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 대구 지역감정 얼마나 달라졌을까 [뉴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 투표일인 3일 대구 달서구 진천동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가 투표하고 있다. 2026.6.3 연합뉴스
선거철마다 대구의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 후보 현수막이 골목을 가득 채우고 사람들은 환호한다. 보수의 심장 이란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지난 6월 3일 전국동시 지방선거에도 여기는 대구다. 어디 파란당이 오냐, 대구를 지켜달라 는 말이 나왔다. 어릴 때부터 봐온 풍경이다. 그 안에서 자라다 보니, 나도 예전엔 그게 그냥 자연스러운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의문이 생겼다. 대구 사람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것과, 광주 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 정말 같은 종류의 지역감정 일까?
지역감정을 처음 체험 한 것은 군대에서였다
자대 배치를 받고 내무반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출신지를 묻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경상도 출신 끼리 눈을 맞추고, 전라도 출신 병사를 향해 미묘하게 달라지는 선임의 태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지역감정 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장면을 목격했다.
평등하지 않은 상하관계 속에서, 선임의 편견은 아래로 그냥 흘러내렸다. 그걸 문제라고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징병제 국가에서 전국 각지의 청년이 한 공간에 모이는 군대는, 어떤 의미에서는 지역감정을 처음으로- 그것도 아주 폭력적인 방식으로- 경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역감정이 정치 구도로 굳어진 역사적 배경
1987년 대통령 선거로 돌아가보면, 당시 판세는 네 명의 정치인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군부 정권의 후계자 노태우(대구·경북 기반), 민주화 진영의 김영삼(부산·경남 기반), 같은 민주화 진영의 김대중(광주·전남 기반), 그리고 박정희의 오랜 심복 김종필(충청 기반). 이 네 사람의 지지 기반 자체가 이미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두 사람의 합산 득표율은 55%를 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끝내 내가 후보가 되어야 한다 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표는 둘로 쪼개졌다. 덕분에 노태우는 36.6%라는, 역대 직선 당선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은 득표율로 대통령이 됐다.
6월 항쟁으로 군사독재를 끝냈더니, 민주화 진영의 분열 덕에 군부 출신이 다시 대통령 자리에 앉은 것이다. 그 허탈함은 지금 돌아봐도 크다.
더 결정적인 사건은 그로부터 3년 뒤에 터졌다. 1990년 1월, 노태우·김영삼·김종필 세 사람이 손을 잡고 민주자유당을 만들었다. 흔히 3당 합당 이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각자의 속내는 달랐다. 노태우는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된 국회를 뒤집어 정국 주도권을 되찾고 싶었다. 김영삼은 다음 대선에서 김대중을 확실하게 꺾고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김종필은 정치 생명이 꺼져가는 상황에서 권력의 중심에 다시 끼어들고 싶었다. 세 사람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졌다.
문제는 그 합당의 결과였다. 대구·경북(노태우), 부산·경남(김영삼), 충청(김종필)의 지지 기반이 한 덩어리로 뭉치자, 한국 정치 지형은 단숨에 호남 대 비호남 으로 재편됐다. 국토의 거의 전 지역이 하나의 거대 여당 아래 묶이고, 김대중의 호남만 덩그러니 바깥에 남겨진 구도였다.
이 구도는 이후 30년 넘게 한국 선거의 기본 문법이 됐다. 민자당이 신한국당이 되고, 한나라당이 되고, 새누리당이 되고, 자유한국당이 되고, 국민의힘이 됐다. 이름은 계속 바뀌었지만 영남에서의 지지는 선거마다 반복됐다. 지역감정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는데, 30년이 지나 유권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것 으로 내려앉아버렸다.
중앙선관위 공식 홍보 영상에 호남지역 비하를 연상시키는 홍어 이미지가 등장했는데 이 내용이 KBS 뉴스 화면에까지 걸러지지 않고 방영돼 작지 않은 논란이 됐다. KBS 화면 갈무리
군에서 체감한 지역감정, 인터넷 언어로 다듬어져
2010년대 일간베스트저장소(일)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호남을 겨냥한 혐오 표현들이 쏟아졌다. 홍어 , 전라디언 같은 말들이 그것이다. 지역사회와 군대(모든 군복무 장병들이 그런건 아니지만)에서 생긴 편견이 집단적으로 강화되고, 그것이 다시 현실 세계로 스며드는 식이었다. 직접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온라인에서 형성된 언어로 미리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호남의 반감과 영남의 지역감정은 같지 않다
오랫동안 지역감정을 영남 대 호남 으로 대칭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대칭이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호남 사람들이 국민의힘과 그 전신 정당들에 표를 주지 않는 이유는, 역사에 있다고 본다. 박정희 시대에 경부고속도로를 축으로 한 개발에서 호남은 배제됐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잔인하게 진압했고, 시민들이 죽었다. 그리고 그 학살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는 40년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전두환은 숨을 거두는 날까지 자위권 발동 이라는 말을 거두지 않았다.
그 정권을 계승한 정당에 호남 유권자가 표를 주지 않는 것을 단순히 지역감정 이라고 부르는 것은, 나는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정치적 판단이다.
그렇다면 영남의 보수 정당 지지는? 우리가 남이가 라는 말로 요약되는, 같은 지역 출신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뭉치는 정서다. 정당이 어떤 정책을 내놓고, 우리 지역에 실제로 무엇을 가져다줬는지는 그 다음 문제였다. 수십 년째 전국 평균을 밑도는 경제 지표를 가진 대구·경북에서 선거마다 보수 정당이 압도적 지지를 받아왔다는 사실이 그걸 보여준다. 나는 대구 사람으로서 이 점이 가장 의아하고, 또 안타깝다.
그래도 이번 선거는 조금 달랐다
2025년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선관위 발표 기준 이재명 후보는 49.42%, 김문수 후보는 41.15%를 얻었다. 이재명 후보가 앞선 곳은 11개 시도, 김문수 후보가 앞선 곳은 강원, 대구, 경북, 경남, 울산, 부산 6개 시도였다. 그 중 대구는 23% 득표에 그쳤다. 지역 구도는 여전했다.
그런데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뭔가가 달라졌다. 전국 광역단체장 16곳 가운데 국민의힘이 지킨 곳은 대구·경남·경북 세 곳뿐이었다. 부산시장과 울산시장이 민주당 후보에게 넘어갔다. 경남지사도 국민의힘 박완수 후보가 51.28% 대 48.71%로 간신히 지켜냈다.
대구시장 선거 출구조사 결과 화면
그리고 대구.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국민의힘 추경호 후보 49.9%, 민주당 김부겸 후보 49.1%로 득표율이 예상됐다. 추경호 후보가 당선됐지만, 나는 그 숫자를 보면 꽤 오래 화면을 바라봤다. 대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경합 을 만들어낸 것 자체가, 40여년 인생에서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지역감정이 사라지고 있다 고 말하긴 조심스러워
부산과 울산의 변화가 12·3 내란이라는 전례 없는 정치적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상황이 수습된 뒤에도 같은 선택이 반복될지는 알 수 없다. 대구의 49 대 49도, 결국엔 보수 후보 당선으로 끝났다. 추경호 후보는 53.92%, 김부겸 후보는 45.05%를 득표해 11만 5494표 격차로 승부가 갈렸다.
자라온 사회와 군내무반에서 배운 편견, 온라인에서 매일 재생산되는 혐오 표현, 선거철마다 소환되는 지역 결집의 언어들. 이런 것들은 한 번의 선거 결과로 사라지지 않는다. 지역감정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정치적 도구이고, 그 도구의 효과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쉽게 내려놓을 것 같지 않다.
대구 사람이지만, 광주를 적으로 생각한 적 없어
전라도 출신을 만날 때 불편함을 느낀 적도 없다. 그런데 내가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그런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묶일 때가 있다. 그것도 불편하다.
5·18을 말하자면, 그것은 특정 지역의 아픔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험한 길을 걸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역사다. 그래서 매번 영남에서 보수 정당의 높은 지지율을 반박하는 논리로 호남에서 진보 정당의 지지율을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그 학살에 대한 사과 없이 호남의 지역감정을 말하는 건, 순서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남이가 라는 말이 나쁜 말은 아니다. 서로 챙기고 연대하는 정서에서 나온 말이다. 다만 그 우리 의 범위가 행정구역 경계선에서 멈추는 한, 그 말은 누군가를 배제하는 도구가 된다.
대구 개표 화면에 출구조사 결과 49.9%와 49.1%가 떴던 그 밤, 대구 사람들이 뭔가 조금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을까. 확신하지 못하겠다. 다만 그 숫자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에 처음으로 물음표를 달았다는 것, 그것만큼은 분명히 느꼈다.
최우혁 시민기자 hyeok052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