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정서 기댄 정치 그만… 구동존이 로 한중미래 열어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1992년 8월 24일 수교 직후 한중관계는 ‘선린우호 협력관계’로 출발해 무역·교류가 급속히 확대되는 황금기를 맞았습니다. 수교 직후에 중국으로 몰려간 한국인 관광객들은 엄청난 환대를 받았고 돈의 위력을 만끽했습니다. 이제 막 시장경제로 진입한 사회주의 중국과는 그만큼 환율의 격차가 컸어요. 더구나 위생과 인프라의 열악함, 사회주의 경제의 비효율적이며 혼잡함 등등 여러모로 자본주의 한국과 비교가 되었지요.
2017년 7만 3천여 명 유학생이 2024년 1만 5천 명으로 급감
당시 중국은 비록 이념적으로는 달랐지만, 엄청난 시장으로서의 기대를 주었어요. 1993년 중국의 GDP는 한국보다 약간 높은 약 4500억 달러였지만, 11억에 달하는 인구로 인해 1인당 GDP는 4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해 한국의 1/20 수준이었습니다. 이는 한국인들이 당시 중국에서 목격한 빈곤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1994년에는 한국을 배우기 위한 중국인 유학생 숫자도 수백 명에 불과했지만 2008년에는 3만 명을 돌파했어요. 2017년에는 7만 3240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한국에 온 유학생 전체의 50%에 육박하는 수치였어요. 그러다가 2023년부터 급속히 감소되기 시작하여 2024년에는 1만 5000명으로 급감했고 현재 10%대로 비중이 축소되었습니다.
수교 초기에 134만 명이었던 한국인 중국 관광객은 2011년에 400만 명을 돌파하였고 2016년에는 800만 명을 넘겨 최고치를 기록했어요. 사드와 코비드-19 등으로 많이 감소했지만, 2023년에 500만 명을 넘겼습니다. 중국인 한국 관광객도 2023년에 500만 명 수준을 회복했으며, 2025년에는 1800만 명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사드 배치와 한한령으로 금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
정치적으로도 1992년 10월 31일 노태우 대통령이 국빈 방문한 이래, 이명박에 이르기까지 정당을 떠나 모든 대통령이 열 차례 중국을 방문하였어요. 중국 정상들도 비슷한 숫자만큼 한국을 다녀갔습니다. 2008년에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선포하였으며, 2015년 9월 3일에는 천안문 망루 위에 시진핑, 푸틴과 함께 박근혜가 나란히 올라 중국군의 행진을 관람했어요. 중국은 한국을 ‘오랜 친구’라고 불렀으며 박근혜는 시진핑과의 오랜 개인적 인연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사드 배치와 중국의 한한령 보복으로 급변했지요.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9월 3일 베이징 톈안먼 성루에서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군사퍼레이드를 지켜보며 박수치고 있다. 왼쪽부터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박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2015.9.3. AP 연합뉴스
여기에 최근에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반중 나아가 혐중을 내세우는 세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대체로 보수를 자칭하는 세력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모습은 자신들이 떠받드는 이명박과 나아가 가장 친중 인사를 자처했던 박근혜가 중국에 대해서 보였던 태도와 비교하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어요.
거기에는 중국 측의 책임도 있습니다. 중국이 ‘도광양회(韜光養晦)’ 그리고 ‘화평굴기(和平崛起)’를 표면에 내세웠을 때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반중의식을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시진핑 체제 이후 ‘중국몽(中國夢)’으로 대표되는 중화민족주의·애국주의, 신장 위구르·홍콩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탄압 행위, 대만을 향한 무력 시위 등을 통해서 꾸준히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드 사태 이후 나타난 한한령 그리고 ‘우한폐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던 팬데믹 현상으로 증폭되었지요. 이러한 양상이 나타나는 데에는 언론의 책임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이 양국의 극단적 키보드 워리어들의 무책임하고 과잉된 의견을 찾아내어 보도함으로써 서로 간의 적대적 감정을 자극하고 있는 것인데요.
이념보다 경계심과 우월감으로 반중의식 키워온 청년세대
대개 미국과 중국에 대한 호감 여부는 이념적 성향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보층은 친중·반미, 보수층은 친미·반중 성향을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국의 청년층이 반드시 이념적 입장에서 반중 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디지털 시대의 민족주의는 더 많은 정보량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6년 사드 배치가 불러온 중국 내 한류 문화 금지 조치, 즉 한한령은 기억의 일부분으로 강하게 남아 있어요.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에도 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청년세대들이 중국의 성장과 함께 자란 세대라는 점도 오히려 이들의 반중 의식을 키우는 데 작용을 했는데요. 정치, 군사, 경제적 측면에서는 눈부신 성장을 이뤄내고 있는 중국에 대해 경계하며, 사회문화적으로는 한국이 이루어낸 성취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기성세대에게는 낯선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기업에 대해 청년들은 익숙하지요.
하지만 이들에게 중국은 경쟁해야 하는 상대이고, 구분되고 싶은 이웃입니다. 동북공정을 비롯한 역사문제를 비롯해서 중국 대중문화가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한복 논란’을 비롯하여 한국 문화를 중국 문화인 것처럼 가져다 쓰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온라인상에서 다시금 반중 정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원인이 되고 있어요.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단체가 19일 오후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에서 반중 집회를 벌이고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명동거리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다. 2025.9.19. 연합뉴스
청년들 반중정서 이용하려는 정체성 정치의 위험성
현재 한국의 청년세대들의 기억 속에는 과거의 도광양회, 화평굴기를 이야기하던 겸손한 중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국몽, 일대일로(一帶一路), 대륙굴기(大陸崛起)를 내세우는 중국만이 기억되고 있지요. 이익 증대를 위해 주변국을 무력으로 압박하고 경제제재를 가하는 중국은, 한국의 안보와 경제를 위협하는 대상으로 인식될 뿐입니다.
K-문화는 사실 한국 청년세대의 자존심이지요. 한국이 BTS와 블랙핑크를 선두로 세계적으로 K-pop을 주도하고 있고 K-드라마, K-음식, K-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들이 점점 주류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한때 저작권도 무시하고 모방하더니, 지금 한국이 그동안 쌓아온 문화적 자부심을 건드리며 아예 자신들의 아래에 놓으려고 한다고 생각하지요.
출처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24 통일의식 조사 2024.11.30. 시민언론 민들레
중국의 젊은 세대들도 강해진 중국의 부활을 당연시하며 한국을 전통적 속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커졌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고유문화를 중국의 모방, 하류로 주장하는 흐름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제 한국 청년들의 반중정서는 오랜 경험과 기억을 통해 축적되었기 때문에 중국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 장기간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이들이 한국 사회의 주력이 되어 가면서 점차 한국 사회의 주류 시각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리고 반중의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러한 정체성 정치이며 실제로 그러한 시도가 먹히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한국 청년들의 불안감 해소 위한 중국의 존중과 배려
분명한 것은 특정 민족, 특정 국가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과 혐오의 원인을 찾아내어 해결해 나가는 노력도 분명히 중요한 일인데요.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은 한편으로는 불안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자기 방어와 도피의 심리기제를 반영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결국 대한민국 청년세대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존중과 배려가 필요한데, 중국의 태도는 존중과 배려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반중을 넘어 혐중에 가까운 태도가 형성된다고 말할 수 있어요. 따라서 중국이 한국 청년세대의 반중의식을 누그러뜨리려면 한국에 대한 호혜정신과 존중, 배려라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 왔어요. 한사군과 수‧당의 침입이 있었지만 주로 한족이 지배하는 왕조에서는 사대외교라는 틀 속에서 평화적인 관계를 수립해 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약화된 모습을 보일 때에는 오히려 공세적인 모습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사대외교는 사대주의와 다르며 결코 고정불변의 외교가 아닙니다.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2026.1.5 연합뉴스
호혜와 구동존이 정신으로 상호신뢰 쌓아가야
중국은 21세기 들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며 미국과 경쟁 중입니다. 한중 무역은 2010년에 들어오면서 세계 최대 교역국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1992년에 비해 2010년에는 교역액이 75배나 증가하는 폭발적 성장을 보였고, 최근에도 중국은 한국 무역의 20%를 차지하는 나라이지요.
하지만 1인당 GNP는 2024년 기준 1만 3000달러 수준으로 ‘중상위 소득국’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에 대해 지나친 위압감을 느낄 필요도 없지만 우월감을 느끼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요. 공통점을 찾고 차이점은 그대로 존중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존중해 나가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진오 역사학자·상명대 명예교수
이념과 명분에 따라 중국과 불필요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현실외교와 실용외교의 측면에서 피해야 하는데요. 상호신뢰를 쌓아나가는 것이 한국의 미래를 위해 훨씬 유리할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닐테지요. 하지만 양국의 지도자들은 물론 국민들 각자가 이러한 기조를 깨뜨리지 않도록 노력해 나가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