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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한국인들은 왜 단종을 동정하는가

한국인들은 왜 단종을 동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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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 1700만 관객에 다가서면서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위인 영화 (1761만 명)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 엄청난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는 거대한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처럼 위대한 민족 영웅이 등장하는 작품도 아니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단지 비운의 왕인 단종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한국인들은 이 영화에 깊이 몰입했고, 단종의 비극적인 운명에 강한 감정적 반응을 보였다. 의 놀라운 흥행 성적은 한국인들이 영화의 주인공인 단종에게 깊이 공감하고 그를 동정하는 반면, 악역인 한명회를 증오하거나 경멸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해준다. 한국인들은 누군가가 승자 혹은 강자일지라도 그가 부도덕하고 부정의하면 존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증오하거나 혐오한다. 반면에 누군가가 패자 혹은 약자일지라도 그가 도덕적이고 정의로우면 깊이 사랑하고 기억한다. 나아가 악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강하게 공감하며,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한다. 이것은 한국인의 민족심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한 장면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한국인의 도덕주의 나는 『한국인의 마음속엔 우리가 있다』라는 저서에서 한국인의 민족성을 우리, 인간중심, 도덕, 비종교, 낙천으로 정리한 바 있다.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도덕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윤동주의 「서시」는 아마도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 시의 첫 문장이 담고 있는 내용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해보면 그것은 ‘양심에 비추어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고자 하는 요구’, 즉 도덕적으로 살아가려는 강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윤동주 시인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시를 쓴 것은 그가 한국인이어서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를 사랑하는 것 역시 그들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도덕(양심)을 매우 중시하는 민족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인들은 충의나 의리 같은 도덕적 가치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인물들을 끊임없이 추억하고 존경해왔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고려 말기의 충신 정몽주와 최영 장군, 조선 시대의 사육신 등은 모두 승자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그들은 패배자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승패가 아니다. 그들은 악에 굴복하지 않았고, 도덕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한국인들은 그들을 오랫동안 존경하고 기억해온 것이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이성계, 한명회, 이완용처럼 비록 승자이거나 강자였을지라도 부도덕하고 부정의한 인간들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현실 권력을 장악하고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도덕적 정당성을 결여했을 경우 한국인들은 그를 존경하기보다는 경멸한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얼마나 도덕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잘 보여준다.   윤동주 서시 힘을 숭배하는 일본인들, 도덕에 승복하는 한국인들 드라마 가 세계적으로 유행했을 때 상당수의 일본인들은 주인공이 힘이 부족해서 당한 건데 굳이 복수까지 해야 하나?”, 시간이 한참 흘렀고 학폭 가해자들도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왜 끝까지 복수하려 하느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은 이런 일본인들의 반응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이겼다는 사실 자체를 중시하지 않는다. 그 승리가 도덕적으로 정당한가부터 먼저 따진다. 한국인과는 달리 일본인들은 역사적으로 강한 힘에 굴복하는 것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힘 자체를 찬양하거나 숭배하기도 한다. 반면 한국인들은 도덕을 결여한 힘에는 거의 승복하지 않는다. 일본인 학자 가세 히데아끼(1989)는 한국인의 특성을 분석하면서 한국어에는 ‘항복했다’라는 말이 없다”고 말했다.(최상진, 『한국인의 심리학』, 2011, 학지사, 107쪽) 일본인들은 일상생활에서 ‘항복했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그런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기 힘이 부족해서 상대에게 졌을 때 일본인이나 서양인은 항복한다”, 내가 졌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언어 사용법은 힘이 중심이 되는 사회, 즉 힘의 논리에 의해 운영되던 사회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동일한 상황에서 항복한다”는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어디 두고 보자”, 끝난 게 아니다” 같은 말을 한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힘 자체에는 거의 승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무엇에 승복할까? 바로 도덕이다. 한국인들은 자신이 도덕적으로 잘못했다고 판단하면 의외로 빠르게 사과하고 승복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갈등이 생기면 먼저 누가 더 도덕적으로 잘못했는가”를 따진다. 그리고 그 논쟁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판단되면 비교적 순순히 물러난다. 즉 한국인들은 힘의 패배에는 쉽게 굴복하지 않지만, 도덕적 패배에는 비교적 승복하는 독특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도덕을 결여한 승리와 힘에는 거의 굴복하지 않는 반면, 도덕적인 패배와 선과 정의의 좌절에 대해서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깊이 가슴 아파한다. 법이 우선인 미국 사회, 도덕적 책임까지 묻는 한국 사회 미국은 흔히 ‘고소 고발의 왕국’이라고 불린다. 미국에 가면 I will sue you(당신을 고소하겠어)”라는 말을 인사처럼 자주 듣게 된다고 한다.(한국문화진흥원, 『한국인의 문화유전자』, 2012, 아모르문디, 82쪽) 실제로 미국인들은 개인 간의 사소한 분쟁은 물론이고 부모형제 사이의 이해갈등, 이웃이나 동료 간의 충돌까지도 법과 재판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이규태, 『한국인의 힘 1』, 2009, 신원문화사, 205쪽) 개인주의 사회를 유지시키고 작동하게 만드는 핵심 장치는 법이다.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각자가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이해관계 충돌이 자주 발생한다. 그리고 그러한 충돌을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힘 아니면 법이다. 옛 시기를 다룬 서양 영화들을 보면 한 여자를 두 남자가 동시에 사랑할 경우 결투를 해서 이기는 쪽이 그녀를 차지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다소 황당하고 야만적으로 보이는 장면이지만, 그것은 과거 서양 사회가 오랫동안 힘으로 갈등을 해결해 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불공정했기 때문에 시대가 발전하면서 법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개인주의 사회는 법이 없으면 유지되기 어렵다. 모두가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회에서는 객관적인 규칙과 강제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은 개인주의 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가 된다. 반면 ‘우리주의’ 사회였던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법보다 도덕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도덕이란 집단 속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여기는 공동의 행동규범이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집단생활을 해왔고, 집단생활이 가능하려면 공동의 규범이 필요했다. 이러한 필요 속에서 도덕이 생겨났고, 이후 그것을 체계화, 제도화한 것이 법이다.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힘이 아니라 도덕으로 운영되는 우리 공동체 속에서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승패는 단순한 힘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정당성의 문제다. 유도나 레슬링 같은 스포츠 상황을 제외하면 한국인들이 일상에서 항복했다”는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심한 갑질을 했지만 법적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보자. 이때 서양인들은 법을 어긴 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군”이라고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법만 안 어기면 다냐?”라며 강한 분노를 드러낸다. 법적 책임이 없더라도 도덕적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도 여전히 도덕과 도덕적 평가는 법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양심적인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 한국 역사에서 집권세력이 도덕적 정당성, 즉 흔히 말하는 ‘명분’을 상실할 경우 백성들은 쉽게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강한 군사력과 권력을 가졌더라도 도덕적 정당성이 부족하면 결국 정통성 논란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장기집권이 어려웠다.   노무현대통령이 청남대에서 아침 산책 도중 미니골프장에서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있다. 2003.4.18 연합뉴스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졌던 군사독재정권은 군대를 장악했던 가장 강력한 권력이었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은 군사독재정권을 정당한 권력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군사독재정권을 부도덕하고 부정의한 권력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결국 군사독재정권은 끊임없는 정통성 문제에 시달리다가 역사 무대 밖으로 퇴장당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선거에서 반복적으로 패배했던 정치인이었다.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약자이자 패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은 그를 도덕과 정의를 상징하는 정치인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결국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한국인들은 강한 사람이 아닌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 사람을 사랑한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도덕을 중시하는 한국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는 승자와 강자가 대부분의 권력과 부를 독점하며 찬양받는 사회가 아니다. 한국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사회는 양심적인 사람, 정의로운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다. 즉 한명회 같은 인간들이 권세를 누리며 떵떵거리는 세상이 아니라, 단종이나 사육신처럼 도덕과 정의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이 존경받는 사회인 것이다. 영화 에 대한 한국인들의 뜨거운 사랑은 결국 도덕과 정의가 승리하는 세상에 대한 깊은 갈망을 보여준다.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psyth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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