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엔씨는 위기 김택진의 승부수 통할까?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박병무 신임 공동대표. /사진=엔씨소프트.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엔씨소프트가 투톱 체제로 전환된다.
'독단적 경영 체제'라는 내외부의 비판에도 엔씨는 김택진 대표 중심의 오너십을 구축해왔다. 창사 이래 최초의 공동대표 도입은 엔씨의 위기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엔씨가 경영과 게임 개발로 역할을 나눠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12일 엔씨에 따르면, 전날 박병무 VIG파트너스 대표를 공동대표로 영입했다. 회사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중장기적 컴퍼니 빌딩 전략을 가속화하기 위한 영입"이라며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컴퍼니 빌딩 전략은 핵심 경쟁력을 제고하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다.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전 과정에 걸쳐 유망 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으로 전략 투자, 인수합병 등이 수반될 수 있다. 박 대표는 낙점한 이유다.
박 대표는 사법연수원 15기 출신으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로 재직했다. 2000년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옛 로커스홀딩스) 대표를 시작으로 전문 경영인의 길을 걸어왔다. TPG 아시아(뉴 브리지 캐피탈) 한국 대표 및 파트너, 하나로텔레콤 대표, VIG파트너스 대표를 지냈다. 기업의 자문역에서 직접 경영, 전략, 투자에 이르는 경험을 쌓은 박 대표는 엔씨와도 연이 있다. 지난 2007년부터 사외이사로 합류, 2013년 사내이사에 올랐고, 지난해 비상근 기타비상무이사로 재선임됐다. 15년 간 이사회의 일원으로 엔씨의 경영 전략과 중장기 방향성을 결정했던 만큼, 이해가 깊은 편이다.
박 대표의 정확한 역할은 미정이다. 내년 이사회와 주총을 통해 박 대표와 김 대표의 관계 설정이 명확해질 전망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박 대표는 경영 전반을, 김 대표는 게임 개발에 집중하는 체제를 택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리니지W' 쇼케이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엔씨소프트
엔씨의 리더십 변화는 불가피했다. 엔씨는 김택진 1인 체제를 고수하면서 가족경영체제를 유지해왔다.
김 대표 배우자 윤송이 최고전략책임자(CSO·사장), 동생 김택헌 최고퍼블리싱책임자(CPO·수석부사장)는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주요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특히 김 수석부사장은 엔씨의 쇄신을 논의하는 변화경영위원회의 일원이기도 하다.
문제는 김 대표의 가족들이 기대만큼의 경영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윤 사장이 지휘하는 엔씨웨스트가 6년 연속 적자를 낸 것은 물론 매출 규모도 키우지 못했다. 지난해 엔씨의 북미·유럽 매출은 1650억원으로, 아시아의 4분의1 수준에 불과했다. 김 수석부사장도 엔터테인먼트 자회사인 클렙을 이끌었지만 초라한 성적표만 남겼다. 팬 플랫폼 유니버스는 서비스 초반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충성 이용자 확보에 실패, 결국 매각됐다. 그럼에도 김 수석부사장은 엔씨아메리카LCC 대표에 선임됐다. 더욱이 윤 사장과 김 수석부사장은 수십억대에 이르는 '보상'을 챙겼다.
엔씨의 가족경영이 지난 3월 주총에서 논란이 되자 김 대표는 '경영 능력에 대해 이미 평가를 받았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그는 "윤 CSO는 오랫동안 AI 기술 조직을 이끌어 왔고, 최근 미국서 열린 GDC에서 디지털 휴먼 기술을 발표하는 등 회사에 기여했다. 김 CPO 역시 모바일 시장을 기반으로 해외 매출 증대를 주도했다"며 "CSO, CPO 등 모든 경영인은 똑같이 평가받고 보상받을 뿐더러 (이들에 대한 보상 수준은) 사외이사로 구성된 보상위원회에서 결정한다"고 반박했다.
김 대표의 해명은 내부에서도 공감을 얻지 못했다.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노조) 엔씨소프트지회가 출범한 배경에는 직원들에게는 엄격한 평가의 잣대가 핵심 경영진에게는 느슨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엔씨의 외형 성장이 멈추면서 '경영 실패'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지난 3월, 주총 당시 김 대표는 올해 청사진으로 플랫폼 다변화, 포트폴리오 다각화, 장르 다변화를 제시했다. 미래 시장 리더십을 확보하고, 지속적 성장의 기틀을 마련해 글로벌 종합게임사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올해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김 대표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리니지 지식재산권(IP) 의존도는 여전히 높고, 해외 매출 비중도 기대만큼 늘지 않았다. 이에 엔씨의 부진이 지속됐다.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9.98%, 88.56% 빠졌다. 특히 영업이익은 3개월 만에 53.15% 감소, 시장의 전망치를 밑돌았다.
실적 부진은 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때 100만원대 '황제주'로 분류됐던 엔씨의 현재 주가는 11일 기준 23만원 수준, 최고점과 비교해 4분의 1에 그친다.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의 이중고를 타개할 방안도 마땅치 않다. 리니지의 위력이 예전만 못해서다. '오딘: 발할라 라이징' '나이트크로우' '아레스: 라이즈 오브 가디언즈' '아키에이지 워' 등 리니지 라이크류로 분류되는 경쟁작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따른 잠식효과로 리니지의 매출 하향세가 지속됐다. 이장욱 IR실장은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원래 예상했던 리니지W의 매출 하향안정화 추세에서 이탈한 게 맞다. 유사한 MMO 신작들이 집중 출시돼 리니지 모바일 게임들의의 매출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홍원준 최고재무책임자(CFO)도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인정했다.
신작에 대한 반응도 긍정적이지는 않다. 국내외 테스트 결과를 반영, 출시 일정까지 연기하며 수정했던 쓰론앤리버티(TL)는 지난 7일 국내 출시 이후 '아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주말에도 추가 증설 없이 21개 서버로 운영됐는데, 원활하게 돌아갔다. 이용자가 몰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동시 접속자 수가 10만명 이하에 그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 엔씨의 주가는 신작 출시 다음날 6.4% 급락했다. 투톱체제는 난관 타개를 위한 승부수인 셈이다.
엔씨소프트가 아마존게임즈와 쓰론 앤 리버티(TL) 글로벌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다. 사진. 엔씨.
엔씨에 있어 내년은 실적 반등을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해다. 이에 슈팅게임 LLL, 난투형 대전 액션 배틀크러쉬, 수집형 RPG 프로젝트 BSS와 같은 신작을 연달아 선보인다. 올해 지스타에 8년 만에 복귀, 대규모 시연부스를 꾸려 사전 홍보에 나선 것도 실적에 대한 압박감을 방증하는 것이다.
동시에 경쟁사들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사업 확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 엔씨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수익 다각화를 모색 중이다. 중소형 규모의 한국어 전용 바르코 LLM을 공개한 엔씨는 매개변수(파라미터)의 규모에 따라 기초 모델, 인스트럭션 모델, 대화형 모델, 생성형 모델의 4가지 거대언어모델(LLM)을 순차적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나아가 바르코 LLM 기반 생성 AI 플랫폼, 바르코 스튜디오 사업화가 진행 중이다. 내년에는 교육, 금융, 바이오 분야 등의 파트너들과 협업해 전문지식을 결합한 도메인 전용 모델도 선보일 예정이다.
박 대표는 신사업 확장 과정에서 M&A를 주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엔씨는 마지막 M&A는 2012년, 개발사 엔트리브소프트를 1085억원에 사들인 게 끝이다. 회사가 M&A에 가용할 수 있는 자산은 약2조4000원으로 실탄을 충분하다. 엔씨는 적합 후보군을 놓고 선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홍 CFO는 "게임과 비게임 모든 분야를 고려하고 있으며, 현재 리뷰하는 대상도 있고 주가나 실적을 부스트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고 본다"면서 "M&A는 여러 번을 한다고 좋은 게 아니라 하나를 하더라도 회사에 굉장히 도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략적으로 유의미한 M&A를 할 수 있도록 굉장히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표가 김 대표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체질 개선을 전면에서 이끌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엔씨는 속도감 있는 사업 전개를 위해 △충분한 자원과 이를 적절히 배분하는 경영진의 역량 △경영진의 누적된 경험 △구체적 실행 전략이 뒷받침 될 수 있게 전사프로세스와 구조를 점검하고 있다. 박 대표가 경영 효율화와 경쟁력 제고, 글로벌 확장을 위해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나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시장에서도 비슷한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오동환 삼성증권 연구원은 "2025년부터는 반등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으나 내년에는 실적 부진이 불가피하다"며 "외부 인사가 대표로 선임된 만큼 현재 진행 중인 사업부 개편과 구조조정을 통해 보릿고개를 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