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산혁명, 박정희식 속도국가 로 회귀 안된다 [칼럼] 최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AI 생산혁명론’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의 국가 전략을 강하게 제시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AI 경쟁의 핵심이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니라 전력, 반도체, 데이터센터, 인력, 산업입지까지 결합된 생산체계를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조직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AI를 둘러싼 논의를 기술적 성능 경쟁에서 국가적 생산능력 경쟁으로 전환시키며 강한 문제의식을 던졌다.
「AI 생산혁명론」의 가장 중요한 성취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인공지능을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의 세계에서 끌어내려 전력·용수·반도체·데이터센터·물류·제조업이 결합된 물질적 생산체계로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은 구름 속에서 작동하는 마법이 아니라 발전소와 송전망, 구리와 희토류, 반도체 공장과 냉각수, 산업부지와 숙련노동 위에서 작동하는 거대한 물질적 장치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 것이다.
이 관점은 인공지능 경쟁을 모델의 성능이나 챗봇의 편리성으로 축소하는 담론보다 깊은 분석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가 2024년부터 연평균 약 15%씩 증가해 2030년에는 약 945TWh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현재 일본 전체의 연간 전력소비량을 넘어서는 규모이다. 데이터센터가 단순한 정보시설이 아니라 전력체계와 산업입지를 다시 설계하게 만드는 대규모 생산시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바로 이 장점 때문에 한계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공지능을 생산체계로 보지만, 그 생산체계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선택과 생태적 비용을 충분히 묻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속도전이라는 국제경쟁력 차원에서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보다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더 오래 생산할 것인가에 질문이 집중되어 있다. 생산능력의 조직은 설명하지만, 생산의 목적과 한계를 결정하는 민주주의는 뒤로 밀려난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2026.6.2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모든 시대의 국력은 생산체계를 조직하는 능력에서 나왔다
AI 시대의 국력은 기술력이 아니라 생산체계를 조직하는 능력에서 결정된다”는 명제는 타당하지만, AI 시대에만 적용되는 새로운 발견은 아니다. 사실 모든 시대의 국력은 개별 기술보다 기술·금융·노동·교육·에너지·물류·군사·외교를 하나의 체계로 조직하는 능력에서 형성되었다.
증기기관만으로 영국이 세계의 공장이 된 것이 아니며, 전기만으로 미국의 대량생산체제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기술을 사회적 분업, 금융체계, 노동규율, 도시공간, 식민지와 국제무역 질서에 결합한 조직능력이 패권의 기반이었다. 한국의 산업화 역시 포항제철이나 고속도로 하나가 아니라 차관, 수출시장, 산업단지, 저임금 노동, 교육체제, 국가관료제와 기업집단을 결합한 발전국가적 조정의 결과였다.
따라서 지금의 변화를 AI가 단독으로 만들어내는 생산혁명으로만 부르는 것은 다소 기술결정론적이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보다 큰 변화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다국적기업 중심의 자유무역 질서가 약해지고, 국가산업정책·경제안보·보호무역·수출통제·동맹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이다. WTO는 산업정책이 새로운 세계경제의 결정적 특징으로 재부상하고 있으며, 반도체·청정에너지·핵심기술을 둘러싼 보조금과 공공조달, 규제와 수출통제가 세계 생산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분석한다.
AI는 이러한 전환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 가속장치이다. 현재의 생산혁명은 AI 혁명인 동시에 생산체계가 시장에서 국가로, 효율성에서 안보로, 세계시장 전체에서 지정학적 동맹권으로 다시 영토화되는 국제정치경제적 전환이다. AI를 설명하려면 알고리즘보다 생산을 보아야 하지만, 생산을 설명하려면 다시 국제정치와 국가권력의 재편을 보아야 한다.
다만 국가의 귀환을 곧바로 자급자족이나 폐쇄적 보호주의로 이해해서도 곤란하다. 반도체와 AI 공급망은 여전히 여러 국가와 기업에 분산된 초국적 체계이다. OECD의 모형분석은 공급망의 전면적 국내 회귀가 세계무역과 실질소득을 크게 줄이면서도 반드시 안정성을 높이지는 않는다고 경고한다. 필요한 것은 고립된 생산국가가 아니라 핵심 역량을 확보하면서 상호의존의 위험을 관리하는 전략적 개방국가이다.
AI 생산혁명론 속에서 되살아나는 박정희 발전국가의 문법
사실 국가가 전략산업을 지정하고, 전력망과 산업부지를 만들며, 금융과 인력을 집중하고,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대신 떠안아야 한다는 논리는 박정희 시대 중화학공업화의 전형적인 발전국가 문법이다. 박정희 정부는 1973년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공식화하고 철강·조선·석유화학·기계·전자 등 전략산업에 국가 자원을 집중하였다. 이는 한국의 산업구조를 변화시키고 제조업 기반을 구축한 중요한 역사적 성과였다.
고리원전 1호기 역시 이러한 생산국가의 상징이었다. 1971년 착공해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당시 한국 최대 규모의 단위사업이었으며, 박정희는 준공식에서 이를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기념탑”으로 규정하였다. 원자력은 단순한 발전원이 아니라 근대화와 국력, 과학기술 국가를 상징하는 정치적 장치였다.
「AI 생산혁명론」도 이와 유사한 세 가지 문법을 반복한다. 첫째, 특정 기술을 국가의 역사적 운명과 결합한다. 둘째, 생산 인프라의 신속한 건설을 국가 유능성의 기준으로 삼는다. 셋째, 교육·복지·문화·이민까지 전략산업의 생산요소로 재정의한다. AI라는 새로운 어휘를 사용하지만, 그 깊은 곳에는 국가가 목표를 정하고 자원을 집중하면 역사를 앞당길 수 있다”는 발전주의적 시간관이 흐르고 있다.
이 문법의 힘은 시장이 단기수익 때문에 회피하는 장기투자를 가능하게 하고, 여러 부문을 하나의 전략 아래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위험도 분명하다. 국가의 조정능력이 관료적 명령과 동일시되고, 생산의 속도가 민주적 정당성을 대체하며, 전략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비용과 위험에 대한 질문이 뒤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는 성과를 앞당기지만 비용을 없애지는 않는다
박정희 산업화의 핵심적 정치 언어는 ‘속도’였다. 조국 근대화는 따라잡기의 시간표였고, 늦었다는 위기의식은 숙의와 반대, 환경과 노동의 요구를 사치로 만들었다. 1960년대 국가가 제작·후원한 산업화 서사에서도 멈추지 않는 전진과 속도는 국민동원의 핵심 이미지로 활용되었다.
이 속도담론은 한국의 생산능력을 단기간에 확대했지만, 비용을 소멸시키지는 않았다. 다만 비용을 미래와 특정 지역, 노동자와 주민에게 이전하였다. 한국 환경사 연구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과정에서 ‘오염의 대가속’이 본격화되었으며, 1980년대의 공해병과 지역 환경피해가 그 지연된 결과였다고 평가한다.
박정희 정부도 공해방지법 개정과 환경보전법 제정 등 제도적 대응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경제성장 우선의 부처구조, 미비한 방지시설과 집행역량 때문에 공해문제는 계속 심각해졌다. 법의 존재가 생산 확대의 속도를 제어할 만큼 강한 정치적 힘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은 과거 산업화가 환경을 파괴했으니 산업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단순한 결론이 아니다. 더 중요한 교훈은 생산 인프라의 건설속도가 규제·안전·보상·지역참여 제도의 형성속도를 앞설 때, 국가는 성공의 이익은 현재 세대와 중심지역에 배분하고 비용은 미래세대와 주변지역에 남긴다는 점이다.
AI 정책에서도 똑같은 시간의 비대칭이 나타날 수 있다. 데이터센터와 송전망, 발전소와 반도체 공장은 몇 년 안에 건설하려 하면서 물 사용권, 전기요금 부담, 폐열과 전자폐기물, 지역 생태계, 장기적인 에너지 전환에 대한 제도는 나중으로 미루려는 유혹이다. 속도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시키는 방식이 될 수 있다.
AI 전력수요가 원자력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만드는 순간
AI 생산혁명론은 대규모의 안정적 전력을 요구한다. 이 요구는 자연스럽게 원자력 확대론과 결합할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가동되어야 하므로 원자력이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논리가 등장하기 쉽다.
원자력은 발전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낮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후위기와 에너지안보를 고려할 때 원자력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접근도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AI 수요를 이유로 원자력 확대를 필연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국제에너지기구의 전망에서도 2030년까지 증가하는 데이터센터 전력수요의 거의 절반은 재생에너지가 담당하며, 천연가스·석탄과 원자력이 서로 다른 시기와 지역에서 추가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된다. 에너지 조합은 기술적으로 하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책과 시장구조, 입지와 계통투자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다.
새울 3, 4호기 원전 건설 전경. 2025.12.19 [원자력안전위원회 제공] 연합뉴스
한국 원자력의 역사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건설과 폐기물 관리 사이의 시간차이다. 고리원전 1호기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했지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관리 원칙, 독립적 위원회와 부지선정 절차를 종합적으로 규정한 특별법은 2025년에 제정·시행되었다. 이는 그동안 아무런 관리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발전의 시작과 영구적 책임을 다루는 법적·민주적 체계 사이에 매우 긴 시간차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원자력의 비용은 발전단가만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중대사고 가능성, 해체비용, 사용후핵연료와 미래세대의 관리책임, 입지지역의 위험과 낙인, 중앙정부와 지역사회 사이의 권력관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원자력은 AI 산업정책의 하위 수단으로 결정될 사안이 아니다. 기후·안전·폐기물·지역동의·대체에너지의 기회비용을 함께 심의하는 독립적인 사회적 선택이어야 한다.
AI를 빨리 확장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원자력에 대한 숙의를 건너뛰는 면허가 되어서는 안 된다. AI 경쟁에서 뒤처질 수 없다”는 문장은 과거의 산업화가 늦어질 수 없다”는 문장과 닮아 있다. 기술은 달라졌지만 반대와 숙의를 지연으로 취급하는 정치의 문법은 반복될 수 있다.
교육·복지·문화까지 생산수단으로 환원하는 생산주의
김용범 실장의 생산혁명론에서 교육은 생산능력을 재생산하는 투자이고, 문화는 창의성을 만드는 생산요소이며, 복지는 생산혁명이 창출한 초과이윤을 다음 세대의 생산능력으로 연결하는 장치이다. 교육·복지·문화가 경제의 주변부가 아니라 국가 역량의 중요한 토대라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관점이다. 특히 복지를 생산과 대립하는 비용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 신뢰와 역량을 형성하는 투자로 해석한 것은 기존의 성장 대 분배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시도이다.
그러나 교육·복지·문화의 가치를 생산성의 언어로만 정당화하는 순간 생산주의의 위험이 시작된다. 교육은 노동력과 인적자본을 만드는 제도이기 이전에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민주적 주체로 성장하는 공적 과정이다. 복지는 다음 세대의 생산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가기 이전에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적 권리이다. 문화 역시 산업혁신을 촉진하는 창의성의 원료이기 이전에 생산성과 교환가치로 환원될 수 없는 삶의 표현이다.
박정희 발전국가의 가장 깊은 한계도 여기에 있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생산체계를 조직했지만, 동시에 국민을 생산체계의 자원으로 조직하였다. 노동자는 수출과 산업화를 위한 저임금 노동력으로, 학생은 산업인력으로 성장해야 할 예비 노동자로, 농촌과 지역은 도시와 공업화를 지원하는 자원 공급지로 배치되었다. 성장의 성과가 존재했다는 사실과 국민이 성장의 수단으로 동원되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평가되어야 한다.
AI 생산혁명론도 교육과 복지, 문화와 이민을 모두 국가경쟁력의 생산요소로 재구성할 가능성을 지닌다. 학교교육은 AI 인재 양성으로, 대학은 첨단산업의 연구개발 기지로, 문화는 콘텐츠 산업의 자원으로, 복지는 노동력의 재생산 장치로 축소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시민이 삶의 목적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국가가 설계한 생산체계를 유지하는 인적 자원으로 다시 호명될 위험이 있다.
특히 교육을 생산능력의 재생산으로 정의하면 AI와 직접 관련되지 않는 지식과 경험은 주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철학과 역사, 예술과 체육, 돌봄과 시민교육은 단기적인 산업성과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축소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새로운 기술을 책임 있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기술인력의 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기술의 목적을 질문하고, 위험을 판단하며,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인문적·민주적 역량이 함께 필요하다.
따라서 AI 시대의 교육·복지·문화정책은 생산성에 기여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다운 삶과 민주사회를 구성하기 때문에 보장되어야 한다. 생산국가가 교육과 복지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복지·문화가 지향하는 인간적 가치의 범위 안에서 생산정책이 설계되어야 한다. 생산은 사회의 목적이 아니라 좋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수단이어야 한다.
정부가 서남권에 800조원, 충청권에 81조원을 투자하는 등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힌 29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 모습. 삼성디스플레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차세대 디스플레이 생산 거점인 아산·천안캠퍼스를 기반으로 10년간 100조원 상당의 대규모 투자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2026.6.29
생산을 조직하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국가능력
「AI 생산혁명론」은 생산체계를 조직하는 능력을 국가역량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국가역량을 공장을 신속하게 건설하고, 전력을 공급하며, 산업부지를 조성하고, 전략산업에 자본을 집중하는 능력으로만 이해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능력은 국가역량의 한 부분일 뿐이다.
진정으로 강한 국가는 추진할 수 있는 국가인 동시에 멈출 수 있는 국가이다. 환경적 한계를 넘어설 때 계획을 수정하며, 기업의 요구가 공공성을 침해할 때 조건을 부과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유능성은 정책을 신속하게 관철하는 능력뿐 아니라 잘못된 정책을 되돌리고 위험한 계획을 중단하는 능력에서도 드러난다.
첫째, 국가는 생산의 목적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AI 사용과 모든 데이터센터 투자가 동일한 사회적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의료, 기후대응, 과학연구, 장애인 지원, 교육과 공공서비스에 활용되는 AI와 광고 최적화, 금융투기, 살상무기에 탑재된 AI, 감시와 조작에 활용되는 AI를 동일한 산업지원 대상으로 볼 수 없다. 국가는 단순히 AI 생산량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AI가 사회적으로 필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둘째, 국가는 생태적 한계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전력과 용수, 토지와 광물은 무한한 투입요소가 아니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에 탄소예산과 물 사용 총량, 폐기물과 자원순환 기준을 적용하고, 환경비용을 기업의 생산비용에 포함해야 한다. 생산의 규모는 기술적 가능성이 아니라 사회적·생태적 수용가능성 안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셋째, 국가는 정책의 속도를 민주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속도는 경쟁력의 요소이지만 모든 정책에서 최고의 가치가 될 수는 없다. 되돌릴 수 없는 대규모 인프라와 원자력, 환경과 안전에 관한 정책에서는 신속성보다 숙의와 검증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단계적 투자, 중간평가, 중단조건, 사후책임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국가역량의 핵심은 생산수단을 집중하는 능력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가치와 이해관계를 공적으로 조정하는 능력이다. 경제성장과 환경보전, 산업경쟁력과 노동권, 중앙의 전략과 지역의 삶, 현재 세대의 편익과 미래세대의 권리를 함께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생산을 조직하는 능력은 중요하지만, 생산의 방향과 한계를 민주적으로 조직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결론: AI 속도국가가 아니라 민주적·생태적 생산국가로
「AI 생산혁명론」은 인공지능을 알고리즘의 문제가 아니라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력망, 용수, 제조업과 인력이 결합된 생산체계의 문제로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신자유주의적 국가관을 넘어 국가의 장기계획과 산업정책, 공공투자 능력을 복원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도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국가의 귀환이 과거 발전국가의 귀환이어서는 안 된다. 박정희 산업화의 역사는 국가가 생산체계를 조직할 수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생산의 속도가 민주주의와 노동, 환경과 지역의 목소리를 압도할 때 얼마나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준다. 고속도로와 산업단지, 철강과 원자력이 성장의 상징이었다면, 그 이면에는 산업재해와 공해, 지역 간 불균형, 권위주의적 동원과 핵폐기물이라는 긴 그림자가 존재하였다.
오늘날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 원자력과 송전망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AI 경쟁에서 뒤처질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전력과 용수, 환경과 지역사회의 권리를 부차적인 문제로 밀어낸다면, AI 생산혁명은 디지털 기술로 다시 쓰인 중화학공업화가 될 수 있다. 기술은 달라졌지만 국가가 속도를 앞세워 비용을 미래와 지역에 이전하는 정치적 문법은 반복될 수 있다.
AI 생산혁명론이 더 설득력 있는 국가비전이 되기 위해서는 생산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국가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신뢰와 민주주의, 건강한 생태계와 돌봄의 관계, 교육의 공공성과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도 함께 재생산해야 한다. 산업생산이 확대되면서 사회적 재생산과 생태적 재생산이 약화된다면 그것은 성공한 생산혁명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따라서 AI 시대의 국력은 생산체계를 가장 빠르게 확대하는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생산과 분배, 노동과 돌봄, 성장과 생태적 한계, 중앙의 전략과 지역의 권리를 하나의 공공적 질서로 조정하는 능력에서 결정된다. 국가의 역할은 기업이 요구하는 전력과 부지를 신속하게 공급하는 생산 플랫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엇을 생산하고, 누구를 위해 생산하며, 그 비용과 위험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를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공적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AI를 앞세운 새로운 속도국가가 아니다. 장기적 산업전략을 추진하면서도 생태적 한계를 존중하고, 기술투자의 성과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며, 지역과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적 생산국가이다. 이러한 국가는 빠르게 달릴 줄 알지만 위험 앞에서 멈출 줄 알고, 기술의 가능성을 확대하면서도 인간과 자연의 한계를 기억하는 국가이다.
AI는 생산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속도만으로 미래의 방향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우리를 더 빨리 데려갈 수 있지만 어디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와 민주주의이다.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것은 실리콘과 데이터센터로 다시 세운 박정희식 발전국가가 아니라, 생산의 힘과 삶의 존엄, 산업의 전략과 생태적 책임을 함께 조직하는 새로운 민주적·생태적 생산국가이다.
정용주 서울천왕초교장 jyj@mind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