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 입고 뉴스룸 누비던 CNN 창업자 테드 터너 사망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24시간 뉴스 채널 CNN을 창립한 테드 터너가 개국 20주년을 맞은 2000년 6월 1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필립스 아레나에서 청중 가운데 누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넥타이에 만국기가 들어 있는데 태극기도 눈에 띈다. 2000.6.1 풀기자단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1980년 6월 1일 미국 CNN이 개국했다. 24시간 뉴스를 내보낸 채널로 세계 최초였다. 창업자는 저녁 7시까지 일하고 집에 오면 뉴스가 이미 끝나 있었다. 나처럼 저녁 TV 뉴스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고 24시간 뉴스를 내보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1982년에는 CNN2(현 헤드라인 뉴스), 1985년 전 세계에 송출되는 CNN 인터내셔널을 선보였으며 터너 네트워크 텔레비전, 카툰 네트워크 등 여러 케이블 채널을 만들었다.
CNN은 설립 후 첫 2년 동안은 달마다 200만 달러의 손실을 봤다. 시청자는 200만명에 불과했고, 백악관 출입기자단에 들어가기 위해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와 소송전을 불사하기도 했다. 그 시절 고인은 몇 년이나 회사 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목욕 가운을 입은 채 뉴스룸을 돌아다니며 뉴스 가치를 논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러다 24시간 보도 채널의 힘은 1990년 걸프전쟁을 맞아 돋보였다. 최초로 전쟁이 생중계됐는데, CNN에서만 볼 수 있었다. 피터 아넷 특파원이 이라크 바그다드를 찾아가 미군의 공습을 받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했다. 정부 발표에만 의지하던 다른 언론사들과 차별화됐다.
오랜 라이벌 루퍼트 머독이 폭스뉴스를 세워 CNN의 성공을 따라 한 것이 1996년이었다.
아버지 부시 로 불린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미국 중앙정보국(CIA)보다 CNN에서 더 많이 배운다 고 말한 것은 당시 CNN의 위상을 널리 알렸다. 이 방송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 참사 같은 뉴스를 빠르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며 그 가치를 입증했다. 또 베를린 장벽 붕괴, 중국 톈안먼(天安門) 시위 등도 다루면서 역사가 만들어지는 순간과 현장을 기록했다.
언뜻 무모해 보이는 인수·합병(M&A)과 막대한 부채 속에서도 터너가 이끌던 미디어 기업 터너브로드캐스팅시스템(TBS)은 큰 성공을 거뒀고, CNN은 전 세계 5000만 가구에 송출됐다.
CNN의 초창기 자신만만했던 테드 터너 창업자. 게티 이미지
CNN을 창업한 미디어 사업가, 모험가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리는 테드 터너가 87세를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다고 CNN과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터너는 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州) 탤러해시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사망 원인은 따로 공표되지 않았는데 2018년 진행성 뇌 질환인 루이체구 치매를 진단받았으며 지난해 폐렴 때문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CNN 덕에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나중에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별세 소식에 방송 역사의 거장이자 내 친구였고 필요할 때마다 곁에 있어 줬다 며 애도하면서도 고인이 손을 뗀 뒤 CNN이 망가졌다며 가시 돋친 뒷말을 남겼다.
고인은 1938년 11월 19일 오하이오주(州) 신시내티에서 태어났으며 브라운대학을 졸업한 뒤 스물넷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대형 옥외광고 회사 터너 아웃도어 애드버타이징 을 물려받으며 미디어 업계에 발을 들였다. 부친이 술과 약물 오남용, 우울증으로 극단을 선택한 데다 회사 빚이 상당했다. 이 때문에 회사를 매각하라는 조언이 많았지만, 터너는 사업가의 길을 택했다.
이후 라디오 방송국을 사들였고 1970년에는 애틀랜타 텔레비전방송국 채널 17을 인수하면서 미디어 사업을 확장했다. WTCG로 이름을 바꾼 이 채널 초창기에는 오래된 시트콤과 영화를 방영했으며, 이후 야구 경기로 시청자를 모았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당시 큰 성과를 내지 못하는 야구팀이었지만 터너는 50만 달러의 현금과 800만 달러의 대출을 받아 아예 야구팀을 사들였고, 162경기를 모두 중계하는 식으로 WTCG의 콘텐트를 채워 대박 을 터뜨렸다.
터너는 이 성공을 기반으로 TV 사업에 대한 관심을 키웠고 1976년 채널17을 위성방송으로 만들면서 전국 케이블 가입자로 접점을 늘렸다. 케이블 TV 가운데 최초의 슈퍼스테이션(지역 방송국이 위성을 통해 전국으로 방송되는 것) 사례로 꼽힌다.
그리고 CNN이 큰 성공을 거뒀다. 1996년 터너는 타임 워너에 75억 달러(약 11조원)를 받고 네트워크 사업을 매각했다. CNN을 품은 타임 워너는 다시 2016년에 통신사 AT&T에 854억 달러 규모에 매각됐다.
그는 타임 워너의 부회장을 지내면서 케이블 뉴스 사업을 총괄했지만 2003년 사임했고, 최근까지 자선사업가로 활동했다. 핵무기 감축과 기후변화 대응, 야생동물 보호 활동에도 오랫동안 참여했다.
그의 개인적인 면모를 보면 승부사 기질과 모순적인 태도가 눈에 띈다. 그는 자주 소리를 질렀고 입이 걸어 남부의 입 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다. 세 차례의 결혼과 이혼, 잦은 내연관계 등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세 번째 결혼은 1991년 배우 제인 폰다와 했으며 10년을 함께 한 뒤 이혼했다.
그는 스스로 극우 공화당원 을 자처했지만,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친구였으며, 중국 공산당 정부의 억압적인 정책을 옹호했다.
세계적인 요트 선수이기도 했다. 1977년 아메리카스컵에서 우승했다. 1983년, 머독이 후원하는 요트가 호주 경주에서 터너의 보트와 충돌했는데 터너는 머독에게 주먹다짐을 신청했다. 그는 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야구팀, 애틀랜타 호크스 농구팀, 애틀랜타 쓰래셔스 아이스하키팀 등 스포츠 자산도 소유하고 있었다.
사업 계약을 할 때 계약서를 끝까지 읽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고 주변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맨바닥에서 시작해 기존 언론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미디어 제국을 세워 성공한 반항아 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NYT와 인터뷰하며 나는 항상 사업가라기보다는 모험가에 가까웠다 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유엔에는 모두 10억 달러를 기부했는데, 2001년 닷컴 버블 붕괴로 재산을 거의 모두 잃은 상황에도 이 약속을 지켜 2015년 마지막 기부금을 전달했다. 사냥을 좋아했지만, 나중에는 환경론자로 변모해 몬태나, 뉴멕시코, 네브래스카 등에 200만 에이커의 대지를 구매해 자연보호구역으로 활용해 왔다.
고인이 CNN을 창업할 때 남긴 말이 눈을 감은 뒤에도 묵직하게 들려온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방송 종료는 없을 것이다. (We won’t be signing off until the world e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