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이 군침 흘리는 K-푸드 열풍 오래 이으려면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Gemini로 생성한 이미지. Thomas Kim 시민기자
해외에 거주하는 교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뉴욕 맨해튼의 홀푸드 마켓에 갔더니 한국 김 코너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더라, 파리의 슈퍼마켓 진열대에 신라면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더라, 런던 거리에서 떡볶이 포장마차를 발견했다는 식이다. 이런 일은 그냥 우연이 겹친 것이 아니다. 지금 세계는 한식, 즉 K-푸드(Food)에 진심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숫자로 먼저 실감해보자.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2025년 K-푸드 플러스 수출액이 136억 2000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2015년 이후 무려 10년 연속 증가세다. 그중에서도 라면은 단일 품목으로는 사상 처음 15억 달러를 돌파했고, 10년 전과 비교하면 수출 규모가 7배 이상으로 커진 셈이다. 더 놀라운 건 라면 수출에서 한국이 라면의 본고장이라 불리던 일본마저 앞질렀다는 사실이다. 이건 단순히 물건 많이 팔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에서 한국이 일본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외국인들은 도대체 어떤 한국 음식에 가장 열광할까.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2025년 세계 20개국 22개 도시의 1만 1000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1위는 단연 한국식 치킨이다. 응답자의 14%가 가장 선호하는 한식으로 꼽았고, 지난 1년간 자주 먹었다는 응답도 28%에 달한다. 바삭한 식감에 달콤하고 매콤한 소스, 거기다 맥주 한 캔이면 완성되는 치맥 문화가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외식 문화와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BHC, BBQ, 교촌 같은 치킨 브랜드들이 태국, 미국, 유럽으로 속속 진출하고, 현지 전용 메뉴까지 내놓고 있을 정도다. 글로벌 미식 가이드 테이스트아틀라스(TasteAtlas)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한국 음식 1위로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을 올려놓았으니, 외국인들의 선택은 이미 오래 전에 결론이 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2위는 김치다. 외국인들이 한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메뉴 1위(40%)가 바로 김치다. 코로나19 이후 발효식품과 장 건강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커지면서, 김치는 이국적인 절임 반찬 에서 건강 슈퍼푸드 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뉴욕 타임스가 김치를 세계 최고 건강식품 중 하나로 꼽은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고, 유럽의 웰빙 트렌드와 맞물려 독일, 프랑스, 영국 슈퍼마켓에도 당당히 입점해 있다. 3위는 비빔밥이다. 채소, 고기, 밥을 한 그릇에 담아 고추장으로 슥슥 비벼 먹는 방식이 건강하고 균형 잡힌 한 끼를 원하는 세계 소비자들의 요구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채식 옵션도 손쉽게 만들 수 있어 다양한 식습관을 가진 외국인들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라면 이야기는 따로 한 줄 더 보태야 한다. 2024년 삼양식품이 라면 수출로만 6856억 원을 벌어들이며 업계 1위를 차지했는데, 불닭볶음면 시리즈의 해외 매출 비중이 무려 75%였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불닭 챌린지 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매워서 눈물 흘리는 게 왜 이렇게 재미있냐 고 했다. 그게 입소문이 됐고, 입소문이 구매로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에 등장한 짜파구리 도 마찬가지다. 영화 한 편이 전 세계 편의점 라면 코너의 지형도를 바꿨다. K-콘텐츠와 K-푸드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이 구조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지속적인 흐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한다.
삼겹살과 갈비로 대표되는 코리안 바베큐 , 줄여서 K-BBQ도 빼놓을 수 없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런던, 시드니 어디를 가도 K-BBQ 레스토랑이 자리를 잡고 있고, 미국에서는 2024년 한 해에만 한국 식당 수가 10% 넘게 늘었다. 식탁 위에서 사람들이 모여 불판에 직접 고기를 구워 상추에 싸 먹는 방식이 외국인들에게는 단순히 식사가 아니라 하나의 체험 이자 이벤트 로 받아들여진다. 한 데 어울려 구워 먹고 소주 한 잔 나누는 한국인의 식사 문화 자체가 콘텐츠가 된 것이다.
길거리 음식도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떡볶이는 최근 4년 사이 수출이 3배 이상 늘었고, 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길거리 음식 1위로 꼽히고 있다. 처음엔 쫄깃한 떡의 식감이 낯설다는 반응이 많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고들 한다. 치즈떡볶이, 크림떡볶이 같은 변형 메뉴들이 현지 입맛에 맞게 속속 개발되면서 팬층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김밥은 또 어떤가. 미국 트레이더조에서 냉동 김밥이 출시되자마자 품절 사태가 났고, 한국에서 떠들썩하게 보도됐다. 외국인들이 이게 뭐야, 초밥이야 주먹밥이야? 하다가 한 입 먹어보고는 이건 완전히 다른 음식이네 하며 빠져드는 광경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K-푸드 열풍의 불씨는 어디서 왔을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K-콘텐츠의 폭발적 성장을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K-팝, K-드라마, 넷플릭스를 통한 한국 영화와 예능의 확산이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별에서 온 그대 가 치맥을 세계에 알렸고, 오징어 게임 이 달고나를 화제에 올렸다. 2025년에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가 누적 시청 3억 회를 돌파하며 또 한 번 K-컬처의 저력을 보여줬고, K-푸드 수출에도 긍정적인 바람을 불어넣었다. 콘텐츠가 식욕을 자극하고, 식욕이 수출로 이어지는 이 선순환 고리가 지금 한국의 가장 강력한 소프트파워 중 하나다.
한식의 만족도 조사 결과도 인상적이다. 2025년 한식 소비자 조사에서 외국인의 한식 만족도가 94.2%에 달했고, 앞으로도 한식을 먹을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80.6%였다. 이건 단순히 맛있더라 는 수준이 아니다. 한식이 이제 세계인의 일상 식생활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실제로 2025년 한국 라면의 월간 수출이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돌파했을 때, 업계 사람들은 이제 라면도 달러를 버는 품목이 됐다 며 놀라워했다. 김 수출도 2024년 기준 약 10억 달러에 육박하며 미국 홀푸드 매장에서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Gemini로 생성한 이미지. Thomas Kim 시민기자
이 모든 숫자와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먹는 김치찌개 한 냄비, 편의점에서 후루룩 마시는 컵라면 한 개, 퇴근길에 시켜 먹는 양념치킨 한 마리가 세계 어딘가에서는 이게 뭐야,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었어? 하며 누군가의 인생 음식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익숙해서 그 가치를 잊고 살지 모르지만, 세계는 지금 한식에 진심이다.
물론 갈 길이 많은 건 사실이다. 라면 원료의 95%가 수입산이라는 점, 맵고 자극적인 맛에만 의존하다가 다양한 식문화권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현지인의 입맛과 생활 방식에 맞게 꾸준히 진화하는 조용한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방향 자체는 이미 맞게 가고 있다. 비건 떡볶이, 글루텐프리 쌀가공식품, 한식 타코 같은 퓨전 메뉴가 현지 시장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고, K-BBQ 레스토랑들이 현지 식재료와 접목한 메뉴를 개발하며 스스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K-Food는 이미 단순한 ‘우리 민족 음식 의 범주를 넘어섰다. 그것은 한국의 역사와 정서, 공동체 문화, 발효의 지혜가 한데 녹아든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우리가 밥상 앞에서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세계인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이 사실을 좀 더 자주 기억하자. 그리고 오늘 저녁 삼겹살 한 점 구워 먹으며, 혹은 김치찌개 한 숟가락 뜨며, 조용히 자긍심을 가져도 좋겠다. 우리가 먹는 이 음식들이 지금 이 순간,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을 테니까. 합장(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