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잿더미 위에 울리는 언론 선동의 나팔 소리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10월 13일 월요일 텔아비브 인근 벤구리온 국제공항에서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기 전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AP 연합뉴스
가자지구에 불안하고 위태로운 휴전 의 커튼이 열렸다. 그러나 그 커튼 아래로 드러난 지난 2년의 결과는 인류가 스스로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참혹한 폭력의 증거로 가득한 생지옥, 그 자체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극우 연정이 미국을 위시한 서방 동맹국들의 변함없는 군사적, 외교적 지원 아래 자행한 이 집단학살의 기록은 숫자로만 봐도 소름 끼칠 정도이다.
지난 2년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가한 폭격은 군사 목표를 타격하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이스라엘은 가자라는 작은 영토에 20만 톤이 넘는 폭탄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는 처참하다. 팔레스타인 보건부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추산을 종합하면, 학살의 희생자는 6만 7천여 명을 훌쩍 넘어섰고 이 중 절반 가까이가 아동과 여성이었다.
잔해 속에 묻혀 행방조차 파악되지 않는 실종자는 1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은 죽음으로, 가자지구 전체가 거대한 무덤이 되었음을 뜻한다. 특히 의도적인 표적 살해는 더욱 악랄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의료진은 1670명에 달한다. 언론인 254명이 살해당했으며, 소방대원 140명의 죽음은 이 비극에 깊이를 더한다.
이스라엘은 가자의 미래 자체를 지워버렸다. 5천만 톤의 콘크리트 잔해는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고, 곳곳에 박힌 불발탄은 가자를 지뢰밭으로 바꿨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폭탄에서 나온 독성물질과 파괴된 기반 시설에서 흘러나온 오염물질이 토양과 지하수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오염시켰다 라고 경고했다.
2년간 집단학살의 희생자와 부상자 - 출처: 알 자지라
이 땅을 다시 생명이 깃들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할지,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난 2년간 이스라엘이 만들어낸 생지옥 의 해부도다. 이번에 상호 합의에 따라 팔레스타인 인질 2천여 명이 풀려났지만, 이는 이스라엘이 자행 중인 거대한 인질극의 일부를 가리는 연막에 불과하다.
여전히 1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있고, 360명의 아동들까지 어른과 똑같은 환경에서 고문과 굶주림, 의료 서비스 부재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심지어 700여 구의 팔레스타인인 시신을 돌려주지 않으며 죽은 이들마저 인질로 잡고 있다. 이는 유가족에게 끝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더구나 휴전 합의는 첫날부터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파괴된 집으로 돌아가려는 피난민들의 행렬에 총격과 폭격을 가하며 매일같이 10~20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라파 국경은 여전히 봉쇄되어 있고, 합의했던 구호물자 반입량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휴전 은 선언되었지만, 이스라엘의 학살은 단 하루도 멈춘 적이 없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군인 한 명이라도 살해했다면, 이는 휴전 위반으로 뉴스에 대서특필될 것이고 이스라엘은 폭격의 구실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점령군은 팔레스타인인을 멋대로 살해할 수 있으며,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인의 생명은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오웬 존스, 영국의 진보적 언론인)
바로 이 지점에서 서방과 한국 주류 언론의 기만적인 프레임 전환이 시작된다. 지난 2년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인간 도살장으로 만들 때는 이스라엘의 자위권 , 복잡한 중동 문제 라며 침묵하거나 외면하던 이들이, 이스라엘의 휴전 위반과 계속되는 살상 행위들을 한사코 외면하면서 가자 내부의 특정한 문제에만 엄청난 관심과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이런 제목과 내용의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 관련 기사 화면 갈무리
요즘 쏟아지는 기사들의 제목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트럼프가 가져온 평화 속, 하마스의 공포 통치 시작 , 가자로 돌아온 하마스, 반대파 숙청과 공개 처형으로 내전 위기 등이다. 이 기사들은 지난 2년간 네타냐후의 집단학살과 야만적인 폭력에 대해서는 철저히 눈감았던 바로 그 언론사들의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들의 분노 는 지독히도 선택적이다. 이스라엘의 폭탄에 찢겨 죽어간 3만 명의 아이들과 여성들의 삶에는 무관심했던 이들이, 이제 와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부역했다고 지목된 소수의 사람들(주로 IS 계열 갱단 단원들)의 생명과 안전 에는 커다란 공감과 우려를 표명한다. 이들의 기사에는 부역 혐의자들의 인권 을 걱정하는 인도주의적 수사가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보도의 숨은 의도는 명백하다. 보라, 우리가 잠시 자리를 비우니 가자는 저렇게 야만적인 곳이 되었다. 돌아온 하마스가 공개 처형과 숙청을 자행하고 있으니, 문명 세계를 대표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다시 돌아가 질서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주장을 위한 밑밥 깔기다. 이와 같은 하마스 악마화 는 이스라엘의 모든 침략과 학살을 정당화해 온 가장 오래되고 효과적인 신호탄이었다.
물론, 지금 가자에서 공개 처형과 인권 침해 같은 일은 전혀 없다 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난 2년의 지옥 같은 상황이 낳은 극심한 고통과 분노 속에서, 점령군에게 협력하여 이웃과 가족을 죽음으로 내몬 부역자를 찾아내 처형하는 일이 실제 일부에서 벌어진 사실은 부정할 수는 없어 보인다. 지난 2년간 가자는 생지옥이 되었고, 지옥에서는 온갖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그 생지옥을 누가 만들었는가? 바로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그래서 지금 일부 언론이 말하는 논리는 지옥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그 지옥을 설계하고 불을 지핀 악마가 다시 돌아가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기막힌 궤변이다. 이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제국주의의 논리다.
가자시티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이 있은 직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몸을 피하고 있다. 2025. 09. 27. [EPA=연합뉴스]
미국이 후세인의 독재 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침략과 폭격은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이라크를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혼돈의 잿더미 속에서 IS와 같은 야만적 조직이 자라났다. 그러자 미국은 다시 IS를 척결하고 이라크 주민을 지옥에서 구하기 위해서 라며 거듭된 폭격과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했다.
역사적으로 식민 지배와 점령, 학살의 고통을 겪은 이들이 해방의 순간 부역자들을 찾아내 분노의 보복을 가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서는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벌어져 수천 명이 재판 없이 처형당했다.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가 분노한 군중에게 맞아 죽고 시신이 광장에 내걸렸다.
나치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되었던 바르샤바 게토에서도, 나치군이 물러난 후 게토 경찰 등 부역자들에 대한 처절한 응징이 있었다. 이러한 행위들이 기쁘고 반갑거나 바람직하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정식 수사와 재판이 없는 즉결처분은 무고한 희생자를 낳을 수 있고, 또 다른 폭력의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
이스라엘 역시 자신들의 협력자나 범죄자들을 조종해서 가자의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이를 이용해 재침공의 명분을 쌓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가자지구에 가장 시급한 것은 주민들의 지지를 받는 안정적인 정부가 들어서고, 무너진 치안을 회복하며, 민주적이고 투명한 사법 절차를 통해 집단학살과 전쟁범죄 가해자와 부역자 문제를 포함한 과거 청산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런 뉴스들은 집단학살을 재개하라는 죽음의 나팔소리로 들린다 -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하지만 바로 그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파괴하고 방해하는 세력이 누구인가? 바로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2006년,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국제 감시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하마스를 정부로 선택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즉시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적인 봉쇄에 들어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신들의 말에 복종하는 하수인일 뿐이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할 모든 가능성을 파괴해왔다. 지금 서방과 한국의 주류 언론이 정신없이 쏟아내는 트럼프가 가져온 평화 속에 돌아온 하마스와 가자에서 시작된 숙청과 내전 이라는 보도는, 이 모든 맥락을 거세한 기만이다.
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다시 돌아가 저 미개한 야만인들을 문명화하라 고 부추기는, 전쟁범죄와 인종청소를 시작하라는 죽음의 나팔소리 다. 실제로 트럼프는 우리가 가자에 들어가 하마스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 고 말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이 나팔소리에 장단을 맞춰서는 안 된다. 누가 진정으로 가자를 이런 지옥으로 만들었는지 똑똑히 직시하며 학살이 다시 시작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