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가 인류에 가장 큰 피해 비판했던 폴 에를리히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연구실의 폴 에를리히. 언제 어디에서 촬영된 것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psiconetwork.com 갈무리
일론 머스크가 지난 2024년 대량 학살 미치광이 이자 인류에게 가장 큰 피해를 끼친 끔찍한 인물 이라고 공격했던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작가, 환경운동가인 폴 랄프 에를리히가 지난 13일(현지시간)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15일 전했다. 그가 눈을 감은 곳은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은퇴 커뮤니티였고, 사망 원인은 암 합병증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스탠퍼드 대학 인구학 명예교수인 에를리히는 인류 문명과 자연 세계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고 전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의 연구는 종종 논란이 되었지만, 지속 가능성, 자원 고갈, 생물 다양성 손실에 관한 세계인들의 대화를 촉발시켰다는 점이 긍정적인 영향으로 꼽힌다고 메모리 트리 닷컴은 전했다. 이 사이트는 고인을 애도하는 이들은 나무를 심으라면서 동참하는 이들의 이름을 기재해주고 있다.
1932년 5월 29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에를리히는 어릴 때부터 자연계, 특히 나비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부친 윌리엄 에를리히는 셔츠 판매원이었고, 어머니 루스 로젠버그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전공한 공립학교 교사였다. 외가는 개혁파 독일계 유대인들로 1840년대 미국에 도착했으며, 친조부모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갈리시아와 트란실바니아 지역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뉴저지주 메이플우드로 이사해 컬럼비아 고등학교를 다녀 1949년에 졸업했다.
그는 생물에 대한 호기심을 열정적으로 추구해 1953년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동물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그 뒤 캔자스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갔으며, 1955년에 문학 석사 학위를, 1957년에 곤충학을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8년 출간된 인구 폭탄 의 표지. 지금 읽어보면 굉장히 섬뜩한 문장이 적혀 있다. 호주 최대 기독교 뉴스 사이트 더 데일리 디클레어레이션 갈무리
에를리히는 1959년 스탠퍼드 대학 교수진에 합류해 경력 전체를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1966년에 생물학과 정교수가 되었고, 1977년에는 인구학 초빙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의 초기 연구는 나비의 진화생물학에 집중돼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를 이루었고, 1964년 식물학자 피터 H. 레이븐과 공동 저술한 영향력 있는 논문에서 이 용어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다.
공진화는 서로 다른 둘 이상의 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하는 것을 말한다. 경쟁과 협동, 그리고 제한된 동일 자원을 서로 다르게 활용하는 것을 피드백으로 활용해 일어난다. 꽃과 수분매개동물의 공진화를 찰스 다윈은 강조했다.
아보카도와 인간도 대표적인 예 중 하나로 언급된다. 아보카도는 유달리 커다란 씨앗을 갖고 있어 마스토돈이나 땅늘보 같은 거대 초식동물들의 먹이가 되어 씨가 퍼졌다. 그러다 마스토돈 등이 멸종되자 씨앗의 크기만 유지하다 인간이 과육만 발라내고 씨는 따로 뿌려서 퍼뜨려 아보카도는 멸종을 면했다.
그런데 그의 가장 널리 인정받고 논란이 많은 저서는 부인 앤 H. 에를리히와 공동 저술해 1968년에 출간된 인구 폭탄 (Population Bomb)이다. 이 책은 통제되지 않은 인구 증가로 인한 대규모 기아와 사회 붕괴를 암울하게 예고해 그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했다. 가장 극단적인 예측 중 일부는 그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 책은 환경 한계와 인구 수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세계인들의 인식과 관심을 높인 것만은 분명했다.
1990년 공동 저술한 인구 폭발 을 출간할 무렵 폴 에를리히와 부인 앤이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www.ditext.com 갈무리
에를리히는 경력 내내 40권 이상의 책과 1200편 이상의 과학 논문을 저술하거나 공동으로 썼다. 그 주제는 나비 생태학부터 인간 행동이 생태계에 미치는 광범위한 함의, 메타인구 역학과 생태계 서비스 같은 핵심 개념까지 확장돼 생태학과 보전 생물학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1984년에는 스탠퍼드 대학에 보전 생물학 센터를 설립해 환경 문제에 대한 학제간 연구와 실질적 해결책에 대한 헌신에 힘썼다. 그는 과학적 이해와 공공 정책을 통합해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성을 증진하는 데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에를리히의 공헌은 1990년 크라포드 상을 포함해 수많은 권위 있는 상으로 인정받았는데, 이 상은 노벨상 시상 범주에 포함되지 않은 분야에서 노벨상에 버금가는 상으로 여겨진다. 또한 1995년 부인 앤 H. 에를리히와 함께 하인즈 환경상을, 1998년에는 타일러 환경 업적상을 수상했다.
때때로 과장하는 어조 때문에 비판을 받긴 했어도 그는 과학자들이 시급한 글로벌 과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책임이 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환경 교육과 보전에 대한 그의 변함없는 헌신은 지속적인 유산을 남기며, 인류와 지구가 직면한 복잡한 도전에 맞서도록 여러 세대의 과학자와 활동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고 메모리 트리 닷컴은 결론내렸다.
그런데 이 부고는 좋은 방향으로만 쓰여진 축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인구 폭탄 은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류 모두를 먹여 살리기 위한 싸움은 끝났다. 1970년대에는 지금 시작된 어떤 급박한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수억 명이 굶어 죽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세계 사망률의 상당한 증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구 절벽 을 걱정하는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터무니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NYT조차 그의 종말론적 예언은 지구 형태에 관한 고대 이론만큼이나 허술하다 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과학 저자 찰스 C. 만은 이 책의 예측이 인구 증가 반대 운동을 부추겼고, 이는 전 세계적 인권 침해로 이어졌으며, 강제적인 인구 통제 정책과 강제 불임 수술까지 포함했다 고 썼다. 특히 에를리히가 파리가 델리 인구의 세 배에 이르렀는데도 델리의 인구 과잉을 강조한 것은 실제 데이터보다 감정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에를리히는 인구 폭탄 을 출간한 지 22년 뒤 인구 폭발 (1990)을 내놓으며 전작이 내다본 인구 재앙이 실제로 일어났으며, 기아가 만연하고 기근과 전염병이 점점 더 임박했다 고 주장했다. 에를리히 부부는 생식권 제한을 주장하고 국가가 그러한 결정에서 더 큰 역할을 하도록 주장하는 반면, 그들이 얼마나 권위주의적인 해결책을 지지할 의향이 있는지 는 모호하게 남겨뒀다는 비판을 자조했다.
이 책은 세계 식량 생산이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주장했는데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1990년대 인도가 심각한 식량 부족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2018년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를 통해 에를리히는 인구 폭탄 이 인구 문제에 대한 세계적인 논쟁을 촉발한 점에 여전히 자부심을 느끼다면서도 과소비와 불평등에 충분한 비중을 두지 않았고, 인종차별 비난에 반박하는 등 책에 약점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세상에 너무 많은 부유한 사람들이 인류의 미래에 큰 위협이며, 문화적·유전적 다양성은 훌륭한 인적 자원 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세계 부유층의 자원 과소비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전례 없는 부의 재분배 를 주장했지만, 현재 다보스에서 매년 세계 파괴자 회의를 개최하는 글로벌 시스템을 운영하는 부자들은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에를리히와 그의 동료 로돌포 디르조는 2022년 공동 논문을 통해 과소비하는 부유층과 중산층 의 출산율과 낭비성 소비를 줄여야 하며, 궁극적인 목표는 현대 멸종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인간 사업의 규모 를 줄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인은 1954년 12월 앤 H. 에를리히(본명 하울랜드)와 결혼해 딸 리사 마리가 1963년 태어났다. 그는 딸 출산 후 정관수술을 받았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