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운 가른 두 차례 오보, 동아일보 폐간으로 응답해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언론의 신뢰는 한 번 무너지면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세계 언론의 역사는 그 원칙을 냉정하게 증명해 왔다. 2011년 자진 폐간한 영국 뉴스 오브 더 월드 (1843~2011)는 168년 역사를 자랑하던 영국 최대 대중지였다. 그런데 어쩌다 이 저명한 대중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일까? 뉴스 오브 더 월드 는 신문 판매를 위해 불법 도청을 종종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왕실은 물론 유명 축구 선수와 세계적인 영화배우들도 이 신문사의 도청에 피해를 봤다.
‘뉴스 오브 더 월드’를 폐간으로 몰고 간 결정적 사건은 2002년 납치·살해된 13세 소녀 밀리 다울러의 휴대전화를 도청한 사건이었다. 당시 이 신문사의 기자는 해킹을 통해 피해 여학생의 음성메시지를 도청한 것도 모자라 음성메시지의 일부를 삭제하기까지 했다. 경찰과 가족은 밀리 다울러가 직접 메시지를 삭제했다는 판단을 내리고 수사를 이어갔다. 수사에 혼선이 일었고 다울러의 가족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분노한 영국 국민들 앞에서 ‘뉴스 오브 더 월드’는 결국 168년의 전통을 뒤로 한 채 폐간됐다.
휴대전화 메시지를 해킹해 취재에 이용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결국 168년 역사를 마감하게 된 뉴스오브더월드. 종간호 1면에 ‘고맙고 안녕’이라는 헤드라인이 보인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소련은 신탁 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1945년 12월 27일,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기사가 동아일보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가 채 공개되기도 전에 보도된 기사의 내용인즉 소련 측은 신탁통치를, 미국 측은 즉시 독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동아일보의 기사와는 정반대였다. 신탁통치안을 제시한 것은 미국이었고, 소련은 오히려 신탁통치 기간 단축과 조선에 하나의 임시정부를 구성하는 조선 민족의 주권을 보장하는 안을 주장했다.
모스크바 3상회의 왜곡 보도가 실린 1945년 12월 .27일자 지면
오늘날 대다수의 역사적 평가는 신탁통치 오보 사건을 단순 오보를 넘어선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프레임 구성 으로 보고 있다.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었던 김성수는 송진우와 더불어 한국민주당(한민당)의 주요한 위치에 있었고 우익 진영이었던 한민당에게는 정국의 주도권이 필요했다. 또한 한민당은 친일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좌우 합작을 통해 임시정부가 세워지면 친일 청산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에, 이들은 좌익 독립운동가 세력을 소련 식민지의 앞잡이 로 몰아붙이고 자신들은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로 변신해 반탁 운동을 제2의 독립운동으로 포장할 필요가 있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좌우 갈등이 폭발했고 미소공동위원회는 좌초됐다. 남북에 단독정부가 수립되었고 1950년에는 한국전쟁이 터졌다. 수없이 많은 민간인 학살이 있었고 해방된 지 채 5년도 지나지 않은 한반도는 발전된 무기들의 시험장이 되어 불 탔다. 해방된 조국 재건의 현장에 서 있어야 할 젊은 역군들이 전쟁터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눠야 했고 수백만의 전쟁 피난민이 발생했다. 동아일보의 펜이 뿌린 씨앗이 수백만 생명을 앗아간 전면전의 비극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란수괴를 대통령으로 만든 2021년의 오보”
천화동인 1호가 내 것이 아닌 것을 잘 알지 않느냐.”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과거 이런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8일 전해졌다. 화천대유 관계사 천화동인 5호 소유주인 정영학 회계사가 김 씨 등과 나눈 대화 녹취록에 이 내용이 있다고 한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19, 2020년경 위례신도시 개발 민간사업자인 위례자산관리의 대주주 정재창 씨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의 ‘3억 원 뇌물 사진’을 보여주며 150억 원을 요구하자 김 씨가 정 회계사,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와 대책을 논의했다. 정 회계사와 남 변호사가 천화동인 1호 배당금(약 1208억 원)에서 일부를 부담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자 김 씨는 그(천화동인 1호 배당금) 절반은 ‘그분’ 것이다. 너희도 알지 않느냐”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앞 대목
2021년 10월 9일 새벽 3시, 동아일보 고도예·유원모 기자는 , , , , , , , , , , , , , , , ,
2021년부터 2023년 2월까지 수상자로 이름이 오른 동아일보 기자들이 단독 보도한 기사 제목들이다.
조직적 조작이라면 폐간으로 응답하라”
동아일보의 오보는 모두 실수 가 아니었다. 1945년에는 좌익 독립운동 세력 매도, 한국전쟁과 분단 고착화, 2021년에는 유력 후보 낙선과 검찰독재 정권 탄생이라는 정치적 결과와 정확히 맞물렸다. 역사 속 소수의 의도적 왜곡이 얼마나 끔찍하고 참담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언론의 무게감에 대해 깨닫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언론사의 선례는 분명하다. 조작 보도에는 해당 기자 파면이 필연이고, 조직적·반복적 조작에는 폐간만이 정답이다. 동아일보는 1945년 단 한 번의 오보로 한반도를 분단과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77년 뒤, 똑같은 수법으로 내란수괴를 대통령에 앉혔다. 사과와 신문사업자 반납만으로 씻을 수 있는 죄과가 아니다.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생명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진실을 지킬 책임과 함께한다. 책임 없는 자유는 권력의 도구가 된다. 동아일보가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사회가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파면, 그리고 해당 언론사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책임 추궁, 이것이 두 번의 역사 조작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이다. 기사는 칼보다 날카롭다. 그래서 기자는 칼을 든 자보다 무거운 책임을 진다. 그 책임을 저버린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
오보 다음 날 종료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개표 결과. 동아일보가 오보를 내보낸 시점은 대선 경선 서울 투표 전날이었다. 연합뉴스 그래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