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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판사 인사 이동 이유 재판 스톱 …어이없는 무책임 행정

판사 인사 이동 이유 재판 스톱 …어이없는 무책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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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법정에서 흔히 목격되는 기이한 풍경이 하나 있다. 수조 원대 사기 사건이나 한 사람의 명예와 인생이 걸린 중차대한 형사 재판이 결심(심리 종결)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멈춰 서는 장면이다. 이유는 거창한 법리적 쟁점이 아니다. ‘판사의 인사이동’이라는 지극히 행정적인 사유 때문이다. 최근 정철승 변호사가 알려온 항소심 재판부의 행태는 이러한 한국 사법부의 고질적인 ‘무책임 행정’이 어디까지 치달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정철승 변호사 사건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의 작태를 비판한다 정 변호사의 사례를 복기해 보자. 약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서울고등법원의 부장판사 3인은 이 재판을 심리해왔다. 그들은 수많은 증거를 검토했고, 변호인의 변론을 들었으며, 피고인의 표정과 목소리를 직접 목격했다. 재판의 실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이들이 판결이라는 최종적인 책임의 순간을 앞두고 선택한 것은 ‘심리 중단’과 ‘기일 연기’였다. 2월 정기 인사에 맞춰 새로 부임할 판사들에게 사건을 넘기고 떠나버린 것이다. 이를 두고 도망갔다”고 표현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는 사법적 정의를 실현해야 할 법관이 자신의 직무를 행정적 ‘보직’으로만 여기고 있음을 폭로하는 통렬한 일침이다. 이러한 행태의 저변에는 대한민국 사법부를 지배하고 있는 ‘사법 관료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 판사들은 스스로를 ‘헌법기관’이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2년마다 순환 보직을 도는 고위 관료처럼 행동한다. 판사들에게 재판은 한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정해진 임기 내에 처리해야 할 ‘사건 배당량’에 불과하다. 인사이동이라는 행정 스케줄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라는 헌법적 가치보다 우위에 서는 순간, 사법부는 국민을 위한 봉사 기관이 아니라 자신들의 안위를 보전하는 관료 조직으로 전락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공판 갱신’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형식주의다. 재판부가 바뀌면 법적으로 재판을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새 판사가 기록을 읽었다는 전제하에 아주 짧은 요식 행위로 갈음한다. 1년 동안 쌓인 수천 페이지의 기록을 단 며칠 만에 파악하여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다. 결국 새 재판부는 이전 재판부가 작성해놓은 요약 보고서나 검찰의 공소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부실 판결’과 ‘영혼 없는 선고’로 이어진다. 정철승 변호사의 재판은 이제 개인의 사건을 넘어섰다. 이는 대한민국 사법 제도의 모순이 집약된 ‘백화점’이며, 판사가 주인이고 국민은 손님에 불과한 현재의 뒤집힌 사법 주권 구조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우리가 이 사건에 분노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오늘 정 변호사가 겪은 ‘판결 떠넘기기’는 내일 우리 가족, 혹은 우리 자신에게 닥칠 사법적 폭력의 예고편이기 때문이다. 판결은 서류 더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호소를 직접 듣고 고뇌하는 법관의 양심에서 나와야 한다. 그 기본이 무너진 곳에 정의가 설 자리는 없다.   영화 의뢰인 의 국민참여재판 장면.  유럽인권재판소가 세운 직접주의 의 철벽 유럽의 인권 기준에서 보면, 한국 법정에서 재판부 교체 시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공판 갱신’ 절차는 매우 이례적으로 보인다. 유럽인권재판소(ECHR)는 형사재판에서 판결을 내리는 법관이 핵심 증거조사 과정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여러 판례에서 강조해 왔다. 이는 단순한 효율성 문제가 아니라, 유럽인권협약 제6조가 보장하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핵심 요소로 간주된다. 대표적으로 P.K. v. Finland(2002) 사건에서 ECHR는 재판 중 판사가 교체되었음에도 새 판사가 일부 증언을 직접 듣지 않은 채 유죄 판단을 내린 점을 문제 삼았다. 특히 증인의 신빙성이 재판의 핵심일 경우, 기록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ECHR는 여러 판례에서 재판부가 바뀌었다면 핵심 증인을 다시 심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을 반복해 왔다. 이는 ‘기록’이 아니라 직접 대면한 심문 과정이 진실 발견의 본질이라는 인식에 기반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법부는 이러한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인사 행정의 편의 라는 명목 아래 가차 없이 짓밟고 있다. 한국 법원의 판사들은 재판부가 바뀌어도 기록을 모두 검토했다 는 말 한마디로 모든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하려 든다. 이는 법관의 오만이거나 인권에 대한 무지다. 수천 페이지의 기록 속에는 증인의 떨리는 목소리, 피고인의 절박한 눈빛, 변호인의 논리적인 호소 속에 담긴 행간의 진실 이 담길 수 없다. 기록은 진실의 박제일 뿐, 진실 그 자체가 아니다. 결국 정 변호사의 사건을 넘겨받은 새로운 부장판사 3명은, 1년간의 치열한 삶의 기록을 단 몇 주간의 서류 검토 로 갈음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유럽인권재판소가 그토록 경계했던 간접주의의 폐해 이자, 피고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판사 에게 심판받는 잔인한 고문과 같다. 우리가 유럽의 판례를 인용하며 분노하는 이유는, 한국 사법부가 스스로를 세계적 수준이라 자부하면서도 정작 인간의 기본권을 다루는 태도는 철저히 관료적이고 전근대적인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들리지 않는 호소는 정의를 낳을 수 없다. 유럽인권재판소가 전 세계 사법부에 던지는 이 준엄한 경고는 지금 대한민국 서울고등법원의 닫힌 문 앞에서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다. 판사가 바뀌었는가? 그렇다면 다시 들어야 한다. 그것이 싫다면, 처음부터 그 자리를 떠나지 말았어야 한다. 재판은 떠넘길 수 있는 짐이 아니라, 끝까지 짊어져야 할 법관의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배심제 국가 미국이 ‘재판 무효’를 선언하는 이유 배심제 전통을 가진 미국 형사재판에서는 ‘심리에 참여한 구성원의 연속성’을 매우 중시한다. 재판 도중 배심원에게 결원이 생기면, 법원은 먼저 예비 배심원(alternate jurors)을 투입해 심리의 연속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예비 배심원까지 모두 소진되었거나, 더 이상 공정한 평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법원은 ‘불가피한 필요(manifest necessity)’ 기준에 따라 재판 무효(Mistrial) 를 선언할 수 있다. 이는 수개월 동안 진행된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심리에 참여한 주체가 바뀌는 순간 판단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미국 사법의 철학을 반영한다. 미국 법원은 배심원이 단순한 사실 기록자가 아니라, 법정에서 직접 보고 듣는 모든 요소를 종합해 ‘심증’을 형성하는 존재라는 점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공판 갱신’처럼 새 판사가 기록만 검토하고 곧바로 선고하는 관행은 미국 법률가들에게 적법절차(Due Process)의 핵심을 놓친 절차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반해 한국의 ‘공판 갱신’ 절차는 얼마나 기만적인가. 1년 동안 수많은 증인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온 증언들이 단 몇 장의 조서로 압축되어 새 판사의 책상에 놓인다. 한국 사법부는 우리 판사들이 일반 시민인 배심원과는 격이 다른 ‘전문가’이기에, 그 방대한 기록을 단숨에 읽고 진실을 포착할 수 있다는 초인적 신화를 유포해 왔다. 그러나 이는 신화가 아니라 오만이다. 기록은 현장의 에너지를 담아내지 못한다. 조서에 적힌 기억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는, 그것을 내뱉는 증인의 당당한 표정 혹은 죄책감에 젖은 고개 숙임에 따라 완전히 다른 법적 의미를 갖는다. 직접 보고 듣지 않은 자가 기록에만 의존해 내리는 판결은, 악보만 보고 연주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평론가가 공연을 비평하는 것과 다름없다. 미국 시민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재판부 교체 관행은 ‘코미디’에 가까울 것이다. 판사가 인사이동을 앞두고 결심을 미루고, 새로 온 판사가 기록만 보고 며칠 만에 선고를 내리는 장면은 미국 법률가들에게는 ‘적법절차(Due Process)의 전면적 부정’으로 비칠 뿐이다. 배심제 국가에서는 배심원이 판결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중간에 ‘도망가는’ 행위는 주권자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한국의 판사들은 인사철만 되면 합법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사건에서 ‘도망’친다. 결국 이 문제는 ‘사법 전문가주의’라는 미명 아래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 온 한국 사법부의 특권 의식에서 기인한다. 판사는 신이 아니며, 기록은 진실의 전부가 아니다. 배심제 국가들이 비용과 시간을 들여가며 ‘재판의 연속성’을 지키는 이유는,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 법정은 정의를 구현하는 곳이 아니라 행정적 ‘처분’을 내리는 관청으로 타락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철승 변호사가 마주한 ‘떠넘기기 재판’은 우리 사법부가 스스로를 민주적 통제 밖의 관료 조직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과연 우리는 ‘전문가’라는 이름의 기계에게 심판받고 싶은가, 아니면 나와 함께 호흡하며 진실을 목격한 ‘인간’에게 재판받고 싶은가. 깨어난 주권자의 준엄한 명령 - 사법 관료주의의 성벽을 허물라 정철승 변호사의 형사 재판이 보여준 ‘사법 제도의 모순 백화점’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사법 개혁의 가장 생생한 교과서가 되었다. 판사가 판결의 책임을 뒤로하고 ‘도망’칠 수 있는 환경, 기록이라는 껍데기가 생생한 진실의 목소리를 압도하는 환경, 그리고 인사 행정이라는 관료적 편의가 국민의 기본권보다 상위에 군림하는 환경. 이 모든 부조리를 끝내기 위해 우리는 이제 단순한 ‘감시’를 넘어 ‘사법 주권의 탈환’을 선언해야 한다.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법관 임기제의 유연한 운영과 재판 전담제의 확립’이다. 판사가 정기 인사를 이유로 결심 공판을 앞둔 사건을 떠나는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다. 중요 사건, 특히 장기 심리가 진행된 사건에 대해서는 해당 판사가 판결을 내릴 때까지 인사를 유예하거나, 판결 후 임지를 옮기도록 하는 ‘재판 완결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판사의 ‘이동할 권리’보다 국민의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우선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인사 규정에 명시해야 한다. 둘째, ‘공판 갱신 절차의 실질화’가 시급하다. 재판부가 바뀌었을 때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는 한, 핵심 증인에 대한 재신문을 의무화하고 이를 생략할 경우 유럽인권재판소의 기준처럼 ‘절차적 위법’으로 간주하여 판결의 효력을 부인하는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 기록을 다 읽었다”는 판사의 선언을 믿으라는 강요는 사법 독재와 다름없다. 시민의 눈으로 판사가 정말 사건을 파악하고 있는지, 이전의 공방을 숙지하고 있는지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이 모든 개혁의 종착지는 ‘시민 참여형 사법 제도’의 전면적 확대다. 영미식 배심제든 대륙식 참심제든, 이름이 무엇이든 핵심은 하나다. 판결의 권한을 직업 법관이라는 폐쇄적 집단에게 독점시키지 않고, 주권자인 시민의 상식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법정에서는 판사가 인사철이라고 도망갈 수도, 기록만 읽고 판결할 수도 없다. 시민의 눈이 법관의 양심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가 되어가고 있다”는 정 변호사의 말은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다. 이 숙제를 풀 수 있는 힘은 오직 깨어 있는 시민들의 연대에서 나온다. 관료주의의 늪에 빠진 사법부를 건져 올릴 수 있는 것은 판사들 자신의 자성이 아니라, 주권자의 준엄한 명령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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