 단순한 정치적 시련으로 소비되는 한, 그의 정치는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같은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는 상대를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 훈련이다. 그 싸움은 가장 어렵고, 동시에 가장 가치 있는 싸움이다. 한동훈이 그 싸움을 회피하는 한, 그의 그릇은 끝내 이 크기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제명은 그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증명한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이제 한동훈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에 놓이게 되었다. 한때는 강한 언어와 선명한 이미지로 반짝였지만, 정치에서 반짝임은 오래 가지 않는다. 실력과 그릇이 뒷받침되지 않은 주목은 빠르게 소진되기 마련이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그랬듯, 이미지가 실력을 앞설 때 남는 것은 허망한 기억뿐이다.
한동훈 역시 한때 반짝였다 사라진 정치인 중 한 사람으로 남게 될 것인지, 아니면 이 국면을 자기 성찰과 전환의 계기로 삼을 것인지는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확장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의 정치가 여기서 끝날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