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하고 진화하는 시골살이 모쪼록, 간결하게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창간 때부터 를 애독해 온 독자의 한 사람이다. 에는 이른바 주류 언론이라 칭하는 다른 잡다한 매체와는 전혀 다른 시각의 깊이 있는 기사와 칼럼들을 접할 수 있어 좋지만 특히 지난 1년 동안은 김혜형 작가가 연재해 온 ‘함께 사는 생명’ 칼럼들이 너무 고마웠다. 농촌에 살면서 주변에 숨어 사는 아주 작은 생명들을 소개하는 그의 감동적인 글들은, 자연과 그 안에서 서식하는 뭇 생명들의 소중함에 대한 내 무심함을 일깨워 내 생명관을 한층 고양시켰다.
그 김혜형 작가가 최근 책을 한 권 출간해 독자들에게 소개하려고 한다. 김 작가의 새 책 『모쪼록, 간결하게』에는 작가의 실천하는 삶의 이야기가 그득하다. 오랜 기간 동안 출판 편집자로 일하다가 농사짓고 글 쓰는 자연의 삶으로 이동한 후 작가는 농사짓는 틈틈이 그의 실천하는 삶을 열 권 가까운 책에 담아 출판했다. 그 책들 가운데서도 이번에 출간한 이 책은 그의 삶터에서의 생각과 섬세한 손길이 가득 담긴 아름다운 책이다.
작가와의 인연
사실 나는 김 작가의 오랜 지인이다. 오래전 종교 수행단체 전문지를 편집 기획할 때 김 작가를 알았다. 월간 발행이었는데, 잡지의 내용 가운데에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 가슴에 꽉 차오르는 감동과 감사가 특징인 꼭지가 있기 마련이다. 주로 수행 일기가 그랬다. 그날도 나는 다음 호를 준비하기 위해 수련원의 홈페이지를 깊이 들여다보는데, 한 수행 일기를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수행문 한 줄 한 줄마다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지는 일기로, 한 배의 절을 할 때마다 그 순간에 온 삶을 집중하는 수행자의 글이었다. 눈물과 함께 전율이 일었다. 이런 수행자가 있다니! ‘새벽마다 백팔배를 하고 수행자의 의무로 하루 천 원을 보시하는’ 내용이 그렇게 아름답게 묘사되고 이해되다니! 그에게 즉시 원고 요청을 하게 되었고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작가와의 소중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따라쟁이가 되고 싶은 작가의 삶
‘새로운 터전에 삶을 재배치하자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잊고 있던 내가 깨어나고, 몰랐던 내가 드러나고, 내 몸과 내 손이 가진 가능성이 확장되었다… 몰랐던 영역을 배우고 필요한 도구를 익히며, 도전하고 해결하며 살아 보기로 했다… 새것을 덜 소비하고, 이미 가진 것을 잘 누리고, 기왕 세상에 나온 것들이 제 몫을 다하게 하고 싶다. 저마다의 쓸모만큼 닳도록 쓰이길, 나 역시 한 몫을 다해 잘 쓰이다가 가기를 소망한다.’
책 머리말에 나오는, 작가가 시골살이에 임하던 시절의 다짐과 실천의 선언이다. 책은 세 개의 카테고리로 구성되었고, 1부는 ‘집’에 관한 이야기, 2부는 ‘물건’에 대한 태도, 3부는 ’선물’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간이 쌓이는 집
-집, 상상을 현실로
도시 노동자에서 시골 농사꾼이 되는 과정에 거쳐 간 집들을 일별하고,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하여 두 번의 집을 짓는 동안의 모든 이야기가 들어 있다.
집의 살과 뼈에 피가 돌고 생명력이 들어찬다. 오래 꿈꿔 온 집이 탄생했다. 추상과 상상은 이렇게 구체와 현실이 된다.”
-집의 부록
집에 딸린 뒷간, 헛간, 비닐하우스, 연장 보관함 등이 작가가 직접 만든 집의 부록이 되겠다. 솜씨 좋은 목수님이 지어준 작은 집에 하나씩 붙여 나가는 서툰 부록들이 내 눈에 사랑스럽다. 공간에 시간이 쌓이고 그 위에 다른 공간이 더해지며 우리 집만의 스토리텔링이 완성된다.”
-막막과 만만 사이
나는 진화했다. 어지간한 일은 내 손으로 해결하는 쪽으로… 몸과 손의 제한을 두지 않는 것, 두렵던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는 것, 그 느낌이 참 좋다. 모양이 비슷한 ㄱ과 ㄴ이 뒤집히면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내듯, 익숙한 관성을 거스르면 의외의 자유로움을 만나게 된다.”
손이 좋아하는 일
-따뜻한 나무
작가가 귀농을 계획하며 배운 목공 기술로 만들어 내는 여러 아름다운 가구들이 소개된다. 침대 협탁, 서랍이 달린 책장, 물고기 손잡이 수납장, 비닐봉지 보관함, 나를 위한 행거 등 실용적인 물건들이 아기자기한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형상의 기억
마음속 형상이 손을 통해 흙덩이로 내려온 아기 반가사유상 이야기, 피노키오의 코, 자화상을 비롯해 여러 점의 드로잉에 곁들여지는 작가의 마음 이야기는 저 새벽 수행 일기를 잇는 수행담으로 읽혔다.
-헌 옷의 시간
작가는 오래 전부터 새 옷을 사지 않는다. 필요한 옷이 있게 될 때 자기만의 디자인으로 옷을 짓는다. 그렇게 가족 옷도 만들고 선물도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외손자의 실내복을 거의 다 만들어 입히며 즐겁고 행복했다. 옷을 짓는 일이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아는 나에게 작가의 글 한줄 한줄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쓸모라는 말
우리들 각자가 제 삶의 지향에 따라 제 삶의 속도로 살며 제 쓸모를 다하려 애쓰는, 아주 작은 하나의 점”이 될 수 있기를!
인생이 담긴 선물
-떼어 주다, 내 인생의 일부
선물을 마련하는 이야기. 이미 만들어진 규격화된 선물 말고 작가의 시간과 마음이 담긴 선물 이야기가 조용히 흐른다. 그의 선물을 받은 이 가운데는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도 여럿 있다. 그이들에 대한 작가의 마음 조각들이 슬픔으로 둥둥 떠다닌다. 사람은 떠나고 없는데, 그 손길이 만든 물건이 곁에 남아 남겨진 사람들을 울리고 또 달랜다.
-물려받다, 그의 인생 한 조각
손수 만든 선물은 인생의 일부를 떼어 주는 일이어서, 잊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를 잊을 수 없게 한다. 사랑해서 겪게 되는 부재의 고통은 견디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 존재의 허망함을 인정하고, 함께 있는 시간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떠난 이의 유산과 동행하며 남은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기억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이야기 중 고모 이야기, 향유 님 이야기는 가슴 저리게 슬프다
자그마한 판형으로 세상에 나온 책 『모쪼록, 간결하게』는 간결한 표지가 감싸고 있지만 그 안에는 머리말부터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김혜형 작가의 온 삶과 사유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저마다의 쓸모를 생각하며 스스로 만들고, 덜 버리며 사는 실용 창작 라이프라는 책 내용에 대한 소개말이 뒷표지에 있지만, 나는 이 글들에 흐르는 작가의 내면 이야기를 따라 감탄하거나 혹은 눈물지으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