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쓴 베스트셀러, 세상을 바꾼 땜장이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400년 전 감옥에서 나온 책 한 권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 천로역정 을 쓴 사람. 그런데 이 작가가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땜장이 아들이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통쾌한가.
1628년 잉글랜드 베드퍼드셔에서 태어난 번연은 아버지 토머스 번연(Thomas Bunyan, 1603~1676)의 대를 이어 냄비를 고치는 일을 배웠다. 요즘으로 치면 중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학력에 기술직 집안 출신. 그런 그가 200개 언어로 번역된 명작을 썼다. 물론 요즘 한국에선 개천에서 용 이 불가능해졌지만 말이다.
1684년 토머스 새들러가 그린 존 번연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내전과 급진사상의 세례
1644년 열여섯 살 번연은 잉글랜드 내전(1642~1651)에 징집되었다.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이 이끄는 의회파 군대는 급진적 종교사상의 용광로였다. 퀘이커교도, 탐구자파, 광란파... 이들은 기존 권위에 도전하며 개인의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외쳤다.
열여섯 살 소년이 사회 밑바닥에서 가장 뜨거운 사상의 현장으로 던져진 것이다. 마치 2010년대 한국 청년들이 촛불집회에서 정치적 각성을 경험한 것처럼. 번연은 여기에서 진리를 향한 완고한 개인적 탐구 라는 급진파 사상을 접했다. 이것이 그의 작품세계 근간이 되었다.
엘스토우에 있는 번연의 하이 스트리트 오두막 (위키피디아)
회심과 불법 설교자
1647년 제대 후 1649년경 결혼한 번연은 극도로 가난했다. 접시 하나, 숟가락 하나 없이 결혼했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내가 가져온 경건서 두 권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거리를 걷다 우연히 들은 가난한 여인 서너 명 의 대화도 그를 변화시켰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 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번연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느꼈다.
1655년, 번연은 베드퍼드의 존 기포드(John Gifford) 목사에게 침례 받고 설교를 시작했다. 국가가 허가하지 않은, 불법 설교를.
감옥에 갇힌 번연을 상상한 1881년 그림 (위키피디아)
12년 감옥, 그리고 펜의 반격
1660년 찰스 2세(Charles II, 1630~1685)가 왕정복고를 선언하자 급진 청교도들은 탄압받았다. 같은 해 11월 12일, 번연이 체포되었다. 죄목은 불법 설교 .
재판정에서 그는 선언했다. 설교를 멈추라고 하시면, 오늘 감옥에서 나가더라도 내일 다시 설교하겠습니다. 결과는 12년 형. 아내와 네 자녀, 그중 시각장애인 딸 메리(Mary)를 두고 감옥에 가야 했다. 하지만 번연은 굽히지 않았다.
감옥에서 그는 신발 끈을 만들어 가족을 부양하며 펜을 들었다. 1666년 영적 자서전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를 썼고, 1667년부터 1672년까지 천로역정 1부를 집필했다.
여기에서 한국의 현실이 겹쳐진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에 간 청년들, 국가보안법으로 옥살이를 한 사상범들. 신영복(1941~2016)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김지하(1941~2022)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 . 권력은 몸을 가둘 수 있어도 정신과 펜까지 가두지는 못했다.
번힐 필즈에 있는 번연의 무덤 조각상 (위키피디아)
베스트셀러와 풍자의 칼날
1672년 석방되어 목사로 임명된 번연은 1677년 또다시 6개월 투옥되었고, 이때 천로역정 을 완성했다. 1678년 2월 18일 출판된 이 책은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번연 생전에만 10만 부가 팔렸다.
이유는 명확했다. 첫째, 라틴어가 아닌 평이한 영어로 썼다. 교육받지 못한 평민도 읽을 수 있었다. 둘째, 권력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담겼다.
허영의 시장 (Vanity Fair) 에피소드를 보자. 주인공이 옷차림과 말투가 다르다는 이유로 체포된다. 재판장 증오선 (Judge Hategood)은 고대 폭군들의 법령으로 그를 정죄하고, 동료 신실은 화형 당한다. 이것은 명백히 왕정복고 시대 종교탄압의 풍자였다.
한국 독자들은 곧바로 이해할 것이다. 정상 의 틀에 맞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으로 낙인찍히는 사회. 미니 스커트와 장발 단속 시대, 빨갱이사냥 시대. 번연의 허영의 시장 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풍자다.
천로역정 1678년 초판 (위키피디아)
세계를 바꾼 한 권의 책
번연은 1656년부터 1688년 사망 때까지 무려 42권의 책을 썼다. 60세를 앞둔 그는 아버지와 아들의 불화를 중재하러 말을 타고 갔다가 폭우를 만났다. 흠뻑 젖어 열병에 걸렸지만 다음 주일에도 설교했다. 이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1688년 8월 31일, 런던에서 그는 숨을 거두었다.
천로역정 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 1709~1784)은 가장 교양 있는 사람도 이보다 더 칭찬할 것을 찾지 못하고, 어린아이도 이보다 더 재미있는 것을 모를 것 이라고 평했다. C. S. 루이스(C. S. Lewis, 1898~1963),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 등 수많은 작가들이 영감을 받았다.
선교사들은 성경 번역과 함께 천로역정 번역을 우선했다. 1835년 마다가스카르에서 기독교가 불법화되었을 때, 1500명 신자만 남았다. 26년간 수백 명이 순교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성경과 천로역정 이었다. 1861년 선교사들이 돌아왔을 때 교인은 7000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감옥에서 쓴 한 권의 책이 박해받는 이들의 영적 양식이 된 것이다.
번힐 필즈에 있는 번연의 장례 기념비 (위키피디아)
한국의 우리가 배울 것
지금 한국에 사는 우리는 번연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첫째, 양심의 자유는 목숨보다 소중하다. 번연은 설교를 멈추면 석방될 것을 알면서도 내일 다시 설교 하겠다 고 버텼다. 한국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둘째, 펜은 감옥 철창보다 강하다. 권력은 몸을 가둬도 정신은 못 가둔다. 번연의 천로역정 은 찰스 2세의 왕정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한국에서도 군부독재 시절 감옥에서 쓰인 글들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유산이 되었다.
셋째, 평범한 언어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말하라. 번연이 성공한 이유는 라틴어가 아닌 농부의 언어로 썼기 때문이다. 한국 진보운동은 종종 현학적 용어, 외래어 남발로 실패한다. 헤게모니 , 패러다임 , 거버넌스 ... 이런 말로 누가 설득되겠는가?
넷째, 풍자는 저항의 무기다. 허영의 시장 은 오늘날 한국의 거울이다. 명품 소비에 집착하는 사회, 스펙이 삶의 목표가 된 청년들, 금수저 , 흙수저 로 나뉜 나라. 번연이라면 스펙의 늪 , 학벌의 골짜기 , 부동산 거인 을 경멸했을 것이다.
다섯째, 끝까지 버텨라. 번연은 60세에 폭우 속에도 화해를 중재하러 갔고, 열병에 쓰러져서도 설교했다. 한국 사회는 지금 피곤하다. 정치는 혐오로 가득하고, 경제는 양극화로 찢어지고, 젊은이들은 미래를 포기한다. 하지만 번연은 말한다. 천상의 도시까지 가는 길은 원래 험난하다고.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도착한다고.
런던에 있는 작가이자 비국교도 설교자인 존 번연의 무덤 조각상.(위키피디아)
땜장이가 남긴 유산
존 번연. 땜장이 아들. 12년을 감옥에서 보낸 불법 설교자. 하지만 그가 남긴 것은? 200개 언어로 번역되고,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 수백 년간 전 세계 평범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이야기.
권력은 일시적이다. 찰스 2세는 1685년에 죽었고, 그의 왕조도 사라졌다. 하지만 번연의 책은 400년 가까이 살아남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천로역정 을 읽으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우리도 각자의 천로역정 을 살고 있다. 파괴의 도시(부패한 사회)를 떠나 천상의 도시(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여정. 그 길에는 절망의 늪도 있고, 허영의 시장도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자.
번연이 감옥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듯이, 우리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놓지 말자. 그가 평생 42권의 책을 썼듯이,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진실을 말하자. 그가 마지막까지 화해를 중재하러 갔듯이, 우리도 끝까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애쓰자. 17세기 땜장이 아들이 세상을 바꿨다. 21세기 우리라고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존 번연의 서명.(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