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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이란 이름의 독침, ‘영성적 민주주의’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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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한 달 앞둔 3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종합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2026.5.3. 연합뉴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이 전쟁터다. 그곳은 정당들이 존망을 건 권력투쟁을 벌이는 전장이자, 당원 주권주의 를 명분으로 결집한 패거리들(?)이 사활을 거는 싸움터다. 가치지향도 없고, 정책토론도 없고, 인물비평도 없다. 오로지 조직표의 동원이 있을 뿐이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다. 내가 살고 있는 전북특별자치도에서는 분명 그렇게 관찰된다. 민주당 독점체제 아래서 결과적으로 도민은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배제된다. 뭇 생명과 비인간 존재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느 법철학자의 지적대로 ‘주권주의’는 ‘독침’이 되었다. ‘당원 주권주의’의 역설: 당원은 있다 국민은 없다 2026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북의 민주당은 전례 없는 대혼란에 휩싸였다. 압도적으로 지지율 1위를 달리던 현직 도지사가 현금 살포 의혹으로 당에서 제명되어 경선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이번엔 2위와 3위 양자 경선에서 미세한 차이로 패배한 후보자가 승리한 후보자의 ‘식사비 대납 의혹’에 대한 감찰의 형평성을 문제 삼으며 12일간 단식을 했다. 경선과정에 흔히 일어나는 정치적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엔 뭔가 심상치 않다. 호남 곳곳의 민주당 경선과정에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나에게 그것은 ‘당원 주권주의’의 민낯으로 보인다. 그간 민주당은 권리당원 투표의 비중을 꾸준히 강화해왔고 최근 지도부는 1인 1표제 당헌 개정을 통해 ‘당원 주권주의’를 제도화했다. 이른바 ‘당원 주권시대’가 열린 것이다. 6·3 지방선거 경선 투표권을 가진 민주당 전북도당의 권리당원 수는 2026년 3월 현재 약 19만 명이라고 한다. 전북지역 경선은 권리당원 100% 또는 권리당원 50%, 혹은 국민 여론조사 50%를 적용하게 되어 있어 이들 19만 명의 권리당원이 공천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민주당 독점체제 하에서 전북 유권자의 단 12%가 지방정부 수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사실상 간택 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당원 주권주의가 지배하는 민주당 경선은 조직력과 패거리 정치의 각축장으로 전락했다. 경선 후보자들은 자신을 지지할 권리당원을 수백, 수천 명씩 모으고(일부에서는 당비를 대납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에 사는 권리당원이 전북의 민주당 경선에 동원되기도 한다. 정책토론과 인물에 대한 평가는 거의 사라지고, 당원들은 이해관계와 친소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선거가 끝난 후에는 논공행상과 이익 배분이 이루어지고 끈끈한 경제공동체로 지속된다. 물론 이런 현상은 전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2026년 6.3 지방선거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전북의 정치 현실은 선을 넘어버렸다. ‘문제가 있다’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해악이 되고 있다.   주권자의 승리.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1년이 되는 4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6번 출구 앞에서 열린 4.4 내란청산 사회대개혁 주권자 승리의 날 시민행동 에서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기록기념위원회 등 참석자들이 플래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2026.4.4. 연합뉴스 주권주의의 독침 사실 ‘당원 주권주의’에 대한 우려는 적지 않았다. 치명적인 문제는 포퓰리즘과 극단주의 가능성이다. 민주당에서도, 국민의힘에서도 당원 주권이 강조되면서 강경파들이 득세하고, ‘선악’ 이분법과 갈라치기가 난무하며 합리적인 중도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연구자들도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법철학자 이현경이 제기한 주권주의의 독침 이라는 은유도 그중 하나이다. 2022년 발표한 논문 「주권 개념의 본질과 근대주권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에서 이현경은 오늘날 주권을 둘러싼 모순적 현상을 분석하면서 기존 주권론이 간과해온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다. 주권 개념과 주권의 어휘들을 보유하는 것 자체가 야기하는 잠재적 위험성이나 해악은 없는가 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서구 근대의 ‘주권(Sovereignty)’ 개념은 ‘최고성’, ‘절대성’, ‘항구성’, ‘최종성’을 핵심 속성으로 삼아왔다. 주권은 공화국의 절대적이고 영구적인 권력 이었으며, 이 절대주의적 주권관은 다양하게 변주되면서도 지배와 복종의 이중 구조를 유지해 왔다. 일찍이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는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 는 라는 명제를 통해 법질서의 바깥에 서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 속하는 이른바 주권자의 역설 을 폭로한 바 있다.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이를 ‘민중의 자기 지배’ 역설이라고 말했다. 이현경은 이 역설이 단순히 이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한다. 절대 권력으로서의 주권론은 탄생 당시에는 사회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긴급 처치로서 역할을 했지만, 그 개념은 후세대에까지 전승되어 우리의 사고와 행위를 규정하는 강력한 프레임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독이 되어 우리를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주권이 ‘방편’이 아니라 ‘절대 진리’가 되고 ‘주권주의’로 이념화된다. 이현경은 이를 주권주의의 독침 이라고 말한다. ‘주권주의의 독침’이란 근대국가 형성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또는 극심한 사회 혼란과 불안의 정국을 잠재우기 위하여, 또는 실정법 질서나 규범이 작동하지 않는 예외상태에서 일종의 긴급처치로서 ‘절대적이고 항구적인 지고의 지배 권력’으로서 ‘주권’이란 개념을 발명하여 그 개념과 이론에 의거하여 상황에 대처하고 정당화하였는데 - 필자는 앞선 장에서 이를 ‘필요악 항변’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 그 결과 결국 후세대에까지 ‘주권’이란 독침에 마비된 상태로 안주하고 있거나, 그 틀 안에 갇혀 발버둥치고 있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렇다. 오늘날 우리는 ‘주권 만능주의’를 목격하고 있다. ‘국민 주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당원 주권’, 소비자 주권 , 조합원 주권 등이 그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기술 주권’, ‘식량 주권’, ‘정보 주권’, 심지어 ‘셀프-주권’, ‘검찰주권론’ 등 각종 특화되고 분화된 ‘주권들’이 독침이 되어 한국사회를 찌르고 있다.   우리가 윤석열이다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1년이 되는 4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5번 출구 앞에서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윤 어게인 집회를 갖고 있다. 2026.4.4. 연합뉴스 각비(覺非): 국민은 있다 ‘비국민’은 없다 ‘주권’ 개념은 ‘혁명의 논리’이면서 동시에 ‘배제의 논리’다. 국민주권의 논리는 왕의 주권을 타도하는 정당성의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국민주권은 왕권만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외국인과 이주민, 비인간 존재 등 ‘비국민’ 모두를 배제한다. 다시 말해, 주권의 논리는 ‘포함/배제’의 논리인 것이다. ‘당원 주권’은 ‘비당원의 주권’을 배제한다. 전북에서 본 것처럼, 당원 주권주의는 비당원 즉 도민과 비인간 존재들은 시야에서 제거한다. 조합원 주권은 비조합원을 배제한다.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배타적 이익 배분 요구와 삼성전자 노동조합 내의 노·노 갈등은 ‘포함/배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당원은 비당원과 함께할 때 당원이라는 것을. 국민은 비국민과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각비(覺非, ~가 아님)를 배제되고 삭제된 비(非)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이제 우리의 과제는 비당원, 비국민, 비인간을 고려하는 법, 더불어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 된다. 비아(非我)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영성’이라고 말해도 좋다. 철학자 김상봉은 2024년에 출간한 『영성 없는 진보』라는 책에서 진보의 위기를 영성 개념을 통해 분석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으며, 그 근본 원인은 나와 세계가 하나라는 믿음 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김상봉의 문제제기는 ‘보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배제의 문제로, ‘배제된 것들’에 대한 자각의 필요성으로 읽혀진다. 비당원, 비국민에 대한 각비(覺非)가 절실하다는 말이다. 요컨대, 주권주의의 독을 빼는 힘은 각비의 능력, 즉 영성으로 나온다는 말이다. 더욱이 우주생명학의 관점에서 국민주권의 ‘국민’은 너무 협소하다. ‘국민(國民)’, 즉 ‘나라의 백성’은 사회·정치적 의미로 정의된 개념이다. ‘국민’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구성물로서 그것이 지시하는 인간 실존은 일차적으로 ‘역사적 존재’이지만, 동시에 인간은 ‘신체적 존재’이며 ‘의식적 존재’이고, 나아가 ‘우주적 존재’인 것이다.   4일 29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타우누스 지역의 숲에서 사슴들이 길을 찾아가고 있다. 2026.4.29. AP 연합뉴스 주권 에서 관계 로, 관계 에서 영성 으로 이현경의 문제제기도 각비의 문제의식도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인간을 독립된 개체로 보는 ‘개체적 실체론’에 기반한 주권 패러다임을 넘어서자는 것이다. 이현경은 그것을 ‘관계주의’로의 전환이라고 이름 붙이며, ‘관계주의 법철학’을 구상한다. 이현경에 따르면, 전통적 주권론에서 권력은 특정 주체 — 군주이든 국민이든 당원이든 — 에게 귀속된 고정된 실체로 파악된다. 이 관점에서 주권은 소유하거나 빼앗거나 이전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관계론적 접근은 권력을 명사가 아니라 동사 로, 즉 움직이고 작동하는 것 으로 이해한다. 권력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그 관계가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느냐에 따라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이 전환은 민주주의 이해 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요청한다. 민주주의를 다수결의 원리나 주권자인 국민의 절대적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하는 한, 우리는 국민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독재 나 다수의 횡포 를 원리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우리는 파시즘과 트럼프와 네타냐후를 통해 충분히 배우고 있다) 관계론적 접근은 묻는다. ”이 권력이 어떤 관계 맺음의 방식으로 작동하는가? ”관계 안에는 상호 존중과 책임, 배제된 자들을 향한 응답이 있는가? 그러나 우주생명학의 관점에서는 관계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관계론은 나와 너 의 만남, 즉 사회적·인격적 관계의 망에 주목하지만 분리와 구분을 전제하고 있다.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더 깊은 근거, 즉 존재 자체의 연결성과 하나됨의 경험에 아직 충분히 열려 있지 않다. 우주생명학은 사회적 관계만이 아니라 ‘생명의 우주성’에 유의하고자 한다. 김지하는 이를 ‘사회적 공공성’과 구분해 ‘우주사회적 공공성’이라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영성‘ 개념을 빌어 말해도 좋을 것이다. 단, 나에게 영성은 ’이것‘이라고 지시되거나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각비, 즉 ‘~ 아님’으로 경험되고, ‘~ 아님’으로 이해된다. 예컨대, 존재론적으로 그것은 분리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개체적’이면서도 동시에 ‘비개체적’인 존재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떠올린다. 인식론적으로 그것은 ‘무지(無知)’에 대한 자각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밖에 없는 역설에 대한 앎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각비의 민주주의, 영성적 민주주의 의 상상력 나에게 ‘주권’은 진리가 아니라 방편이다. 나에게 ‘주권’은 포함하는 순간 배제하게 되는 ‘포함/배제’의 역설이다. 나에게 ‘주권’은 역사적 존재의 권리 아래 숨겨진 ‘영성적 생명’의 욕망, 희망, 열망이 표현되는 우주적 사건의 현장이다. 이를 ‘각비의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고, ‘영성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도 ‘초월 사회학’, ‘영성 사회학’을 탐색하는 사회학자들이 적지 않다. 미국에는 『영성 민주주의(Spiritual Democracy)』라는 제목의 책도 나와 있다. 스티븐 헤르만(Steven B. Herrmann)의 『영성 민주주의: 앞길을 위한 초기 미국 선지자들의 지혜(성스런 행동주의)』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영성적 민주주의를 인류와 우주 및 그 모든 힘이 하나됨을 실현하는 것 으로 정의한다. 내면의 전환을 통해 타자와의 연결을 회복하고, 그 연결로부터 새로운 공동의 삶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맥락에서 영성적 민주주의 는 어떤 모습일까? 물론 그것은 ‘주권주의의 독침’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생태위기의 시대이자 빅카오스의 시대, 인류사적 대전환기의 오늘, 당원 주권, 국민 주권, 조합원 주권, 소비자 주권 등 절대 권력의 귀속 주체를 교체하는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주요섭 (사)밝은마을 생명사상연구소대표 각비와 영성에 기반한 ‘또 다른 민주주의’, ‘또 다른 정치’의 발명을 상상해 본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만물의 정치와 ‘코스모폴리틱스(cosmopolitics)’를 논의하고 있다. 한국과 동아시아에서는 오래 전부터 마음의 정치와 ‘우주정치학’을 사유하고 또 실행해 왔다. 이제는 그 상상력을 더욱 넓힐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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